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 실장이 예전 이야기를 꺼내겠다고 하자 회계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피코는 의자를 세 개 가져왔고, 루시아는 문을 닫았다. 제르칸은 '마왕성의 역사'라는 말을 듣더니 직접 왕좌를 옮기려 했다. 그 왕좌가 복도 폭보다 넓다는 사실을 알려 주자 잔뜩 기분이 상했다.
"내 역사가 길다는 뜻이니 복도가 좁은 것이다."
"그건 건축사에게 하실 말씀입니다."
"네가 내 위엄을 숫자로 깎아내리는구나."
"왕좌 폭이 2미터 40센티미터인 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마왕이 낮게 끙 소리를 냈다. 내가 지금 계산한 것은 위엄이 아니라 출입 가능 여부였다.
몰트는 장부 두 권을 탁자 위에 놓았다. 이스카가 제공한 투명 보존판 위였다. 손가락으로 바로 넘기지 말고 가장자리 받침대를 쓰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천 년 된 리치에게서 기록 취급법을 배우려니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문서 앞에서는 누가 더 오래 살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저는 그때에도 회계실에서 일했습니다. 다만 책임자는 아니었지요."
"몇 년 전인데요?" 피코가 물었다.
"지금 기준으로 칠십삼 년 전입니다."
"그럼 실장님 신입 시절이에요?"
"아닙니다. 그때도 팔백 년 넘게 일했습니다."
피코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사탕을 하나 먹었다. 이해할 수 없는 숫자를 만나면 당분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였다. 회계 직원으로서는 조금 불안하다.
몰트는 기억나는 범위를 먼저 적었다. 그는 직접 목격한 것, 나중에 들은 것, 장부로 확인 가능한 것을 세 칸으로 분리했다. 나는 그 옆에 조그만 칸을 하나 더 만들었다. '모르는 것'.
"이 칸이 필요한가요?"
"꼭 필요합니다. 기억 안 나는 걸 기억한다고 쓰면 사고가 납니다."
몰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일자를 하나 적을 때마다 원본에서 해당 숫자가 있는지 찾아봤다. 그날의 전쟁은 끝났다가 다시 시작되는 일을 반복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전선이 이동할 때마다 포로 명단과 피난민의 신원확인 자료가 이곳저곳으로 옮겨졌다. 전달이 끊긴 사람에게는 잘못된 사망 통지가 갔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데도 출신지가 없는 사람으로 처리된 이들도 있었다.
"제 전임자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류를 없애 버리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실장님과 비슷했군요."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웃기는 재주가 있었지요."
"그건 어렵지 않았겠네요."
몰트가 나를 보았다. 뼈만 남은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섭섭함이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당시 제3감리 파견 담당자는 피난민 명부를 맡은 곳마다 '이름을 확인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문제는 상황이 급박했다는 것이다. 가족을 찾지 못한 아이, 말을 잃은 부상자, 통역이 없는 이방인에게 매번 즉답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확인자를 일단 안전한 장소에 등록하고, 나중에 당사자에게 직접 설명하고 선택을 받도록 하는 보전 절차가 마련됐다.
"그 절차가 `00-성전` 계정으로 이어진 겁니까?"
"그렇다고 단정하기 전에 초회 약정서를 봐야 합니다."
몰트가 두 번째 장부를 펼쳤다. 첫날 접수된 서류의 종류가 표로 정리돼 있었다. 피난 구호비, 우편 보관료, 통역 인건비, 귀환 의사 확인 비용. 그런데 '동의 대행비'라는 항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없던 항목을 나중에 만들었군요."
"적어도 이 페이지에는 없습니다. 모든 연혁을 뒤져봐야 정확하지요."
루시아가 말했다.
"처음에는 좋은 뜻이었다면 왜 지금 사람을 괴롭히는 장치가 됐지?"
"좋은 목적이라고 좋은 결과가 보장되진 않죠. 특히 변경된 규정을 아무도 검토하지 않으면요."
나는 164화에 확인했던 기술사 레타의 시험 실패 네 건을 떠올렸다. 그걸 지우지 않고 남겼다면 뒤의 피해가 줄었을 수도 있다. 누가 고의로 규칙을 바꿨는지, 편의를 위해 잘못 연결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었다.
점심 무렵 마레나가 급한 편지를 보내 왔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신업무 통합관리실에서 정정해야 할 초과근무 수당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여러 차례 확인해 주겠다고 말했던 문제였다.
"실장님, 옛날 이야기 잠깐만 멈춰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살아 있는 직원의 급여가 우선입니다."
그 말에 피코가 즉시 손을 들었다.
"그럼 저도 살아 있어요!"
"넌 이번 주 급여 확인했잖아."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회의실에 웃음이 번졌다. 마레나의 자료에는 근무 시간이 열두 시간 늘어났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야간 출입 기록은 열 시간이었다. 나머지 두 시간은 승계 업무를 인계하는 시간으로 적혀 있었다. 급여 규정상 그 시간도 근무로 포함될 수 있었다. 다만 마레나가 실제로 인계한 사람의 기록과 날짜가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연락했다.
"두 시간도 근무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 인계받은 담당자의 확인을 받아 주세요."
"좋아요. 다만 그 담당자가 퇴직했고 지금은 작은 여관을 운영합니다."
"퇴직했다는 이유로 일한 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루시아가 직접 여관으로 갔다. 통신으로 확인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 담당자는 읽지 못하는 계약서에 서명한 경험 때문에 통신 확인을 꺼린다고 했다. 루시아는 증인의 신원을 보장하고 확인서만 받아 돌아왔다.
마레나의 두 시간까지 근무한 사실을 확인한 뒤 정정 자료를 보냈다. 실제 지급은 다음 급여일에 처리될 예정이며, 지급 완료 여부는 별도로 확인하기로 했다. 피코가 수첩에 적었다.
[확인 완료 ≠ 입금 완료.]
"대단해, 피코."
"칭찬도 입금되는 건 아니죠?"
"그건 마음에 쌓이는 거야."
"그럼 사탕은 못 사네요."
꼬마의 현실 감각은 때때로 내 것보다 정확했다.
그날의 급여 정정에는 예상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라델이 왕국 근로기록 규정 사본을 보내 왔는데, 그 문서에서는 인계 시간의 근로 인정 기준이 '인계 대상자의 확인'으로 적혀 있었다. 마레나가 문서만 전달하고 떠났다면 문제가 덜했겠지만, 그녀는 당시 야간 통신 장치의 고장을 복구하며 그 자리에 한참 남아 있었다.
"그걸 어떻게 입증하죠?" 피코가 물었다.
"당사자의 진술과 남아 있는 작업 기록을 대조해야지."
"사람이 말한 걸 믿으면 안 돼요?"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야. 말과 기록이 함께 있으면 나중에 또 다른 사람이 잘못됐다고 우겨도 보호할 수 있어."
우리는 인계받은 퇴직 직원의 여관에 연락을 넣었다. 그곳은 국경길의 작은 숙소였다. 여관 주인은 한때 경계 통신 장치를 관리했던 여성으로, 지금은 객실 네 개와 따뜻한 수프를 파는 식당을 운영했다.
통신구가 연결되자 그녀는 처음에 의심부터 했다.
"또 복귀하라고 하려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 마레나 씨가 근무한 시간을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이상하네요. 십 년 넘게 일할 땐 아무도 근무 시간을 안 물었는데, 퇴직하고 나니까 매달 누가 찾아와요."
그 말에 나는 귀가 뜨거워졌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옛 시스템에 남아 있다는 이유로 아직도 종종 연락을 받는다고 했다. 마엔의 사례와 닮아 있었다. 나는 오늘 필요한 범위만 확인하고, 원한다면 과거의 대행 등록 상태도 별도 민원으로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게요. 오늘은 마레나 일만 봅시다."
그녀는 당시 밤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했다. 눈보라 때문에 발신탑의 회신석이 얼었고, 마레나는 근무 교대가 끝난 뒤에도 통신 보조 장치를 들고 남았다. 여관 주인은 발신탑을 고치는 동안 식당에서 내온 수프가 식었다는 사실까지 기억했다.
"그때 시각이 어떻게 되죠?"
"시계보다 기록이 낫죠. 수프 끓인 장부 옆에 발신탑을 수리한 비용을 적어 놨어요."
그녀는 오래된 수첩을 펼쳐 해당 날짜를 보여 줬다. 수프값이 기록돼 있고 그 아래에 '마레나, 교대 후 장치 점검'이라고 써 있었다. 우리는 그 메모를 단독 확정 증거로 삼지 않았다. 발신탑의 전력 사용 기록과 비교해 시간대가 맞는지 확인했다. 두 자료가 일치했다.
"그럼 두 시간 다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실제 근무가 확인됐다는 근거를 확보했습니다. 최종 지급은 급여팀 승인과 입금 확인이 필요해요."
여관 주인은 허허 웃었다.
"정말 이상하네. 눈보라 때는 다들 사람부터 살리려고 뛰었는데, 돈은 이렇게 어렵게 받는군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인계 작업 시간도 자동으로 남도록 해야죠."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긴급 상황이라도 사람이 일한 시간을 기록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 또렷하게 느꼈다.
몰트에게 그 자료를 보고하자 그는 옛날 전쟁 중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피난민 명부를 밤새 옮긴 통역인에게는 정식 근무 명령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00-성전` 첫 이관 장부에는 통역 인건비가 있잖아요."
"그 문제 때문에 넣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담당자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아봐야 하지요."
나는 첫 보전기금을 다시 생각했다. 사람의 답장을 기다리는 비용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편지를 옮기는 운송인, 통역을 하는 사람, 밤새 기록을 지키는 직원이 모두 일해야 한다. 그런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 비용을 받는 대상과 근거를 바꿔 버리면 전혀 다른 제도가 된다.
피코는 수첩에 '기다리는 것도 일'이라고 썼다.
"그럼 사탕 기다리는 것도 일이에요?"
"그건 아닐 가능성이 높지."
"정말 세상은 불공평하네요."
몰트가 웃었다.
"대가를 받는 노동은 타인에게 맡은 책임이 있어야 하지요."
"그럼 제가 도윤 님 간식 지켜 주면요?"
"먼저 내가 맡기겠다고 해야지."
피코는 잠시 고민했다. 자기 마음대로 일을 만들어 놓고 청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회계실 신입 직원으로서 꽤 중요한 발전이었다.
우리가 수당 확인서를 정리할 때 몰트는 한동안 오래된 창밖을 보았다. 그는 피난민의 편지가 도착하는 것을 처음 기다렸던 날에도 오늘처럼 날씨가 흐렸다고 했다. 나는 그 기억을 연대의 근거로 쓰지 않았다. 다만 그 기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기록했다. 사람은 날짜를 잊어도 감정을 기억하곤 한다. 그 감정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다음 조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오후에 다시 회계실로 돌아오자 몰트는 당시의 배달 접수증을 찾아 놓았다. 낡은 보관 봉투에는 두 사람이 서명했는데, 한쪽은 마왕성 전임자, 다른 쪽은 왕국의 문서이관관이었다. 제3감리 쪽은 서명 대신 빈 네모와 보존 요청 번호만 있었다.
"계약이 완료되지 않은 겁니까?"
"아니요. 서명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문서를 보관한다는 확인서는 별도로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보호 대상의 동의는 나중에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나는 그 구분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보관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보관 대상자가 자기 운명을 넘겼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백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서 같은 문장 앞에 섰다.
몰트가 다른 봉투를 내밀었다.
"이날 들어온 돈도 기록돼 있습니다."
금화 열두 닢이 초기 보전기금으로 '접수 예정'됐고, 실제 보관 계좌에 들어온 것은 여덟 닢이었다. 나머지 넷은 왕국 쪽 지급 승인이 보류됐다는 주석이 붙어 있었다. 즉, 장부의 첫 줄부터 책정과 지급이 달랐다.
"금화 열두 닢이 `00-성전` 첫 잔액이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 물품군의 초회 기금이 그렇다는 기록입니다. 다른 이관분과 합산되기 전이지요."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번에라도 숫자를 서둘러 합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덟 닢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거래의 여덟 닢과 같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날 밤 몰트는 내가 자료를 접으려 할 때 잠깐 손을 들었다.
"도윤 씨. 그날 제가 왜 이 장부에 서명했는지는 기억합니다."
"어째서요?"
"피난민 한 사람이 제 전임자에게 물었거든요. '제가 살아 있다는 답장을 보내면, 누군가 읽어 줄까요?'라고요."
나는 말을 잃었다.
"전임자는 그렇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죽었지요. 저는 그 약속을 이어받았습니다. 장부를 보관하는 사람의 마음으로는, 그게 첫 직무였습니다."
"그 사람 답장은 도착했습니까?"
"그건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여전히 찾아야 합니다."
몰트가 책상을 정리했다. 놀랍게도 그에게도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나는 기록의 처음과 끝을 다시 확인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조차 누군가의 답장 하나 때문에 일을 끝내지 못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억을 존중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을 증거와 연결해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의 권리를 돌려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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