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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38화
PAYLUA ORIGINAL · 제38화

38화. 적국과 함께 여는 청문회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45자

오프라인 책장
공동 청문회라는 걸 열게 됐다.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근사하다. 왕국과 마왕성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기록을 확인하고, 주장과 증거를 구분하고, 향후 대책을 세운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인간! 왜 내 앞에 물잔이 하나뿐이냐!” 마왕 제르칸이 소리쳤다. “전하, 물잔은 하나면 충분합니다.” “왕국 재무관에게는 두 잔을 주지 않았느냐!” “하나는 물이고 하나는 뜨거운 차입니다.” “본왕에게도 차를 가져오라!” “전하께서는 차를 안 드시잖아요.” “그래도 가져와라!” 아.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의전비가 늘어났다. 나는 주방장에게 같은 주전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마왕에게는 빈 찻잔을 드렸다. 마왕은 잔을 든 채 한동안 위엄 있는 표정을 유지했다. 물이 없다는 사실은 몰랐으면 좋겠다. *** 회의 참석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왕국 재무관 라델과 기록관 아레인, 군수 감독관 헤른, 조사관 두 명. 마왕성에서는 제르칸, 몰트, 루시아, 피코, 나. 그리고 북부 채석장의 게르온 소장과 작업자 대표 타르까지 불렀다. 타르는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얼어붙었다. 왕국 관료와 마왕, 해골과 인간이 같은 탁자에 앉아 있었으니 당연했다. “저, 제가 여기 있어도 됩니까?” “네가 중요한 증인이니까.” 내가 말했다. “여기서 확인할 기록 중에 네 급여가 있어.” “그런데 전 글을 잘 못 읽는데요.” “괜찮아. 읽어 줄 사람이 있잖아.” 피코가 씩 웃었다. “제가 읽어 드릴게요!” 타르는 조금 안심한 듯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당사자가 빠진 회의에서 당사자의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하는 것보다 웃기는 일도 없다. 물론 한국 회사에서는 그런 회의가 꽤 자주 열렸지만. *** 첫 안건은 흑철 검 만 자루였다. 나는 거래를 세 부분으로 나눴다. 첫째, 계약에는 검 완제품 만 자루라고 적혀 있다. 둘째, 운송 기록과 일부 실물 검사에서는 성벽 방호용 연결대 규격이 발견됐다. 셋째, 지급금 금화 팔만 닢 중 물품비 육만 닢과 운송비 이만 닢의 구분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허위 구매입니다!” 헤른이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나는 손을 들었다. “확인된 건 주문서와 실물 기록이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누가 왜 바꿨는지, 전체 물량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전쟁 물자를 허위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원본 전송 기록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헤른이 라델을 바라봤다. “재무관님, 이 인간은 자꾸 결론을 미룹니다.” 라델이 차분하게 답했다. “결론을 내려면 근거가 필요합니다.” 오. 오늘의 라델은 든든하네. 그가 예전에 나한테도 그렇게 말해 줬다면 왕국을 떠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 마왕성의 회계를 보지 못했겠지. 인생 참 묘하다. *** 두 번째 안건은 채석장 안전 기금이었다. 나는 타르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줬다. “급여에서 매달 안전 장비비가 빠졌는데요.” 타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장갑은 찢어진 걸 두 번이나 꿰매 썼고, 갱도에서 돌이 떨어져도 새 보호구를 못 받았습니다. 소장님께 말했더니 본부에 청구해 놓았다고 했어요.” 게르온이 고개를 숙였다. “본부에 요청서를 올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급 확인을 끝까지 하지 못한 건 제 책임입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누군가 잘못했으니 곧장 감옥에 보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서 절차가 끊겼는지 확인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아레인이 왕국 쪽 관행을 설명했다. “왕국 병기창에서도 보호구는 중앙에서 일괄 구매합니다. 현장에는 수량 확인서가 내려갑니다.” “그 확인서가 실제 지급과 다르면 어떻게 합니까?” “현장이 이의 신청을 합니다.” “이의 신청을 무시하면요?” 그녀가 잠시 머뭇거렸다. “원칙적으로 상급 기관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 상급 기관이 원인이라면?” 아레인이 입을 다물었다. 좋다. 이 질문이 오늘 청문회의 핵심 중 하나다. 나는 회의록에 적었다. [안전비 공제와 지급 실적 불일치 확인. 현장 관리 책임 일부 인정. 본부의 수수료 집행 근거 추가 조사 필요.] 타르가 물었다. “그럼 저희는 언제 돈을 받습니까?” “확인된 금액은 임시 지급했습니다. 나머지는 명세서를 더 대조해서 지급 일정표를 만들겠습니다.” “저희가 계속 여기 나와야 합니까?” “아니. 네가 하던 일을 해야지. 필요하면 자료를 요청할 거야. 일하지 못하게 불러 세우지는 않을게.” 그는 그제야 안도했다. 회의에 참석하느라 일을 못 했다고 월급을 깎는 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 세 번째 안건은 공문 위조 의혹이었다. 왕국의 승인된 통지와 마왕성에 전달된 강제 명령 문구가 다른 문제. 렘의 진술. 제4병기창 서명 보정실의 기록. 빠진 송-4189. 나는 자료를 순서대로 보여 줬다. “왕국 재무청이 승인하지 않은 문구가 최종 전달 문서에 들어간 것은 양측이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수정한 사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라델이 직접 덧붙였다. “재무청 내부의 봉인실 사용 기록도 조사 중입니다. 저희 기관이 누군가를 비호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헤른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왕국 내부 조사 기록을 마왕성에 넘길 수는 없습니다.” “넘기라는 게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문서 번호와 발급 사실, 수정 여부만 상호 확인하면 됩니다. 군사 기밀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제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본왕도 우리 성벽의 위치와 약점까지 보여 줄 생각은 없다.” 헤른이 흠칫했다. 그야 그렇겠지. 이런 회의에서 상대가 무기 창고까지 열어 주기를 바라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우리는 서로 보여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했다. 공개 범위는 문서 식별번호, 접수 시각, 승인 단계, 보존 여부. 비공개 범위는 병력 배치, 방어 시설의 세부 구조, 개인 증인의 신변 정보. 왕국 기록관이 기록을 남기고 피코가 대조했다. 처음에는 서로의 펜 움직임을 의심하던 두 사람이 이제 같은 숫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슬쩍 바라봤다. 재무팀끼리는 역시 통하는 게 있다. 나라가 달라도 장부가 틀리면 짜증 나는 건 똑같나 보다. *** 청문회가 중반을 넘기자 가장 곤란한 질문이 나왔다. 왕국 조사관 세른이 내게 물었다. “이 모든 자료는 결국 마왕성 재정실 직원인 귀하가 선별한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왕국 기록관이 원본 대조에 참여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왕성에 불리한 자료는 숨겼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른이 놀랐다. “가능성은 있죠. 그래서 공개 범위와 비공개 사유를 목록으로 남긴 겁니다. 제가 어떤 자료를 보지 못했는지까지 기록해 놨고요.” “그 자료도 볼 수 있습니까?” “목록은 가능합니다. 내용은 권한을 확인하고요.” 세른은 목록을 한 장씩 넘겼다. 여기에는 제르칸 개인 의전비, 제17군단의 결재 이력, 보급 거래의 비밀 구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마왕성에 불리한 문서도 목록에서 빼지 않았다. 제르칸이 뒤에서 헛기침했다. “본왕의 망토 구입 내역까지 있느냐?” “네, 전하.” “그건 국가 기밀이다!” “색깔과 구매 수량은 기밀이 아닙니다.” “검붉은 망토가 일곱 장 있다는 사실을 적국이 알면 어떡하느냐!” “그럼 세탁 중인 망토까지 여덟 장이라는 건 비밀로 할까요?” “……그렇게 해라!” 회의실에서 작은 웃음이 났다. 나는 그 순간이 고마웠다. 서로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다음 문장을 읽는 게 조금 쉬워지니까. 헤른도 마지못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군수 기밀은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건 동의합니다.” 나는 답했다. “자료를 무조건 공개하는 것과 조사에 협조하는 건 같은 말이 아니니까요.” 그제야 헤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청문회가 길어지자 제르칸이 슬그머니 내게 쪽지를 보냈다. [본왕의 위엄은 충분히 전달되었느냐?] 나는 답장을 적었다. [네. 이제 남은 안건을 처리하겠습니다.] 잠시 뒤 또 쪽지가 왔다. [왕국 조사관들이 나를 두려워하더냐?] 나는 헤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지금 물잔에 떠 있는 작은 먼지를 보고 있었다. 마왕을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식수 위생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전하의 위엄보다 기록의 정확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르칸이 쪽지를 읽더니 코웃음을 쳤다. [훌륭하다. 기록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도 지배자의 힘이지.] 아, 이분은 그렇게 해석하는구나. 나는 웃음을 참았다. 그사이 청문회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됐다. 베르가 증인 보호와 관련한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는 이번 자리에는 직접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 위협을 당한 뒤 아직 회복 중이었고, 본인이 공개적인 증언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베르의 의사를 먼저 확인한 다음 그의 의견서 중 개인 신상 부분을 가렸다. “이것을 왜 가렸습니까?” 세른 조사관이 물었다. “이미 확인된 거래 기록을 설명하는 데 개인 주소는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증인의 신원을 알 수 없으면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양측 입회인이 별도로 신원을 확인하되 공개 회의록에는 적지 않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델도 동의했다. 헤른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왕국에도 전쟁 중 비밀 증언자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다는 말을 듣자 물러섰다. “마왕성에 이런 제도가 있다니 의외입니다.” “원래 없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필요해서 만든 겁니다.”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습니까?” “원칙은 단순하죠. 증언 때문에 누군가가 또 다쳐서는 안 된다는 것.” 그 말을 하고 나니 내가 너무 거창한 소리를 했나 싶었다. 하지만 베르가 다시 창고에서 위협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회의록에 증인 보호 조항을 붙이자 피코가 그 부분에 작은 표시를 했다. “이건 앞으로도 계속 써야겠어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보다 같은 피해가 다시 생기지 않게 만드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잠시 뒤 타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저희도 보복을 당하지 않는 겁니까?” “그렇게 하도록 규정을 만들고 감시할 거야.” “완전히 막을 수 있습니까?” “그건 약속할 수 없어. 대신 누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릴 수 있게 만들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쉽게 안심시키지 않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왕국과 마계의 공식 인장이 나란히 찍힌 회의록을 바라보니 조금 우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칼을 겨누던 사람들이 오늘은 내 글씨가 너무 작다고 항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씨를 키웠다. 종이가 한 장 더 들긴 했지만 그 정도 지출이라면 기꺼이 승인할 수 있었다. 회의 막바지에 누군가 뒤쪽 문을 두드렸다. 작은 마족 전령이었다. “공동 우편망에서 긴급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피코가 전보를 받아 읽었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도윤 님.” “왜?” “제4병기창에서 보정실 저장 구슬이 사라졌대요.” 회의실이 술렁였다. 헤른이 벌떡 일어났다.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아직 모릅니다.” 피코가 말했다. “다만 사라진 시각은 오늘 새벽이라고 합니다.” 라델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구슬에는 송-4189의 원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누군가 증거를 없애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겼을 수도 있다. 지금은 도난인지 정상 반출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반출 기록이 있습니까?” 내가 묻자 전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좋다. 다시 처음부터다. 나는 회의록 마지막 줄에 적었다. [저장 구슬 보존 상태 확인 필요. 현재 분실 사실만 접수. 원인 미확정.] 루시아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걸 찾으러 가면 이제 검을 쓸 수 있겠지?” “가능하면 서류부터 쓰시죠.” 그녀는 너무나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런 회의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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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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