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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70화
PAYLUA ORIGINAL · 제170화

170화. 내 이름을 먼저 읽은 사람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844자

오프라인 책장
마왕성의 복도에는 요즘 새로운 표어가 붙어 있다. [대답이 없으면 동의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제르칸이 그 밑에 작은 글씨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단, 마왕의 위엄은 언제나 인정한다.] 나는 그 문장을 지울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두기로 했다. 마왕에게도 사소한 자기표현의 자유는 있다. 그가 직원의 월급에서 왕좌 정비비를 빼지 않는 한,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오늘 아침에는 중요한 우편이 하나 도착했다. 발신처는 중립 기록소. 수신인은 한도윤. 봉투에 '개봉 전 당사자 확인'이라는 표식이 찍혀 있었다. 피코가 옆에서 뛰어올랐다. "한국에서 편지 왔어요?" "아직 몰라." "그럼 빨리 열어요!" "수신 확인부터 해야 해." 피코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꼈다. "도윤 님도 이제 너무 서류 좋아해요." "나도 싫어. 그래도 누가 보낸 건지 정확히 봐야지." 봉투를 열자 중립 기록관 아레인이 작성한 안내문이 나왔다. 윤서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옛 통역 자문의 연락 전달 요청에 대해, 기록소가 독립적인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생존 연락처를 확인했습니다. 다만 현재 이름 사용 여부와 서신 수령 의사는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생존 연락처. 그 세 글자가 아니라 다섯 글자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 세계 어딘가에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레인에게 연락하자 그녀는 바로 주의를 줬다. "본인 동의 전까지 거주지를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압니다. 제가 원하는 건 주소가 아니라, 그분이 제 편지를 받을 의사가 있는지예요." "그렇다면 전달문을 써 주세요." "한국어로 써도 될까요?" "가능합니다. 다만 상대의 언어 선호를 확인한 후 전달합니다." 나는 오랜만에 책상 위에 한국어로 짧은 편지를 썼다. 누군가 이 문장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니 글씨가 이상하게 떨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도윤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회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윤서진이라는 이름이 적힌 오래된 통역 기록을 봤습니다. 혹시 이야기를 나눌 의사가 있으시다면 편지를 받고 싶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는 마지막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 문장을 쓰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전에는 '답을 달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지금은 누군가 대답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 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편지를 보내고 나자 일상이 다시 들이닥쳤다. 왕국 시설 관리부에서 브렌의 보수 공사 완료 확인을 요청했고, 급여팀에서는 야간 근무 수당에 대한 정정 기록을 보내 왔다. 몰트는 둘 다 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도윤 씨, 감정적인 순간에도 결재는 계속됩니다." "실장님, 위로에는 소질이 없으시군요." "대신 마감에는 소질이 있습니다." 그는 천 년 넘게 일한 회계 책임자였다. 천 년 내내 이런 농담을 들었다면 아마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실제로 뼈밖에 없지만. 우리는 오전 내내 수당 지급 자료를 정리했다. 브렌의 잔금은 지난번에 실제 지급된 것이 확인됐고, 보존관 르마의 추가 야간 수당도 수정된 근무 기록에 따라 송금 완료가 확인됐다. 나는 지급 명세에 확인 표시를 했다. "이제 지난번 현장 직원들 돈 문제는 끝났습니까?" 피코가 물었다. "확인된 두 건은 정리됐어. 새로 발생하는 건은 또 봐야지." "끝나는 일이 없네요." "그게 회사 일이야." 피코가 절망적인 얼굴로 내 책상을 바라봤다. 나는 웃었다. 어서 커서 회계실에 지원하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하면 인재 하나를 잃을 것 같았다. 점심 무렵에는 마왕성이 뜻밖의 축제 분위기였다. 지난 공동 청문회의 결과를 알리는 게시판에 '자동 갱신 신규 적용 중지'라는 문구가 붙었기 때문이다. 몰트는 그 게시물 아래에 실제 발효 시각과 적용되지 않는 구형 사례 목록까지 적어 두었다. "그럼 모든 일이 해결됐습니까?" 피코가 물었다. "아니. 신규 적용을 멈춘 거지 기존 피해 확인은 계속해야 해." "그러면 좋은 소식 반 개네요." "좋은 소식 한 개와 숙제 여러 개 정도지." 피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게시판에 작은 그림을 붙였다. 한쪽에는 멈춘 톱니바퀴, 다른 한쪽에는 편지를 손에 든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며 웃었다. 글자를 모르는 직원도 내용을 알아보기 쉬웠다. 몰트는 게시판을 보더니 만족스럽게 말했다. "간결하고 정확하군요." "실장님이 그런 말을 하시다니요." "저도 천 년 동안 변할 수 있습니다." "아주 느리게요." "서두르지 않아서 오래 살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상대가 리치인 경우 이긴다고 해도 이상한 패배감이 남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피코와 함께 마왕성의 작은 창고를 정리했다. 오래된 회계 장비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구형 계산판, 잉크가 마른 도장, 사용하지 않는 전표 상자. 피코는 도장 하나를 집어 들고 얼굴을 찌푸렸다. "'상사 승인 없이 불가'라고 쓰여 있어요." "옛날 도장이네." "그럼 지금도 쓰나요?" "아니. 적어도 직원이 자기 퇴직 의사를 밝히는 데는 필요 없어." 피코가 도장을 한쪽 상자에 넣었다. 상자 위에는 '폐기 전 확인'이라고 적었다. "왜 바로 버리지 않아요?" "오래된 처리 기록과 연결돼 있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목록을 만들고, 어떤 업무에 썼는지 확인해야지." 나는 그 말을 하다가 문득 웃었다. 이세계에 소환된 직후의 나라면 지금 내 말을 듣고 기겁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서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다니. "도윤 님은 버리는 것도 결재해요?" "중요한 건 그래." "그럼 쓰레기통에 사탕 껍질 버릴 때도요?" "그건 그냥 버려." "휴, 다행이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창고 한쪽에 있는 오래된 서랍은 잠겨 있었다. 내가 열쇠를 찾으려 하자 몰트가 지나가다 멈춰 섰다. "그 서랍은 옛날 인수인계 서류 보관함일 겁니다." "마왕성의 옛 장부가 아직 남아 있나요?" "일부는 남아 있겠지요. 다만 옛 행정 체계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저도 확인해야 합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목록을 만들어 보죠." "그러지요." 우리는 그날 당장 서랍을 억지로 열지 않았다. 봉인이 남아 있었고, 구형 소유권 표기가 불명확했다. 나는 열쇠 요청서를 준비했다. 막연한 호기심보다 보존 규칙이 우선이었다. 오후에는 왕국 시설 관리부와 짧은 화상 회의가 있었다. 브렌이 보수한 금고 지붕에서 다시 물이 새지 않는지 최종 점검하는 자리였다. 브렌은 도면을 펼쳐 보이며 배수 홈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는 잘 마무리됐군요." "돈도 받았소. 약속한 날에. 그게 더 놀랍구먼." "왕국 공무원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겠네요."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주면 되지." 브렌은 크게 웃었다. 나는 그와의 일이 정리된 사실이 반가웠다. 몇 달 동안 문서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이, 실제로 일한 사람의 임금이 밀리지 않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얻은 작지만 분명한 성과였다. 르마도 화면에 나타나 자신의 야간 수당이 정확히 들어왔다고 확인했다. 아직 구형 기록에 남은 오차 몇 건은 본청에서 별도로 처리하기로 했다. "이제 정리할 일이 하나 줄었군요." 몰트가 말했다. "실장님, 그러면 새 일은 당분간 받지 맙시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역시 천 년 근속자는 단호했다. 오후에는 합동운영국의 공식 조사 결과 일부가 도착했다. 바르텐이 실패 정보를 축소한 보고서를 승인한 사실이 확인됐고, 기술사 레타의 진술과 당시 정정 요청이 접수됐다는 사실도 공문에 명시됐다. 규정 위반에 대한 징계 심사는 진행 중이었다. "그럼 이제 범인은 바르텐입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확인된 책임은 있어요. 그런데 최초 자동 갱신 규정을 만든 사람은 아직 별도로 조사해야 해요." "끝까지 조사할 겁니까?" "적어도 사람이 손해 본 부분은 바로잡아야죠." 루시아가 검을 허리에서 풀어 벽에 세웠다. "그럼 저는 현장 조사를 돕겠습니다." "칼은 필요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젠 압니다. 대신 문을 열고 사람을 지키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루시아는 모든 일을 결투로 해결하려 했다. 지금의 그녀는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묻는다. 서로가 조금씩 변했다. 제르칸은 그날 저녁 회계실로 들어와 조용히 물었다. "너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 나는 놀라 그를 바라봤다. 마왕이 내 귀환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조심스럽게 물은 건 처음이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권리는 유지하고 있어요. 당장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도 제 선택이고요." "그렇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겠군." "계약상으로는 그렇죠. 미지급 급여만 없으면요." 마왕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떠나면 누가 내 왕좌 예산을 검토하느냐?" "몰트 실장님도 계시고, 피코도 배우고 있잖아요." "피코가 내 왕좌를 없애 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웃었다. 그러나 마왕은 곧 진지해졌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붙잡을 권리는 없다는 말이지?" "네." "그렇군." 그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용사를 하라고 명령하던 왕과, 지금 내게 남을 의사를 묻는 마왕. 두 사람 중 누가 더 무서운 권력자인지 이제는 단순하게 답할 수 없었다. 저녁에는 피코가 자기 가계부를 보여 줬다. 사탕 두 봉지, 빵 하나, 장난감 수리비 예정액. 마지막 줄은 아직 비어 있었다. "여기에는 뭘 써야 해요?" 피코가 물었다. "실제로 지출했으면 지출, 아직 사려고 생각만 했으면 예정이라고 쓰면 돼." "그럼 레타 누나가 고쳐 줄 새 장난감은 예정이에요?" "아직 가격도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예산 계획 정도지." "알겠어요." 피코는 진지하게 적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 이 아이에게 월급을 지급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사탕 한 봉지를 받을 권리를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은 지급과 예정의 차이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도윤 님, 그 한국어 말하는 사람은 우리 회사에 와요?" "그건 모르지. 연락을 원하실지도 아직 확인 중이고." "안 오면 어떻게 해요?" "그럼 안 오는 거야."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싫다고 하시면 진짜로 안 데려오는 거죠?" "당연하지." 그는 아주 만족한 얼굴로 웃었다. 내가 바랐던 변화가 이런 모습일까. 누군가의 말을 믿고 그 뜻을 존중하는 회사.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직원이 자기 지출을 기록하는 회사.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예전 회사에서는 이런 순간이 별로 없었다. 이세계에서 마왕과 일하게 됐는데, 오히려 제대로 된 동료가 무엇인지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저녁 식사 뒤 아레인이 직접 마왕성에 도착했다. 그녀는 작은 서류함을 품에 안고 있었다. "한도윤 씨, 연락 요청에 대한 답변이 들어왔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받겠다고 했나요?" "예. 상대는 한국어 안내문을 읽을 의사가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다만 본인이 직접 말한 부분만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아레인은 상대의 동의 범위를 표시한 확인서를 먼저 건넸다. 이름 전체 공개는 허용하지 않았고, 옛 통역 자문 기록과 관련된 부분의 사실 확인만 허용했다. "그분이 윤서진 씨라는 사실도 확인됐습니까?" "옛 기록에 서명한 자문인과 현재 연락한 사람의 동일성을 독립 검증했습니다. 본명 사용 여부와 현 거주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레인은 작은 마력 녹음구를 탁자에 놓았다. 손바닥만 한 구슬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내 귀에 한국어가 들렸다. '한도윤 씨.' 나는 숨을 멈췄다. '이 이름을 들으면 당신이 놀랄 거라는 걸 알아요. 저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기다려 온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제가 옛 연락 장비의 한국어 동의 표현을 검수했던 사람은 맞습니다. 그리고 왕국 제6정산금고에 별도 원문을 보존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저입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마침내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행동이 연결됐다. 윤서진이 모든 한국어 문서를 썼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6-17에 관한 보존 의뢰는 그 사람이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목소리는 계속됐다. '하지만 한도윤 씨 이름이 소환 열하루 전에 입력된 일은 제가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표본을 만든 담당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다. 제 연락이 끊긴 뒤 그 기록이 정식 계약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반대 문구를 남겼습니다.' 나는 두 손을 꽉 쥐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지금 공개하면, 당시 함께 일했던 피난민들의 신상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먼저 확인해야 할 원장이 있어요. 당신이 `00-성전`이라고 부르는 계정의 첫 번째 이관 장부입니다.' 내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장부의 열쇠는 왕국 금고가 아니라 마왕성 안에 있습니다.' 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피코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도윤 님. 마왕성 안에요?" "그러게." 몰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주 낡은 표정으로 말했다. "첫 번째 이관 장부라면… 제 옛 인수인계 자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르칸도 드물게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녹음구를 다시 바라봤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누군가 한국어로 남긴 경고는 실제 사람이 남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도 자신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있었다. 사람의 대답을 기다린 끝에, 처음으로 진짜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 마왕성에서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장부였다. 그 장부가 왜 내 이름보다 먼저 여기에 있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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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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