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끝내려는 사람에게 적이 생긴다면 멋있겠지만, 그 적이 계약 관리 부서라면 조금 김이 샌다.
“왕국의 오르딘 부국장과 중앙 합동운영국의 카르덴 실장이 공동 증언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라델이 말했다.
“카르덴은 누굽니까?”
“전시계약심사실 책임자입니다.”
“이름부터 야근을 잘할 것 같군요.”
“그건 칭찬입니까?”
“이 세계에서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회의는 중립 도시 회관에서 열렸다. 마왕성에서 온 나와 몰트, 왕국 법무기록원 에드렌, 천계 연락 사무관 세리안이 함께 참석했다. 세리안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와 서류를 대조해 온 사절단 실무자였다. 처음에는 천계 공문마다 '신성불가침'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말이 안 통할 줄 알았는데, 요즘은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원본을 가져오십시오'였다.
“천사도 많이 변했군요.” 내가 말하자 세리안이 날개를 접었다.
“천계 창구에 감사가 들어오면 누구나 변합니다.”
“그건 공감됩니다.”
카르덴은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참석자 목록을 확인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창백했으며, 옷깃에는 분쟁 지속 계약을 오래 관리한 공로로 받았다는 은빛 장식이 달려 있었다. 그는 내 명찰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 유명한 한도윤 씨군요.”
“제 명찰에 직무도 적혀 있습니다.”
“마왕성 회계 담당. 인간이면서 마왕을 위해 일한다는 게 자랑입니까?”
“월급 주는 곳에서 일합니다. 그게 그렇게 특이한가요?”
세리안이 기침을 했다.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카르덴은 내게 차를 권했다. 나는 조금 의외였다. 방금까지 서로를 날카롭게 쳐다봤던 사람인데 손님 접대는 따로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신이 내 부서를 없애려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부서를 없애러 온 게 아닙니다.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고 돈을 걷는 방식을 멈추러 왔죠.”
“그 차이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건 우리 둘 다 앞으로 설명해야 할 일일 겁니다.”
카르덴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손은 아주 조금 떨렸다. 나는 그가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추측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만약 지금까지의 유지료를 모두 무효화하면 다리 보수와 구조대 급여도 끊깁니다.”
“그래서 모두 무효화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시설 운영비는 남기고, 승인 근거가 없는 자동 추가 청구를 중단해야죠.”
“그렇게 복잡하게 나누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전부 한 덩어리로 묶으면 정상적인 노동자까지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카르덴은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처음으로 내 말을 제대로 듣는 것 같았다. 그것이 동의라는 뜻은 아니었다. 상대가 말을 들었다고 회의록에 찬성으로 적는 버릇부터 고쳐야 했다.
먼저 오르딘이 발언했다. 그는 내 소환 무렵 비상인력조달위원회에서 정산 담당자를 전투 인력과 묶어 조달하도록 서명한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엔 소환 마력 결정이 부족했고, 별도 의식을 두 번 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둘을 같이 소환하기로 했습니다.”
“같이 소환한다는 것과 서로 다른 직무를 하나로 계약한다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말했다.
오르딘은 고개를 숙였다.
“그 점은 지적이 타당합니다. 직접 고지는 현장에서 하도록 맡겼습니다.”
“고지 완료 확인서가 비어 있습니다.”
“접견실에서 왕궁 비서관이 설명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럼 들었다는 사실로 적겠습니다.”
라델이 기록했고, 에드렌이 비서관의 현장 일지를 추가로 요청했다. 오르딘이 누군가의 이름을 대며 책임을 떠넘기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서명한 문서가 애초 정산 담당의 급여와 귀환 설명 의무를 지우는 데 사용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소환을 불법으로 집행하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그 주장을 그대로 확정하지 않고, 집행 단계로 증거를 넘겼다.
카르덴 차례가 됐다. 그는 전시 통행료와 유지료의 자동 갱신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분쟁이 반복되면 다리와 의약품 통로를 지킬 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휴전이 확정되지 않는 동안 계약이 유지되는 겁니다.”
“안내망이 필요하다는 건 동의합니다.” 나는 말했다. “하지만 다리에서 전투가 없었는데도 자동 분쟁 신호만으로 수수료를 갱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약서의 조건입니다.”
“그 조건을 설정한 사람은요?”
“공동 승인입니다.”
“공동 승인 원본을 보겠습니다.”
카르덴은 종이를 꺼냈다. 세 기관 인장이 있었다. 그런데 세리안이 바로 말했다.
“천계의 인장은 수령 확인용입니다. 동의 승인용이 아닙니다.”
“천계가 받은 것 아닙니까?” 카르덴이 물었다.
“받았다는 사실로 동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피코가 만든 도장을 떠올렸다. [받았음. 찬성하지 않았음.] 그 작은 도장이 얼마나 멀리까지 여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에드렌은 왕국 인장도 당시 회람 접수 도장이었다고 확인했다. 마계 인장은 보존 자료 이관 확인이었다. 회의장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세 기관이 서로 다른 일을 한 도장을 모두 승인으로 읽으셨군요.”
카르덴이 턱을 들어 올렸다.
“당시 관행이었습니다.”
“관행은 금고 열쇠가 아닙니다. 특히 다른 사람 돈을 가져갈 때는요.”
그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를 범죄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원본이 적법한 승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카르덴이 개인적으로 자금을 횡령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우선 자동 갱신의 근거가 약하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 주는 게 중요했다.
점심 직전 소란이 일어났다. 중립 회관의 기록 보관실에 물이 샌다는 보고였다. 처음에는 낡은 배관이라고 생각했지만, 루시아가 계단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발견했다. 보관실 환기창이 안쪽으로 깨져 있었다.
“누군가 들어왔어.” 루시아가 말했다.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뜻이야?”
“지금은 모르지. 일단 사람부터 내보내.”
우리는 자료를 옮기기 전 봉인 상태와 배치 위치를 사진 마법판에 남겼다. 기록관들이 서로 확인 서명했다. 물은 바닥을 적시고 있었지만 오래된 원본 장부는 높은 선반에 있어 안전했다. 피해는 회의용 복사본 몇 장뿐이었다.
카르덴이 달려와 소리쳤다.
“누가 내 자료를 훼손했습니까?”
“확인 중입니다.”
“마족이겠지!”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 마족 쪽 입회자는 루시아 한 명이고, 그녀는 물 새는 걸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다. 근거 없이 범인을 지목하지 마세요.”
루시아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내가 부수면 환기창 하나로 끝내지 않는다.”
“그 말은 하지 마.”
“왜? 사실인데.”
경비대가 창밖의 난간에서 지름이 작은 공구 하나를 찾아냈다. 낡은 경첩을 억지로 연 흔적도 있었다. 현장 감식관은 누군가 잠입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목적은 아직 불분명하다고 했다. 카르덴이 도망치거나 증거를 훼손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우리는 회의를 멈추고 기록물을 다른 방으로 안전하게 옮겼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카르덴은 자신의 휴대용 봉인 상자를 꺼내 원본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는 절차를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자료를 없애려 했다면 그도 위험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당신도 자료가 사라지는 건 싫으시군요.”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나는 내 일을 옳다고 믿습니다. 자료가 있어야 변호할 수 있지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나는 카르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에게도 설명할 기회는 필요했다.
저녁에 회의가 재개됐다. 카르덴은 전시계약심사실의 자동 갱신 설정표를 자발적으로 제출했다. 설정한 사람 이름에는 그의 전임자 서명이 있었지만, 최근 연장 승인에는 카르덴 자신의 서명이 있었다. 그는 조건이 유효하다고 믿었다고 주장했다. 그 믿음이 과실을 없애는지는 이후 판단할 문제였다.
오르딘은 회의 막바지에 내게 다가왔다.
“한도윤 씨, 당신을 용사라고 부른 것은 왕국의 실수였을 수 있습니다.”
“실수였다는 말로 끝낼 수는 없겠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시 집행 책임자를 부르겠습니다.”
나는 그가 내민 요청서를 읽었다. 옛 소환 집행관 알렉스가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돼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왕실 접견실의 담당 비서관이 남긴 진술서도 함께 요청했다는 점이다.
물 새는 사고를 처리한 뒤 현장 감식관이 우리를 다시 불렀다. 환기창 바깥에서 찾은 공구는 공용 수리용이었지만 손잡이에 개인 표시가 지워져 있었다. 경비대는 회관 수선 업체들의 장비 목록을 대조하고 있었다. 루시아가 말했다.
“누가 깼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창문에서 자료 보관 선반까지 발자국이 있었다.”
“물건을 찾으러 왔을 수도 있겠네.”
“그래. 하지만 훔쳤는지, 훔치지 못했는지 구분해야 한다.”
“너 정말 많이 배웠다.”
“훈련비 올려 주는 말이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루시아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검집을 내려다봤다.
감식관은 봉인 장부의 일부 장 번호가 젖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군가 그 부분을 겨냥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후 열람 기록의 훼손을 막기 위해 세 기관이 같은 시간에 사본을 작성하고 서로 보관하기로 했다. 각자 원본을 훔쳐간다는 의심을 막는 데도 유용했다.
“이러면 세 나라가 서로의 기록을 믿게 됩니까?” 젊은 기록관이 물었다.
“믿지 못하니까 서로 검증하게 하는 거죠.”
“그것도 평화입니까?”
“적어도 분쟁을 서류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되겠죠.”
회의가 끝난 뒤 카르덴의 보조 직원이 내게 찾아왔다. 이름은 벨로였다. 그녀는 몇 해 동안 자동 갱신 보고서를 발송한 사람이라고 했다.
“제가 보냈다고 해서 전부 승인한 건 아니라고 알려 주고 싶습니다.”
“보낸 날짜와 승인 날짜가 다른 기록이 있습니까?”
그녀는 봉인된 작업 일지 사본을 보여 주었다. 책임자 결재가 도착하지 않은 날에도 긴급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전송만 허용된 항목이 있었다. 어떤 날은 실제 현장 확인과 일치했고, 어떤 날은 오래된 분쟁 상태가 그대로 복사됐다. 벨로는 보고서를 고치는 권한이 없었고, 오류를 제보한 날짜가 손으로 적혀 있었다.
“제보 후 답장을 받으셨나요?”
“받은 적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한 줄 알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고 결론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작업 일지의 접수번호는 공식 시스템과 일치했다. 에드렌이 원본 검증 절차를 안내했고, 벨로는 공개 범위를 스스로 선택했다. 제보한 사실은 공개하되 주소와 가족 정보는 숨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왕성 사람들은 다 이렇게 일합니까?”
“전혀요. 얼마 전까지 우리 마왕님은 민원서를 전쟁 선포문처럼 읽으셨습니다.”
벨로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럼 희망이 있네요.”
“희망은 있죠. 서류가 조금 많을 뿐.”
그날 나는 카르덴의 최근 승인 서명 옆에 벨로의 제보 접수번호를 함께 적었다. 누구의 책임인지는 독립 심사에서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문제가 이미 보고됐음에도 최근 자동 연장 결재가 계속됐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카르덴도 그 번호를 보고 다시 한번 굳은 얼굴이 됐다.
“이 일지를 처음 봅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부 보고 체계도 조사해야 합니다.”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직접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약속을 회의록에 적었다. 약속은 사람이 했고, 이행은 다음 기록에서 확인될 것이다.
벨로는 자신이 제출한 작업표를 다시 확인한 뒤 작은 질문을 했다. '제가 그때 더 크게 반대했다면 사람들이 돈을 덜 냈을까요?' 나는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최종 승인권은 그녀에게 없었고, 그녀가 한 번 보고한 기록은 실제로 접수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어느 단계에서 멈췄는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건 중요한 증거예요.' 벨로는 고개를 숙였다. 복도 끝에서는 카르덴이 그의 보조 직원에게 새 업무표를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번에는 보고서를 끝까지 읽기를 바랐다. 바람만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어서, 그날 회의록에는 나중에 자료를 다시 제출해야 하는 기한도 적었다.
회의장을 나서자 비가 그쳐 있었다. 회관 앞에서 왕국 병사와 마계 경비병이 함께 깨진 유리 조각을 치우고 있었다. 서로 싫어하는 얼굴로 일했지만, 누구도 다시 싸우지는 않았다.
“기분이 어때?” 루시아가 물었다.
“나는 이제 거의 전쟁을 끝내려는 회계 담당자야.”
“전쟁은 검으로 끝나는 거 아니었어?”
“그럴 때도 있겠지. 하지만 끝났다고 적어야 끝나는 전쟁도 있나 봐.”
루시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검을 들고 널 지키겠다. 네가 끝났다고 적을 때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꽤 든든했다. 단, 귀환할 때 루시아가 또 식비를 안보 비용으로 올리지만 않는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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