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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99화
PAYLUA ORIGINAL · 제199화

199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88자

오프라인 책장
전쟁이 멈추자마자 가장 먼저 내게 도착한 것은 표창장이 아니었다. 월급명세서였다. 나는 그 사실에 감동했다. 사람은 역시 정상적인 급여일에 마음이 약해지는 법이다. 몰트는 내 책상 위에 봉투를 내려놓고 말했다. “이번 달은 야간 출장과 공동 감사 입회 시간이 많았습니다.” “수당 계산은 맞습니까?” “세 번 확인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실장님.” “그 표현은 급여 업무 범위를 넘습니다.” 우리는 웃었다. 나에게는 오늘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다. 천계 제7서고에서 받은 개인 회신권 안내가 도착했다. 한국 가족에게 짧은 안전 연락을 보낼 수 있는 통로가 정식으로 열렸다는 내용이었다. 예전처럼 자동 대리 서명으로 움직이는 장치가 아니었다. 내 인증과 한국 쪽 수신자의 동의가 각각 필요했다. 피코가 내 옆에서 종이를 훔쳐봤다. “도윤 님, 집에 전화할 수 있어요?” “아마도.” “그럼 제일 먼저 뭐라고 할 거예요?” “밥 먹었냐고 물을까?” “그건 엄마가 하는 말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는 서로 해.” 피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세계에 온 뒤로 나는 한국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돌아갈 수 있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키면서 이곳에서 일하기로 직접 결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선택이 누군가의 기다림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연락소로 출발하기 전 나는 마왕성 지하 서고에 잠깐 들렀다. 그곳에는 처음부터 내 이름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서류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소환되기도 전에 작성된 한국어 안내문도 있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누가 나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무서웠습니다.” 내가 말했다. 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름이 먼저 도착했다고 제 선택까지 먼저 도착한 건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원본을 보존함에 돌려놓았다. 윤서진에게서 받은 회신 경위 자료 역시 그녀가 허용한 범위만 기록에 남겼다. 처음 한국어 표본을 쓴 인물이 누구인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소환 과정에서 있었던 잘못까지 흐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누가 직접 고지하지 않았는지, 어느 기관이 다른 직무를 한 장으로 합쳤는지를 확인했다. 그 사실로도 내 선택권은 회복될 수 있었다. “한국 가족에게 연락하면 마음이 달라질까요?” 몰트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달라질 수도 있죠.” “그것도 괜찮습니까?” “괜찮아야죠. 사람이 한번 한 선택 때문에 평생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몰트는 오래된 보존함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예전 상관에게 약속했던 일을 천 년 가까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도 언젠가 그 일을 내려놓고 쉴 권리가 필요했다. “실장님도 휴가 가세요.” “또 그 말씀입니까?” “네. 오늘도 할 겁니다.” “당신은 참 지치지도 않는군요.” “천 년 근속하는 사람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몰트가 웃었다. 우리는 서고 문을 닫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연락소는 마왕성에서 멀지 않은 중립 도시에 있었다. 나와 몰트만 가기로 했다. 제르칸은 나를 위해 호화로운 호위대를 보내겠다며 난리를 쳤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마왕님, 가족 연락하러 가는데 군대가 따라오면 오히려 걱정하십니다.” “그렇다면 나 혼자 가도 되겠느냐?” “더 안 됩니다.” “왜?” “엄마한테 마왕 상사라고 소개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르칸은 한동안 토라졌다. 나는 나중에 감사 인사를 전할 기회를 주겠다고 달랬다. 연락소에는 윤서진이 남긴 동의 범위 제한 안내가 있었다. 그녀는 한국어 기록과 통신 안전 절차를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내 가족이나 최초 소환 기록 작성자의 신원을 대신 공개하지 않았다. 나는 그 태도가 고마웠다. 내가 가족에게 무엇을 말할지도 내 선택이어야 했다. 연락소의 대기실에는 나 말고도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전쟁 때문에 다른 도시로 피난 간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노인, 오래전 헤어진 동생에게 안부를 묻는 상인, 직접 대답하지 못하는 친척의 권리를 보호해 달라는 간병인도 있었다. 누구도 같은 이유로 그곳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의 기다림도 내 기다림보다 덜 중요하지 않았다. 연락 담당자는 대기 순서를 설명했다. 내가 특별 감사단 직원이라도 순서를 앞당기지는 않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마왕성에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다들 놀랍니다.” “왜죠?” “제가 상사에게 줄을 서라고 자주 말하거든요.” 담당자는 웃었다. 곧 내 앞에 앉은 노인이 자기 서류를 잃어버렸다고 당황했다. 그는 전달할 편지는 있는데, 수신자의 명확한 동의가 확인되지 않아 전송이 보류됐다고 했다. “그럼 영영 못 보냅니까?” 담당자는 차분히 설명했다. 편지 자체는 보관할 수 있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반복 전송을 할 수는 없다. 노인은 잠시 슬픈 얼굴이 됐다. 나는 그에게 대신 서명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확인 절차가 무엇인지 안내하고, 기다리는 동안 편지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함께 확인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그 사람의 대답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요.” 노인이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한국에 있는 가족을 떠올리는 지금 내게도 필요했다. 엄마가 당장 돌아오라고 해도, 내가 여기 남고 싶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반대로 엄마가 기다린다고 말할 권리도 존중해야 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의 결정을 통째로 소유할 수는 없었다. 내 차례가 되기 전 나는 짧은 메모를 썼다. 이곳의 음식, 일하는 사람들, 매달 받는 월급, 동료들이 보여 준 친절. 내가 왜 살아 있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말해 주고 싶었다. 나중에 메시지를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으니, 과장된 영웅담이나 공포스러운 전쟁 이야기는 빼고 진짜 일상만 적었다. “이 정도면 됐을까요?” 내가 몰트에게 물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충분합니다.” “월급이 제때 나온다는 얘기도요?” “특히 그 부분은 가족이 안심하실 겁니다.” 나는 웃었다. 기록관은 작은 거울 두 개를 마주 놓았다. 하나는 내 모습을 비추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시간에 맞춰 연결되는 신호를 기다렸다. 허가 범위는 짧았다. 위험한 위치 정보나 강제 소환술에 관한 설명은 전달되지 않도록 보호 장치가 있었다. 대신 살아 있다는 사실, 안전하다는 사실, 자발적으로 연락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상대가 응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물었다. “전송은 대기 상태로 남습니다. 동의 없이 반복 호출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기록관은 원본을 읽게 했다. 예전부터 우리가 고치려고 애썼던 문제였다. 침묵을 승인으로 만드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나는 한참 연락소 거울을 바라봤다. 물결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화면이 완전히 열리기 전까지 무언가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거울 안에는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이 비칠 뿐이었다. 세상을 바꾼 사람이라도 가족 앞에서는 그저 말을 더듬는 아들이 된다는 사실이 조금 안심됐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았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출근한다고 집을 나서던 날, 엄마는 우산을 챙기라고 했다. 나는 늦었다며 손만 흔들었다. 그 기억은 어느 장부에도 남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가장 선명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나야. 도윤이.”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렸다. 갑자기 몇 년 동안 해 놓지 못한 말들이 목까지 올라왔다. “미안해. 연락 못 해서. 나 살아 있어. 다친 데 없고, 좋은 사람들하고 지내고 있어.”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여기서 일도 하고 있어. 회사가 좀 특이하긴 한데…… 월급은 제때 나와.” 몰트가 옆에서 아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보고 웃을 뻔했다가 결국 눈가가 뜨거워졌다. “돌아갈 방법도 찾았어. 당장은 여기서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조금 더 지내려고 해. 그건 내가 결정했어. 언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알아볼게.” 전송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답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 쪽 상대가 듣고 응답할 시간이 필요했다. 연락 기록관은 발송 완료와 수신 확인을 구분해 표시했다. 나는 그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돌아가려는 순간 작은 종이 울렸다. 거울에 '상대측 수신 확인'이라는 글자가 떴다. 뒤이어 짧은 음성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제가 직접 들어도 됩니까?” “수신자가 그렇게 허가했습니다.” 한국어였다. 오래간만에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기계 번역도 마법 통역도 거치지 않은 한국어였다. “도윤아.” 그 한마디에 목이 막혔다. 엄마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러나 틀림없었다. “어디 있든 밥은 잘 챙겨 먹어라. 살아 있다는 말만 들어도 됐다.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네가 안전한지 잘 살펴. 연락할 수 있으면 또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웃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회사가 그렇게 좋으면 나중에 엄마한테도 소개해.” 나는 거울에 이마를 댈 뻔했다. 제르칸을 소개하라니. 인간 세상 최고의 위기였다. 몰트가 조용히 손수건을 내밀었다. 리치가 손수건을 갖고 다닌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감사합니다.” “장부보다 중요한 때도 있지요.” “실장님, 그런 말 하면 감동하잖아요.” “세탁비는 경비로 처리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한국과 이세계가 완전히 서로 끊어진 곳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안전 연락 한 번이 자유로운 왕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의 기다림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열렸다. 전송을 마치고 나서는 기록관에게 재연락 절차를 물었다. 이번 접수로 내 연락권이 상실되지 않는지, 한국 쪽에서 먼저 연락할 수도 있는지, 서로 안전하게 거절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는 관련 규정과 다음 신청 가능한 날짜를 따로 적어 주었다. “너무 꼼꼼하시네요.” “직업병입니다.” “가족 연락에서도요?” “이번에는 다시 연락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요.” 그는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한 번 소식이 닿는 것보다 계속 선택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연락소 밖에는 바람이 불었다. 천계의 계단 끝에서 내려다보니 먼 마왕성의 첨탑이 작게 보였다. 그곳엔 피코와 루시아가 있고, 내가 처음으로 제값 받고 일한 월급 명세서가 있었다. 한편 거울 너머에는 엄마와 내가 떠나온 도시가 있었다. 나는 어느 한쪽을 잊으려고 다른 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몰트는 마차에 타며 물었다.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엄마 밥부터 먹어야죠.” “그다음은요?” “제 통장 잔액 확인이요.” 몰트가 갈비뼈를 흔들며 웃었다. 나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이다. 그 사실이 기뻤다. 마왕성으로 돌아왔을 때 제르칸과 루시아, 피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르칸은 왕좌 앞에 앉아 있었지만 손에는 작은 종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한도윤. 가족에게 연락했느냐?” “네.” “잘됐느냐?” “잘됐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떠날 것이냐?”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췄다. 그는 내가 떠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어색한 방식이지만 그의 눈에서 알 수 있었다. “저는 돌아갈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 남아서 일하고 싶습니다.” 제르칸의 뿔 끝이 조금 흔들렸다. “정말인가?” “네. 단, 휴가 규정은 고쳐야죠. 가족 방문은 연차로 처리되는지부터요.” “오늘만큼은 감동적인 말을 좀 해라!” “마왕님. 감사합니다. 여기가 제 직장이어서요.” 그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내가 처음 만났던 때와 전혀 다른 얼굴로 웃었다. “내가 더 고맙다.” 피코가 울먹이며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럼 내일도 출근하죠?” “그럼.” “과자값 정산도 하죠?” “그건 네 돈으로 사야지.” “에이!” 나는 웃었다. 한국의 집과 마왕성의 집. 두 곳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고도 앞으로 갈 수 있었다. 내 이름의 선택란은 이제 나만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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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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