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장부를 두 개 만드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좋은 이유도 있다. 세무용 장부와 관리용 장부가 다를 수도 있고, 본사 보고서와 현장 재고표가 다른 기준으로 작성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장부의 숫자가 서로 다른데 아무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회계팀의 평화는 끝난다.
"도윤 님, 두 장부가 도착했어요!"
피코가 기쁜 얼굴로 달려왔다.
"어디서?"
"흑산 상단과 채석장에서요."
나는 커피 대신 마계산 검은차를 마시다 말고 서류를 받았다.
내가 요청했던 것은 동일 기간의 출고 장부와 입고 장부였다. 정상적인 거래라면 두 문서의 내용은 조금 달라도 거래 수량과 날짜를 맞춰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펼치자마자 이상한 점이 보였다.
상단 장부에는 품목이 '흑철 검 완제품'으로 돼 있었다. 채석장 장부에는 '성벽 방호 연결대'라고 적혀 있었다.
수량은 양쪽 모두 만 단위.
날짜도 같았다.
"도윤 님! 그럼 이건 같은 물건이죠?"
"같은 거래일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연결되는 번호부터 확인하자."
"아직도요?"
"응. 오늘의 목표는 화내지 않는 거야."
"누구한테요?"
"나 자신한테."
이미 속으로는 열 번쯤 화를 냈다.
***
몰트는 두 장부를 보자 피곤한 표정이 됐다.
해골이 피곤해 보일 수 있냐고?
가능하다.
푸른 눈빛이 반쯤 꺼지고 턱이 달그락거리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품목명이 다르면 회계 기준을 하나로 맞춰야겠군."
"우선 어느 쪽이 실제 계약 내용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한쪽을 고쳐 버리면 증거가 사라져요."
"그렇지."
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나 묻겠네. 자네는 왜 그렇게 숫자를 믿는가?"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장부를 내려다봤다.
"믿어서가 아닙니다."
"응?"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숫자도 얼마든지 거짓말하거든요. 누가 무엇을 세었는지 모르면요."
나는 출고 장부의 만 단위와 입고 장부의 만 단위를 가리켰다.
"여기서 만 개라고 하면 정말 만 개인가요? 포장 단위인가요? 부품 개수인가요? 그걸 모르니까 직접 물어보는 겁니다."
몰트의 푸른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
"숫자를 의심하기 때문에 장부를 읽는다는 말이군."
"네."
"천이백 년 동안 회계를 했지만 그런 생각은 못 해 봤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장님이 없었으면 자료가 남아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오래된 장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에요."
몰트는 괜히 책상 위 먼지를 털었다.
"흠. 칭찬을 들으니 조금 어색하군."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너무하잖나!"
천이백 년 차도 칭찬에는 약하구나.
***
두 문서를 확인하던 중 사소한 차이를 발견했다.
상단 장부에는 운송비가 포함돼 있었다. 채석장 장부에는 물품비만 적혀 있었다.
단순히 기준 차이일 수 있다. 문제는 금액이었다.
물품비 금화 육만 닢.
운송비 금화 이만 닢.
합계 팔만 닢.
흑산 상단으로 지급된 총액과 같았다.
"그럼 검 만 자루 대신 부품을 배송하고도 팔만 닢을 받았다는 뜻인가요?"
피코가 물었다.
"그렇게 단정하긴 일러. 물품비가 맞는지, 운송비가 어떻게 산정됐는지부터 봐야 해."
"운송비가 비싸요?"
"비싼지 싼지 모르지. 경로와 위험 부담에 따라 달라지니까."
나는 지도에 왕국 동부 제4병기창, 흑산 상단 제2운송소, 북부 채석장을 표시했다.
그리고 각 구간의 거리와 통행료, 위험 구역을 적어 봤다.
"피코. 왕국에서 북부 채석장까지 마차 한 대가 오려면 몇 날 걸리지?"
"길이 안전하면 닷새요."
"열다섯 대면 운송비가 얼마야?"
피코가 어림셈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물류 계약 기준으로는 이만 닢까지 안 나오는데요."
"좋아. 그럼 계약 조건을 확인해 보자."
흑산 상단은 위험 수당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했다. 전쟁 중 국경을 넘는 화물이라면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실제 화물이 정규 교역 허가를 사용했는지 여부였다.
보르크가 보내 준 공개 허가 목록을 확인했다.
그 기간에 발급된 허가증 중 일곱 건이 상단 이름과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열 건은 허가증 자체가 없었다.
"없으면 밀수예요?"
"아니. 다른 명의로 운송했을 수도 있고, 긴급 군수 특례가 있었을 수도 있어."
나는 피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이 녀석은 나보다 키가 작지만 직장 동료지 어린애는 아니다.
"확인할 게 늘었네."
"그러게요."
"기뻐하지 마. 오늘은 정시 퇴근이야."
"네!"
피코의 대답이 가장 빨랐다.
***
문서의 차이를 정리하다 보니 이상한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물품비 육만 닢 가운데 금화 오천 닢이 '정산 보증 준비금'으로 묶여 있었다.
'보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무조건 이상한 돈은 아니다. 수입 보증금, 계약이행 보증금, 하자보수 보증금처럼 정당한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준비금의 수취인이 월영 관리단이었다.
나는 반쯤 식은 차를 내려놓았다.
"너희 또 여기 있냐."
책상 건너편의 피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요?"
"월영 관리단."
"아, 그 사람들요."
"너는 그 이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
"야간 수당이요."
"난 이제 머리가 아파."
나는 월영 관리단의 계약서를 다시 열었다.
야간 안전 장비 적립금.
채석장 외부 관리 위탁료.
정산 보증 준비금.
세 가지 명칭이 같은 업체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 같은 이름으로 여러 합법적인 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각 돈의 목적이 다르면 사용내역도 구분돼야 한다.
문제는 월영 관리단이 그 구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였다.
"실장님, 월영 관리단에 계약별 정산서를 요청해야겠습니다."
몰트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오래 걸리겠나?"
"상대가 협조하면 며칠 안에요."
"협조하지 않으면?"
"그땐 또 출장 가야죠."
"자네는 서류를 좋아하는가, 여행을 좋아하는가?"
"둘 다 별로요."
몰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웃었다.
***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피코가 회계 장부 두 장을 다시 가져왔다.
"도윤 님.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어요."
"뭔데?"
"상단 운송비 영수증에는 마차 열일곱 대라고 돼 있는데, 채석장에 들어온 마차 목록은 열다섯 대예요."
나는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마차 수만으로 부정을 단정할 수는 없다. 중간에 화물을 옮겨 실었을 수도 있고, 빈 마차가 다른 곳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운송 단위가 같나 보자."
"네?"
"영수증에서 말하는 열일곱 대가 실제 마차 대수인지, 운행 횟수인지부터."
피코는 사본을 자세히 읽었다.
"아…… '운송 회차'라고 적혀 있네요."
"그렇지. 같은 마차가 두 번 갔다면 회차가 더 많아질 수 있어."
"그러면 제 계산이 틀린 거네요."
"아니. 좋은 질문이었어. 다만 질문을 사실로 바꾸기 전에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지."
피코는 수첩에 '대수와 회차는 다름'이라고 적었다.
이 녀석이 배우는 속도는 놀라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같은 마차가 두 번 갔는지 확인하려면 뭘 보면 될까?"
"마부 출근부요! 그리고 마차 수리 기록도요!"
"맞아."
피코가 신이 나서 의자를 밀었다.
"그럼 지금 확인하러……"
"내일."
"왜요?"
"퇴근 시간이거든."
그는 시무룩해졌다가 금세 웃었다.
"네! 내일 하겠습니다!"
잠깐.
이게 이렇게 기쁜 일인가?
한국 회사에 있을 때는 일을 남겨 놓고 퇴근하면 죄인이 된 기분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퇴근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
몰트는 내가 제출한 중간보고서를 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무엇인가?"
나는 항목을 하나씩 읽었다.
"마왕성에서는 검 완제품을 주문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채석장 입고 문서에는 성벽 방호 연결대라고 적혀 있습니다. 금액은 육만 닢 물품비와 이만 닢 운송비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보증 준비금이 월영 관리단과 연결돼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누가 품목을 변경했는지, 실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변경을 승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증 준비금이 실제로 쓰인 곳입니다."
몰트는 안광을 반짝였다.
"확인된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부른 건가?"
"모르는 내용을 목록으로 올리려고요. 조사 예산을 승인받아야 하니까요."
몰트가 두개골을 젖히며 웃었다.
"자네는 정말 이상한 인간일세. 다른 직원들은 아는 것을 크게 말해 예산을 받으려 하는데, 자네는 모르는 것을 길게 적어 예산을 받으려고 하니."
"모르는 걸 확인하려면 돈이 들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지."
그는 보고서 아래에 서명했다.
새로운 조사비가 승인됐다.
막대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출장을 가기 위해 개인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소박한 직장인의 행복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상단 담당자 나르딘이 성에 직접 찾아왔다.
이번에는 넥타이처럼 생긴 검은 리본을 매고 있었다. 곁에는 서류가방을 든 수행원 둘이 있었다.
"한 재정관님. 오해를 풀고 싶어서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설명을 들을 준비는 돼 있습니다."
나르딘은 두꺼운 서류철을 테이블에 올렸다.
"먼저 말씀드리죠. 제17군단 검 구매 계약은 정당합니다. 단지 물류 과정에서 품목 분류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언제 바뀌었습니까?"
"아마 출고 단계에서요."
"누가 승인했죠?"
"현장 책임자들이요."
"그분들 서명은 있습니까?"
나르딘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왜 그토록 서명에 집착하십니까?"
"집착이라기보다는,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아야 책임을 나눌 수 있어서요."
"책임을 나눈다고요?"
"네. 잘한 일은 잘한 사람에게, 잘못한 일은 실제로 결정한 사람에게. 아무나 잡아다 혼내면 다음에는 아무도 기록을 안 남기거든요."
그는 조금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상단의 잘못을 미리 정해 놓고 온 게 아닙니다. 계약한 물건이 왜 달라졌는지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나르딘은 서류철 안쪽에서 작은 양피지를 꺼냈다.
[물품 규격 변경 승인서]
그런데 마지막 서명칸은 빈칸이었다.
"승인은 아직 안 난 겁니까?"
"결재가 늦어져서요. 대신 구두로……"
아.
드디어 만났다.
이 세계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말.
'구두로 승인받았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요?"
나르딘이 잠시 나를 바라봤다.
"제17군단의 그라즈 보급관입니다."
그라즈.
그 이름은 이미 결재권이 정지된 사람이다.
"승인 날짜는요?"
나르딘이 적어 준 날짜는 그라즈의 결재권이 정지된 다음 날이었다.
나는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라즈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그라즈 이름으로 결정을 내렸는가?
어느 쪽이든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서류를 조심스럽게 돌려주었다.
"그날 그라즈를 직접 만난 분이 있습니까?"
나르딘이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직접 만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승인을 받았죠?"
"마법 전송으로요."
그가 마지막 서류를 꺼냈다.
전송 기록의 발신 계정은 그라즈 명의였다.
하지만 로그인 장소에는 낯선 표기가 있었다.
[왕국 동부 제4병기창 부속 통신소]
나는 전송 기록을 조금 더 살폈다.
문서에는 접속 장소만 적혀 있었고, 실제 사용한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마법 전송소의 공용 단말로 들어온 기록이었다.
"이 기록을 발급한 기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나르딘이 대답했다.
"병기창 부속 통신소입니다. 전송 확인 원본은 그곳에 있을 겁니다."
"그럼 이 문서는 사본이네요."
"그렇습니다."
"원본 요청은 누가 할 수 있죠?"
"왕국 쪽 등록 업체나 정식 조사관만 가능합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쪽에서는 왕국 조사단이 올 때 공식 요청해야겠네요."
피코가 물었다.
"그라즈가 직접 보낸 게 아니면 어떻게 해요?"
"그 사람 계정을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가능성을 확인해야지. 계정 도용일 수도, 승인 위임일 수도 있어."
"아직도 여러 가능성이 있네요."
"맞아."
나는 그라즈의 결재권 정지 통지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그 날짜 이후에 찍힌 승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가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시스템 반영이 늦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왕국과 마왕성의 전송 시간을 대조해야 했다.
내가 찾는 건 누군가를 빨리 혼내는 근거가 아니었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결정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순서였다.
누군가 마왕군 보급관 이름으로 왕국 안에서 결재를 날린 셈이다.
내가 피코와 눈을 마주쳤다.
이번엔 그도 웃지 못했다.
제2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