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에 도착한 순간, 제르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한도윤! 네가 없는 동안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
"또 버섯입니까?"
"아니다."
"황금 접시요?"
"아니다!"
"그럼 마왕성 붕괴 위기인가요?"
"아니다! 내가 직접 서명한 직원 포상장이 반송됐다!"
나는 마왕이 든 포상장을 살펴봤다. 종이 한복판에 '세계 최고의 충성스러운 직원'이라는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수신인 칸은 비어 있었다.
"누구한테 주실 거였는데요?"
"전 직원에게!"
"전 직원이면 이름을 쓰셔야 합니다."
"모두가 내 부하인데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나는 어제 조사한 회신보전소를 떠올렸다. 이름과 답변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관들은 결국 꼭 이런 사고를 낸다.
"그럼 폐하부터 직원 명부를 읽어 보세요."
"그 많은 이름을?"
"포상장을 보내시려면요."
제르칸은 결국 몰트에게 직원 명부를 빌렸다. 마왕의 대단한 위엄이 인사 행정 앞에서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바르텐 심사관의 이름을 다시 읽었다. 중앙 합동운영국 계약심사관. 일 년 전 경계 회신업무 통합관리실의 창고 열쇠를 반출한 사람. 그렇다고 그가 불법 도선을 직접 설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열쇠를 빌려 문서만 확인했을 수도 있었다.
"바르텐에 대한 감사 요청을 넣겠습니까?" 몰트가 물었다.
"먼저 작업 지시서부터요. 열쇠 반출 기록과 실제 작업 기록을 맞춰야 합니다."
"매우 신중하군요."
"지난번엔 성급히 추정했다가 임시 이름표를 정식 소환 계약으로 착각할 뻔했으니까요."
몰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 얼굴로 표정을 읽기는 어렵지만, 그가 나를 신뢰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루에도 다섯 번씩 내 책상 위에 장부를 더 올려놓는 걸 보면 말이다. 괴롭히는 게 아니라 신뢰라고 믿기로 했다.
바르텐의 소속 기관에서 답변이 오기까지 이틀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그 사이에 회신보전소의 과거 이용자 한 명을 찾아갔다. 개인 기록은 열람할 수 없었기에, 마레나가 자발적으로 공개 상담을 신청한 퇴역 경비병과 연결해 주었다.
그의 이름은 마엔이었다. 양쪽 무릎이 불편해 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마왕성 북쪽에서 멀지 않은 경계 마을에 살았다.
"대체 왜 여기까지 찾아왔소?" 그가 문을 열며 물었다.
"오래전 제출하신 거절 신청이 계속 유효하게 반영됐는지 확인하려고요."
마엔은 잠시 내 얼굴을 보다 피식 웃었다.
"거절이 유효하냐고? 좋은 말이군. 난 열두 번 거절했는데, 그놈들은 내가 열두 번 신청했다고 하더군."
그의 작은 집에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봉투가 있었다. 연금 지급 안내, 경계 근무 재계약 요청, 그리고 회신보전소가 보낸 재발송 통지였다. 마엔은 젊을 때 왕국과 마계가 맞닿은 관문에서 임시 경비를 섰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부상당해 그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자꾸 복귀 명령이 와. 답장을 보내면 '접수했습니다'라고 오지. 며칠 뒤엔 다시 계약 갱신이라고 하고."
"답장을 증명할 자료가 있습니까?"
그가 낡은 상자를 열었다. 보내지 않은 편지들이 아니라, 보냈던 편지의 접수증이었다. 열두 장의 종이에 날짜와 창구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는 마엔의 서명이 아닌 작은 기계 표식이 있었다.
"직접 서명하신 건 어느 칸입니까?"
"맨 위지. 아래 도장은 내 것이 아니오."
내가 확인한 문서에도 그런 표식이 여러 번 등장했었다. `0003`. 대리번호를 떠올렸지만 무턱대고 연결하지 않았다. 이 표식은 마엔의 문서에서는 수신 확인용 장치의 관리 코드였을 수 있었다.
나는 마엔의 허락을 받아 표식 부분만 사본으로 만들었다.
"이 기록 때문에 돈을 내신 적이 있습니까?"
"훈련복 반납료를 두 번 냈소. 안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반납 명령이 재발송됐거든."
"영수증을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왜 이 종이들을 안 버렸겠소?"
그의 말에 가슴이 조금 저렸다. 누군가의 삶을 서류가 계속 부정할 때, 사람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영수증을 쌓아 둔다.
루시아는 창가에 서서 말이 없었다. 마엔은 그녀가 찬 기사단장의 견장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기사단장님은 이런 행정을 모르시겠지."
"모르면 알아야죠." 루시아가 대답했다. "저도 내 부하 중 누군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화가 났을 겁니다."
"칼로 해결하실 건가?"
"그러고 싶지만 오늘은 도윤에게 배우는 중입니다."
"그럼 아주 대단한 사람을 데려왔구먼."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저는 일단 종이를 셉니다."
점심은 마엔이 만든 콩 수프였다. 피코는 한 숟갈 먹고 눈을 크게 떴다.
"맛있어요!"
"기사가 아닌 꼬마도 잘 먹는군."
"저는 회계과 직원이에요. 월급도 받아요!"
"아주 좋은 회사인가 보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회사가 좋다기보다 우리가 회사를 조금씩 고쳐 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다음 달에 마왕이 황금 왕좌를 다섯 개 사겠다고 나서면 다시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재정 전쟁 말이다.
마엔은 수프를 다 먹은 뒤 나를 뒷방으로 불렀다. 그곳에는 다리가 한쪽 부러진 작은 갑옷 거치대가 있었다. 한때 경계에 서던 시절의 갑옷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계속 싸우고 싶었소.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는 거치대 옆의 낡은 투구를 만졌다.
"그런데 부상당하고 나니 문턱을 넘어가는 것부터 힘들더군. 관문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통지가 올 때마다 죄를 지은 것처럼 느꼈소."
"그래서 거절 편지를 쓰셨습니까?"
"첫 편지는 아주 길었소. 나라를 위해 애썼다는 말도 쓰고,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도 적었지. 두 번째는 짧아졌고. 열두 번째엔 딱 한 줄 썼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상자 속 접수증을 떠올렸다. 마엔이 열두 번 같은 뜻을 말하는 동안 제도는 열두 번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말하는 사람보다 받는 장치가 더 완고했다.
"군에서 정식으로 퇴역 처리를 받으신 기록도 있습니까?"
마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을 열었다. 날짜가 또렷한 퇴역 확인서였다. 그것은 왕국 군무부가 발행한 문서였고, 회신보전소의 기록보다 먼저 작성됐다.
"그럼 이상하네요. 이미 퇴역한 분에게 복귀 계약이 계속 날아왔으니까요."
"그래서 더 화가 났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믿으면서 내 말은 안 믿으니까."
나는 퇴역 확인서의 번호만 적었다. 원본을 함부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당사자 동의를 받아 기관에 사실 조회를 하면 충분했다.
마엔은 내게 작은 나무 새 한 마리를 보여 줬다. 손으로 깎아 만든 장난감이었다. 손녀에게 주려고 만들었는데, 마지막 깃털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돌아오라는 편지가 오지 않는 날이 생기면, 그때 이걸 끝낼 생각이었소."
"그날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손녀가 더 자라면 이런 건 안 좋아할 테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수료 네 닢, 시험 보수료 열 닢 같은 숫자들이 가끔 너무 멀리 느껴졌는데, 나무 새의 미완성 날개는 아주 가까웠다.
집을 나서자 피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엔 할아버지는 왜 편지를 안 버렸어요?"
"자기가 거절했다는 걸 나중에라도 보여 주려고."
"그런데 편지 쓰는 게 힘들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같은 편지를 열두 번 쓰게 만드는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 거야."
피코가 새삼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면 세 번째에 울었을 거예요."
"나도 그랬을 것 같아."
루시아가 말없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그녀는 마엔의 집을 한 번 더 돌아봤다. 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검을 더 들 수 없는 사람이 왜 증명서를 들고 싸워야 했는지 이해하려는 표정이었다.
마엔의 집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예전 회신보전소 건물을 둘러보기 위해 허가를 받았다. 라델은 이곳이 현재 사용되지 않는 국유 건물이며, 지하 문서함은 일부 보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옛 보전소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안전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지붕 아래의 목재 보가 썩어 있었던 것이다. 이스카는 내부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멈춰 세웠다.
"기록이 아무리 중요해도 지붕이 무너질 수 있는 장소에 무턱대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루시아가 즉시 보를 받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스카는 그 방법을 거절했다. 기사단장의 힘으로 한순간 붙들 수는 있어도, 조사에 필요한 시간 동안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시설 관리부에 연락해 임시 지지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작업자에게 적정한 수당을 지급한다는 계약이 확인된 뒤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루시아는 정말로 일손이 필요할 때만 무거운 부품을 옮겼다.
"이런 현장도 이제 익숙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기사단 훈련보다 재미있습니까?"
"위험을 줄이는 훈련이라면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나는 웃었다. 무너지는 지붕 아래서 검을 뽑지 않는 기사단장. 처음 마왕성에 왔을 때는 상상도 못 한 광경이었다.
건물 안의 벽글씨를 기록할 때 아레인은 날짜 추정도 신중하게 했다. 숯가루의 상태로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었고, 누군가 후대에 남긴 문장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탁본에 '작성자·작성 시기 미확인'이라고 크게 적었다.
피코는 글씨를 보며 말했다.
"돌아오지 않겠다는 답도 대답이다. 이건 정말 중요한 말이네요."
"그렇지."
"도윤 님이 한국 안 돌아가겠다고 한 것도 대답이에요?"
"나는 아직 '당장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지. 아예 안 간다는 뜻은 아니야."
"아, 다르네요."
"아주 달라."
그 구분을 피코가 이해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 세계의 오래된 장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건물 안에는 오래된 분류함이 남아 있었다. '수취인 거절', '주소 불명', '사망 확인', '응답 대기'라는 표시가 선명했다. 그런데 바닥의 배수로를 따라 들어가니 분류함 뒤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마력선이 보였다.
한쪽은 반송 처리 장치로, 다른 한쪽은 자동 갱신 장치로 이어졌다. 나는 현장에서 사진처럼 보존되는 마력 탁본을 떴다. 임의로 선을 잘라 버리면 나중에 누가 설치했는지 증명할 수 없으니 손대지 않았다.
"너무 위험한 장치 아닙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구형 설비라 지금도 연결돼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합니다."
이스카가 멀리서 파견되어 장치를 검사했다. 그녀는 낡은 접합면에 새로운 납땜 흔적을 발견했다.
"바깥의 자동 정산기로 전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고친 곳도 있네요."
"얼마나 최근이요?"
"연도를 알 수 있는 표시는 없습니다. 재료 분석을 해 봐야죠."
그 순간 피코가 작은 창문 아래를 가리켰다.
"저거, 사람 손글씨 아니에요?"
먼지 낀 벽에는 누군가 굵은 숯으로 적어 놓은 문장이 있었다.
[돌아오지 않겠다는 답도 대답이다.]
나는 한참 그 문장을 들여다봤다. 봉인물 6-17의 한국어 문장과 뜻이 닮아 있었다. 그렇다고 같은 사람이 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거절 의사를 무시당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것도 보존합시다." 내가 말했다.
아레인은 사진 기록을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벽글씨는 흔적도 지워지기 쉽습니다. 원문 맥락을 확인할 때까지 훼손하지 않겠습니다."
그날 저녁 마레나에게서 구형 설비 보수대장의 사본이 도착했다. 작년 봄, '거절함과 재발송함의 연계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작업 승인을 받은 기록이었다. 승인자는 바르텐. 작업자는 외부 기술업체. 작업 범위에는 자동 갱신 회로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러면 계약 범위를 넘어선 작업이 있었을 수 있겠군요." 라델이 말했다.
"그런데 작업자가 현장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직 몰라요."
나는 사본의 뒷장까지 넘겼다. 수리비 총액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검사 결과였다.
[거절 우편 1건 시범 발송. 결과: 재발송 완료.]
거절 우편을 보내 놓고 결과가 재발송 완료라니.
"시험을 잘못한 게 아니라, 실패를 성공으로 적어 놓은 건 아닐까요?" 피코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처럼 보이는 피코가 가장 정확한 질문을 했다.
"그럴 수도 있어. 그래서 당시 시험에 참여한 사람을 만나 봐야겠어."
작업자 명단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장 기술사: 레타. 서명 옆 주석: 지시와 달리 작동함.]
나는 그 주석에 표시를 했다. 이 사건에는 적어도 한 명, 잘못 돌아가는 장치를 보고 이상하다고 쓴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의견이 누구 손에서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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