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중앙 합동운영국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평범했다.
입구에 칼을 든 기사도 없고 천사가 날아다니지도 않았다. 대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번호표를 뽑고 있었다. 그중에는 종이 열 뭉치를 들고 있는 노부인과, 반쯤 녹은 마력석을 양손으로 받친 상인이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피코가 물었다.
"원래는 여러 기관이 함께 쓰는 업무를 조정하는 곳이지."
"그럼 같이 하면 더 빨라야 하지 않아요?"
"그게 정상인데, 아직 배우는 중인가 봐."
우리 앞의 안내판에는 '동의대행실'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 아래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주 업무: 본인 확인이 어려운 긴급 상황에서 임시 행정 절차를 대행.]
나는 안내문을 두 번 읽었다. 긴급 상황이라는 말은 중요했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옮기거나 적의 공격을 피해 문서를 우선 접수해야 할 때, 모든 결재를 기다릴 수는 없다. 문제는 임시 조치가 언제 끝나야 하느냐였다.
대기실 창구에 앉은 직원이 우리 신분을 확인했다.
"마왕성 회계 담당이 중앙 본청에 오셨다고요?"
"네. 정식 면담 예약을 했습니다."
"왕국과 마계의 전쟁 관련 업무라면 별도 승인이 필요한데요."
"저희 신청 목적은 전쟁 지휘가 아니라 자동 갱신 장치의 민원 처리입니다."
"그럼 서류 종류가 달라집니다."
직원은 내 신청서를 받았다가 다른 줄에 끼웠다. 내 뒤에서 기다리던 노부인이 말했다.
"저 청년은 자리가 바뀌어도 표정이 안 바뀌네."
"마왕성에서 일합니다. 이 정도는 평화로워요."
"그렇다면 취직 자리가 있나?"
"일단 지원서부터 보셔야 합니다."
노부인이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 조금 힘을 얻었다.
바르텐의 사무실로 가기 전에 우리는 합동운영국 자료실에서 오래된 조직도를 확인했다. 이름만 놓고 보면 '동의대행실'은 정말 위험했다. 하지만 첫 정관에는 '본인 의사 확인이 불가능할 때 긴급 이동 및 보관 업무를 임시 처리하는 부서'라고 쓰여 있었다.
"그럼 그때는 도움이 됐겠네요." 피코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어. 폭격이나 화재가 났을 때 일일이 서명을 받느라 사람을 못 구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지금은요?"
"지금은 긴급 상황이 끝났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빠진 것 같아."
라델이 몇 해 전 작성된 감사 의견서를 펼쳤다. 문서에는 구형 설비의 자동 처리 비율이 올라간 이유를 설명하는 수치가 있었다. 직원이 직접 처리하는 건은 줄었고, 자동 처리는 늘었다. 처리 속도만 보면 효율이 개선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류가 발견된 건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별도 민원 통계로 빠져 있습니다."
"그럼 효율 지표에는 반영하지 않은 거군요."
라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본청에서 보고할 때 이 수치만 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숫자를 다시 읽었다. 인사 고과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가장 편한 방식으로 성과를 측정하면 사람들은 편한 숫자만 키운다. 고객 불만을 처리하지 않고 '응답 완료'를 많이 찍는 식이다. 마왕도 예전에 전투 승리 횟수를 늘리려고 훈련용 허수아비와 매일 싸우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보고서에 실제 이의신청 처리율을 붙여야겠네요."
"그 자료는 공개 요청을 해야 합니다."
"하겠습니다."
라델은 잠시 웃었다.
"이상하게 도윤 씨가 오면 신청서부터 늘어나는군요."
"저도 그 사실이 슬픕니다."
복도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안내 마법이 계속 울렸다. 그런데 번호표를 들고 있는 한 상인이 몇 번이나 불렸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직원이 알아보니 상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는 글씨로 된 호출 안내를 요청했지만, 기계는 음성으로만 번호를 불렀다.
루시아가 곧장 안내 직원에게 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직원은 당장 종이에 번호를 써서 보여 주었고, 다른 대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런 조치도 규정이 있어야 합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따로 없어서 제가 임시로 해 드렸습니다." 직원이 답했다.
"그럼 다음에는 누구도 기다리다 지치지 않게 적어 두세요."
직원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작은 일이 오늘 우리가 하려는 면담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치가 일하는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친절한 직원 한 명이 없을 때 같은 일이 반복된다.
면담을 기다리는 동안 피코는 중앙 본청의 직원 식당을 발견했다. 그는 메뉴판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이 됐다.
"도윤 님, 왕국 공무원도 당근을 먹어요?"
"당연하지."
"마왕성만 당근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건 제르칸 폐하가 직접 기른다는 소문도 있지."
"거짓말이죠?"
"응. 나도 알아."
왕국 식당의 수프는 마왕성 것보다 싱거웠다. 피코는 숟가락으로 국을 저으며 푸념했다. 나는 그에게 근무 중 다른 기관의 급식을 맛보는 일도 출장 기록에 써야 할 수 있다고 알려 줬다.
"그러면 맛 평가도 해야 해요?"
"그건 네 개인 의견이야."
"그럼 맛없다고 적을게요."
"좀 부드럽게 써."
"마왕성 수프가 더 맛있음."
그건 아주 정확한 평가였다. 덕분에 긴장된 면담 전에 조금 웃을 수 있었다.
면담실 앞에서 바르텐의 비서가 우리를 멈췄다. 조사자료의 유출 방지 서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서약문을 끝까지 읽었다. 자료를 무단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합리적이었지만, 한 문장은 이상했다.
[본 면담의 기록은 이후 어떠한 이의신청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서명할 수 없습니다."
비서가 당황했다.
"표준 양식인데요."
"사실을 확인하러 왔는데, 확인한 사실을 정정 신청에 못 쓰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공개 제한은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정당한 절차 사용권까지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라델이 양식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해당 문장은 삭제되고, 정식 비밀 유지 범위만 남았다.
"매번 이러실 겁니까?" 비서가 물었다.
나는 웃었다.
"아마 당분간은요."
이제야 우리는 바르텐의 문을 두드릴 준비가 됐다.
바르텐 심사관은 예상보다 나이가 많지 않았다. 단정한 회색 머리에 지나치게 반듯한 옷깃. 책상 한쪽에는 딸이 그린 듯한 삐뚤빼뚤한 가족 그림이 놓여 있었다. 악당의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상적이었다.
"한도윤 씨. 그동안 보내신 열람 신청서를 많이 봤습니다."
"접수만 하지 말고 답도 보내 주시면 더 좋았을 텐데요."
그는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제 직업병입니다."
라델이 정식 면담의 범위를 설명했다. 우리는 누가 고장 난 도선을 설치했는지, 실패 보고가 왜 공식 문서에서 빠졌는지, 금화 열 닢의 시험 보수료가 어떤 결과물에 지급됐는지 묻기로 했다.
바르텐은 한 가지부터 바로잡았다.
"동의대행실은 사람의 동의를 마음대로 만드는 부서가 아닙니다. 이 부서는 원래 피난 중인 사람들의 임시 보관·이동 동의를 대체 기록하던 곳입니다."
"그럼 본인 확인을 다시 해야 하겠죠."
"당연합니다."
"그런데 재확인되지 않은 기록이 십육 년째 남아 있습니다."
바르텐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오래된 시스템입니다."
"오래됐다고 기능이 저절로 올바르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맞습니다. 다만 그걸 고치는 비용은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나는 레타의 시험 기록 인증 사본을 책상에 놓았다. '네 차례 모두 실패'와 공식 보고서의 '재발송 완료'를 나란히 보여 줬다.
"여기서 왜 '거절 처리 실패'가 빠졌습니까?"
바르텐은 서류를 살핀 뒤 답했다.
"최종 보고 양식을 바꾸면서 시험 목적을 '발송 가능 여부'로 축소했습니다."
"누가 바꿨습니까?"
"제 부서입니다. 저는 승인했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변명이기도 했지만 책임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 이미 실패를 알고 있었습니까?"
그는 잠시 망설였다.
"기술사 의견이 있다는 보고는 받았습니다. 다만 긴급 발송 기능은 유지해야 했습니다."
"긴급 발송을 유지하는 것과 거절을 자동 갱신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보니 그렇습니다."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났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키우지는 않았다. 서류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분리해야 했다.
"그럼 바르텐 심사관께서 승인한 건 사실이군요. 승인 목적이 기능 유지였다는 설명은 기록으로 확인해야 하고요."
"그렇습니다."
루시아가 낮게 말했다.
"사람이 거절했는데 계속 일하라고 부르는 건, 명령을 가장한 협박입니다."
바르텐은 그녀의 견장을 바라봤다.
"기사단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볍게 들리지는 않는군요."
"무겁게 들으셔야죠."
나는 그 말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루시아는 칼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날카로웠다.
금화 열 닢에 대해서도 답을 들었다. 유지 보수업체에 직접 전달된 돈이 아니라, 동의대행실이 시험 데이터 정리와 임시 업무 인력을 고용하는 데 사용한 비용이었다. 실제 지출 영수증이 일부 있었다.
"열 닢 모두 실제로 인건비로 사용됐습니까?"
"현재 확인된 건 일곱 닢입니다. 나머지 세 닢은 정산 중입니다."
"미정산이면 미정산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바르텐은 잠시 내 눈을 보더니 기록 담당자에게 말했다.
"그렇게 수정해 주세요."
그날 우리가 확인한 첫 번째 책임은 분명했다. 바르텐이 실패 정보를 축소한 보고서를 승인했다. 그러나 모든 피해를 그 혼자 기획했다고 주장할 증거는 없었다. 구형 규정은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면담이 끝나기 전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저는 위험을 알고도 발송 기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경이 무너지고 있던 때였거든요. 의료진에게 보내는 피난 통보가 하루 늦으면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판단이 필요했을 수는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는군요."
"아뇨. 그럴 수 있다는 뜻과 이후에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다릅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개선 항목 네 개에 합의했다. 새로운 강제 갱신 금지, 과거 이의 접수 건의 재검토, 피해 당사자의 연락처 보호, 기술사 레타의 원본 시험 기록 보존. 마지막 항목은 공식 조사에서 승인권자의 책임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선 공문을 들고 복도에 나왔을 때 새 문제가 우리를 기다렸다. 노부인이 창구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경계 복귀 수당을 받았다는 이유로 연금을 환수하겠다는 통지가 왔다고 했다.
"저희 남편은 돌아가셨어요. 왜 출근했다고 하는 거죠?"
창구 직원이 설명했다.
"전산상 계속 임시 복귀 상태입니다."
나는 아까 바르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긴급 발송이 필요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능이 사람을 죽은 뒤에도 계속 출근시키면, 그때부터는 다른 문제가 된다.
"이분의 민원 접수번호가 있습니까?"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외부 기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닙니다."
"개인 정보는 필요 없습니다. 본인이 원하시면 정식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만 안내해 주세요."
노부인은 내 팔을 붙잡았다.
"도와줄 수 있어요?"
"당장 결과를 약속할 수는 없어요. 대신 접수한 종이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데는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델이 왕국의 공식 유족 지원 창구와 연결해 주었다. 우리는 동의서의 빈칸을 남기고 노부인이 스스로 읽고 서명할 시간을 드렸다.
피코는 그녀 앞에 물 한 잔을 놓았다.
"울지 마세요. 저희 실장님도 오래 살았어요."
몰트가 저쪽에서 뼈를 울리며 대답했다.
"피코, 그 말은 위로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위로해요?"
"옆에 있어 드리면 됩니다."
피코는 정말 조용히 옆에 앉았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마왕성으로 돌아온 저녁, 바르텐에게서 확인 문서 한 장이 도착했다. 그가 승인했던 시험 보고의 원본 누락 사실을 인정하고 중앙 감찰반의 조사에 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끝부분에 다른 문구가 있었다.
[합동운영국 동의대행실의 구형 처리 결과는 `00-성전` 계정의 계약 유지 수수료 계산에 일부 연동됨.]
내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드디어 실수가 돈으로 연결되는 구체적인 통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베실에게 연락했다.
"이 연동이 실제 수수료 지급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베실은 짧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 명세를 찾았습니다. 다만 보시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왜요?"
"숫자보다 사람 이름이 더 많습니다."
나는 통신석을 내려놓았다. 숫자보다 사람이 많은 장부라니.
그 장부가 지금까지 숨겨 놓은 것은 돈이 아니라, 계속해서 대답을 기다리게 된 사람들이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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