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회계 감사는 의외로 조용하게 시작됐다.
중립회관 대강당에 왕국, 마계, 천계의 대표들이 모였다. 객석에는 운송인과 전역병, 구호소 직원들이 앉았다. 구석에는 우리 마왕성 직원들까지 있었다. 피코는 제일 앞줄에서 과자를 세고 있었고, 몰트는 발표 자료가 적힌 번호표를 정렬했다.
“마왕님은 어디 계시죠?” 내가 물었다.
루시아가 무대 오른쪽을 가리켰다. 제르칸은 검은 망토를 입고 왕실 대표와 악수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 두 사람은 나중에 다툴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서로 손을 놓지 않고 웃었다. 제일 중요한 시작이었다.
의장이 의사봉을 들자 피코가 속삭였다.
“도윤 님, 저 방망이는 왜 치죠?”
“회의 시작한다고 알리는 거야.”
“그럼 과자 먹어도 된다는 뜻인가요?”
“아니.”
“아쉽네요.”
나는 자료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예전에는 마왕 앞에서 정산표 하나 펴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은 세 나라 앞에서 감사보고서를 읽게 됐다. 내 직장 생활이 어디서 잘못됐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할수록 면접 때 근무 조건을 꼼꼼하게 확인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첫 장에는 우리가 확인한 사실만 담았다. 초기 보전금이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회신권을 지키려 했는지, 이후 제19차 요율 개정이 어떤 경로로 승인 없이 적용됐는지, 긴급 안내망은 유지하면서 자동 동의와 추가 징수를 중단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조용히 들었다.
다음 장에는 전쟁 관련 유지 계약의 문제를 설명했다. 분쟁 지속 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고 자동 신호로 처리하면, 전쟁이 멈춘 날에도 수수료가 생길 수 있었다. 왕국과 마계 양쪽에서 지급한 시설비 중 실제 시설 유지에 사용된 금액은 정당한 비용으로 구분했다.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조건으로 다시 청구하고, 수령 도장을 동의 승인으로 바꿔 쓰는 부분이었다.
“결국 우리 세금을 누가 훔쳤습니까?” 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현재 확인된 모든 거래를 하나의 절도 사건으로 묶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적법한 근거가 없는 신규 청구는 즉시 중단해야 하며, 실제 납부한 돈은 거래별로 환급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그 결정을 요청합니다.”
“그럼 범인은 없는 겁니까?”
“책임자와 법적 판단은 있습니다. 단지 제가 증거 없이 한 사람을 전부의 범인이라고 말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대강당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때 앞줄에서 소금 상인이 손을 들었다.
“난 그 설명이 낫소. 없는 돈까지 돌려주겠다는 거짓말보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닿았다.
그다음 오르딘이 단상에 섰다. 그는 전쟁 종료 정산 인력을 전투 인력과 통합 조달하도록 승인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했다. 급여와 귀환권을 분리해 고지해야 했다는 원래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왕국 대표는 실무자의 증언과 기록을 근거로 당시 조달 절차의 위법 여부를 독립 감사위원회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오르딘의 사과를 들으며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처음 소환됐을 때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서명한 문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서가 내 인생의 일부를 바꿨다. 사과를 받아도 사라지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한 진실을 무시할 이유도 없었다.
이어서 왕실 접견실의 전 비서관이 증언했다. 그날 내게 성검과 전투 임무를 안내한 사실은 기억하지만 정산 담당 계약과 독립된 귀환권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현장 일지에도 그런 고지 기록은 없었다. 집행관 알렉스는 소환 주문을 실행한 뒤 '직무 설명은 접견실이 담당한다'는 내부 절차에 따랐다고 설명했다.
“그럼 누가 내게 직접 설명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 답을 듣는 데 참 오래 걸렸다. 나는 화가 날 줄 알았는데 먼저 허탈했다. 거창한 선택받은 용사의 전설 뒤에는 책임 소재가 비어 있는 업무 인계서가 있었다.
“그 사실을 기록해 주세요.” 나는 말했다. “저는 동의 없이 일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왕국이 제게 요구한 무보수 전투 임무는 거절했고, 마왕성과 새로 맺은 유급 계약은 제 선택입니다.”
의장은 내 요구를 판정문에 그대로 넣었다. 현재 계약의 유효성이나 귀환권이 과거 절차의 잘못 때문에 취소되지 않는다는 확인도 덧붙였다. 나는 종이를 받아 오래 바라봤다. 누군가 내 이름 옆에서 지운 선택을, 내가 직접 다시 적는 기분이었다.
카르덴은 마지막으로 증언했다. 그는 최근 연장 계약을 승인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처음부터 수수료 체계를 만든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 법무기록원은 현재 승인 범위를 벗어난 자동 연장에 대해 행정 징계 절차를 개시했고, 고의 조작 및 사익 수취 여부는 독립 수사기관에 회부했다. 고의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승인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승인 책임이 있다고 개인적 횡령까지 자동 확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 일부는 그 결정을 답답해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절차를 무시해 온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면서 또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후 중요한 투표가 있었다. 왕국, 마계, 천계 연락 대표가 세 항목에 각각 서명했다. 첫째, 기존의 자동 분쟁 지속 신호로 신규 수수료를 청구하지 않는다. 둘째, 민간 긴급 통행과 재난 안내는 중단하지 않는다. 셋째, 실제로 잘못 징수된 금액은 독립된 구제 창구에서 거래별로 환급·보상한다. 표결 결과는 전원 찬성이었다.
“그럼 이제 전쟁이 끝났습니까?” 피코가 물었다.
“아직 평화 협정의 서명식이 남았어.”
“아이고. 일이 왜 이렇게 많아요?”
“어른들이 오래 미뤄서 그래.”
피코는 단호하게 과자를 하나 먹었다. 나도 하나 얻어먹고 싶었지만 단상에 서 있어서 참았다.
잠시 뒤 제르칸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왕실 대표가 뒤따랐다. 두 사람은 북부 다리에서 시작한 임시 충돌 중단 합의를 확장해, 해당 전선의 교전 중단과 민간 통로 보호, 종전 협정 이행의 공동 감독을 포함한 문서에 서명했다. 오랫동안 진행 중이던 다른 영토 문제는 별도 협상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했다. 일시에 모든 원한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양쪽 군이 명령을 받고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실제 현장 보고가 들어왔다.
회의가 끝나기 전, 세리안이 천계 사무소의 별도 결의문을 발표했다. 천계는 서명 없이 동의를 대신한 지급 절차를 인정하지 않으며, 관련 기관의 책임 범위를 조사하고 민간 구호 협력에 참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누군가 이걸 '천계의 항복'이라고 부를까 봐 걱정했지만, 세리안은 먼저 말했다.
“이것은 항복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입니다.”
좋은 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엄지를 들었다.
마지막 의제가 끝나자 대강당 앞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나가면서 서로의 손을 잡거나 고개를 숙였다. 소금 상인은 마족 수송인과 오늘부터 같은 다리를 계속 건널 수 있게 됐다며 빵을 나눠 먹었다.
제르칸이 내게 다가왔다.
“한도윤. 오늘 네가 마왕보다 더 무서웠다.”
“왜요?”
“내가 한마디 하면 사람들은 무서워서 조용해진다. 네가 숫자를 읽으면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더구나.”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런 대사는 원래 주인공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왕님, 그러면 직원 평가에 반영해 주시죠.”
“어째서 항상 그쪽으로 가는 것이냐!”
“회계 담당자라서요.”
그는 웃었다. 진심으로 웃었다.
퇴장 직전 나는 단상으로 돌아가 보고서에 마지막 한 줄을 적었다.
[전시 자동 청구 중단 및 본인 동의 복구: 오늘부로 발효. 전후 복구와 과거 환급은 계속 관리.]
이제 이 건의 핵심 문제에는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누가 얼마를 실제로 받았는지는 남은 각 사건에서 확인될 것이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심사를 받는다. 다만 전쟁이 계속돼야 돈이 들어오는 자동 수수료 구조는 오늘 멈췄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지긋지긋했던 장부를 완전히 닫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다음 장을 새로 펼칠 수 있게 된 날이었다.
공동 결의가 발효되기까지는 마지막 현장 확인이 필요했다. 회의가 끝났다고 종전 명령이 자동으로 모든 초소에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는 자동 전송을 함부로 믿어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라델은 왕국 쪽 연락관에게, 루시아는 마계 쪽 연락관에게 각각 같은 문서를 보내고 직접 읽게 했다. 도윤이라는 이름의 정산 담당자는 양쪽 결과를 대조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듣자 하니 천계 쪽도 세리안이 독립된 확인을 거쳤다.
“왜 굳이 따로 확인합니까?” 젊은 의원이 물었다.
“한 기관이 세 기관의 결정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려고요.” 내가 말했다.
“그럼 서류가 세 배로 늘잖습니까.”
“전쟁은 그보다 훨씬 비쌉니다.”
그는 말문을 닫았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왜 경리 직원에게 정치학 강의까지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서류를 읽는 일이 평화를 지키는 첫 단계라면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각 초소에서 회신이 왔다. 어떤 곳은 정확히 수신했고, 어떤 곳은 지휘관 교대 때문에 명령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한 곳에서는 '지급 정지'라는 문구를 '부상자 치료비 정지'로 오해했다. 우리는 곧바로 정정 안내를 보냈다. 자동 수수료 청구는 중단하지만 치료와 구호 비용은 유지된다는 뜻이었다. 현장의 사람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한 뒤에야 완료라고 적었다.
저녁 무렵 중립 다리 근처에서 드워프 기술자가 보낸 회신이 도착했다. 그는 교각 수리비에 쓰인 돈과 추가 청구 문제가 공개된 것을 반겼다. 다만 자기가 일을 했다는 이유로 도둑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다고 했다.
“그건 바로잡아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보고서의 공개 요약본에 정상적인 공사비와 지급된 임금을 분명히 적었다. 법적 근거 없는 수수료가 존재했다고 해서 모든 작업자의 수당이 부당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다리를 고친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생활하는 것도 평화의 일부였다.
곧이어 오르딘의 짧은 편지가 왔다. 그는 왕국 실무자들에게 새 소환 계약 양식을 마련하도록 요청했고, 구형 양식은 사용 중지됐다고 알렸다. 나는 그 편지를 보고 두 번째 질문을 적었다. '정말 사용 중지됐는지 현장 확인 필요.' 사과문 한 장이 다음 사고를 막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못을 고칠 사람이 제대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사실도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
공동 감사단은 마지막으로 제19차 요율 조항의 원장 보존 방식을 정했다. 문제가 된 조항을 통째로 지우면 그동안 누가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그대로 시행 중인 것처럼 두면 누군가 다음 달에도 돈을 청구할 수 있다. 그래서 조항에는 '효력 중지' 표식을 분명히 넣고, 원본과 수정 이력을 별도로 남겼다.
몰트는 그 과정을 보며 말했다.
“천 년 동안 가장 어렵게 배운 일입니다. 기록을 지키는 것과 기록에 복종하는 것은 다르군요.”
“원본은 남기되, 사람에게 잘못 적용하지 않는 거죠.”
“그렇군요.”
그의 눈에는 깊은 안도가 있었다. 선임자가 남긴 회신권 보호 약속을 오랫동안 지켜 온 사람이었다. 그 약속이 전쟁을 유지하는 돈벌이 장치의 변명으로 쓰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조사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자동 변환 조건을 마지막으로 수정한 기술 담당자의 개인 책임, 특정 시기에 부당하게 받은 수수료의 완전한 환급, 소환 후보 표본이 어디서 최초 작성됐는지와 같은 문제는 독립 심사 절차로 넘어갔다. 그러나 첫 감사의 종결 보고에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었다.
[동의 없는 자동 승인을 중단하고, 전시 수수료 신규 강제 청구를 정지했으며, 당사자 본인 선택권과 전선 충돌 중단 절차를 복구함.]
단어들이 생각보다 소박했다. 나는 그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전쟁을 끝냈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밤 어디선가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피코가 내게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마엔이 보내 온 여행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바다 앞에서 웃는 얼굴이었다.
“그 아저씨는 이제 어느 나라 소속이에요?” 피코가 물었다.
“그건 아저씨가 결정할 일이야.”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돌아올 때 반갑게 맞아 주면 돼.”
피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애가 언젠가 나보다 좋은 관리자나 감사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많은 면에서 나보다 나았다. 반려 도장을 귀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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