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으로 돌아온 첫날, 나는 서고 문부터 열어야 했다.
문제는 서고가 몇 개냐는 것이었다.
“제3서고라면 동쪽 탑입니까?”
내가 묻자 피코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지금 제5서고예요.”
“왜?”
“제3서고가 두 번 이사했거든요.”
“그럼 원래 제3서고는?”
“서고였던 자리에는 지금 해골 경비병 숙소가 있고요.”
“……좋아. 마지막으로 확인된 제3서고는?”
“아마 지하일 거예요.”
아마.
이 단어가 너무 자주 들린다.
나는 천이백 년 근속의 리치 몰트를 찾아갔다.
“실장님, 서고 위치 관리표가 있습니까?”
몰트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오래된 책을 꺼냈다.
두께가 내 팔뚝만 했다.
“여기 있네.”
“이게 서고 관리표요?”
“서고 관리표의 목차라네.”
나는 책을 닫았다.
아, 그냥 땅을 파는 편이 빠르겠다.
그러나 땅을 파면 또 루시아가 신나서 성벽 하나쯤 허물 것이므로, 나는 문서를 선택했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다. 제3서고는 백 년 전까지 부서명이 아니라 자료 등급의 명칭이었다. '제3서고 보관'이라고 적힌 기록이 물리적인 공간을 뜻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송-4189의 수신처 제3서고도 실물 장소가 아니라 등급 코드일 수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
“등급 기준은 누가 정했습니까?”
“공동 감리 사무소가 생겼을 무렵이라고 기록되어 있네.”
아, 이제 같은 이름이 세 번째 나온다.
공동 감리.
이쯤 되면 원본은 사라지고 직책만 살아 있는 유령 부서가 아닌가 싶다.
“등급별 열람 권한은요?”
몰트는 또 다른 책을 꺼냈다.
나는 책을 받아 들면서 물었다.
“실장님, 혹시 책을 책으로 찾는 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그대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네.”
그야 해골들은 불평할 성대가 없으니까.
말은 삼켰다.
***
제3등급 보관함은 마왕성 지하의 열쇠 보관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해골 경비병의 이름은 카록이었다. 아니, 이름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실제로는 카록이 셋이나 있었다.
“카록 일호, 이호, 삼호입니까?”
“아니다!”
셋이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카록이다!”
아.
정체성 문제가 심각하다.
나는 일단 각자 팔뼈에 번호표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루시아가 배를 잡고 웃었다. 해골들은 기분이 나쁜지 턱을 딸깍거렸다.
“근무 중 서류 인수자는 구분돼야 해요.”
“어찌 같은 이름을 나눌 수 있느냐!”
“그럼 근무조 이름으로 부르죠. 새벽조, 낮조, 밤조.”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건 괜찮군.”
휴.
이 세계의 노동 현장 문제는 절반이 명칭 때문이다.
보관소의 문은 봉인되어 있었다. 열쇠는 몰트에게 있었고, 경비 조장에게도 출입 기록이 남았다. 나는 루시아와 피코, 왕국 기록관 아레인이 입회하는 조건으로 개봉을 요청했다.
“왕국 사람까지 데려오겠다고?”
루시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가 왕국 기록을 봤으니 우리 기록도 보여 줘야죠. 대신 범위는 제한하고.”
“만약 저들이 훔치면?”
“그때는 입회 기록이 남겠죠.”
“검은 필요 없다는 말이구나.”
“가능하면요.”
루시아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쯤 되면 기사단장보다 칼집을 관리하는 공무원을 채용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
봉인을 열자 먼지가 쏟아졌다.
피코가 기침을 했다.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아레인은 마법 등불을 들어 안쪽을 비췄다.
서랍이 수십 개였다.
그중 몇 개는 손잡이만 남아 있었고, 몇 개는 열쇠가 녹슬어 있었다.
“잘 관리했네요.”
내가 말하자 몰트가 흐뭇해졌다.
“천 년 동안 침입자가 없었네.”
“아뇨. 비꼰 겁니다.”
“…….”
“죄송합니다.”
먼지를 털며 기록대장을 확인했다.
[제3등급 보관함 / 최종 정기 점검: 117년 전]
117년 전.
우리 회사 기준으로는 이미 폐기했을 장부였다.
그런데 마법 종이는 튼튼했다. 서랍에 남은 기록은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최근 문서 가운데 하나에 낯익은 번호가 보였다.
[송-4189 / 접수 보류]
“여기!”
피코가 먼저 발견했다.
나는 몸을 숙였다. 문서 뒷면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발송 원본인지, 수신 사본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접수 보류 사유는요?”
아레인이 다음 장을 넘겼다.
[수신자 확인 불가. 제3자 승인 형식 확인 필요.]
“제3자?”
피코가 속삭였다.
“공동 감리인 셋 중 마지막 사람일까요?”
“가능성은 있어. 확정은 아니고.”
서류 옆에는 작은 금속판이 하나 들어 있었다. 원 세 개와 세로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렘이 그렸던 표식.
제4병기창의 서명 보정실에 남은 표식.
이번엔 마왕성 내부 보관함에서 나왔다.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기록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봉투의 상태를 그대로 스케치했다. 손잡이에 남은 먼지, 봉인의 결, 접힌 부분까지. 피코가 보조 양피지에 위치를 적었다.
“이걸 가져가도 돼요?”
“아니. 원본은 봉인 상태를 유지하고, 이 자리에서 사본만 만들어.”
“마법 복사기로요?”
“안 됩니다.”
모두 나를 바라봤다.
“왜요?”
“복사 마법이 인장까지 원본처럼 복제한다면 복사본을 원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잖아요. 서기관 둘이 서로 확인한 필사본을 만들고, 원본이 어디 있는지 표시해야 합니다.”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군요.”
“우리 회사에서 늘 쓰던 방식입니다. 물론 가끔 너무 느려서 욕도 많이 먹었죠.”
“그런데도 계속하셨습니까?”
“욕은 돈으로 막을 수 있지만 증거 훼손은 못 막거든요.”
피코가 나를 올려다봤다.
“도윤 님은 욕도 돈으로 막을 수 있어요?”
“……비유야.”
아직 어리구나.
***
문제는 금속판이었다.
분명히 '제3등급 보관함'에 들어 있었는데, 판 위에는 비슷한 문양을 찍을 수 있는 홈이 있었다. 단순한 신분증인지 인장 금형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복합 인장과 비교하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몰트가 조심스럽게 예전 사건 기록을 가져왔다.
마왕의 주도장과 부도장 문양이 한 번에 찍혔던 수상한 문서.
흑산 상단 제2운송소가 복합 인장 금형을 의뢰한 기록.
모양을 나란히 놓자 공통점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이거 범인 잡은 겁니까?”
피코가 물었다.
“아직.”
“또요?”
“응. 모양이 비슷하다고 같은 도구라고 볼 수는 없어. 누가 이 판을 썼는지도 모르고.”
루시아가 답답하다는 듯 손가락을 탁자에 두드렸다.
“너와 일하면 적보다 증거가 더 오래 살아남겠군.”
“그게 목표입니다.”
그녀가 혀를 찼다.
하지만 잠시 뒤 보관함 문을 직접 지켜 주었다. 나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게 고마웠다.
원본을 보호하는 데는 언제나 힘이 필요하다. 다만 그 힘이 기록을 지우는 데 쓰이면 안 된다.
보관함의 맨 아래 칸에는 작은 영수증이 있었다.
[감리 서고 보안 점검 / 비용 금화 3닢]
공급자는 흑산 상단의 낯선 하청 업체였다.
그런데 날짜가 이상했다.
영수증 날짜는 한 달 전이었다.
반면 출입대장에는 백 년 넘게 아무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여길 열었단 뜻일까요?”
아레인이 조용히 말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문 주변을 다시 살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바닥 일부가 묘하게 깨끗했다. 누군가 걸었는지 청소했는지는 모른다.
“카록 경비병들을 불러주세요.”
나도 이제 익숙해졌다.
“새벽조, 낮조, 밤조 모두요.”
***
보관함 점검 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도 하나 드러났다.
피코가 오래된 열람 대장을 들고 와 물었다.
“도윤 님, 이 칸은 왜 전부 동그라미예요?”
대장에는 사람이 들어온 날짜와 함께 원형 표식만 줄지어 있었다. 방문자 이름은 없었다.
몰트가 설명했다.
“옛 기록법일세. 문지기가 알고 있는 방문자라면 동그라미 하나만 남겼지.”
“아는 사람이 누군데요?”
“당시 문지기가 알았겠지.”
“그 문지기는요?”
“오래전에 소멸했네.”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이건 기록이라기보다 그때그때의 기분을 적어 놓은 일기에 가까웠다.
“앞으로는 출입자 이름과 목적을 다 적어 주세요.”
카록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우리는 글을 길게 쓰는 게 어렵다!”
“그럼 방문증에 번호를 써서 대조하죠. 필요한 이름은 서기가 먼저 적고요.”
“번호만 알면 되는가?”
“번호와 실제 사람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다만 경비병이 매번 긴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할 수 있죠.”
카록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해골 셋이 동시에 끄덕이는 모습은 꽤 기묘했다.
“그 방법은 좋다!”
그렇게 서고 출입증 제도가 탄생했다.
정작 내가 찾으러 온 건 오래된 인장 기록인데, 오늘 또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 있었다.
마왕성에서 일하면 이런 일이 다반사다. 엉킨 실 하나를 잡아당기면 왜 회의실 커튼까지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카록들이 구분하기 쉽도록 서로 다른 색의 끈을 팔에 묶자고 했더니 밤조 카록이 빨간 끈을 달라고 고집했다.
“빨간색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좋아요. 대신 본인이 근무표에도 빨간색이라고 적으세요.”
“물론이다!”
루시아가 뒤에서 웃었다.
“도윤. 너는 해골도 관리직으로 만들 기세구나.”
“관리직은 아직 안 됩니다. 먼저 출입 기록부터 제대로 해야죠.”
“아주 냉정하군.”
나는 작게 웃었다.
승진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누가 문을 지켰는지 아는 일이었다.
서고 문에는 또 한 가지 흔적이 있었다. 문의 경첩 부분에 새 기름이 발라져 있었다.
“이거 언제 수리했습니까?”
내가 묻자 낮조 카록이 턱을 딸깍거렸다.
“모른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린 지는 얼마 안 됐다.”
“전에는 삐걱거렸어요?”
“아주 크게!”
피코가 손가락으로 수리 흔적을 살폈다. 나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아직 누가 기름칠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원본 상태를 남기는 건 번거롭지만 중요하다. 누가 몰래 들어왔을 수도 있고, 그냥 성실한 수리공이 고쳤을 수도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그 둘을 구분하지도 않고 결론부터 내리는 일이다.
기록을 시작하기 전 나는 세 경비병에게 한 가지 약속했다. 기억이 다르다는 이유로 징계하지 않겠다고. 대신 앞으로는 근무 중 확인한 사실과 추측을 구분해서 적어 달라고 했다. 카록들은 한동안 서로를 보더니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되는 분위기가 된 모양이었다.
세 해골의 진술은 서로 달랐다.
새벽조 카록은 한 달 전 밤에 낯선 종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낮조 카록은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밤조 카록은 종은 들었지만 서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셋을 다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필요는 없었다. 근무 시간이 다르고, 해골마다 귀가 온전한 것도 아니니까.
“경비병 여러분, 서로 말을 맞출 필요 없습니다.”
나는 말했다.
“기억나는 대로만 말씀하세요.”
밤조 카록이 해골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한다!”
“계속 문 앞에 계셨습니까?”
“아니다. 잠시 순찰을 돌았다.”
“그럼 못 본 시간에는 열렸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군.”
아주 솔직한 경비병이다.
서고 보안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나는 기록을 마치고 보관함을 재봉인했다. 봉인에는 날짜와 참석자의 이름을 전부 남겼다.
그때 내 양피지에 푸른 문구가 떠올랐다.
[절대 감사: 점검비 지출과 출입 기록 사이 불일치]
드디어 스킬이 제 역할을 했다.
다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내가 찾아야 한다.
“실장님, 한 달 전 지출은 누가 승인했습니까?”
몰트가 급히 장부를 뒤졌다.
“승인자가 없네.”
“지급은 됐고요?”
“그렇네.”
나는 영수증 번호를 다시 적었다.
우리가 찾던 제3서고는 완전히 버려진 공간이 아니었다.
최근까지 누군가 돈을 쓰고 있었고, 장부에는 그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영수증의 지급 계정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월영 관리단 / 정산 보증 준비금]
그 돈.
북부 채석장 작업자들에게 돌아갔어야 하는 안전 기금이랑 연결된 계정 아닌가?
나는 서류를 한 번 더 읽었다.
아, 진짜.
이제는 책장 하나 여는 데도 노동자 돈이 들어가나 보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제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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