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작성한 사람과 서류를 승인한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건 회계실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소환 후보 기록도 그런 식이었다는 사실을 알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류가 아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러 서류를 찾아다니는 직업을 가졌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회계실에 전혀 엉뚱한 민원이 들어왔다.
"제 이름을 제발 빼 주십시오."
민원인은 마왕성 우편실의 고블린 직원 로켄이었다. 그는 손에 찢어진 업무표를 들고 있었다. 우편실에는 '긴급 배송 가능 인원' 명단이 있는데, 로켄이 야간 근무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매주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명단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자동이면 누군가 기준을 만들었겠죠."
"근데 저는 서류를 읽을 줄 압니다. 제 이름 옆에 분명 '지원 가능 여부 미확인'이라고 썼습니다."
나는 슬쩍 피코를 바라봤다.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도윤 님이랑 똑같네요!"
"똑같진 않아. 그래도 비슷한 문제가 있지."
우편실 책임자는 지친 얼굴로 나타났다. 사람이 부족해 긴급 배송에 누구든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운행 기록을 보니 지난 석 달 동안 로켄은 일곱 번 야간에 불려 나갔다. 수당은 두 번 지급됐고 다섯 번은 다른 사람의 근무로 기록됐다.
"이건 급여 정정도 필요하네요."
"그럴 돈이 없소." 책임자가 투덜거렸다.
"일한 대가가 없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예산 항목이 부족하다는 뜻입니까?"
그는 대답을 피했다. 나는 예산 장부를 펼쳤다. 야간 긴급 배송 수당은 분명히 편성돼 있었다. 다만 로켄에게 지급되지 않은 다섯 번의 근무 대금이 '긴급 인력 대기 비용'으로 남아 있었다.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잔액이 남아 있군요. 그런데 실제 근무는 했습니다."
"누가 확인합니까?"
"문 앞 출입 기록과 수취인 서명을 대조하면 됩니다."
피코가 씩 웃었다.
"배달 받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지."
우리는 세 사람의 실제 수취인을 찾아갔다. 한 사람은 야간 경비병, 다른 하나는 약재상, 마지막 한 사람은 제르칸이었다.
"마왕님도 우편 받으셨어요?" 피코가 물었다.
"비밀 지령이었다."
제르칸이 심각한 표정으로 펼친 종이는 새 망토의 세탁 안내문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비밀 지령 치고는 온도가 낮습니다."
"불에 약한 천이란 뜻이다!"
로켄이 그날 새벽에 왕좌실로 직접 배송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마왕은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증언서에 서명했다. 왕의 서명이 세탁 안내문 수령을 증명하는 데 쓰이는 건 역사적으로 드문 순간이었다.
다섯 건 모두 다른 증빙과 맞췄다. 회계실은 초과근무 정정을 승인했고, 지급일을 새로 통지했다. 나는 로켄에게 '돈을 받을 예정'이라고 적어 줬다. 실제로 계좌에 들어오면 완료로 바꾸기로 했다.
로켄은 업무표를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다음번에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불려가나요?"
"긴급 구조는 현장 명령이 필요한 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야간 대기자로 미리 등록하려면 본인에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긴급 출동을 했다면 거기에 맞는 수당을 지급해야죠."
"그럼 제 이름은 남습니까?"
"본인 의사와 실제 출동 기록은 각각 남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우지 못해요."
그는 처음으로 어깨를 폈다.
그날 정오에는 에드렌에게서 옛 소환 관리소의 장부 대조 일정이 왔다. 노엘이 후보 표찰을 입력한 뒤 '확인 전'이 사라지는 과정에 여러 번 자료 이관이 있었다. 입력 서기관은 문장을 옮기는 권한을 가졌고, 기술 검수자는 문장 의미가 바뀌지 않았는지 보는 권한을 가졌다. 그다음 최종 전환 책임자가 '사용 가능' 상태를 승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실제 기록에 마지막 승인 서명이 있나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에드렌이 대답했다. "하지만 당시 두 기관이 회의했던 날짜와 참석자 명부를 찾았습니다."
"그 사람들 중 누군가가 제 이름을 승인했을 수도 있겠군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명단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승인했다고 볼 수는 없지요."
나는 웃었다. 에드렌도 이제 내 말투가 옮은 모양이었다.
회의록을 읽기 전에 왕국 기록관이 작은 신청서를 내밀었다. 제목은 '무해한 열람용 마력 증명'이었다. 나는 세 번째 문장에서 멈췄다.
"열람 목적의 오해로 발생하는 모든 결과에 동의한다… 이 문구는 빼 주세요."
"원래 쓰던 양식입니다."
"그럼 원래부터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기록관은 한숨을 쉬더니 서류를 다시 가져갔다. 그는 오랜 근무에 지친 얼굴이었다. 나도 남의 회계실에 가면 오래된 서류에 대한 애정과 미움이 동시에 생기곤 한다.
"이렇게 쓰면 어떻습니까?" 나는 제안했다. "신청자는 기록의 열람 범위와 보안 수칙을 확인한다. 실제 손해의 책임은 각각의 행위에 따라 판단한다."
그는 수정안을 보더니 조금 놀랐다.
"이러면 우리 기관도 무조건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겠군요."
"맞습니다. 대신 열람자에게도 지켜야 할 의무가 명확해지죠."
그는 잠시 고심했다. 결국 기관장이 승인해야 한다며 내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루시아는 벌써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서류를 보기 위한 서류를 고치다 하루가 다 가겠군."
"그래도 이 부분은 중요한데요."
"안다. 그러니 기다리고 있지."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루시아는 고개를 돌렸다. 전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기다리는 법을 배웠는지 궁금했다.
기다리는 동안 기록관은 당시 기술실의 근무 일지를 보여 주었다. 일지에는 야간 검수자들에게 지급된 빵과 등불 기름의 양이 적혀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게 친숙한 종류의 장부였다. 나이 많은 기록관은 기름값이 부족해 자신이 집에서 촛불을 가져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때는 모두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도 자기가 어느 기록을 지켜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죠."
"그래도 매일 빵은 나왔네요."
"빵도 한동안은 직원이 직접 가져왔습니다."
나는 현장 근무자의 실비가 제대로 지급됐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금 조사하는 건 당시 급여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질문을 별도 사안으로 기록하고 현재의 명부 오류에 집중했다.
마침내 수정된 열람 신청서가 돌아왔다. 기록관은 내용이 조금 더 길어졌지만 뜻은 명확해졌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이름으로 서명했다. 몰트는 손에 뼈가 드러났지만 글씨는 예술적이었다.
"실장님은 글씨체가 훌륭하시네요."
"천 년 동안 연습했지요."
"그럼 제 실력이 부족한 건 연습량 탓이군요."
"아직 구백여 년 남았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근속 포상 계획부터 세워야 할지도 몰랐다.
열람이 시작된 뒤 나는 시험 대상 28호 외의 다른 표본도 비교해 봤다. 다만 개인정보가 없는 가상 표본만 봤다. 27호는 옛 중립어, 29호는 동굴 거주민의 신호 방식이었다. 둘 다 언어 형태 적합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실제 사람의 신원을 연결한 기록은 없었다.
"왜 28호만 후대에 이름이 붙었죠?"
"이용한 기관이 달랐을 수 있습니다." 에드렌이 말했다. "다른 표본은 연락 장비 성능 시험으로 끝났습니다."
"그럼 그 기관의 선택이 중요하겠네요."
"예. 누가 사용을 요청했는지가 다음 조사 대상입니다."
나는 큰 지도 위에 세 개의 선을 그었다. 언어 검수실, 왕국 소환 관리소, 공동 보증 회계소. 선들이 만나는 곳은 오래된 회신 보전망이었다. 아직 그 선을 이어주는 승인서가 없다는 점도 함께 표시했다. 가능성을 그리는 일과 사실을 확정하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그 과정에서 몰트가 아주 작은 메모를 찾아냈다. "28호 자료는 일시적으로 외부 열람이 제한됨. 실제 사용자 확인 전까지 신원 부여 금지." 종이가 누렇게 바랜 것을 보니 오래된 메모였다. 그러나 날짜와 작성자 서명이 모두 있었다.
"이 메모는 무슨 뜻입니까?"
기록관은 당시 사본이 여러 곳으로 흘러간 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인물은 자료를 막아 버리면 현장 구조 연락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언어 사전은 사용하되 사람 신원 연결만 막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합리적인 제안이네요."
"적어도 지금 읽기에는 그렇습니다."
나는 메모의 사본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공개 가능 범위가 확인되면 후속 조사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 종이를 보면서 내가 몰랐던 시대에도 같은 문제를 고민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나중에 피코에게 얘기해 주자 아이는 말했다.
"그러면 예전에도 도윤 님 같은 사람이 있었네요."
"그럴 수도 있지. 다만 나보다 글씨는 더 잘 쓰셨겠네."
"그럼 저한테는 도장으로 해 주세요."
아이의 논리는 점점 명료해졌다. 나는 천 년짜리 서예 교육보다 세 살짜리 도장의 효율이 높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회의록의 제목은 '신형 언어 연락 체계 시험 전환'. 우리는 원본 손상 여부를 확인하려고 이스카를 동행시켰다. 이스카는 문서 모서리의 작은 실밥을 보고 봉인된 순서를 맞추었다. 나라가 둘이고 기관이 셋이면 회의록 제본법도 셋이었다.
"이 사람들은 하나로 묶어 두는 것도 어려웠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묶지 않고 세 부를 따로 보관했습니다." 이스카가 답했다.
회의 첫날의 기록에는 정작 내 이름이 없었다. 대신 과거 '언어 연락 시험 대상 번호'가 있었다. 일련번호 27, 28, 29. 사람 이름 대신 시험 표본의 번호를 쓰도록 규정한 흔적이었다.
"이 번호가 제 이름과 연결되는 증거가 있나요?"
"노엘의 작업 표본에서 28번이 대응합니다. 다만 표본의 이름 부분은 후대에 다시 입력됐을 수 있습니다."
나는 펜 끝으로 28이라는 숫자를 두드렸다. 누군가 숫자로 남겨야 할 시험 대상을 사람이라고 확정해 버린다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까. 나는 이미 그 결과의 일부를 겪고 있었다.
두 번째 회의록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았다.
[검수 완료: 언어 표본의 형태 적합. 본인 확인 절차: 시험 범위 외.]
그 옆에는 직인도 있었다. 그러나 직인은 '기술 적합'이라는 작은 제목 아래에만 찍혀 있었다.
"이걸 본인 확인 승인으로 취급하면 안 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에드렌이 말했다. "기술 검수와 실제 사람의 동의는 별개였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세 번째 이관 대장이었다. 손글씨로는 '검수 완료'라고 되어 있는데, 후대 전산 변환표에는 '확인 완료'만 남아 있었다. 언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이다.
"여기부터가 의심스럽네요."
"의도적 삭제일까요?" 루시아가 물었다.
"아직은 글자 두 개가 빠진 사실만 압니다. 왜 빠졌는지는 찾아야 해요."
우리는 이관 당시의 업무 지침서를 요청했다. 담당 기록관은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 지침은 별도 보관소에 있습니다. 기록이 오래돼서 서고 사용료가…"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용료요?"
"아닙니다!" 기록관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정식 예산으로 운영됩니다. 옛 표준 문구가 입에 붙어서요."
나는 그를 더 추궁하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나온 말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런 말이 아직 사람들 입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피코가 들고 온 도시락을 열었다. 검은 빵 사이에 치즈가 들어 있었다. 위에는 작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오늘 점심: 식사 완료와 포만감 완료는 다릅니다.]
"이건 또 무슨 뜻이야?"
"다 먹어도 배가 안 부를 수 있잖아요."
"그건 맞지."
"그래서 두 번째 도시락도 있어요."
피코는 기가 막힌 논리로 나에게 두 배의 음식을 먹였다. 나는 이런 논리라면 회계실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기록 비교에서는 노엘의 직접 입력은 종이 표찰의 '확인 전' 단계까지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 이후 기록을 일괄 변환한 업무는 다른 부서가 수행했다. 노엘이 그 부서의 단말기에 접속한 흔적도 있었지만, 담당자가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 접속했을 수 있었다. 여전히 최종 승인은 미확인이다.
에드렌은 당시 변환 전용 단말기에 보존된 시험 결과표를 찾겠다고 했다. 나는 중립 기록소의 허가를 받아 원자료와 변환 자료를 대조할 수 있도록 요청서를 썼다.
그 사이 로켄에게서 짧은 전언이 왔다. 우편실 근무표에서 그를 '상시 자원'으로 표시하던 칸이 '확인 필요'로 고쳐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 야간 출동에 지원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 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람에게 선택권을 돌려준다는 건 반드시 '아니오'를 듣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답이 없던 곳에 이제 질문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퇴근길에 제르칸이 말을 걸었다.
"한도윤. 너를 처음 뽑은 날이 생각나는구나."
"당시엔 마왕님도 제가 이렇게 매일 서류를 들고 올 줄 모르셨겠죠."
"나는 금을 덜 쓰게 해 줄 인간이라고 들었다."
"월급은 제대로 주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판단이 틀렸는지 모르겠다."
"왜요?"
"금을 덜 쓰게 해 주기는커녕, 줘야 할 돈을 찾아서 모두 주라고 하니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네요."
제르칸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예전보다 성 안이 시끄럽지 않다. 적어도 급여일에는 그렇다."
그 말에 나는 조금 기뻤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월급날에 덜 불안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밤늦게 에드렌이 또 하나의 자료를 보내 왔다. 언어 검수 완료 도장이 찍힌 날과 후대 상태 변환 작업이 승인된 날 사이에는 정확히 사흘의 간격이 있었다. 두 기록을 이어주는 인수 서류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인수 대상 칸에는 사람이 아니라 **'시험 표본 28호'**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자를 보고 한참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시험 표본을 받았다. 그리고 사흘 뒤 프로그램은 한도윤이라는 사람을 확인했다고 적었다. 이제 그 사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야 했다.
제1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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