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에는 새로운 업무 규칙이 생겼다.
'대신 서명하기 전에 반드시 당사자에게 묻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간단하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피코가 내 책상 위에 신청서 세 장을 놓으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도윤 님, 제가 도윤 님 대신 사탕 신청해도 돼요?"
"나는 사탕을 신청한 적 없는데?"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묻는 건 잘했어. 그런데 나는 안 해."
피코는 환하게 웃으며 신청서에 '거절'이라고 적었다. 옆에는 내 이름이 아니라 피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건 거절을 접수했다는 표시야. 내가 직접 신청했거나 서명한 건 아니고."
"아, 맞다."
피코는 다시 지웠다. 나보다 더 빨리 규칙을 배운 꼬마가 그 규칙에 걸려 넘어지는 걸 보니 조금 웃겼다.
오늘부터 마왕성은 회신권 시범 창구를 두 배로 늘렸다. 왕국과 중립 기록소가 공동으로 승인한 지원 한도 금화 여덟 닢을 사용할 대상자를 고르는 단계였다. 아직 그 돈이 현장에 지급된 것은 아니었다. 예산상 승인됐다고 해서 장부에 실제 지출로 적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작은 자부심이었다.
시범 창구를 확대하는 회의에 앞서, 지난주 기존 창구에서 접수 실패가 얼마나 있었는지 조사했다. 기록상 접수 건수는 서른두 건이었지만 실제 사람이 와서 신청서를 낸 건은 스물아홉 건이었다. 나머지 세 건은 직원이 대신 문서를 출력하며 생긴 시험 기록이었다. 잘못된 접수를 건수에 포함하면 이용률이 부풀려질 수 있었다.
"그럼 우리가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니에요?" 피코가 물었다.
"일을 안 했다는 건 아니야. 기계가 시험용으로 만든 건수와 사람을 도운 건수를 구분하자는 거지."
피코가 시험 기록 세 건에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는 누군가 그 기록을 숨기려 했다면 더 어려웠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류를 솔직히 밝히는 게 부서 평가에서 벌점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지난주 어느 오전 창구를 찾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은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서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지금도 큰 글씨로 적힌 자기 이름 정도만 겨우 구별한다고 했다. 표준 양식을 그대로 건네주면 다른 사람에게 대신 쓰라고 부탁해야 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아레인이 물었다.
"읽어 주게. 내가 대답할 테니."
아레인은 서류의 각 항목을 천천히 읽어 줬다. 노인은 어떤 기록을 정정하고 싶은지 자신의 말로 설명했다. 직원은 그 말을 받아 적은 뒤 다시 소리 내 읽었다. 마지막에는 노인이 확인 표시를 직접 남겼다. 글을 읽어 주는 것과 대신 동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피코는 그 과정을 심각하게 지켜봤다. 끝나고 나서 내게 물었다.
"도윤 님, 그럼 누가 글을 못 읽으면 계약을 못 하는 거예요?"
"아니. 계약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지. 통역이나 낭독처럼."
"저도 어릴 때 글 못 읽었는데."
"너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잖아."
"그렇죠. 제가 배우는 걸 못 기다리는 회사라면 퇴사할래요."
나는 하마터면 웃다가 물을 뿜을 뻔했다. 꼬마가 회사에 가장 무서운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했다.
두 번째 방문자는 오크 출신 배달부였다. 그는 자신이 분명히 수령을 거절했던 위험 물질 꾸러미가 반송되지 않고 보관 중으로 표시돼 매달 관리료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해당 물건의 실제 보관 장소부터 확인했다. 물품은 이미 발신자에게 반송돼 있었고, 배달부는 그날의 거절 접수증을 가지고 있었다.
"물건이 없는데 돈을 내라니요!" 배달부가 화를 냈다.
"실물이 반송됐다는 기록이 있네요. 청구 중지 요청부터 넣겠습니다."
관련 계정에는 예전 자동 갱신 장치가 아직 연결돼 있었다. 아레인은 지난 청문회에서 적용 중지를 결정한 대상이 맞는지 번호를 확인했다. 해당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신규 고지 발행이 차단됐고, 기존 청구 건도 징수 보류로 바뀌었다. 이미 돈을 낸 건이 있는지는 은행 기록을 더 확인해야 했다.
"그럼 제가 낸 돈도 돌려받나요?"
"실지급 내역을 확인한 뒤 환급 대상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서면으로 통지받을 수 있어요."
배달부는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모든 것을 되돌려 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없던 물건의 관리료가 쌓이지 않게 됐다.
세 번째 방문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젊은 마족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끔 말로 전하는 요청을 기록해 두면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강제 계약에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적을 수 있는 작은 판과 글씨 도구를 제공했다.
[목소리 기록하지 마세요.]
그가 적었다.
아레인은 먼저 그 요청 자체를 어떻게 기록할지 물었다. 그는 '음성 수집 거절'이라는 상태값만 남기는 것에는 동의했다. 우리는 그 범위만 기록하고 필요한 설명도 글로 주고받았다.
나는 젊은 마족이 돌아간 뒤 잠시 창구를 바라봤다. 우리의 시스템이 누구에게나 편한 건 아니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더 있어야 했다.
피코가 말했다.
"도윤 님, 그러면 사탕도 말로만 고르면 안 되는 사람 있겠네요."
"그렇겠지."
"다음에는 그림으로 고르게 해요."
그건 괜찮은 생각이었다. 아이에게 당장 작은 안내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다만 그림이 설명을 대신해 오해를 만들지 않도록 직원들이 의미를 확인했다. 피코는 자기가 만든 그림에 금화나 사탕값을 적지 않았다. 방문자가 거절해도 손해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그림으로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구를 마감하며 나는 세 사례를 보고서에 적었다. 읽을 수 있는 방법, 거절을 처리하는 방법, 기록을 남기지 않을 권리. `00-성전` 첫 장부가 지키려던 '회신권'은 단지 편지에 답장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돌려주는 일이었다.
나는 창구 확대 신청서에 작은 문장을 하나 더 넣었다. '이용자의 거절을 서비스 실패로 평가하지 않는다.' 직원이 실적 때문에 사람에게 답변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피코는 그 문장을 소리 내 읽고 나서 말했다.
"그럼 저한테 사탕 안 사셔도 실적이 떨어지지 않아요?"
"응."
"그럼 좋은 규칙이네요."
나는 웃었다. 당연한 말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안전한 일터를 만든다. 우리는 상담 건수 외에도 잘못된 청구를 멈춘 건수와 정정 결과의 실제 반영 여부를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회의는 예정보다 길어졌다. 라델은 장애가 있는 신청자를 위해 방문 접수를 늘리자고 했고, 루시아는 국경 경비병의 이동 지원을 제안했다. 피코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사탕을 제공하자고 했다. 의외로 그 제안은 꽤 진지하게 검토됐다.
"직접 답변할 수 있도록 쉬는 공간을 만드는 건 좋습니다." 아레인이 말했다. "다만 사탕이 답변에 대한 보상처럼 보이면 안 됩니다.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제공해야 해요."
피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절한 사람도 사탕 먹어요?"
"그럼."
"이거 되게 좋은 회사네요."
제르칸이 흐뭇하게 웃었다. 왕좌 예산을 줄이던 날보다 표정이 좋았다. 왕이 되고 싶었던 마왕이 사탕을 나눠 주는 회의에서 칭찬받는 장면은 이세계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첫 시범 대상은 퇴역 경비병 마엔이었다. 그에게는 열두 차례의 복귀 거절 중 세 건만 정정돼 있었다. 나머지 아홉 건은 각 기관에 따로 남아 있었고, 일부에는 실제 출근 기록이 없는데도 복귀 준비가 진행된 것으로 표시됐다.
"한 번에 다 지우면 안 됩니까?" 마엔이 물었다.
"틀린 기록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만 어떤 기록이 틀렸는지 개별 증거를 확인해야 합니다. 누가 이미 지급받은 임금까지 지워 버리면 안 되니까요."
"나는 출근하지도 않았소."
"그 말씀도 증거가 됩니다. 출입 장부와 같이 대조할게요."
마엔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가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는지 생각했다. 열두 번 거절했다면 열두 번은 설명했을 것이다. 그걸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우리는 마엔이 직접 선택한 방식으로 자료를 확인했다. 그는 긴 문서를 읽는 것보다 짧은 설명을 듣고 필요한 부분만 확인하는 편을 원했다. 아레인은 동의 범위를 항목마다 물었다. 누구에게나 같은 양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첫 개선이었다.
그날 정정된 기록은 아홉 건 중 네 건이었다. 나머지 다섯 건은 다른 기관의 출입 원장과 대조해야 했다. 정정된 네 건은 이전에 정정된 세 건과 합쳐 총 일곱 건이 됐다. 마엔은 손가락을 접어 세더니 잠시 웃었다.
"이제 절반 넘었군."
"네. 하지만 나머지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이젠 내가 여기에 안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먼저 확인해 보겠다고 하오. 전에는 나더러 기억이 잘못됐다고 했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에는 티아의 연금 관련 소식이 왔다. 사망한 남편에게 지급된 것으로 잘못 표시됐던 추가 임금은 실제로 송금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정정돼 있었다. 이제 유족 연금 심사에서 그 오류를 제외하겠다는 공식 확인이 도착했다. 그러나 연금 자체는 아직 승인되지 않았고, 당연히 입금도 되지 않았다.
"좋은 소식이네요." 피코가 말했다.
"좋은 진전이지. 돈이 들어온 건 아니야."
"네. 제가 먼저 입금됐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나는 웃었다. 아이가 배운 것은 회계 용어뿐 아니라 사람을 헛되이 기대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였다.
오후에는 마레나의 초과근무 수당 자료를 다시 봤다. 추가 인계 두 시간은 확인됐고, 나머지 시간의 증빙도 새로 도착했다. 지급 승인서는 발급됐으나 실제 송금 예정일은 다음 주였다. 나는 진행 상황을 본인에게 정확히 설명했다.
"이번에는 정말 받을 수 있을까요?" 마레나가 물었다.
"승인은 확인됐습니다. 실제 지급이 되면 다시 알려 드릴게요."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고마운지 모르겠네요."
나는 민망하게 웃었다. 마레나도 처음에는 우리에게 예민하게 대응했다. 너무 오랫동안 당연한 돈을 받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모든 결재가 또 다른 실망의 시작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후 늦게 제르칸이 시범 창구를 방문했다. 그가 오면 대개 직원들이 경직되는데, 오늘은 한 할머니가 마왕에게 번호표를 내밀었다.
"여기 앉아도 되나요?"
"그대는 누군가?"
"서류 확인하러 온 사람이죠."
"내가 마왕이다."
"그러면 여기서 뭐 기다리시는 거예요?"
제르칸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었다. 할머니는 마왕보다 번호표 숫자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제르칸은 결국 대기 의자에 앉았다. 그의 망토가 옆자리까지 차지했지만 할머니가 접으라고 하자 순순히 접었다.
창구가 문을 닫을 무렵, 나는 지원예산 사용계획을 정리했다. 통역·왕복 이동·장애인 안내·원본 복제 보호 비용을 나눠 책정했다. 금화 여덟 닢 전액이 지급된 게 아니라는 사실도 기록했다. 실제 집행 건은 이날 없었다. 지난번 6-17-A에서 지급된 장비 설치비 금화 열 닢과 절대로 합산하지 않았다.
몰트는 결재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가 깔끔하군요."
"실장님. 저 대신 승인 도장 찍으실 거죠?"
"권한을 위임받았다면 가능합니다."
"농담입니다. 제가 직접 찍겠습니다."
피코가 즉시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직접 사탕 신청할래요!"
"그건 네 월급 안에서 하자."
꼬마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결재표에 서명한 뒤, 몰트에게 오래된 이관 장부의 다음 열람 허가를 요청했다. 서로의 동의와 권한을 지키는 것이 이렇게 많은 손목 운동을 요구할 줄 몰랐다.
그때 몰트가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문서관리관 케드란의 직무 해제 기록과 같은 날짜의 '긴급 시스템 운용자 임명' 사본이었다.
"마왕성에도 이 사본이 남아 있었네요."
"네. 다만 임명된 사람의 이름이 지워져 있습니다."
빈칸은 오래된 지워짐이 아니라, 나중에 새 종이를 덧붙여 가린 흔적이었다. 누가 가렸는지, 언제 가렸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나는 봉투를 책상 서랍에 넣지 않고 보존 담당자에게 인계했다. 오늘 배운 것 하나는 분명했다. 남의 서명을 대신하지 않는 일보다, 누군가의 빈 서명란을 유리한 뜻으로 해석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웠다.
제17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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