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네 검을 압수하겠다!"
루시아가 아침부터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는 빵을 입에 문 채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더니 어제 만든 내부 통제 규정을 읽은 모양이었다.
규정에는 감사 담당자가 조사 대상 기업으로부터 선물이나 금품을 받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다. 루시아는 거기서 한 가지 아주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다고 했다.
"너는 왕국이 준 검을 가지고 마왕성의 왕국 거래를 감사하고 있지 않느냐!"
"아."
"그러니 그 검을 맡겨라!"
나는 성검을 내려다봤다.
검은 검집에 얌전히 들어 있었다. 어젯밤은 노래도 하지 않았다.
"가져가실 수 있으면요."
루시아가 씩 웃었다.
"좋다!"
그녀는 검집을 잡아당겼다.
움직이지 않았다.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바닥 대리석에 금이 갔다. 창문이 덜컥거렸다.
검은 여전히 내 허리께에 붙어 있었다.
"이…… 놈……!"
"기사단장님, 바닥 수리비가 나옵니다."
"한 번만 더!"
"아니요. 오늘은 여기까지."
결국 루시아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대리석이 한 장 더 깨졌다.
와.
이해충돌 방지하러 왔다가 시설 유지비만 늘리고 가는 직원은 처음 본다.
***
성검 문제는 농담으로 끝낼 수 없는 사안이기도 했다.
왕국은 내가 신성 소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의무에 서명한 적이 없다. 그런데 성검은 여전히 내 손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왕성의 장부를 확인할 때마다 가끔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성 계약 경고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검은 내 개인 물건인가, 왕국 자산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강제로 맡긴 물건인가?
한국 회사에서라면 지급 장비 확인서부터 찾았겠지만, 여기에는 그런 서류가 없다.
아니, 종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왕궁에서 쫓겨날 때 내가 받은 것은 성검 한 자루와 양피지뿐이었다. 당시 정신이 없어 별생각을 못 했지만, 왕실 창고에는 반출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몰트 실장님. 이해충돌 신고서를 만들고 싶은데요."
몰트의 안광이 흔들렸다.
"또 새로운 서식인가?"
"이번에는 저한테 적용할 서식입니다."
"자네가 자기 자신을 감사하겠다고?"
"그건 안 되죠. 제 이해관계는 다른 사람이 검토해야 하니까요."
몰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두개골을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검토하지."
나는 신고서에 내가 왕국에서 소환됐고 성검을 받았으며, 왕국은 아직 나를 용사로 주장한다는 사실을 적었다. 마왕성과의 정식 근로계약은 별도다. 그리고 왕국 관련 거래 감사에는 독립 검토자가 필요할 수 있다고 썼다.
몰트가 한 줄을 가리켰다.
"'소유권 미확정'이라니. 검은 자네를 따라다니지 않는가?"
"따라다닌다고 제 소유인 건 아니죠."
"무슨 뜻인가?"
"한국에서 길고양이가 저를 따라온 적이 있다고 해서 제가 그 고양이의 주인은 아니었거든요."
몰트가 잠깐 생각했다.
"그런데 자네의 검은 고양이와 달리 노래를 하는군."
"그러니까 더 곤란하죠."
성검이 서운하다는 듯 한 번 빛났다.
미안하다. 너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직장인이 회사 물건을 들고 이직했는데 그 물건이 스스로 따라온 상황이라니, 감사 담당자로서는 최악이다.
***
우리가 회의하는 사이 흑산 상단에서 연락이 왔다.
인쇄공의 접수증에 적힌 제2운송소가 현재 영업 중이며, 복합 인장 금형 의뢰는 정당한 상거래였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희가 알아봤는지 아셨죠?"
피코가 편지를 흔들었다.
"인쇄공이 상단에 알려 준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계약 관계니까."
편지 아래에는 상단 담당자의 서명이 있었다. 낯선 이름이었다.
[제2운송소 운영책임자 나르딘]
편지는 '왕국과 마왕성의 우호적 거래를 위해 불필요한 의혹 제기를 중단해 달라'는 말로 끝났다.
우호적 거래라.
전쟁 중인 나라 사이에서 돈은 참으로 열심히 평화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답장을 썼다.
[복합 인장 금형 의뢰 사실에 관한 자료 보존을 요청드립니다. 현재 귀 상단의 위법 행위를 확정한 바 없으며, 거래 범위와 대금 지급 근거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피코가 읽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부드럽지 않아요?"
"지금 협박하면 상단이 자료를 전부 태워 버릴지도 몰라. 지난번에도 보관소에 불이 났다고 했잖아."
"아, 맞다."
"그리고 우리가 틀렸을 수도 있어. 그러면 사과해야 하고."
피코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 님은 가끔 무서운데, 그런 말씀 하실 때는 좋습니다."
"어떤 때가 무서운데?"
"영수증 없다고 하실 때요."
그게 그렇게 무서운 말인가?
***
점심 무렵, 루시아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검을 뺏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성검 이해충돌 자체 점검 요청]
"이건 뭐예요?"
"네가 쓴 규정대로 하는 것이다."
"누가 작성했습니까?"
"내가."
루시아의 글씨는 칼자국처럼 굵었다. 부드러운 곡선은 하나도 없었다.
"내용은요?"
"인간 한도윤은 왕국이 준 검을 소지함. 감사 대상은 왕국과 거래하는 마왕군. 검을 회수하려 했으나 실패함. 회수 시 재정실 바닥이 파손됨."
마지막 문장을 읽다가 웃음이 터질 뻔했다.
"바닥 파손은 따로 사고 보고서로 올려주세요."
"이놈!"
"아, 그래도 정말 잘 작성하셨습니다."
루시아는 뜻밖에도 조용해졌다.
"……잘했느냐?"
"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셨어요. 무엇보다 실패했다고 적으셨잖아요."
그녀가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전투 보고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뿐이다. 이런 보고서는 처음이다."
"감사는 승패보다 확인한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네가 그 검을 뺏기지 않도록 호위하겠다."
"이해충돌 심사와 호위가 무슨 관계죠?"
"누군가 뺏으려고 하면 내가 먼저 싸울 수 있지 않느냐."
아.
결국 싸움으로 돌아오는군.
***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을 때, 피코가 성검의 이상한 점을 하나 더 지적했다.
"도윤 님. 검이 왜 꼭 도윤 님만 따라다녀요?"
"나도 그게 궁금해."
"혹시 검이 도윤 님을 좋아하나 봐요."
"그러면 얘가 내 월세라도 내 줬으면 좋겠다."
성검이 반짝였다.
"반응했어요!"
"월세 낼 거야?"
빛이 꺼졌다.
아.
그건 아닌가 보네.
우리는 식탁에 앉아 오래된 소환 마법에 관한 일반 서적을 펼쳤다. 몰트가 도서관에서 빌려 준 책이었다. 마왕성 도서관에 왕국의 마법책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생각해 보면 전쟁 중에도 남의 기술을 연구하는 건 당연하다.
첫 장에는 용사 소환의 원리가 적혀 있었다.
[소환자는 신성한 요청을 발한다. 피소환자가 응답하면 표식이 발생한다. 표식과 계약은 반드시 동일하지 않다.]
나는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이거 봐, 피코. 표식이랑 계약은 다르대."
"그럼 검이 도윤 님을 따라다닌다고 왕국 직원인 건 아니네요?"
"아직 확정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단서지."
소환될 때 내가 무엇에 응답했는지도 문제가 된다. 그때는 '세계의 운명'이라는 말만 들었고,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지 못한 채 끌려왔다. 내가 동의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마법이 그걸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모르겠다.
"기록이 있을까요?"
피코가 물었다.
"왕궁 소환진을 관리한 사제단에 있겠지."
"왕국이 보여 줄까요?"
"지금은 날 수배하고 있으니 쉽지 않겠지."
나는 성검을 손바닥 위에 올려 봤다.
검이 무거웠다.
처음 이세계로 왔을 때부터 줄곧 이 무게였다. 환호하는 사제들 사이에서 어리둥절해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누구 하나 내 가족이나 직장에 연락할 방법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세상을 구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성검은 끝까지 나를 따라왔다.
미운 정이 든 건지, 그냥 떼어 낼 수 없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 무서우셨어요?"
피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처음 여기 오셨을 때요."
나는 잠시 웃었다.
"엄청.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는 티를 안 냈어."
"왜요?"
"말을 똑바로 해야 계약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숫자를 쓰셨군요."
"응. 내가 아는 거라도 붙잡고 있어야 했으니까."
성검이 아주 약하게 빛났다.
이번에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 검이 내 말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조용히 있어 주었다.
늦은 오후, 성검에 관한 첫 공식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몰트, 루시아, 피코, 나. 네 사람이 한 방에 모였다.
나는 검집에 손을 댔다. 언제나처럼 손잡이의 보석이 빛났다. 그 빛으로 오래된 문서에 작은 글자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능력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왜?"
몰트가 물었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야 앞으로 잘못 믿지 않으니까요."
나는 아무 숫자나 양피지에 적었다. 금화 백 닢 지출, 보급품 열 상자 구매. 전부 내가 만들어 낸 허구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진짜 영수증 두 장을 놓았다. 동일한 날짜인데 지급 총액이 다르게 찍힌 문서였다.
푸른 문구가 떠올랐다.
[절대 감사: 금액 대조 불일치]
"봤죠?"
피코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가짜 숫자를 알아보는 능력인가요?"
"아니. 진짜 문서끼리 다른 값을 적었다는 뜻일 뿐이야. 어느 쪽이 맞는지는 또 확인해야 해."
세 번째로 내가 직접 수정한 사본을 놓아 봤다. '원본과 비교하라'는 문구가 떴지만 범인 이름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몰트는 보고서에 한 줄을 추가했다.
[한도윤의 고유 스킬은 독립적 사실확인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
천이백 년차 실장님이 이런 문장을 쓰다니.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실장님, 보고서 쓰시는 실력이 느셨는데요?"
"자네한테 배운 탓이지."
"제 수업료는 안 주셔도 됩니다."
"정말인가?"
"아니요. 농담입니다."
하마터면 계약조건을 스스로 깎을 뻔했다.
***
시험 도중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루시아가 자기 검을 내밀며 말했다.
"내 검에도 고유 스킬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기사단장님 검은 회계 증빙이 아닙니다."
"하지만 값비싼 군수 자산이지."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검을 창고 지급대장과 대조해 봤다.
그런데 루시아의 검은 지급대장에 없었다.
"어? 이거 개인 물건입니까?"
"선대 기사단장에게 물려받았다."
"그럼 소유권 이전 기록이 필요하겠네요."
"검을 받았다고 적어 놓으면 되는가?"
"네. 누구에게서 언제 받았는지요."
루시아가 잠시 침묵했다.
"선대 기사단장은 백 년 전에 죽었다."
"그럼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기록을 찾아보죠."
"네가 죽은 자의 서명까지 받아 오라고 할 줄 알았다."
"아무리 저라도 그런 건 못 합니다."
몰트가 옆에서 말했다.
"나는 가능하네."
우리는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리치니까."
아.
그렇구나.
여긴 진짜 이세계였지.
시험을 마치고 검을 넣으려는데 낯선 글자가 떠올랐다.
[신성 장비 사용자 식별]
[등록 소속: 아르세니아 왕국 용사단]
[현재 계약 소속: 마왕성 재정실]
[동시 지시 충돌: 대기]
처음에는 또 오류 메시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자가 조금 더 오래 남았다.
몰트가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나?"
"둘 다 소속으로 잡히네요."
"왕국과 마왕성?"
"네. 계약서는 하나만 썼는데 말이죠."
"마법이 계약서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네. 아주 오래된 소환술은 특히 그렇지."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동의하지 않은 계약도요?"
"그게 문제일 수 있지."
몰트의 말투가 심각해졌다. 평소처럼 농담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검집을 닫았다.
두 소속이 충돌한다는 알림이 사실이라면, 왕국은 내가 서명하지 않은 약속을 근거로 나를 움직이려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아직 알 수 없는 건 많았다.
신성 마법이 표시하는 '등록'이 법적인 계약을 뜻하는지도 불분명했다. 소환자에게 자동으로 붙는 명칭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찝찝했다.
"실장님. 예전에 소환 마법 관련 계약서를 본 적 있으세요?"
몰트는 고개를 저었다.
"왕국의 문서라네. 그쪽 창고를 열어 봐야 하지."
"그렇군요."
왕국은 나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나도 왕국에 묻고 싶은 게 늘었다.
좋다.
서로 조사하자.
다만 나는 적어도, 상대에게 질문하기 전에 계약서부터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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