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장부부터 열었다.
병이다.
정말 병이다.
남들은 눈을 뜨면 날씨를 확인한다는데, 나는 어제 발견한 금화 세 닢의 출처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도윤 님, 식사 준비됐어요.”
피코가 문을 두드렸다.
“잠깐만.”
“그 말씀 세 번째예요.”
“……벌써?”
“첫 번째는 해 뜨기 전이었고요.”
아.
직원에게 휴식을 강조하는 상사가 정작 본인은 밥을 거르고 있네.
아주 모범적인 위선이다.
나는 양피지를 덮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탁에는 귀리죽과 구운 버섯이 놓여 있었다. 옆에 제르칸이 앉아 있었다. 마왕이 아침 식탁에 나타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인간.”
“네, 전하.”
“북부 채석장 노동자들의 치료비는 해결됐느냐?”
나는 숟가락을 멈췄다.
“임시 치료비는 지급했습니다. 다만 공제됐던 안전 장비비의 최종 정산이 아직입니다.”
“왜?”
“월영 관리단이 적립금을 어디에 썼는지 확인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관리단 책임자를 잡아오면 되지 않느냐!”
“잡아오는 건 쉽습니다. 돈을 돌려받는 건 다른 문제죠.”
제르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금화를 뺏으면 되는 것 아니냐?”
“그 금화가 정말 관리단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피해자부터 도와야 합니다.”
마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본왕이 먼저 지급할 수는 없느냐?”
나는 그를 바라봤다.
이런.
놀랄 만한 제안이 나왔다.
“전하, 그건 좋은 생각인데요.”
제르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 본왕은 백성을 보살피는 위대한 군주다!”
“다만 이후에 관리단과 보증 계정에서 구상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구상?”
“먼저 지급한 돈을 책임 있는 쪽에 청구하는 겁니다.”
“아. 그러면 좋다.”
마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왕좌 뒤에 걸어 둘 현수막도 준비하라. '마왕은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라고!”
“현수막은 안 됩니다.”
“왜!”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돈부터 아껴야죠.”
아침 식사부터 시작된 예산 전쟁은 내 승리로 끝났다.
대신 제르칸은 주방장에게 그 문구를 버섯 위에 새겨 달라고 했다.
그것까지 막을 자신은 없었다.
***
북부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루시아는 오늘도 말수가 적었다.
지난번 갱도 붕괴 때 그녀는 작업자 네 명을 구조했다. 그날 이후로 채석장 노동자들은 루시아를 보기만 하면 허리를 숙였다.
“기사단장님, 불편하세요?”
“뭐가?”
“사람들이 자꾸 인사하니까.”
“전장에서는 무릎 꿇는 놈들이 많다.”
“그거랑은 다르잖아요.”
그녀가 멀리 있는 작업장을 바라봤다.
“칼을 휘두르지 않았는데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익숙하지 않다.”
나는 웃었다.
“익숙해지세요. 앞으로 자주 들으실 겁니다.”
“그럼 다시 무기를 들고 구해 주면 되겠군.”
“제발 사고를 기다리지는 마세요.”
피코가 옆에서 킥킥거렸다.
채석장에 도착하자 작업자 타르가 달려 나왔다. 붕괴 사고 때 갇혀 있던 고블린 청년이었다. 얼굴에 난 상처는 아물었지만 한쪽 손목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도윤 님!”
“몸은 어때?”
“괜찮습니다. 약도 받고 쉬라고 해서 쉬고 있어요.”
“그게 당연한 건데.”
“여기선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처음 누리는 권리다.
나는 작업자 대표들과 작은 회의를 열었다. 오늘은 장부를 보여 주는 자리라기보다 돈을 받을 사람의 명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지난 석 달 동안 안전 장비비를 공제당한 분들은 본인 기록을 확인해 주세요.”
타르가 손을 들었다.
“제 이름에는 일곱 닢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아홉 닢이 빠졌어요.”
“급여 명세서를 가지고 있나?”
“여기요.”
그가 낡은 종이를 꺼냈다.
아홉 닢.
맞다.
그런데 관리단 장부에는 일곱 닢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두 닢이 차이 나죠?”
내가 게르온 소장을 바라보자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일부는 숙소 공동 안전비로 분류했을 겁니다.”
“그럼 명세서에는 왜 합쳐서 적었습니까?”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아.
매우 위험한 대답이다.
'예전부터'는 잘못된 관행의 면죄부가 아니다.
“오늘부터는 항목을 분리해 주세요. 이미 공제된 건도 구분해야 하고요.”
게르온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려면 서류를 다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인력이 부족합니다.”
“그럼 일정과 지원 인력을 같이 정하죠. 돈을 돌려줄 사람도 먼저 정해야 하고요.”
나는 피코에게 작업자들의 확인 서명을 받도록 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내용을 읽어 주고 지장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숫자를 억지로 확인시키지는 않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게르온이 물었다.
“누가 얼마를 돌려받아야 하는지 확인하지 않고 지급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그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
오후에는 작업자 치료소를 방문했다.
간호사 역할을 하는 늙은 트롤이 있었다. 이름은 마르나. 덩치가 어마어마했지만 붕대를 감는 손놀림이 놀랍도록 섬세했다.
“환자 넷 중 둘은 당장 작업 복귀가 어렵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산소가 부족했던 시간이 길어요. 회복할 때까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치료비는 어느 정도입니까?”
“회복 약재와 식비를 합쳐 십팔 닢 정도요.”
나는 기록했다.
제르칸이 승인한 긴급 지급금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럼 우선 지급하겠습니다.”
마르나가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봤다.
“조건은?”
“치료 기록과 영수증을 남기는 것.”
“그게 전부?”
“네.”
“대개 이런 돈에는 다른 조건이 붙던데.”
“그게 문제죠.”
내가 웃었다.
이번에는 금화를 주는 대가로 작업자들에게 전투 의무를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긴급 치료비는 긴급 치료비다.
마르나는 잠시 날 살피더니 말했다.
“당신 같은 인간이 마왕성에 있다니 이상하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서 오래 있어요.”
“그건 근로계약 갱신 때 협상해야죠.”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트롤의 웃음소리는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잠깐 겁먹었다.
***
문제의 금화 세 닢에 대한 기록도 확인했다.
월영 관리단의 정산 보증 준비금에서 '서고 보안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나간 돈이었다.
“이 지급을 승인한 사람은 누구죠?”
내가 묻자 게르온이 지출대장을 뒤졌다.
“관리단 본부 승인입니다.”
“담당자 이름은요?”
“없습니다.”
“본부에는 확인하셨습니까?”
“확인 요청을 보냈지만 답이 없습니다.”
“요청서 사본을 주세요.”
게르온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계약 때문에 계속 책임만 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장님, 승인권자가 다르다면 그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 본부가 지시한 건지, 누군가 명의를 쓴 건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런다고 제 책임이 없어집니까?”
“아뇨. 안전 장비를 지급하지 않은 건 현장 책임도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쓸 필요도 없죠.”
그가 처음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그래서 서류를 모으는 겁니다.”
재미있는 건 인간이든 마족이든 이런 순간에 표정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막연히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나타났을 때의 얼굴.
나도 한때 그런 얼굴이었을까.
***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일부 노동자는 급여에서 안전 장비비가 빠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관리단이 전체 공제액을 '공동 운영비'라고만 적었기 때문이다.
“이걸 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게르온 소장은 얼굴을 붉혔다.
“예전부터 관례였습니다.”
“그럼 이제 관례를 바꾸죠.”
나는 큰 종이에 세 줄을 그었다.
[받기로 한 돈]
[실제로 받은 돈]
[빠진 돈과 이유]
고블린 작업자들은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곧 자기 숫자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제 거는 여기 있네요!”
“내가 받은 건 이것보다 한 닢 적은데?”
“숙소 난방비도 빠졌구나!”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게르온이 조급해졌다.
“이러다 작업이 멈추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만 설명하고 끝내자는 겁니다. 이후에는 매달 지급할 때 명세서를 같이 주면 되니까요.”
“글을 못 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럼 숫자와 그림을 같이 쓰면 됩니다.”
나는 동전 모양과 장갑 모양, 집 모양을 그려 보여 줬다. 피코는 그림을 잘 못 그렸지만 열심히 도왔다. 그가 그린 안전모는 어째 버섯처럼 생겼다.
타르가 웃었다.
“이건 먹는 모자인가요?”
“아니야!”
피코가 발끈했다.
나도 웃었다.
지난번 갱도에서 다친 사람들이 이렇게 장난을 칠 수 있게 된 게 반가웠다.
그러나 웃음이 지나가자 다시 현실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손에 붕대가 있었고, 어떤 사람은 낡은 신발을 꿰매 신고 있었다.
나는 새 안전 장비의 구매 계획을 확인했다. 앞으로의 공제금을 다시 받지 않는 조건을 넣고, 장비가 실제로 지급됐는지 본인이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돈을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달에도 같은 돈이 사라지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나는 타르에게 작업장으로 돌아가면 먼저 무엇이 필요할지 물었다.
“새 보호구요.”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돈을 받아도 장갑이 없으면 또 다치니까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치료비 지급과 별개로 보호구 구매 요청도 작성했다.
루시아는 샘플 안전모를 직접 써 봤다. 머리에 뿔이 있어서 잘 맞지 않았다.
“마족 머리 모양은 전부 다른데 같은 규격만 납품하면 안 됩니다.”
내가 말하자 공급업자가 당황했다.
“맞춤형은 값이 비쌉니다.”
“안 맞는 장비를 사서 안 쓰는 것보다 저렴할 수도 있죠. 실제 사용자를 데리고 시험해 봅시다.”
결국 타르와 오크 바르코가 착용 시험에 참여했다. 둘의 머리 크기가 너무 달라 공급업자가 서둘러 규격표를 다시 작성했다.
우리는 그날 작업자 열아홉 명의 공제 기록을 확인했다.
일단 확인된 미지급 장비 비용은 금화 마흔일곱 닢. 추가 확인이 필요한 금액은 별도 표기했다. 제르칸이 승인한 긴급 자금에서 치료비와 생필품비를 먼저 지급했다.
모든 돈을 한꺼번에 '환급 완료'라고 적지 않았다.
아직 확인해야 할 부분이 남았으니까.
타르가 지급 확인서를 받으며 말했다.
“이걸 어디에 쓰면 되죠?”
“보관해 둬. 나중에 누가 너한테 돈을 이미 다 줬다고 하면 보여주면 돼.”
“그걸로 충분해요?”
“장부에도 같은 내용이 있어야지. 둘이 다르면 또 확인하면 되고.”
타르는 한참 종이를 바라보다가 품에 넣었다.
“제 이름이 적힌 증명서는 처음이에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성벽을 쌓고 갱도를 파는 사람에게 정작 자기 급여가 적힌 종이 한 장도 없었다니.
숫자를 정리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새삼 알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루시아가 내 옆에서 물었다.
“전장에서도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뭘요?”
“병사들에게 자기 몫을 확인하게 하는 것.”
“할 수 있죠. 쉽진 않겠지만.”
“그럼 기사단에도 해 보자.”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요?”
“전투력은 병사들이 내는 건데, 늘 지휘관들이 공을 가져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의외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루시아가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공적을 정확히 나눠 기록하면 누가 가장 많이 적을 베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
아, 역시.
이분은 끝까지 전투광이시구나.
그날 밤 재정실로 돌아온 나는 월영 관리단의 추가 계정 목록을 펼쳤다.
그중 하나는 다른 계정보다 유난히 짧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감리 수수료 / 수취처: 공동 감리 사무소]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던 조직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수증 뒷면에 서명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정확히는 서명자의 이름이 아니라 빈칸 세 개.
첫 번째 칸에는 왕국 인장.
두 번째 칸에는 마왕성 인장.
세 번째 칸은 비어 있었다.
나는 펜 끝으로 그 빈칸을 짚었다.
아.
마침내 숫자가 아니라 빈자리가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3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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