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만 자루가 사라졌다.
그런데 정작 채석장에서 발견된 것은 검이 아니었다.
철제 연결 부품이었다.
내가 야근하던 시절 부서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대리, 내용은 똑같으니까 제목만 바꿔서 올려.'
그 말을 믿었다가 세 달 뒤 감사실에서 불려 갔다. 제목이 달라지면 용도도 달라지고, 용도가 달라지면 승인권자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거였다.
검 만 자루를 샀다면서 왜 철제 부품이 나오지?
나는 채석장 휴게소에서 조잡한 그림을 그렸다.
왼쪽에는 검 한 자루. 오른쪽에는 타르가 보여 준 연결 부품.
루시아가 내 그림을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검이냐?"
"검을 그린 건데요."
"부러진 숟가락처럼 생겼다."
"제가 그림 실력은 좀……"
"옆에 있는 건?"
"부품입니다."
"그건 곤충 다리 같다."
아.
이래서 현장 실물을 확인하는구나.
그림은 증거가 아니었다.
***
타르가 기록한 세 날짜를 바탕으로 마차 운행표를 대조했다. 운송장 번호가 빠져 있는 기간이었다. 그런데 운행표에는 차량번호 대신 '긴급 군수 지원'이라는 말만 반복해서 적혀 있었다.
"이건 누구 지시로 적었습니까?"
마부 한 명이 머리를 긁적였다.
"월영 관리단의 감독관이요. 번호 쓰지 말고 문구만 쓰라고 했어요."
"왜요?"
"보안상 특별 운송이라고요."
"실제로 무엇을 옮겼습니까?"
"상자요."
"상자 안에는요?"
"못 봤어요. 봉인이 돼 있어서."
좋아. 적어도 '모른다'는 답을 솔직하게 하는구나.
나는 마부에게 당시 마차의 수량과 무게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그는 팔뚝에 묶어 놓은 끈을 보여 줬다. 매번 적재량만큼 매듭을 짓는 개인적인 습관이라고 했다.
"이걸 아직 가지고 계십니까?"
"마차에 태우는 말들 먹이량 계산하려고요. 무거운 걸 옮기면 말이 더 먹거든요."
이야.
대단하다.
고급 회계 프로그램이 없어도 현장에는 이렇게 좋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마부의 매듭 수를 확인하니 누락 운송장 기간의 적재량은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무거웠다. 게다가 빈 마차로 돌아온 날이 많았다.
"그러면 물건을 채석장에 내려놓은 거군요."
"적어도 제가 몰던 마차는 그랬습니다."
"거기까지 적겠습니다."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더 묻지 않느냐?"
"모르는 걸 억지로 대답하게 하면 기억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게 되니까요."
"흠."
그녀가 의외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문도 그렇게 해야겠군."
"특히 그쪽은 제발요."
***
우리는 제3갱도에서 나온 부품의 규격을 확인하기 위해 대장장이를 불렀다.
드워프 대장장이는 부품을 두 번 살피더니 말했다.
"검이 아니야."
"확실합니까?"
"검이라면 길이도, 열처리 흔적도 달라야 하지."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무거운 걸 연결하는 데 쓰겠지. 대형 기계나 성문, 혹은 공성 병기 같은 거."
"공성 병기요?"
"단정할 순 없어. 같은 규격을 여러 곳에서 쓸 수 있으니까."
마음에 드는 답이었다.
사람들은 전문가라면 뭐든 바로 맞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믿을 만한 전문가는 모르는 부분을 알아서 구분하는 법이다.
대장장이는 부품 측면의 흠집을 가리켰다.
"이건 생산 공방의 표식인 것 같은데."
나는 확대경을 들이댔다.
작은 원 안에 대각선 세 개.
익숙한 문양이었다.
왕국 동부 제4병기창의 교역 허가 목록에 붙어 있던 화물 분류 기호와 닮아 있었다.
정확히 같은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했다.
"왕국에서 만든 물건입니까?"
루시아가 묻자 드워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왕국인지도 모를 수 있지. 이 기호를 다른 상단이 빌려 쓰는 경우도 있어. 금형이 퍼지면 표식도 퍼지는 법이거든."
아쉽지만 정직한 답이다.
나는 부품의 크기와 무게, 표식 모양, 관찰자 이름을 기록했다. 물건 자체는 채석장 보존창고에 두기로 했다.
게르온 소장에게 봉인함 열쇠의 공동 보관을 제안했다. 처음엔 싫어했지만, 한 사람 혼자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는 수긍했다.
***
다음 날 우리는 흑산 상단의 제2운송소를 방문했다.
그곳은 채석장에서 반나절 거리의 작은 물류 거점이었다. 말끔한 창고와 반듯한 표지판, 서류가 가지런한 책상까지. 여기만 보면 범죄 의혹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운영책임자 나르딘은 예상과 달리 친절했다.
"재정실에서 나오셨군요.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다만 먼저 방문 목적을 확인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나르딘은 메모지를 펼쳤다.
"복합 인장 금형 구매 문의, 제17군단 철 부품 운송, 월영 관리단과의 보관 계약. 맞습니까?"
내 손이 잠시 멈췄다.
"저희가 아직 세 번째 항목은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그가 눈을 깜빡였다.
"관련 업체가 같으니 당연히 묻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우리의 질문 목록을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할 가치가 있었다.
"먼저 검 만 자루 구매 계약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나르딘은 반듯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내밀었다.
[흑철 검 완제품 10,000자루]
"주문하신 대로 납품했습니다."
"실물 인수증은요?"
"하역확인서가 있습니다."
나는 확인서를 읽었다.
'흑철 화물 10,000단위.'
검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이건 완제품 검을 인수했다는 문서가 아닙니다."
"화물 규격을 줄여 쓴 겁니다."
"그럼 주문서의 품목명과 인수증의 품목명이 다르다는 사실은 인정하십니까?"
나르딘의 입가가 조금 굳었다.
"표기 관행이 다를 뿐이지요."
"관행은 확인하겠습니다. 우선 수량 단위부터 설명해 주세요."
그는 짧게 침묵했다.
"'단위'는 포장 단위를 말합니다."
"상자입니까? 묶음입니까?"
"보통은 묶음입니다."
"한 묶음에 검이 몇 자루입니까?"
"계약마다 다릅니다."
"이 계약에는요?"
"……별도 규격서가 있을 겁니다."
드디어 중요한 말이 나왔다.
별도 규격서.
계약서 본문에는 없는데, 물건을 정의하는 다른 종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 규격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본사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럼 열람 신청서를 남기겠습니다."
나르딘이 웃었다.
"정말 서류를 좋아하시네요."
"서류가 싫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서류가 정상이었으면 제가 채석장에서 먼지까지 마시며 이럴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루시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
운송소를 나오기 전, 나는 창고 뒤편의 검수장도 확인했다.
정식 출입 허가를 받은 구역이었다. 나르딘이 따라오며 말했다.
"군수 물자는 저쪽 문으로 들어옵니다. 일반 식량과 섞지 않습니다."
"분리 보관은 좋네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 당연한 일이 안 되는 창고도 많거든요."
나르딘은 약간 자랑스러운 얼굴로 검수대를 보여 주었다. 상자가 놓이면 마력저울에 무게가 표시됐고, 곁의 서기가 내용을 적었다.
"검 만 자루를 입고했을 때 기록도 여기 있습니까?"
"있습니다. 다만 오래된 자료는 원본을 가져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그 시기의 저울 교정 기록부터 볼 수 있을까요?"
"교정 기록이요?"
"무게가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나르딘은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서랍을 열었다.
교정 기록에는 매달 기준 추를 올려 확인한 수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기간 직후 저울이 크게 보수된 흔적이 있었다.
"고장 났습니까?"
"창고의 마력 폭주 때문에 일부 부품을 교체했습니다."
"언제요?"
그가 날짜를 가리켰다.
검 구매 대금이 최종 지급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나는 수첩에 적었다.
"그 시기 작업자의 진술도 받을 수 있을까요?"
나르딘은 난처한 얼굴이 됐다.
"이미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습니다."
"연락은 가능합니까?"
"본사 허가가 필요합니다."
좋다. 오늘도 허가의 벽이군.
나는 연락 요청서만 남겼다. 무게 기록과 장부 숫자가 일치하면 납품 수량을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저울이 그때 고장이 났다면 실물 확인을 더 신중히 해야 한다.
"재정관님."
나르딘이 조용히 불렀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이미 제17군단은 검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없다는 말과 애초에 납품되지 않았다는 말은 다릅니다."
"……그렇겠군요."
"검이 있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부품으로 바꿔 지급했을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실물과 계약이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나르딘은 잠시 내 눈을 바라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돌아서기 직전에 한 가지를 물었다.
"만약 상단도 누군가에게 속았다면, 그걸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조금 놀랐다.
"증거가 그렇다면 당연히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루시아는 검수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을 찾으러 왔는데 저울을 보고 나오는군."
"검이 만 자루면 무게도 어마어마하겠죠."
"그렇지. 내가 들어도 힘들 정도다."
"그러니까 장부에 적힌 무게와 실제 운송량이 맞아야 합니다."
"그게 다르다면?"
"검이 다르게 포장됐거나, 다른 걸 실었거나, 기록이 틀렸거나. 선택지가 줄어들죠."
그녀가 웃었다.
"네가 싸움에서 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숫자로 먼저 포위하는구나."
"저는 포위라고까지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또 저 말이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회사 사람들은 내가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자꾸 강조한다.
솔직히 나는 무서운 게 많다. 밤길도 무섭고, 월급 밀리는 것도 무섭고, 허위 결재에 내 서명 들어가는 건 더 무섭다.
하지만 기록을 맞춰 보는 일이 누군가에게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돌아오는 길, 루시아가 물었다.
"저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왜 잡지 않았느냐?"
"아직 말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자료가 부족합니다."
"너는 너무 신중하다."
"기사단장님은 너무 빠르시고요."
그녀가 씩 웃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다니는 거겠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지나치게 느릴 때가 있고, 루시아는 지나치게 빠를 때가 있다. 둘이 함께하면 중간 어디쯤이 되겠지.
물론 그녀가 갑자기 검을 뽑지만 않으면.
마왕성으로 돌아오자 피코가 깜짝 놀랐다.
"도윤 님! 옷이 왜 이렇게 먼지투성이예요?"
"검을 찾으러 갔다가 돌만 잔뜩 보고 왔어."
"검은요?"
"아직 못 찾았지."
피코는 실망한 얼굴이었다가 이내 수첩을 펼쳤다.
"그럼 확인된 건 뭔데요?"
나는 하나씩 대답했다.
"상단의 계약서에는 검 완제품이라고 적혀 있어. 채석장에서는 연결 부품이 발견됐고. 둘이 같은 거래일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최종 확인은 못 했어."
"그럼 실패하신 건 아니네요!"
"왜?"
"어디에 뭐가 없는지 알게 됐잖아요."
나는 웃음이 났다.
정말 그렇네.
때로는 물건을 찾는 것보다 잘못된 장소를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잘했어, 피코."
"제가요?"
"응. 내가 오늘 일한 의미를 네가 알려 줬거든."
피코는 기뻐하면서도 끝내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괜찮다. 나도 입사 1년 차 때는 그랬으니까.
성으로 돌아와 서류를 정리하던 나는 운송소에서 받은 하역확인서 뒷면을 우연히 비춰 보았다.
빛에 드러난 희미한 글자가 있었다.
[규격: 제4형 연결대 / 용도: 성벽 방호 설비]
검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한 장에서 인수한 물건은.
그때 문득 왕국에서 첫 보고서를 수정하던 밤이 생각났다.
우리 부장님은 숫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전체를 고치라고 했었다. 하지만 숫자를 예쁘게 꾸며 봐야 창고에 없는 물건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세계에 와서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검이 없으면 검이 없는 것이다. 다만 누가 왜 검이라고 적었는지 알아낼 책임만 남는다.
나는 양피지 위에 두 품목을 나란히 적었다.
검 만 자루.
성벽 방호용 연결대 만 단위.
한 계약에 서로 다른 물건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잘못 적었다면 고쳐야 한다.
누군가 일부러 바꿨다면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전쟁과 연결된다면?
그때부터는 회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바로 그때부터 더더욱 회계 문제다.
누군가는 그 잘못된 이름으로 돈을 받았으니까.
제2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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