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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3화
PAYLUA ORIGINAL · 제3화

3화. 용사도 실업자가 될 수 있습니까?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760자

오프라인 책장
살면서 퇴사 통보를 두 번 받아 본 적은 없다. 정확히는 첫 번째 회사에서는 내가 사직서를 냈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아직 입사도 못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왕국의 왕립 경비대에게 둘러싸인 채로 서 있었다. 취업 시장이 험하다더니 이세계는 더 험하네. “성검을 반납하시오.” 금색 투구를 쓴 기사가 말했다. 아침부터 감정이 좋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빈손을 들어 보였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농담하지 마시오.” “진짜입니다. 한번 가져가 보세요.” 기사가 성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가 온 힘을 주어 당겼다. 안 움직였다. 다른 기사까지 붙었다. 역시 안 움직였다. 세 번째 기사는 허리에 밧줄을 묶어 검 손잡이에 연결했다. “하나, 둘, 셋!” 콰당! 기사 셋이 동시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성검은 내 옆에 얌전히 매달려 있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거봐요. 저도 답답합니다.” “마법을 쓰는군!” “제가 그런 걸 쓸 줄 알면 아침부터 여기 서 있겠습니까?” 기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제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흰빛이 검을 감쌌다. 검이 윙 하고 울었다. 그리고 사제의 수염 끝을 살짝 태웠다. “끄아악!” 아이고. 화끈하네. “조심하세요. 얘가 낯을 좀 가리나 봅니다.” 이 말을 했더니 사제가 나를 더욱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그때 국왕이 나타났다. 어제보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마 회의가 길어져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전날 야근 때문에 잠을 못 잤으니까. “용사여.” “예, 폐하.” “마지막으로 묻겠다. 신성 서약을 하겠는가?” “계약 조건을 보완해 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국왕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대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나는 왠지 저 말을 들으니 불안해졌다. 우리 회사 인사팀에서 퇴사 면담할 때 자주 쓰던 문장이었다. '본인이 선택하신 퇴사입니다.' 실제로는 야근 때문에 쓰러져도 지원이 없어서 나가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대를 왕궁에서 추방한다!” 마침내 선언이 떨어졌다. 기사들은 약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의 신병 확보 명령서는 어디 갔느냐고? 대사제가 새벽 내내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다. 성검이 인정한 용사를 공개적으로 감금하면 신전의 예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반대도 나왔다고 한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건 체면을 지키는 추방이었다. 성검은 못 빼앗았고, 그렇다고 신성한 용사를 감옥에 넣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폐하.”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돌아가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겁니까?” 국왕이 대사제를 바라봤다. 대사제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마왕이 멸망하면 신의 빛이 길을 열 것입니다.” “그 방법밖에 없나요?” “그것이 예언입니다.” 예언. 계약서와 달리 검증 방법이 없는 문서다. 나는 더 따지지 않았다.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다. 살아서 나가야 한다. “알겠습니다.” 국왕은 내가 굴복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푸는 듯 말했다. “성검만은 그대에게 남겨 두겠다.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이니 언젠가 마음을 돌리겠지.” 아까 세 명이 달라붙어도 가져가지 못했던 일을 벌써 잊었나 보다. 대단한 기억력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왔다. *** 왕궁 북문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마차가 아니었다. 두 명의 기사와 낡은 가죽 주머니였다. “용사님, 소지품입니다.” 주머니 안에는 양피지와 펜, 시녀가 준 빵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돈은요?” “지급 지시가 없었습니다.” “출궁 여비도요?” “없습니다.” “아침 식사는?” 기사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야. 추방 하나는 확실하네.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럼 성검을 팔아도 됩니까?” “신성모독입니다!” 바로 대답이 나왔다. 아, 이건 빠르구나. 계약 검토에는 하루 넘게 걸리던 사람들이 매각 금지는 즉시 판단한다. 왕궁 문이 닫혔다. 쿵. 높다란 성벽 아래 나 홀로 남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이세계 생활은 정규직 채용 실패로 기록되었다. 세상 참 넓고 실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 왕도는 생각보다 활기찬 도시였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았고, 거리에서는 빵 냄새가 났다.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용사 놀이를 했다. 그걸 보니까 웃음이 나왔다. 실제 용사는 아침도 못 먹고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가짜 용사들은 악당을 무찌르며 환호받고 있었다. “용사다!” 아이가 나를 가리켰다. 어라? 벌써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진짜 성검이다!” 아이가 달려왔다. 뒤따라 어른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순간 희망을 품었다. 혹시 이 세계에도 유명인 후원 문화라는 게 있지 않을까. 유명세를 이용해 끼니 정도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용사님! 마왕을 언제 물리치십니까?” “아직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마왕에게 저주받은 제 아들을 구해 주세요!” “저는 저주에 대해서는 잘…….” “우리 마을에도 오시나요?” “아마 일정이 확정되면…….” “용사님! 축복을 내려 주세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무도 밥은 먹었냐고 묻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유명인은 유명인인데, 후원이 필요한 유명인이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골목으로 도망쳤다.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진정한 용사라면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지금은 제가 먼저 굶어 죽게 생겼어요. 골목 끝에는 작은 여관이 있었다. 문 앞에 냄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냄새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체격이 좋은 여관 주인이 나를 맞았다. “식사됩니까?” “물론이지요. 고기 수프와 빵이 있습니다.” “얼마죠?” “동화 여덟 닢.” 동화. 새로운 통화 단위다.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한국 지폐 세 장, 카드 두 장, 동전 몇 개. 국왕의 은혜로 왕궁 밖에 나왔지만 이 세계 돈은 한 닢도 없었다. “저기, 이걸로 결제 가능할까요?” 지폐를 내밀었다. 주인은 지폐를 뒤집어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요?” “화폐입니다.” “장난치지 마시오.” “진짜 돈인데요.” “왕국 화폐가 아니지 않소!” 그렇지. 외환 거래부터 해야 하겠네. 나는 손에 든 성검을 바라봤다. “그럼 이걸 담보로…….” “그건 성검 아니오?” 주인의 눈이 커졌다. “당신이 그 용사요?” “일단 그렇다고들 합니다.” “이런 분이 우리 여관에!” 주인이 손뼉을 쳤다. “식사는 대접하리다!” 오. 드디어. 나는 감격해서 자리에 앉았다. 뜨끈한 수프가 나왔다. 빵도 두 덩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첫 숟가락을 뜨려는데 주인이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용사를 위한 헌금] “마음만큼 넣으시면 됩니다.” 아. 공짜가 아니었구나. 상자 안에는 동전들이 짤랑거렸다. “제게 이 세계 돈이 없어서요.” “그럼 식사를 하시고 축복의 말씀이라도 남겨 주시오. 손님들에게 홍보가 될 테니.” 오호. 광고 모델 계약이네. 나는 협상했다. “축복의 말씀 한 줄과 수프 한 그릇, 빵 두 개면 되겠습니까?” 주인이 눈을 깜빡였다. “예?” “서로 제공할 걸 정하자는 겁니다. 추가 요구는 별도 협의하고요.” 주인이 한참 나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참 이상한 용사로군!” 이상하긴요. 세상에서 제일 정상적인 거래인데. 나는 빵을 한 입 뜯었다. 살았다. 먹고 나니 사람다운 생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 저녁이 될 무렵, 나는 여관에 붙은 도시 안내도를 보고 있었다. 왕도에서 동쪽으로는 농촌, 남쪽으로는 무역로, 북쪽으로는 왕국군 주둔지가 있었다. 서쪽 끝에는 검게 칠해진 산맥이 표시되어 있었다. [마계 접경지. 출입 자제.] 나는 지도에서 눈을 뗐다. 계획이 필요했다. 일단 수입이 있어야 한다. 몸에 붙어 있는 성검을 담보로 쓸 수는 없고, 내 한국 돈은 쓸모가 없다. 회계 일을 구하려면 이 세계의 숫자와 장부 체계를 좀 더 배워야 한다. 아니, 잠깐. 이미 기본 계산은 비슷했다. 차액, 거래, 영수증, 급여.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지간한 게 다 같다. “주인장.” 나는 여관 주인을 불렀다. “이 근처에 회계 담당자를 구하는 곳이 있습니까?” “회계?” “돈을 관리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일이요.” “상단에서 가끔 구하지. 다만 보증인이 있어야 할 거요.” “보증인이라.” “이곳 출신도 아니고 추천서도 없으니 쉽지 않겠군.” 맞는 말이다. 현실에서도 경력직 채용은 경력 증빙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내 전 직장 재직증명서를 받아 올 방법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단기 일자리라도 있나요?”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주방 쪽을 가리켰다. “오늘 밤 장작을 나르면 동화 스무 닢을 주겠소.” 좋다. 일당 명확. 업무 범위 명확. 지급 시점 명확. 나는 바로 승낙했다. “계약 성립입니다.” 주인은 또 웃었다. “자네는 정말 못 말리겠군.” *** 장작 나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곱 해 동안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장작을 열 묶음쯤 옮겼을 때는 성검이 허리춤에서 덜컹거려 더 짜증이 났다. “넌 도와줄 생각 없냐?” 검에게 물었다. 칼날이 반짝였다. 노랫소리가 잠깐 났다가 사라졌다. “노래 말고 운반.” 조용하다. 정말 쓸모없는 복지 물품이네. 일을 마치자 주인이 약속대로 동화 스무 닢을 내주었다.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생각보다 묵직했다. 나는 동화 여덟 닢을 식비로 쓰고, 네 닢은 아침 빵값으로 남겨 두었다. 나머지 여덟 닢은 모아 두기로 했다. 간단한 수지 계획이다. [수입 20. 식비 8. 익일 식비 예비 4. 저축 8.] 이세계 첫날의 재무상태표라고 생각하니 조금 웃겼다. 회사의 억 단위 돈을 관리하던 사람이 이제 동전 여덟 닢을 소중하게 세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돈이 더 마음에 들었다. 누가 공짜로 준 게 아니라 내가 한 일을 정확히 계산해서 받은 돈이었으니까. “젊은이.” 주인이 다가왔다. “성검을 정말 팔 생각인가?” “팔리기나 하면 좋겠네요.” “왕립 신전 앞에 환전소가 있기는 한데, 별난 물건을 담보로 잡아 주기도 하오.” 오. 정보다. 나는 다음 날 아침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 왕립 신전 환전소는 화려했다. 안쪽에는 성스러운 그림이 걸려 있었고, 바깥에는 대출 이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신전과 금융업. 의외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둘 다 사람에게 믿음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성검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습니까?” 창구의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품이면 금화 쉰 닢까지 가능하오.” 금화 쉰 닢! 와, 생각보다 비싸네. “이자는요?” “일주일에 원금의 십 퍼센트.” “……예?” “일주일에 십 퍼센트요.” 나는 잠시 계산했다. 연 단위로 환산하면 원금이 몇 번이고 불어나는 수준이다. 이건 대출이 아니라 저주다. “상환 기한은요?” “마왕 토벌 후.” “마왕 토벌이 늦어지면요?” “이자가 계속 쌓이오.” 아이고. 마왕이 이기든 지든 이쪽은 돈을 버는 구조네. 나는 정중히 성검을 거둬들였다. “안 빌리겠습니다.” 사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용사가 돈을 아끼려 드는군.” “제 돈이 아니니까 더 아껴야죠.” 나는 환전소를 나왔다. 그때였다. 광장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사람들이 새로 붙은 공고문 앞에 모여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왕국 재무청 고시] [신성 소환 의무 이탈자 한도윤. 발견 즉시 신고할 것.] [체포 협조 포상금: 금화 백 닢.] ……. 금화 백 닢. 내가 죽을 경우 가족에게 보내 줄 돈은 없다고 했으면서, 나를 잡는 사람에게는 금화 백 닢을 주겠단다. 와. 내 목숨에 시장가격이 생겼네. 나는 공고문을 자세히 읽었다. [위험 인물. 신성 유물 무단 소지.] 무단 소지라니. 돌려주려고 해도 못 돌려줬잖아! 게다가 아래에는 내 얼굴이 대충 그려져 있었다. 눈은 사납고 코는 매부리코였다. 누구세요? 나보다 최소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인물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못 그렸으면 당장 알아보지는 못하겠지. 그런데 옆에 서 있던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아저씨.” “응?” “그 검, 그림에 있는 거랑 똑같아요.” 나는 성검을 바라봤다. 성검은 반짝였다. 눈치 없는 녀석. “아하하. 장난감이야.” 아이가 손을 뻗었다. “한번 만져 봐도 돼요?” “안 돼.” “왜요?” “비싸서.” 나는 서둘러 광장을 빠져나왔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장난이 아니다. 왕국이 정말로 나를 잡으려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왕도 주변은 전부 왕국 땅이다. 내가 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이 있긴 한가? 그때 바람이 불었다. 휙. 종이 한 장이 내 발목에 달라붙었다. 나는 짜증스럽게 주워 들었다. 또 수배 공고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급구. 마왕성 재정실 사무직.] [숙식 제공. 초임 협의. 야간 근무 수당 별도.] [사고 시 치료 지원 및 유족 보상 규정 운영.] ……. 잠깐. 마왕성? 나는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딱 세 개였다. 숙식 제공. 수당 별도. 보상 규정. 그제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세상에…….” 인류의 적이라는 마왕이 국왕보다 근로조건을 잘 적어 놨다. 이거, 면접이라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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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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