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감리 사무소에는 직원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질문 자체가 이상했다.
육백 년 전에 사라졌다는 조직이다. 아직 살아 있는 직원이 있다면 최소한 리치거나 드래곤이어야 한다.
그런데 서류상으로는 지금도 매달 수수료가 지급되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지급 내역에는 '현장 방문 점검'이라는 항목까지 있었다.
“도윤, 유령에게도 출장비가 필요한가?”
몰트가 물었다.
“유령도 일하면 필요하죠.”
“그럴듯하군.”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출장한 기록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급대장 아래의 수취인란을 가리켰다.
[공동 감리 사무소 / 승인자: 미표기]
“여긴 이름도 없네요.”
몰트의 푸른 안광이 좁아졌다.
“사무소가 폐쇄되었다는 기록은 확실하지 않네. 다만 최근에는 담당자를 본 적이 없을 뿐일세.”
“그러면 재직 증명서를 요구할 수도 있겠네요.”
“육백 년 근무한 직원이 있다면?”
“연차부터 확인해야죠.”
피코가 웃다가 먹던 차를 뿜었다.
죄송하다. 하지만 이건 직장인으로서 중요한 문제다.
***
나는 오전에 공동 감리 사무소에 공식 조회서를 보냈다.
수취인이 사라진 곳에 공문을 보내는 것도 웃기지만 기록을 남겨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현재 대표자 및 승인권자 확인 요청]
[최근 일 년간 수수료 수취 내역 확인 요청]
[송-4189 및 00-성전 관련 열람 권한 확인 요청]
마지막 항목은 라델의 동의를 받고 넣었다. 왕국 재무청과 마왕성 재정실이 함께 질의한다는 문구도 명시했다.
문제를 발견한 기관이 서로를 탓하며 따로 조사하면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 예전에 우리 회사에서 그랬다. 재무팀과 구매팀이 각자 자료를 요구하는 통에 업체가 같은 서류를 세 번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외주업체 담당자가 내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 대리님, 저희 회사도 일 좀 하게 해주세요.'
맞는 말이었다.
나는 피코에게 접수번호를 불러 줬다.
그런데 수신처가 문제였다.
“공동 감리 사무소 주소가 없어요.”
피코가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사용된 주소는?”
“옛 동부 휴전항에 있는 제2공관인데요. 지금은 창고라고 적혀 있어요.”
“그 주소로 보내자. 수신 불가면 반송 기록을 남기고.”
“그다음은요?”
“계정에 수수료가 지급된 은행을 확인해야지.”
“은행이요?”
“돈을 받았다면 어딘가에서 받은 흔적은 있어야 하니까.”
피코는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
“이 세계에는 돈을 안 받고 서명만 받는 은행도 있는데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은행?”
“서약 보관소요. 신성 계약을 맡기면 보관 증표를 줘요.”
처음 듣는 곳이었다.
“누가 운영해?”
“성전 기사단에서 관리한다던데요.”
성전.
아.
이름이 또 겹친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고 같은 조직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 동네에 '행복마트'만 세 곳 있었으니까.
“위치랑 규정을 알아봐 줄래?”
“네!”
피코는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느새 내 업무를 절반쯤 알아서 처리하는 서기가 생겼다.
이러다 진짜로 관리자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건 좀 무섭다.
***
오후에는 왕국 기록관 아레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양피지 두 장을 들고 있었다.
“옛 공동 감리 사무소의 인사 명부를 찾았습니다.”
“정말요?”
“완전한 명부는 아닙니다. 이름이 몇 개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적힌 직책은 예상 밖이었다.
왕국 감리관.
마계 감리관.
그리고 중립 감리인.
“중립이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옛 휴전협정에서 양쪽이 서로의 장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니 제삼자가 보관하던 방식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데요?”
“여기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정말이었다.
첫째 줄과 둘째 줄에는 마법 잉크로 이름이 남아 있었지만 마지막 줄은 희끄무레했다. 번진 것도 아니고, 마치 누군가 이름만 조심스럽게 긁어낸 듯했다.
“지워진 흔적이 있나요?”
“물리적인 긁힘은 없습니다.”
“마법이라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오래된 종이의 변색일 수도 있습니다.”
좋아.
아레인도 이제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
나는 이름이 없는 줄을 보면서 물었다.
“중립 감리인이 계약 당사자입니까, 아니면 단순 보관인입니까?”
아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명부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오래된 협정문에 권한 규정이 있겠네요.”
“찾고 있습니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한 재정관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마왕성에는 왜 이렇게 서류가 많습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천 년 넘게 일을 해온 리치가 있으니 정리돼 있을 줄 알았는데.”
“보관은 잘했습니다. 분류가 문제죠.”
아레인이 웃었다.
왕국 기록관과 마왕성 재정 담당자가 함께 서류에 욕을 하고 있었다.
참 평화로운 광경이다.
전쟁이 끝난다면 이런 회의가 더 많아질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
마왕성 주방에서는 이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제르칸이 직접 식당을 찾아와 병사들의 급식표를 보고 있었다. 얼마 전 식량 공급이 끊길 뻔했던 일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인간, 이번 주는 빵이 적지 않느냐?”
“운송 일정이 하루 늦어졌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정상 공급됩니다.”
“본왕의 몫을 줄여 병사들에게 주어라!”
제르칸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나는 급식표를 보았다. 마왕의 저녁 식사는 구운 돼지 한 마리였다.
“전하, 거기서 조금만 나눠도 충분합니다.”
“그럼 절반을 나눠라!”
“그 정도면 병사들이 좋아하겠네요.”
마왕은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식당을 나서려다 문득 물었다.
“그런데 내일도 절반만 먹어야 하느냐?”
“아뇨. 오늘만요.”
그제야 제르칸이 안도했다.
나는 피코에게 식량 재고 관리표를 다시 확인하도록 했다. 군량 계약은 의혹 부분을 따로 정산 보류했지만, 실제 식량은 끊지 않는다는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급 기록을 보다가 같은 공급업체가 마왕성 서고의 보안 점검도 맡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식량 운송과 문서 보안.
서로 다른 업무를 하는 업체가 겹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계약 범위를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나는 구매 내역을 따로 표시했다. 이 세계에는 우연이 많은데, 우연을 너무 자주 방치하면 누군가 그 틈에 돈을 숨긴다.
한편 아레인과 나는 오래된 휴전협정의 용어도 대조했다.
처음에는 번역 문제인 줄 알았다. 왕국 문서에는 '보관인', 마계 문서에는 '증인', 공동 교역소 사본에는 '감리인'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셋이 다른 직책일까요?”
아레인이 물었다.
“같은 직책을 서로 다르게 번역했을 수도 있죠.”
나는 원문을 가리켰다. 낯선 고대 문자가 네 글자 있었다. 왕국의 마법 번역기는 그것을 '맡아 지키는 사람'이라고 읽었고, 마계 번역기는 '확인을 증언하는 사람'이라고 읽었다.
아.
이제 번역까지 문제다.
나는 장부를 덮고 이마를 문질렀다.
“원래 이세계 언어는 자동으로 들리는 거 아니었나요?”
“성검 소지자는 일반 회화에 한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럼 법률 문서는요?”
“고대 용어는 번역 축복에도 제한이 있어요.”
좋다.
말은 통하지만 계약서는 안 통한다니, 정말 현실적이네.
우리는 고대어를 읽는 연구자를 찾기로 했다. 다만 아무 학자나 데려와서 원하는 답을 받아낼 수는 없다. 번역 전에 의뢰 목적과 용어의 출처를 알리고, 서로 독립된 번역본 두 개를 받기로 했다.
“그런 데 비용이 많이 들겠네요.”
아레인이 걱정했다.
“네. 하지만 잘못 읽은 계약서를 기준으로 돈을 움직이면 그 비용이 더 커질 겁니다.”
“이럴 때도 돈 얘기군요.”
“원래 돈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 이야기로 돌아오거든요.”
아레인은 한참 웃었다.
우리는 왕국 고문서학자와 마계의 고대 언어 연구자에게 각각 견적을 보냈다. 왕국 학자는 금화 열두 닢을 요구했다. 마계 학자는 금화 아홉 닢과 특별한 고기 한 접시를 요구했다.
“고기 한 접시는 뭔가요?”
아레인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비용 항목에는 반드시 식비로 적어야겠죠.”
피코가 메모했다.
그날 저녁 몰트가 알려 준 바로는 마계 연구자가 고기를 요구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늑대인간이기 때문이란다.
합리적인 요구였다.
이 세상은 가끔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음으로는 협정의 날짜를 비교했다. 왕국 기록의 개설 연도와 마계 기록의 개설 연도는 서로 삼 년 차이가 났다. 그런데 축일과 월령을 기준으로 환산하니 같은 시기를 가리키는 듯했다.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별도 천문 기록이 필요했다. 우리는 '잠정 동일 기간'이라고 적었다.
“왜 그 표현을 쓰시죠?”
아레인이 물었다.
“같다고 단정했다가 틀리면 모든 뒤의 계산이 같이 틀리니까요.”
그녀는 자기 장부에 같은 표현을 적었다.
서로 다른 편의 사람들이 같은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조금 나아진 날 같았다.
그때 문득 예전 회사에서 받은 조언이 떠올랐다. 모르면 찾고, 찾아도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적어라. 별것 아닌 말인데 지키기 어려웠다. 특히 높은 사람이 빨리 결론을 내리라고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오늘도 결론 대신 확인할 목록이 길어진 장부를 바라봤다. 답답했지만 잘못된 결론보다야 훨씬 나았다.
늦은 오후, 우편함에서 반송된 공문이 돌아왔다.
벌써?
보통 왕국과 마계 사이의 우편은 아무리 빨라도 반나절은 걸린다. 그런데 공동 감리 사무소로 보낸 서류는 두 시간 만에 돌아와 있었다.
봉투에는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수신인 존재하지 않음.]
“빨리 확인됐네요.”
피코가 말했다.
“문제는 누가 확인했느냐는 거지.”
나는 봉투를 뒤집었다.
반송 담당자란이 비어 있었다.
대신 동그란 표식이 있었다.
원 세 개와 세로줄.
나는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 표식, 이제 좀 지겹다.
“피코, 반송 경로를 조회해 줘.”
“네!”
아레인도 기록실로 달려갔다. 공동 우편망의 경유지는 양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뒤 돌아온 기록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발송: 마왕성]
[경유: 동부 공동 교역소]
[반송: 미상]
중간 경로가 끊겨 있었다.
“마법 우편망 장애일 수도 있나요?”
내가 묻자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송석이 오래되면 간혹 그래요.”
“그럼 우편망 점검 기록도 확인하자.”
이쯤 되면 누가 문서를 바꿨는지를 찾는 일이 아니라, 문서를 바꿀 수 있는 구멍이 몇 개인지 세는 일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구멍은 생각보다 많았다.
몰트가 들어왔다.
“도윤, 왕국 조사단이 수수료 지급 계정의 보관처를 확인했네.”
“어디래요?”
“은화도 금화도 아닌 것이 들어 있단다.”
“뭔데요?”
“봉인된 서명.”
나는 잠깐 대답을 못 했다.
봉인된 서명.
렘이 전한 편지에 적힌 문구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보관 기록은 있습니까?”
“있네. 왕국 쪽 자료와 우리 쪽 자료에 동일한 보관번호가 남아 있네.”
“원본은요?”
“아직 확인 못 했네.”
좋아.
여전히 확인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00-성전'은 단순히 돈만 움직이는 계정이 아니라 어떤 서명이나 권한을 보관하는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누가 열 수 있죠?”
내가 물었다.
몰트는 잠시 머뭇거렸다.
“옛 규정에는 세 명이라고 되어 있네.”
“누구 세 명요?”
“왕국, 마계, 그리고……”
그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명부에서 지워진 바로 그 사람일 걸세.”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 세계의 가장 중요한 금고는 열쇠가 세 개인데 그중 하나의 주인이 없단다.
회사의 공동 통장에 공동 대표 하나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과 똑같다.
당장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 게 오히려 기적이다.
그때 피코가 서고 쪽에서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도윤 님. 반송 봉투에 찍힌 표식이랑 같은 게 여기에도 있어요.”
상자 겉면에는 오래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제3서명 보관용 / 승인 전 개봉 금지]
나는 상자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서류를 하나 더 꺼냈다.
“자. 개봉 권한부터 확인합시다.”
루시아가 문밖에서 한숨을 쉬었다.
“인간. 넌 보물상자를 발견해도 사용 설명서부터 읽겠구나.”
“그럼요.”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안 그러면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이번만큼은 그녀도 반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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