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조사단과 공동 조사 첫날부터 문제가 터졌다.
정확히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났다.
“다섯 명이라고요?”
나는 성문 출입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 조사단 명단에는 라델 포함 다섯 명이었잖아요.”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아침 식사 신청서는 여섯 명분이래요.”
오.
회계 담당자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다.
사람은 다섯 명인데 식대는 여섯 명.
우리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먼저 두 가지를 확인한다. 누가 밥을 한 번 더 먹었는지, 아니면 식대 청구서가 부풀려졌는지.
그런데 지금은 왕국 조사단이다.
어쩌면 제삼자가 동행했을 수도 있다.
“인원 확인표 가지고 와 봐.”
피코가 목록을 펼쳤다.
라델 재무관, 아레인 기록관, 헤른 군수 감독관, 조사관 세른, 조사관 유디.
다섯 명.
그런데 주방장이 건네준 식권에는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서명이 있었다.
“미등록 손님입니까?”
피코가 물었다.
“아직 몰라. 일단 식권의 원본부터 보관하자.”
“왜요? 그냥 식권인데.”
“바로 그래서야.”
사람이 큰 비밀을 숨길 때 정작 작은 생활 기록은 놓치는 경우가 있다. 회사 법인카드로 출장비를 정산하면서 호텔 영수증과 택시 승차 시각이 어긋나는 식이다.
물론 식권 하나로 침입자를 단정할 수는 없다.
주방장이 실수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몰트가 열두 시 이전과 이후에 다른 사람으로 식사했을 수도 있고.
……이건 리치에게도 좀 무리한 가설이겠군.
“주방장한테 누가 신청했는지 물어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사단 숙소에는 우리 쪽 직원이 함부로 들어가지 않게 해. 서로 의심하게 만들 필요 없으니까.”
피코가 눈을 깜빡였다.
“혹시 조사단도 우리 서류를 훔칠 수 있으니까요?”
“그쪽도 우리가 자기 짐을 뒤질까 봐 걱정하겠지. 그러니까 모두 같은 규칙으로 대하면 돼.”
이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적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근데 나는 원래 회계팀이다.
사람보다는 숫자를 먼저 의심하는 편이 적성에 맞다.
***
주방장은 아침 식권 여섯 번째 서명에 대해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건 왕국 조사관이 아니라 마부의 것입니다.”
“마부요?”
“어제 밤늦게 식사를 요청했어요. 검은 외투를 입은 젊은 남자였는데.”
“정식 조사단 마차를 몰고 온 사람 중 하나입니까?”
“그렇게 들었습니다.”
마부라.
물론 조사단이 마차를 타고 왔다면 마부도 밥은 먹어야 한다.
오히려 사흘씩 마차를 몰고 와서 밥을 안 주면 그게 더 큰 문제지.
“왜 명단에 없죠?”
“조사관이 아니라 운송 인력이라 따로 접수한 모양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성문 경비대의 마차 번호를 확인했다.
등록된 세 대.
왕국 공식 마차 두 대와 보급 마차 한 대.
그런데 마부 출입란에는 한 사람만 기록되어 있었다.
“마차 세 대에 마부 한 사람?”
오우거 반장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 확인했다!”
“세 대를 한 사람이 몰고 왔어요?”
“아니다. 두 마차는 마법 견인 장치로 끌어왔다!”
“아, 그럼 됐네요.”
세상 참 편리하다.
기름값도 안 들겠군.
“그런데 마법 견인 장치 조작자는요?”
반장이 멈칫했다.
“조작자?”
“누가 목적지를 설정했느냐고요.”
“……그건 못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모른다고 적으면 돼요.”
“잘못인가?”
“아뇨. 거짓말보단 백배 낫죠.”
반장의 커다란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아무래도 우리 회사에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문화'부터 정착시켜야 할 것 같다.
***
라델은 여섯 번째 식권 이야기를 듣자 곧장 얼굴을 굳혔다.
“마부 렘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렘이요?”
익숙한 이름이었다.
왕국에서 두 공문을 전달한 사자. 동부 제4병기창 부속 창구에 서명을 남겼던 인물.
“같은 사람입니까?”
“확인해 봐야 합니다. 렘이라는 이름은 흔하니까요.”
옳은 말씀이다.
나는 얼떨결에 감동할 뻔했다. 지난번의 라델이라면 '왕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했을지도 모르는데.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까?”
“왕국 공무 마부는 이동증이 있습니다.”
“그럼 본인 동의를 받아서 보죠.”
라델이 조사관을 불렀다. 잠시 뒤 돌아온 조사관은 얼굴이 시퍼레져 있었다.
“마부가 없습니다.”
“어디 갔죠?”
“보급 마차에 짐을 두고 나갔답니다.”
“어디로?”
“……아무도 모릅니다.”
아, 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사라지면 꼭 누가 봤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서류가 사라졌을 때와 똑같다. 마지막 확인 시각, 마지막 장소, 마지막 담당자.
“성문을 봉쇄합니까?”
루시아가 벌써 검집을 잡고 있었다.
“아뇨.”
“그러면 도망가게 두겠다는 거냐?”
“정말 마부라면 쉬러 갔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범죄 사실이 없잖아요.”
“미등록 인원이 성에 들어왔다!”
“누락인지 고의인지부터 확인해야죠. 경비는 강화하되 사람을 붙잡을 근거를 만들지 맙시다.”
루시아가 코웃음을 쳤지만 검을 뽑지는 않았다.
그녀의 인내심이 조금씩 늘고 있다.
훌륭하다.
다음 인사평가 항목에 '서류가 나왔을 때 바로 베지 않음'이라고 적어 줘야겠다.
***
오후에 이상한 편지가 도착했다.
왕국 조사단 숙소 앞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봉투에 수신인은 없었다.
대신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다.
[00-성전은 돈을 담는 곳이 아니다. 서명을 보관하는 곳이다.]
나는 종이를 탁자에 올렸다.
몰트가 고개를 기울였다.
“서명을 보관한다고?”
“계약 원본이 모여 있는 금고일 수도 있죠.”
“그게 왜 계정 이름으로 남아 있겠나?”
“그걸 알아봐야죠.”
피코는 뒤쪽 문장을 읽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명자가 셋일 때 문이 열린다.]
“셋이요?”
“공동 관리라면 서명권자를 여러 명 두는 건 흔해.”
한국에서도 법인 계좌에 복수 승인을 붙이는 회사가 있었다. 담당자 혼자 돈을 빼내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런데 여기는 조금 다르다.
사라진 검의 승인번호, 마왕의 복합 인장, 왕국 공문 변경, 그리고 이제 이름 없는 서명자 셋.
그 조각들이 한데 모이는 것 같아도 나는 억지로 맞춰 넣고 싶지 않았다.
퍼즐 그림을 미리 정해 놓고 억지로 끼우면 종이가 찢어지니까.
“필체를 대조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몰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 필기라면 필체가 작성자와 다를 수 있네.”
“좋네요. 범인 찾기에 이렇게 불친절한 세계는 처음 봤습니다.”
“그렇다면 원본을 찾는 게 낫겠군.”
“네. 그리고 봉투를 처음 본 사람의 진술도 남겨 주세요.”
메모를 마치려는 순간 종이 위에 푸른 글씨가 떠올랐다.
[절대 감사: 봉투와 내용물의 접수 시각 불일치]
어라.
종이는 방금 주웠는데 내용물은 언제 접수됐다는 거지?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오른쪽 아래에 작은 원형 자국이 있었다. 종이로 만든 지 오래됐다는 흔적일 수도, 다른 장소에서 찍힌 압흔일 수도 있다.
“피코, 마법 종이의 제작 시각을 확인할 수 있어?”
“종이 자체는 가능할지 몰라도 글씨를 언제 썼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워요.”
“좋아. 일단 그 정도만.”
피코는 종이 재질을 기록했다.
라델은 그 내용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우리 조사단을 이용해 편지를 넣은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대는 늘 그런 식으로 말하는군요.”
“회계에서 '모른다'는 말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게 문제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웃었다.
“왕궁에서도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아, 그만 좀 과거를 회상합시다.
저는 지금 점심도 못 먹었거든요.
***
렘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왕국 조사단의 숙소 담당자와도 이야기했다.
숙소 담당자는 세실이라는 마족 여성이었다. 반듯한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왕국 사람들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침대에 성수를 뿌리는 바람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성수가 침구를 상하게 합니까?”
“아뇨. 저희 세탁 마법이 풀려 버려요. 이불을 다시 빨아야 해요.”
아.
종교적 문제와 세탁비가 결합된 골치 아픈 사건이군.
“왕국 측에 사용을 멈춰 달라고 이야기할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다만 추가 세탁비를 누가 내는지만 정해 주세요.”
그래.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나는 라델에게 숙소 이용 규정에 관한 작은 협의서를 건넸다. 개인의 의례는 존중하되 시설을 훼손하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사전에 알리는 내용이었다.
라델은 얼굴을 붉혔다.
“우리 조사관들이 실례했습니다.”
“사과도 좋지만 침구는 다시 빨아야 하니까요.”
“비용은 왕국에서 지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영수증 드리겠습니다.”
세실이 내게 작은 빵을 건넸다.
“재정실 분들은 늘 돈만 따지는 줄 알았는데,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요.”
나는 빵을 받아 들었다.
“사람이 편해야 서류도 편하거든요.”
정말이다. 숙소에서 밤새 싸운 조사관들이 다음 날 정상적인 보고서를 작성할 리가 없다. 실무란 그렇게 연결된다.
그리고 기록관 아레인에게서 작은 부탁도 받았다.
“마왕성 서류실의 분류표를 복사할 수 있을까요?”
“왜요?”
“저희 재무청에도 적용해 보고 싶어서요.”
오.
적국의 기록관이 우리 양식을 배우겠다고 한다.
나는 흔쾌히 사용 가능한 부분을 설명했다. 비밀 자료의 보존 위치를 빼고 나머지는 어렵지 않았다.
피코가 옆에서 말했다.
“왕국에서도 이 분류표를 쓰면 왕국 서류를 더 쉽게 찾을 수 있겠네요!”
나는 서둘러 말을 끊었다.
“아니, 그렇다고 왕국 전체 서류를 우리가 찾게 되면 곤란해.”
“왜요?”
“업무가 늘잖아.”
아레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는 업무 협조와 업무 범위의 경계를 동시에 배웠다.
마부는 저녁때 돌아왔다.
세상에.
도망간 게 아니었다.
그는 마왕성 아래 마을에서 말 대신 마법 견인석을 수리하고 왔다고 했다. 이동증도 있었고, 조사단의 정식 운송 계약서에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만 성문 명단에는 없네요.”
내가 말하자 렘은 난처하게 웃었다.
“운송 담당자의 명단은 따로 제출한 줄 알았습니다.”
“그럼 절차상 누락이군요.”
라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렘은 내 이름을 듣더니 표정이 변했다.
“한도윤 재정관?”
“네.”
“저를 찾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왕국 공문 전달 경로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두 장의 공문 말씀이십니까?”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아니.
왜 네가 두 장인 걸 알고 있어?
그 사실은 아직 조사단 내부와 마왕성 재정실에서만 공유한 내용이다.
“두 장이라고 누가 말했습니까?”
렘은 눈을 내리깔았다.
“공문은 원래 한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제4병기창 문서창구에서 봉투를 교체하라고 했습니다.”
“누가요?”
“저도 이름을 모릅니다. 창구에 있는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원래 봉투는?”
“반납했습니다.”
“반납 확인서는요?”
“받지 못했습니다.”
아.
여기서 또 증빙이 끊겼구나.
렘의 말이 사실인지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따로 보관하던 두 공문의 경위와 연결되는 진술인 건 분명했다.
나는 그에게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진술하는지 확인하고, 아레인 기록관과 피코를 양쪽 입회인으로 세웠다.
“그 창구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까?”
“네.”
“누가 지시한지는?”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쓰면 됩니다.”
렘의 굳은 어깨가 조금 풀렸다.
그날 밤 회의실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두 공문 사이에 사람이 실제로 끼어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렘이 떠나기 전 내게 물었다.
“한 재정관님, 혹시 그 문서창구에 적힌 표식을 본 적 있습니까?”
“어떤 표식이요?”
그가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작은 그림을 그렸다.
원 세 개.
그리고 가운데를 가르는 세로줄 하나.
나는 그 표식을 보고 몸이 굳었다.
어제 라델이 꺼낸 00-성전 열람 요청서 뒷면에, 똑같은 표식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우연이란 말을 쓰기 어려워진다.
물론 아직은 추적해야 할 기록이 더 많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먼저 같은 종이들을 만져 봤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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