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청문회가 열린 날, 마왕은 왕좌를 가져오지 못했다.
회의실 입구에서 경비병이 정중히 말했다.
"좌석은 기관별로 하나씩 마련돼 있습니다."
"나는 마왕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패도 준비했습니다."
명패에는 '마왕성 대표 제르칸'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르칸은 한참 들여다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평범한 의자가 그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불편해 보였다.
나는 회의석 뒤편에 앉았다. 오늘의 의제는 케드란의 권한 해제 뒤 발송된 제19차 개정 공문과, 거기서 발생한 부당 청구의 중지 범위였다. 모든 문제를 하루에 해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한 건의 잘못된 요율이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청구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에드렌이 첫 자료를 제출했다.
"케드란 명의로 발송된 공문의 신규 요율 문장은, 당시 부여된 긴급 재발송 권한으로는 승인할 수 없습니다. 적법한 별도 승인 기록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왕국 대표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케드란이 무단 변경한 것입니까?"
"그렇게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실제 입력자와 본문 변경 시점을 더 조사해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우리는 중요한 문장 끝에 '현재까지'를 자주 붙였다. 그 말이 겁쟁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근거 없는 확신보다 훨씬 용감했다.
그다음 증인은 고블린 라스틴의 손자였다. 그는 증조부의 메모를 제출하고, 원본 공개 범위를 미리 정했다. 가족의 사생활과 관계없는 업무 기록만 낭독하기로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기록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접수한 것을 동의한 것으로 표시하는 게 틀렸다고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 말을 누가 들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청문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수십 년 전 말단 직원의 글씨를 들여다봤다. 나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통쾌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갔다면 처음 경고한 사람의 직급부터 따져서는 안 된다.
이어 기술사 레타가 증언했다. 그녀는 같은 계열 장치에서 거절 신호가 전송 대기로 바뀌는 현상을 재현했다. 그 시험을 바르텐이 축소 보고서로 승인했다는 사실은 이미 공식 확인된 내용이었다. 바르텐은 오늘도 청문회에 참석했지만, 그가 초기 요율 개정까지 책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당시 그는 그 부서에서 일하지 않았다고 확인됐다.
"저는 제가 승인한 실패 정보 축소에 책임이 있습니다." 바르텐이 말했다. "하지만 이 오래된 개정 공문을 작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라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책임을 구분해 기록하겠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피코가 회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돌아올 때는 종이봉투를 두 개 들고 왔다.
"도윤 님, 이건 제 월급으로 산 간식이에요."
"왜 두 봉지야?"
"하나는 저 먹으려고, 하나는 아무도 안 먹는 사람 주려고요."
"그럼 강요는 하지 말자."
"알아요. 싫으면 제가 먹으면 되죠."
아이의 윤리학은 늘 놀랍도록 실용적이었다.
오후에는 뜻밖의 증인이 나왔다. 케드란 밑에서 일했던 옛 기록원 '사일'이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작은 도서관의 서가를 관리하고 있었다. 에드렌은 그의 신원을 독립 확인한 뒤 업무 범위에 해당하는 증언만 요청했다.
사일은 케드란이 직무에서 물러날 때 긴급 재발송 장치를 인계한 사실은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새 요율 문장이 붙은 공문을 검수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 문장을 누가 붙였습니까?" 왕국 대표가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개정 초안을 가진 사람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기록실에서 인계 업무를 맡았던 사람입니다."
"이름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사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에드렌이 그에게 선택권을 확인했다.
"실명 진술을 원하지 않는다면 비공개 증언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권한 행사 기록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범위는 제시해야 합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드란의 기록을 대신 정리한 사람은 '노엘'이라는 서기관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그 이름과 그가 사용하던 임시 입력 표찰입니다. 실제 인물의 현재 이름까지는 모릅니다."
나는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 오래된 서류의 검은 선 하나가 사람의 흔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가 곧 최종 책임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누가 시켜서 입력했는지, 원본 문장을 알고 있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에드렌은 사일의 말에 맞춰 인사 원장을 열었다. '노엘'이라는 서기관이 실제로 존재했고, 개정 공문 발송 당시 임시 입력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 권한은 '재발송 문구 수정'까지 허용했지만 신규 요율을 만드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그럼 노엘이 범인인가요?" 피코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직 아니야."
"이름이 나왔는데도요?"
"이름이 나왔다는 것과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달라."
피코는 입술을 내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미래의 피코를 보호할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아이의 이름을 잘못된 기록에 올려도, 그 이름만으로 죄를 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일의 증언이 끝난 뒤 짧은 휴식 시간에는 제19차 개정 공문과 원래의 수수료 표준안을 비교했다. 베실이 비용 항목을 하나씩 읽었고, 이스카가 원본 종이의 봉인 상태를 설명했다. 초기에는 '회신 보관 담당자의 실제 근로수당'이라는 항목이 있었고, 그 옆에는 근무 명령서와 서명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개정 공문에서는 그 항목이 '미응답 지속일에 따른 유지료'로 바뀌어 있었다.
"이 두 비용은 전혀 다른 성격입니다." 베실이 말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일한 만큼 지급하던 돈이, 답장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받는 돈이 된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언제 변경됐는지 확인하는 작업과, 실제 누구에게 지급됐는지 검증하는 작업은 별개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만 같아도 의미는 달랐다. 그동안 수십 년 쌓인 잘못은 이런 구분 하나를 잊은 결과인지도 몰랐다.
청문회장에는 오래된 합동운영국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한 사람은 불쾌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 비용이 없었다면 피난민 안내망도 유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신들은 지금 편안한 세상에서 과거를 판단하고 있어요."
나는 그 사람에게 곧장 반박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 대신 질문했다.
"그 비용이 실제 시설 유지에 필요했다면 정당한 예산으로 편성할 수 없었습니까? 당사자의 침묵을 동의로 처리해야만 했나요?"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때는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웠소."
"그렇다면 예산 확보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함께 조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정 때문에 본인에게 없는 의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에드렌은 그 발언을 회의록에 그대로 남겼다. 나는 이 자리가 과거의 모든 사람을 나쁘다고 몰아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 안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확인하는 자리이길 바랐다.
이어서 마엔이 짧게 증언했다. 그는 열두 건의 거절 신청 중 이미 일곱 건이 정정됐지만 여전히 다섯 건은 처리 중이라고 말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제도의 오류가 현재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이 분명했다.
"나는 전쟁이 끝난 뒤 집에 가겠다고 했소. 여러 번 말했지. 그런데 서류를 받은 사람들은 '알았다'고만 했소. 그리고 며칠 뒤면 또 복귀 통지서가 왔지."
그가 말을 멈췄다. 청문회는 잠시 조용해졌다.
"나는 내가 거절한 것을 잊은 줄 알았소. 나이가 들면 기억이 흐려지니까. 그런데 기록을 보니 내가 보낸 편지가 거기 있었소.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지."
피코는 뒤에서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른도 자기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그다음에는 우편 노동자 대표가 발언했다. 그는 잘못된 유지료를 중단하더라도 편지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는 동의했다.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과,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임의 청구하는 것은 달랐다.
"그럼 안내망 운영은 누가 책임집니까?" 대표가 물었다.
베실이 답했다.
"이미 실지급된 유지 비용은 별도 예산으로 편성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비용도 실제 작업량과 계약에 근거해 심사하겠습니다."
"급여가 끊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보장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승인과 지급을 분리해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하지 않은 약속보다 확인 가능한 절차가 조금은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이어질 증언을 기다리는 동안 라델이 나에게 보고서를 보여 줬다. 케드란 직무 해제 뒤에도 발송된 공문 가운데 일부는 긴급 피난 통지를 정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부를 취소해 버리면 당시 유효했던 구조 안내까지 무효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우리는 문서의 긴급 연락 기능을 유지하되, 불법적 요율 조항을 분리해서 심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이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하나를 끊으면 다른 하나도 같이 끊기게 설계돼 있으니 어렵죠. 레타가 시험한 회로도 그랬잖아요."
루시아는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라면 적의 검만 꺾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행정 문제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활이 함께 연결돼 있었다.
청문회가 잠시 쉬는 동안 제르칸은 복도 끝에서 자기 명패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마왕성 대표'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내가 이렇게 평범한 명패를 달고 앉을 줄은 몰랐다."
"어떠셨어요?"
"내 말을 듣지 않는 자가 많았지. 그러나 모두가 내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해도 옳은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그를 돌아봤다. 마왕이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좋은 회의였다는 뜻이네요."
"위엄은 다소 줄었다."
"필요하면 망토를 더 길게 하세요. 비용은 본인 부담으로."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웃었다. 왕좌를 가져오지 못한 날에도 마왕의 권위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답을 듣는 순간에 조금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청문회가 재개되기 직전 사일은 증언 내용을 다시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본 것과 오래전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구분해 달라고 했다. 에드렌은 증언서에 표시를 추가했다. '노엘의 접속 이력 확인'은 공식 원장 자료이고, '노엘이 초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은 사일의 기억에 근거한 진술로 남았다.
"저는 늙었습니다. 틀릴 수도 있어요." 사일이 말했다.
"그래서 기록을 대조하는 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의 기억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그 기억을 절대적인 사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일도 그런 무게를 혼자 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라델은 관련 원본의 봉인 번호를 제출했고, 이스카는 보존 상태를 설명했다. 모든 확인이 끝난 뒤 사일은 비로소 증언서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후에 직접 권한 이력을 대조해야 했다.
청문회가 마무리될 무렵 임시 결정이 내려졌다. 신규 요율에 근거한 추가 청구는 적법한 권한 입증 전까지 전면 중지. 이미 발행한 청구의 강제 징수도 중지. 과거 실지급분은 개별 정산 기록과 수취인의 권리를 대조해 환급 여부를 판단한다. 시설 유지비는 별도의 적법한 예산으로 편성한다.
피코가 박수를 치려다 멈췄다.
"좋은 소식인가요?"
"좋은 소식이야. 하지만 과거 피해는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았어."
"그럼 박수는 조금만 칠게요."
아이는 손가락 두 개로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제르칸은 그 모습을 보고 마침내 크게 웃었다.
회의가 끝날 때 라델이 나를 불렀다.
"노엘의 옛 업무자료 중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작은 표찰이었다. 표면에는 '임시 후보 표본 접수'라는 글자와, 아주 희미하게 한국어 한 줄이 남아 있었다.
[한도윤 — 확인 전.]
나는 표찰을 바라봤다. 내 이름이 소환 열하루 전 등록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적힌 원래 입력 표찰의 사본은 처음 봤다.
표찰 뒷면에는 승인란이 비어 있었다. 빈칸을 채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 빈칸이 채워진 것으로 표시됐는지를 이제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1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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