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요한 회의를 앞두면 늘 같은 꿈을 꾼다.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참석자 전원이 나를 보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누군가 말한다. '한도윤 씨가 모든 비용을 개인 부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꿈에서 깼다. 꿈속의 제르칸은 내게 황금 명패를 주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명패 가격도 나에게 청구했다.
"나쁜 꿈 꾸셨어요?" 피코가 물었다.
"응. 내가 아주 큰 지출 결의서가 되는 꿈이었어."
"그럼 전 좋은 꿈이에요. 오늘 회의 간식이 많대요."
나는 피코를 부러운 눈으로 봤다. 회의에서 간식만 보이는 사람은 행복하다. 회의록의 예산 항목부터 읽는 사람은 직업을 잘못 고른 걸지도 모른다.
오늘은 왕국, 마계, 중립 기록소, 천상 관리단이 함께하는 공동 청문회였다. 안건은 두 개였다. 첫째, 거절을 무시하고 자동 갱신된 계약의 관리 수수료 산정을 멈출 수 있는가. 둘째, 회신권 회복 준비금 일부를 실제 당사자 지원에 사용할 수 있는가.
회의 장소는 옛 휴전항이었다. 이번에는 마왕성이 아니라 중립 공관에서 열리기로 했다. 제르칸은 아침부터 불만이었다.
"왜 내 성에서 하지 않는 것이냐?"
"왕국 조사관이 폐하의 왕좌 앞에서 자유롭게 반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얼마나 너그러운 군주인데!"
"그 말을 직접 하시면 더 무섭습니다."
마왕은 입을 다물었다. 기특했다.
휴전항 회의실 앞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엔도 와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표정은 지난번보다 훨씬 단단했다.
"직접 증언하실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소. 내 거절을 내 입으로 말하려고."
"힘드시면 서면 진술도 가능합니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말하고 싶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말할 권리를 돌려주는 회의에서 누군가에게 말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바르텐 심사관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지난번보다 수척해 보였다. 그는 실패 정보를 축소해 보고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저는 당시 재발송 장치의 작동 유지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당사자의 거절이 재발송 지시로 분류되는 오류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은 잘못됐습니다."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당사자에게 사과하실 의사가 있습니까?" 라델이 물었다.
"있습니다. 다만 이 한 번의 사과로 끝내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감찰반의 조사와 재검토 절차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진심인지 아닌지는 결국 결과로 확인해야 한다. 바르텐 개인의 징계 여부와 제도 수정은 별개였다.
다음으로 베실이 수수료 표를 공개했다.
"확인된 열아홉 건 중 본인의 거절 접수가 명백한 세 건이 자동 갱신 대상으로 계산됐습니다. 전체 책정액 금화 스물네 닢, 승인 열두 닢, 실지급 네 닢입니다."
"실지급 네 닢은 누가 가져갔습니까?" 누군가 물었다.
"합동운영국의 경계 시설 유지 계좌로 지급됐습니다. 이후 지출의 적정성은 별도 감사 중입니다."
나는 종이를 들어 보였다.
"지금 확인된 건 잘못된 계약 상태를 수수료 산정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전쟁을 의도적으로 늘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주장은 아직 증거가 필요합니다."
회의실 한쪽에서 누군가 투덜거렸다.
"그러면 아무도 죄가 없다는 거요?"
"아니요. 확인된 잘못부터 바로잡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한꺼번에 붙이면 오히려 실제 피해가 가려집니다."
루시아가 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칼로 해결할 때보다 더 어렵군요."
"원래 회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마엔은 세 번째 증인으로 발언했다. 그는 열두 번 거절 통지를 보냈고, 그중 일부가 복귀 계약으로 재분류됐다고 설명했다. 손을 떨면서도 끝까지 말했다.
"나는 싸우기 싫어서 도망친 게 아니오. 내 다리가 더는 버티지 못했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소. 그런데 장부는 내가 아직 경계에 서 있다고 적었소."
청문회장은 조용해졌다.
"내가 정말 화난 건 돈이 아니오. 내 말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요."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마엔이 한 말은 제6정산금고의 한국어 문장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닮았다고 서로 대신하는 건 아니었다. 각 사람의 이야기는 각 사람의 것이었다.
루멘은 천계의 회신권 회복 준비금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부 승인서를 제출했다. 금화 백이십 닢 중 동결된 금액은 여전히 많았고, 이번에 허가된 시범 지원 한도는 금화 여덟 닢뿐이었다.
"여덟 닢으로 뭘 할 수 있죠?" 제르칸이 낮게 물었다.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데 필요한 교통비와 독립 통역비부터요."
"내 금고에서 열 배를 내겠다!"
나는 마왕의 팔을 붙잡았다.
"폐하, 그 말씀은 공식 회의록에 남습니다."
"그럼 다섯 배로!"
"일단 예산팀과 상의해 주세요."
그 순간 천계 협의관 루멘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왕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조금 안심했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정확한 예산으로 바꾸는 일이 바로 내 직업이었다.
청문회는 네 시간 넘게 이어졌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지루한 부분은 조문 비교였다. 그러나 그 조문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다. 새 규정에는 '거절·미응답·수령'을 서로 다른 코드로 관리하고, 본인의 거절이 확인된 경우 수수료 산정에서 즉시 제외하도록 적었다.
"미응답은 어떻게 합니까?" 왕국 대표가 물었다.
"동의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다만 연락을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보존 비용은 별도 심사합니다."
"그럼 비용 지원 기관의 부담이 커집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강제로 계약 상태에 둘 수는 없습니다."
오래된 회계 규칙을 고치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싸움의 모양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왕국과 마계가 상대를 의심했다. 이제는 누가 어느 비용을 지불하고, 잘못된 기록을 누가 고칠 것인지를 놓고 같은 표를 바라봤다.
표결 전에 가장 시끄러웠던 쟁점은 작은 운송업체들의 반발이었다. 회신보전소와 관련된 관리 수수료를 갑자기 중지하면, 국경에서 실제 통지를 전달하던 우편업자들의 임금까지 끊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상인조합 대표는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말했다.
"우리 사람들은 눈보라 속에서도 편지를 날랐습니다. 그 비용을 다 불법이라고 하면 누가 배달합니까?"
"실제로 수행한 배달 업무의 정당한 대금은 지급해야 합니다." 내가 답했다.
"그럼 수수료 정지는 무슨 말이오?"
"거절한 사람에게 자동 갱신 계약을 만들어 청구하는 걸 멈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보낸 우편의 대금은 근무표와 운송장으로 정산하면 됩니다."
그는 곧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우리는 운송업자들의 노동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계약 상태가 만들어 낸 추가 청구를 끊고, 진짜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돈을 주려는 것이었다.
상인조합 대표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우리 조합원 중 누가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도 다 확인해야겠군."
"네. 힘드시겠지만 그 기록이 있어야 정당하게 지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락된 수당도?"
"당연하죠."
그제야 대표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나는 그가 회의에 반대한 이유가 단지 돈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운송업자들에게는 수수료가 곧 월급이었다. 잘못된 제도를 고치느라 그들의 생계까지 끊으면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다음 증인은 중립 연락소에서 일하던 젊은 서기관이었다. 그는 자신이 자동 갱신 오류를 발견했을 때 상관이 '당분간 그대로 두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 진술만으로 책임자를 특정할 수 있습니까?" 라델이 물었다.
"아뇨. 당시 근무 명령서와 인사 기록을 대조해야 합니다."
그는 그저 기계가 이상하게 작동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고했다고 말했다. 누가 그 보고를 받았는지에 대한 수령 인장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인장을 보존 증거로 접수했다.
회의장 뒤편에서 한 기자가 내게 물었다.
"한도윤 씨는 이 제도가 전쟁을 계속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십니까?"
질문의 모양이 지나치게 단정적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확인된 건 장기 미응답 상태가 수수료를 늘리는 계산식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설계 목적이나 전쟁을 의도적으로 연장하려 했다는 주장은 아직 검증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하면 기사가 재미없는데요."
"재미없는 기사가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마왕성 회계 담당답군요."
기자는 웃고 물러났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확한 말을 하면 인기가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과장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피해자들이 또 도구가 된다.
휴식 시간에 마엔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회의 자료를 읽다가 '경계 안정 계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싸울 수 없다고 한 날부터 돈이 더 붙었다는 뜻인가?"
"지금 확인된 계산식만 보면, 미응답 상태가 오래 이어질수록 관리 비용이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다만 어르신 건에서 실제 얼마가 지급됐는지는 아직 개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는 대답을 했지."
"맞습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대답이 있었는데도 없다고 처리했으니까요."
마엔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알고 보니 참 별것도 아닌 말이군. 내 말 좀 들으라는 거."
"그 말을 들으려고 저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회의가 재개되자 나는 예산 자료를 한 장 더 제출했다. 새 제도를 운영하면 초기 검증 비용이 든다. 대신 불필요한 자동 청구와 분쟁 처리 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절감액은 아직 계산할 수 없었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 비용을 이미 절약한 돈처럼 적을 수는 없었다.
베실은 같은 생각이었다.
"첫 분기에는 시범 대상 수와 실지급액을 모두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편익도 실제로 확인된 것만 보고하겠습니다."
루멘은 천계 지원금을 그 지표와 연동하되, 이용자에게 불리한 거절률 통계를 성과 지표로 쓰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이 많이 거절했다는 이유로 직원이 불이익을 받게 만들면 또다시 동의를 강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피코는 이 복잡한 설명을 듣다가 물었다.
"그럼 오늘 누가 '싫어요'라고 말하면 그게 성공인가요?"
나는 웃었다.
"그 사람이 자기 뜻을 제대로 말했고, 우리가 그걸 그대로 기록했다면 성공이지."
"그렇군요."
피코는 자기 공책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그 옆에는 아주 삐뚤빼뚤한 글씨로 '싫어요도 대답'이라고 적었다.
제르칸은 그걸 흘끗 보더니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금 접시를 열두 개 사겠다는 말을 너희가 거절해도 괜찮다는 뜻이냐?"
"폐하, 이미 거절했습니다."
"그런가?"
"네. 결재 내역에 남아 있습니다."
마왕은 잠시 슬픈 얼굴이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은 은 접시만 검토하겠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인간의 욕망을 회계로 막는 일에는 끝이 없었다.
오후 늦게 표결이 진행됐다. 공동 심의에 참여한 각 기관이 서로 다른 권한을 행사했다. 왕국은 구형 자동 갱신의 신규 적용을 즉시 중지하기로 했고, 중립 기록소는 당사자 재확인 창구를 유지하기로 했다. 천상 관리단은 시범 지원금의 사용 증빙을 공개 범위 안에서 확인하기로 했다. 마왕성은 정정 작업에 필요한 직원 파견을 유급 근무로 처리하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았다. 과거 모든 청구서를 취소한 것도 아니고, 피해금 환수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서가 살아 움직였다. 앞으로 새롭게 잘못 청구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생겼다.
청문회가 끝날 즈음 회의장 뒤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회신보전소의 오래된 자동 장치가 또 통지를 발송한 것이다. 내용은 '금일 회의 참석자의 응답이 없으므로 갱신 처리'였다.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이걸 보냈습니까?"
마레나가 통신석을 들고 대답했다.
"중앙 정산기가 보냈습니다. 새 규정을 아직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바르텐이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제가 정지 권한을 신청하겠습니다."
"신청만 하면 늦습니다. 임시 지급 차단 조치는 지금 가능하죠?"
베실이 즉시 지급망을 확인했다.
"네. 실지급 통로는 오늘 심의로 일시 차단할 권한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자동 통지의 효력을 정지하고 수신자에게 별도의 정정 안내를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고 나서야 회의실에 다시 숨소리가 돌아왔다.
마엔이 낮게 웃었다.
"그놈의 기계는 마지막까지 말을 안 듣는구먼."
"그래서 사람이 지켜봐야죠." 내가 말했다.
아레인이 청문회 최종 확인서를 내게 건넸다. 문서에는 네 기관의 서명과 발효 시각이 적혀 있었다.
"오늘 안건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는 서명을 확인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세상을 구한 게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의 거절을 거절로 읽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루멘이 나를 불렀다.
"윤서진이라는 이름에 관한 중립 기록소의 연락 요청이 전달됐다고 들었습니다."
"네. 상대에게 연락할 수 있는지 확인 중입니다."
"관리단의 옛 자료에 그 이름과 유사한 필체 표본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의 없이 공유할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처럼 정식 확인을 요청해 주세요."
루멘이 웃었다.
"도윤 씨는 기다리는 데 익숙해졌군요."
"익숙해진 게 아니라 연습하고 있습니다."
숙소 방에 들어서자 피코가 내게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오늘 회의 잘했어요. 상이에요."
"네 돈으로 샀어?"
"네! 영수증도 있어요!"
피코가 자랑스럽게 펼친 영수증에는 과자 한 봉지 값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나는 웃으며 과자를 받았다.
그날 밤, 중립 기록소에서 봉인된 연락 요청의 진행 상태가 도착했다.
[전달 대상 확인 완료. 수신자의 회신 의사 확인 대기.]
처음으로 '전달 대상 확인 완료'라는 문구가 진짜 사람에게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통신석을 끄고 오래간만에 편안히 잠들었다.
제16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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