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포대가 마왕성 근처에 있었다.
그 자체로 죄가 되는 일은 아니다. 무역이라는 게 원래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니까.
문제는 전쟁 중이라는 점이었다.
서로 죽이겠다고 싸우는 나라끼리 물건을 거래한다면, 적어도 누가 무엇을 팔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이 포대 어디서 났어요?”
짐꾼은 억울한 얼굴이었다.
“중고 포대 상점에서 샀습니다.”
“중고 포대 상점이요?”
“네. 멀쩡한 포대를 버리는 게 아깝잖아요.”
그렇지.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로고 하나 보고 밀수라고 생각한 나도 썩 훌륭한 감사 담당자는 아니었다.
“영수증 있습니까?”
짐꾼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상점 이름, 구매 날짜, 수량. 다 적혀 있었다.
루시아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포대 하나에도 영수증을 주는가?”
“여기는 줍니다.”
나는 짐꾼에게 고개를 숙였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럼 가도 됩니까?”
“네. 바퀴 고치는 건 도와드릴까요?”
루시아가 신이 나서 마차를 번쩍 들었다. 짐꾼 둘은 입을 쩍 벌렸다.
“저, 저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회사 직원입니다.”
“엄청난 분이시네요.”
“그렇죠. 보고서만 안 맡기면요.”
루시아가 마차를 내려놓으며 내 쪽을 흘겨봤다.
아무튼 우리는 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포대에 붙어 있던 상점의 주소를 조사 기록에 남겼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나중에 판단할 일이었다.
그날 오후, 마왕성 재정실에 손님이 왔다.
왕국 쪽 상인이라고 했다.
이름은 보르크.
왕도 밖에서 내게 짐마차를 태워 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이고, 도윤 씨!”
“보르크 씨!”
나는 반가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장사하러 왔지. 그런데 소문 들었소. 용사가 마왕성 재정실에 들어갔다고!”
“소문이 빠르네요.”
“빠르긴. 이제 왕도에서는 그대 머리에 뿔이 났다는 얘기까지 돈다오.”
나는 머리를 만졌다.
다행히 아직 멀쩡했다.
보르크는 자리에 앉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국에서 수배 전단을 새로 찍었다오.”
그가 펼친 종이에는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접니까?”
그림 속 남자는 턱이 네모지고 눈빛이 살벌했다. 몸집도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왕국의 화가가 용사를 무섭게 그렸나 봐.”
“아니, 이 정도면 다른 사람인데요.”
상금은 금화 백 닢에서 백오십 닢으로 올랐다.
와.
입사 축하금도 못 받은 신입 직원 몸값만 계속 오르고 있었다.
보르크가 서류를 하나 더 꺼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이거요.”
왕국 상업길드의 통행 허가서였다. 마계와 왕국 사이의 일부 교역로에 대한 특별 허가가 적혀 있었다.
“전쟁 중인데 이런 게 발급됩니까?”
“곡물이나 의료 물자는 종종 통과하지. 서로 굶어 죽으면 장사도 끝이니까.”
의외로 합리적인 이야기다.
“다만 최근에 허가가 늘었소. 특히 철 관련 물건이.”
내 귀가 번쩍 뜨였다.
“철이요?”
“광석, 부품, 수리 자재. 품목 이름은 제각각이라오.”
“상단 이름은요?”
“흑산 상단과 관련된 하청들이 많았지.”
이름이 또 나왔다.
나는 보르크에게 증빙 사본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어렵소. 왕국 길드가 최근 기록을 외부에 안 보여 주거든.”
“왜요?”
“전쟁 물자 보안이라더군.”
편리한 말이다. 기밀이라고 하면 모든 서류가 닫힌다.
그렇다고 지금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는 없다. 보르크는 단지 상인이었고, 거래 허가가 없는 정보를 훔쳐 오라는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공개된 허가 목록만 확인하기로 했다.
보르크는 돌아가기 전 뜻밖의 말을 했다.
“도윤 씨. 왕도에서는 자네가 마왕에게 붙었다고 욕하는 사람이 많소.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른 말도 나오지.”
“무슨 말인데요?”
“마왕성에서 계약서대로 돈을 준다더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요?”
“왕도에서는 그래.”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왕국과 마왕성은 서로를 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누가 착한지 묻기 전에 계약서부터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르크가 떠난 뒤, 몰트가 조용히 물었다.
“저 인간을 믿을 수 있나?”
“좋은 사람인 건 압니다. 다만 그 사람이 본 것과 들은 건 구분해야죠.”
“냉정하군.”
“일이니까요.”
그날 밤 나는 특별 허가 목록을 정리했다. 철 관련 교역이 늘어난 시점과 제17군단의 검 구매가 이루어진 시점이 놀랄 만큼 가까웠다.
단순한 거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확인할 가치가 있다.
마지막 문서에는 출발지 하나가 적혀 있었다.
[왕국 동부 제4병기창]
왕국의 군수 물자가 마왕성 쪽 교역로에 올라탔다는 뜻이었다.
정확히 무엇을 실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제 사건은 우리 회사 안에서만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1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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