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소환청의 현관에는 거대한 동상이 있었다. 한 손에는 성검, 다른 손에는 꽃다발을 든 용사의 동상이었다. 꽃다발 밑에는 '명예는 영원하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글자 아래에 작은 팻말을 세우고 싶었다.
[급여는 별도 문의.]
“동상에 낙서하면 안 됩니다.” 에드렌이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표정으로 다 알 수 있습니다.”
왕국에서 내 이름을 사용해 집행한 소환 비용을 확인하기 위해 소환청에 왔다. 제르칸이 특별히 루시아를 호위로 붙여 주었다. 그녀는 왕국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동상의 검 자세를 평가했다.
“손목이 틀렸다. 저렇게 잡으면 세 번째 공격에서 꺾인다.”
“동상은 공격 안 해.”
“그래서 고쳐야 한다. 애들이 따라 할 수도 있잖아.”
경비대장이 그녀를 말릴 듯 다가왔지만 루시아가 동상 주변의 미끄러운 계단을 가리키자 곧 안전 점검 이야기가 됐다. 세상은 확실히 바뀌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칼을 꺼냈을 사람들이 이제 점검표를 꺼냈다.
소환청 회계실은 놀랍게도 마왕성보다 깨끗했다. 서류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서류가 벽 안에 모두 잠겨 있어 방문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여긴 정말 기밀을 잘 지키네요.”
“분실률도 낮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열람률은요?”
“그게 무슨 뜻이죠?”
아, 이곳은 아직 길이 멀다.
입회한 기록관은 나를 의식 운영비 원장 앞으로 안내했다. 표지에는 내가 소환된 날짜와 같은 날의 집행번호가 있었다. 별도 소환 주문서가 존재했다는 첫 확실한 증거였다.
나는 먼저 항목 수를 세었다. 의식 장소 대관, 마력 결정 소모, 통역 대기, 후보 서명 확인, 귀환 보증 안내. 금액이 적힌 줄도 있었고, '기존 기금 사용'이라고만 적힌 줄도 있었다. 나는 흥분하지 않고 항목별 영수증 번호를 받아 적었다.
“귀환 보증 안내는 누구에게 했습니까?”
기록관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날 현장 집행관이 담당했습니다. 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설명을 못 들었습니다. 기억만으로 단정할 생각은 없지만 일지를 보고 싶군요.”
책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집행관 이름은 알렉스 로웬이었다. 그는 은퇴한 뒤 작은 시골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일지는 촘촘했지만 이상한 빈칸이 하나 있었다.
[대상자 고지: 왕궁 접견실 이관.]
“이건 고지를 했다는 뜻입니까, 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업무를 이관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접견실에서 누가 고지했는지는 다시 봐야겠네요.”
나는 내 머릿속에서 왕궁의 첫날을 되짚었다. 왕좌, 반짝이는 성검, '선택받은 용사', 그리고 거절하자 얼어붙은 얼굴. 귀환권과 급여를 따로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기억만으로 서명 위조라는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기록에서 확인할 부분이 있었다.
회계 원장 옆 장부에는 내 소환에 사용된 운영비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실제 집행 금액의 총계는 금화 스물한 닢. 그중 의식 및 통역에 열여섯 닢, 임시 숙박·이동에 다섯 닢이 지급된 영수증이 있었다. 숫자는 이 날의 소환 운영 건에 한정됐다. 기존 `00-성전` 보전금이나 준비금과는 다른 거래였다.
“금화 스물한 닢이라.” 내가 말했다.
“왕실이 상당한 비용을 썼지요.” 회계 담당자가 뿌듯하게 말했다.
“제 월급으로 들어온 돈은 있습니까?”
“용사에게는 영예가 지급됩니다.”
“영예 은행 계좌번호라도 알려 주세요.”
담당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영예는 화폐가 아닙니다.”
“그러면 급여 지급 근거도 아니죠.”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왕궁에서 배운 말을 그대로 읊었을 뿐이다. 다만 그 말을 되풀이하는 조직은 돈의 행방을 쉽게 가렸다.
열여섯 닢을 받은 기관은 소환청, 그다음 지급은 실제 장비 업체로 흘러갔다. 통역 대기비의 일부를 받은 사람은 진짜 통역사였다. 그에게 지급된 세 닢이 정상이라는 것도 확인됐다. 나쁜 거래를 찾는다고 정상 거래까지 나쁜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소환 계획서의 별도 정산 담당 인건비 한 줄은 집행되지 않았다. '전투 동원 인력 일괄 적용'이라고 분류가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 용사의 근무 조건 서류에는 급여 항목이 없었다. 맨 뒤에는 손으로 추가한 '왕실의 보호와 명예'라는 글자가 있었다.
“누가 바꿨습니까?”
에드렌이 문서의 개정 승인번호를 가리켰다. 비상인력조달위원회, 결재 담당 오르딘. 이름은 처음 나왔다. 당시 위원회 실무 간사였고 지금은 왕국 특별전쟁정산국의 부국장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전쟁 종료 정산을 담당하던 부서의 부국장이 용사 계약으로 옮겼다고요?”
“서명만 보면 개정 심사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승인했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람을 만나야겠네요.”
마침 복도에서 관리들이 달려왔다. 소환청의 오래된 의식실에서 마력 결정이 과열됐다는 것이다. 루시아가 기뻐할까 봐 조금 걱정했다. 다행히 그녀는 싸움보다 안전 점검을 먼저 생각했다.
“다들 벽에서 떨어져! 통풍구는 어디야?”
나는 회계실에 남아 긴급 점검 대장을 받았다. 의식실은 원래 폐기된 지 삼 년이나 됐는데 수선비 예산이 계속 청구되고 있었다. 청구액이 있다고 실제로 돈이 지급된 건 아니었다. 확인 결과 마지막 수선 승인서는 반려됐고, 경고등 교체가 미뤄진 상태였다.
“설비를 멈추세요.” 나는 말했다.
“교육 일정이 있습니다.” 담당자가 항의했다.
“사람이 다치면 교육 수료증을 어디에 씁니까? 응급실 접수할 때 내밀 겁니까?”
에드렌이 안전 정지 명령을 확인했다. 루시아가 문을 닫고 작업자들을 대피시켰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했다. 손상된 통풍판이 빠지면서 열이 쌓였고, 교체 부품은 창고에 이미 있었다. 청구서는 승인받지 못했지만 부품은 보유 중인 상태였다.
“왜 안 고쳤습니까?”
설비 반장이 얼굴을 붉혔다.
“폐기 예정이라 담당 부서가 없었습니다.”
“그럼 폐기 전까지 관리할 부서를 지정해야죠.”
마왕성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귀속 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위험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교체 작업은 현장 안전관의 감독 아래 진행되도록 했고, 교육은 다음 날로 연기했다. 루시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전투는 없었나?”
“열이랑 싸웠잖아.”
“그건 내가 이겼지.”
“그래. 수당은 안전 규정대로 신청해.”
그녀의 눈이 빛났다. 어차피 신청서를 제대로 쓸 리 없었다. 나는 급여 담당 몰트에게 미리 경고문을 보냈다.
점심이 늦어져 소환청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경비병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았다. 내가 소환 당일 성검을 거절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정말 마왕을 잡으러 가지 않았습니까?” 한 병사가 물었다.
“네. 계약이 안 맞아서요.”
“마왕이 화내지 않았습니까?”
“처음엔 화냈죠. 요즘은 퇴직금 적립 내역을 물어봅니다.”
병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옆자리 병사가 나를 부러운 듯 바라봤다.
“퇴직금이라는 게 실제로 지급되는 겁니까?”
나는 그에게 왕국 근무 규정 상담 창구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참 묘했다. 소환된 용사가 병사에게 마왕성의 노동 제도를 자랑하는 순간이라니.
소환청 회계 담당자는 나를 따로 불렀다. 그는 젊은 시절 용사 소환 준비를 도운 사람이었고, 지금은 후임들에게 의식 장비를 가르친다고 했다.
“한도윤 씨가 처음 거절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때 계셨습니까?”
“접견실 복도에서 영수증을 나르고 있었지요. 문이 닫혀 있어서 대화는 못 들었지만 관리들이 한꺼번에 뛰어다니던 모습은 기억합니다.”
“그럼 제가 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시겠네요.”
“그렇습니다. 그 뒤에 전달된 명세서만 봤습니다.”
그는 작은 사본을 꺼냈다. 무보수 전투 의뢰를 내가 거절하자 왕실이 정산 담당 인력 예산에서 내 이름을 제외하도록 요청한 문서였다. 그런데 실제 결재는 반려돼 있었다.
“왜 반려됐습니까?”
“이미 소환된 사람의 법적 지위를 계약 설명 없이 임의 변경할 수 없다는 법무 의견이 있었습니다.”
나는 약간 멍해졌다. 왕궁 전체가 내 편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원칙을 지키려고 막았고, 누군가는 그 의견을 읽지 않았다. 그 사실을 지금 알게 된 게 씁쓸하면서도 다행이었다.
“이 문서로 제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별도의 고용 계약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왕실이 당신을 전투에 실제 고용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좋습니다. 돈을 받기 전에 사실부터 보죠.”
그는 내 앞에 과거 소환자들의 이름이 적힌 봉투 하나를 내밀려다가 멈췄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내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동 피해 심사 신청자들의 동의서를 받은 뒤 필요한 범위만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작은 배려였지만 나는 그에게 감사했다. 누구나 회계 장부가 된다고 해서 누구나 남의 서랍을 열 권리를 가지는 건 아니었다.
복도에서는 새로 배정된 견습 직원들이 의식실 사용 설명을 듣고 있었다. 교관이 처음으로 '확인 완료'와 '고지 완료'의 차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원래라면 수십 년 전에 시작됐어야 할 교육이었다. 견습생 하나가 물었다.
“그럼 상대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소환 주문을 계속 실행할 수 없습니까?”
“긴급 구조 연락은 할 수 있지만 인력을 계약으로 묶는 행위는 별도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 교관이 답했다.
나는 그 문답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아직 누가 내 소환의 책임을 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음 사람이 같은 식으로 끌려오지 않을 가능성이 조금 커졌다.
루시아는 견습생들의 자세를 보더니 느닷없이 손을 들었다.
“긴급 상황에 계약서부터 내밀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교관이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을 먼저 구출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조 후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합니다.”
루시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답이다. 나도 그런 훈련을 한다.”
복도 끝에서 에드렌이 웃음을 참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투광이 법과 구조 절차를 논하다니. 나는 그 장면을 사진 마법판에 남길까 고민했지만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지켰다. 솔직히 무서워서가 조금 더 컸다.
잠깐 뒤 소환청 외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 정지 명령으로 의식실 교육이 연기됐는데 일부 수강생들이 교통비를 환급받지 못해 항의하고 있었다. 나는 교육 담당자와 수강생 대표를 연결했다. 취소 책임이 기관에 있는 만큼 실제 발생한 왕복 교통비 증빙을 받아 보상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생 하나가 말했다.
“당신이 마왕성 직원 맞습니까?”
“맞아요.”
“인간인데 왜 거기서 이런 일을 합니까?”
“그곳에서 제 말을 듣거든요. 가끔은 안 듣기도 하지만.”
그는 어이없어하다가 웃었다. 다음 교육 때는 소환 동의서와 근무 계약서를 따로 배우겠다고 했다. 내가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그 교육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 배울 사람들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소환 집행관 알렉스의 일지를 검토했다. 그가 직접 고지하지 못한 이유는 주문이 끝나자마자 대상자가 왕궁 접견실로 이관됐기 때문이었다. 이관 확인 도장은 있었고 고지 완료 확인은 없었다. 직접 동의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추정할 근거는 생겼지만, 고의적인 누락인지 확인은 별개였다.
“왕국은 나한테 일하러 오라고 부른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계약을 고칠 사람에게 고칠 기회를 안 줬거든요.”
에드렌은 기록했다. 그때 담당자가 작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오르딘 부국장이 면담에 응하겠답니다. 단, 공동 감사단 앞에서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찾아가서 윽박지르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마왕을 쓰러뜨리는 방법과 달랐다. 증언 하나가 나올 때마다 원본이 필요했다.
성문을 나서자 루시아가 말했다.
“오늘은 성검을 안 뽑아도 됐군.”
“있긴 했어?”
“동상 손에.”
“그걸 뽑으려고?”
“자세가 틀렸잖아.”
“제발 직장에서 동상을 공격하지 마.”
루시아는 불만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에서 소환청 원장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번갈아 봤다. 왕국은 금화 스물한 닢을 쓰고 사람을 데려왔다. 그러나 그 사람과 일할 조건을 제대로 정하지 않았다.
나의 첫 월급은 왕국이 아니라 마왕성에서 나왔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누군가의 실수로 시작된 내 생활 속에서도 내가 스스로 고른 계약은 분명히 존재했다.
내일은 오르딘을 만난다. 무슨 말을 하든 간단한 질문 하나만은 먼저 해야겠다.
‘부국장님, 비용 절감하려다가 사람의 선택권까지 절감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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