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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60화
PAYLUA ORIGINAL · 제160화

160화. 아무도 대신 읽지 않은 문장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307자

오프라인 책장
마왕성 대회의실에 왕국, 중립 기록관, 공동 보증 회계소, 천상 교역 관리단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였다. 제르칸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왕좌에 앉았다. “드디어 모든 나라가 내 성을 찾아왔구나!” “폐하, 이건 공동 기록 검증 회의입니다.” “그래도 다들 내 성에 왔다.” “간식 예산은 여덟 명 기준으로 신청했는데 열두 명이 오셨습니다.” “그건 내가 해결하겠다!” 마왕은 주방을 향해 외쳤다. “손님들에게 최고의 황금 접시를 내오너라!” “접시는 더 만들지 마세요!” 내가 소리쳤다. “빵만 네 개 더 주시면 됩니다!” 잠시 뒤 주방장이 한숨을 쉬며 빵 네 개를 더 가져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외교 협상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회의의 안건은 세 가지였다. 특별 봉인물 6-17과 중립 기록소의 긴급 접수장 사이의 이관 경로를 검증할 것. 실제 보존 비용을 확인해 정당한 지급 책임을 정할 것. 그리고 내 이름이 들어간 한국어 원문을 어떤 범위까지 열람할지 논의할 것. 라델이 자료를 펼쳤다. “왕국 안전 보관소는 폭풍 후 닷새째 중립 기록소에서 긴급 문서 한 건을 넘겨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제6정산금고에도 같은 날 출처 미확인 문서 한 건이 들어왔습니다.” “같은 문서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아레인이 물었다. “운송표에 기록된 무게와 포장 설명이 유사합니다. 하지만 고유 접수번호가 없으므로 확정하진 못합니다.” 베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용 기록도 비슷합니다. 닷새간 임시 보관료 청구는 확인됐지만 실제 지급은 여전히 미확인입니다.” 천상 관리단 협의관 루멘이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저희 쪽 6-17-A 계정은 특별 보존 지원 가능 항목으로 보입니다. 원본을 매입한 증거는 없고요.” 모든 서류가 가리키는 방향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하지만 중심에는 여전히 구멍이 있었다. 한글 문서가 어디서 처음 작성됐는지, 누가 부탁했는지, 왜 내 이름이 적혀 있는지. “그러면 오늘 원본을 더 열람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이스카가 대답했다. “접힌 안쪽 중에서 신청 당사자와 직접 관련된 문장의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상 정보는 가립니다. 종이 상태가 나빠서 완전히 펼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이 먼저입니다.” 제르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종이 하나를 왜 이렇게 귀하게 대하느냐?” “누군가 오래전에 지키려고 애쓴 물건입니다.” 마왕은 잠시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내 왕관만큼 귀하군.” “아마 더 귀할지도요.” “그 말은 듣기 싫다.” “그래도 보고서에는 그렇게 적겠습니다.” 공동회의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차지한 건 뜻밖에도 원문이 아니라 보존 비용이었다. 천상 관리단은 자신들이 일부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다고 했지만, 왕국은 원본 보존 의무를 넘겨주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조심했다. “그럼 비용만 지원하고 원본 권한은 그대로 둘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루멘이 답했다. “가능합니다. 다만 내부 회계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그동안 원본 인수 비용과 보존 지원 비용을 한 묶음으로 처리했으니까요.” “그걸 먼저 분리해야겠네요.” 베실은 작은 계산판에 세 가지 항목을 적었다. 긴급 지붕 보수비, 정규 보존관 인건비, 원문 감정 비용. 첫 번째는 실제 작업 계약이 완료돼 정산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기존 지급 의무를 확인하면 된다. 세 번째는 아직 미완료였으므로 선결제할 이유가 없었다. “천상 관리단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어느 부분입니까?” “긴급 보수비와 향후 보존 인력 비용 일부입니다.” “그럼 지정 기부금처럼 처리할 수 있겠네요. 원본 소유·열람권의 변경이 없다는 조건을 명시하면요.” 루멘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 상부 승인만 남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이세계 어느 기관에서든 가장 강력한 마법은 상부 승인이다. 심지어 천사들도 그 앞에서는 날개를 접는 것 같다. 그날 심의장에는 직접 작업한 브렌도 참석했다. 그는 자신의 보수 작업 확인서에 날짜와 실제 사용 재료를 적어 왔다. “나는 이런 큰 회의엔 익숙하지 않소. 지붕이 비 새지 않는 것만 확인하면 됐지.” “그런 확인이 제일 중요합니다.” 브렌은 날카롭게 물었다. “그런데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이 누굽니까? 왕국인지 중립 기록관인지 천상인지.” 모두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질문이 회의의 핵심이었다. 공동 책임이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아무도 정산 담당을 맡지 않으면 현장 기술자는 돈을 못 받는다. 베실이 대답했다. “이번 긴급 보수는 왕국 시설 관리부가 계약 당사자입니다. 지원금이 나중에 들어오더라도 지급 책임은 왕국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류에 그렇게 쓰시오.” “쓰겠습니다.” 브렌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제르칸이 좋아하는 화려한 외교문서보다 이 한 줄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의가 끝나고 루멘은 나를 따로 불렀다. “한도윤 씨. 관리단에서 보존 지원을 진행하려면 옛 6-17-A 계정과 지금의 봉인물 6-17이 같은 대상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번호가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죠.” “네. 그래서 저희도 옛 계정 참조표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표의 일부가 공동 정산 계정으로 이관됐다는 겁니다.” “어떤 계정입니까?” 루멘은 잠시 망설였다. “정확한 열람 허가를 받기 전에는 이름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도윤 씨가 이전에 조사한 기록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역시 내부 자료를 마음대로 유출할 권한은 없었다. “정식 열람 요청을 넣죠. 누가 묻는지, 왜 필요한지 적어서.” 루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절차가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느껴지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아직도 귀찮고요.”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회의실 한쪽에서는 피코가 브렌의 지붕 보수 모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나무판 위로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작은 수로를 따라 흐르는 모습을 보여 주는 모형이었다. “우와. 종이 안 젖어요!” “그렇지.” 브렌이 말했다. “기술은 어려운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잘 돌아가는 거야.” 피코는 내게 말했다. “도윤 님, 저희 회사 규정도 이렇게 시험해 보면 좋겠어요.”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시험 계정과 운영 계정이 섞여 직원 일곱 명을 지웠던 일이 있었다. 새 규정도 시행 전에 실제 사용자 입장에서 연습해 볼 수 있어야 했다. “좋아. 다음엔 피코가 직원 대표로 시험해 보자.” “사탕 신청 화면부터요?” “그건 복지위원회와 상의하자.” 피코는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나는 회의록 끝에 새 항목을 추가했다. [합의 내용: 원본 관리권 유지. 보존 지원과 소유권 이전을 분리 검토. 긴급 보수 계약의 지급 책임자는 왕국 시설 관리부. 후속 확인: 관리단 6-17-A와 제6정산금고 6-17 사이 실제 참조 관계.] 읽어 보니 온통 숫자였다. 그래도 이 숫자들이 누군가의 월급과 기억을 지킬 수 있다면 조금은 괜찮은 일일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제6정산금고로 갔다. 입구의 경비 골렘은 이번에는 나를 보자 기계음으로 말했다. “마왕성 현직 회계 담당, 한도윤. 입장료 면제.” “오. 고쳤네요?” “지난 방문 후 규정 갱신.” 피코가 골렘에게 손을 흔들었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사탕은 수령하지 않습니다.” 피코가 아쉬운 얼굴이었다. 골렘도 직무 윤리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금고 내부의 임시 방수 지붕은 잘 유지되고 있었다. 브렌에게 선급한 보수비는 작업 확인서에 따라 정산됐다. 잔금은 다음 정해진 지급일에 송금되도록 처리됐고, 그 진행 상태도 확인했다. 이스카는 봉투 6-17을 꺼냈다. 우리는 전에 확인한 외부 표지와 부분 원문을 다시 살폈다. 한글로 적힌 내 이름, 그리고 문장 첫머리.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 뒤에 접힌 부분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아주 작은 빛이 종이 위를 훑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이스카가 한글 부분만 가리고 있던 유리를 움직였다. [먼저 사람의 대답을 들으세요. 기록에 이름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문장은 우리가 지난 수십 번의 회의에서 반복해 온 원칙과 같았다. 누가 썼는지 모른다. 작성 시기도 확정할 수 없다. 나를 알고 쓴 것인지,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어로 적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마치 오래전에 누군가 나보다 먼저 이 문제에 부딪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내용입니까?” 아레인이 조용히 물었다. 나는 뜻을 옮겼다. 이스카는 내가 번역한 내용을 임시 참고용으로 기록했다. 공식 번역은 다른 검수자의 확인을 받기로 했다. “한도윤 씨는 이 문장을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합니까?” “모르겠습니다.” “그게 정확한 답일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눈가가 뜨거웠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 했던 일은 명령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오래전에 ‘이름을 적었다고 허락한 건 아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피코가 손을 잡았다. “도윤 님, 괜찮으세요?” “응. 조금 놀랐어.” “좋은 글이에요?” “좋은 말인 것 같아. 사람을 사람으로 보라는 말이거든.”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마왕성 표어로 해요.” “마왕성 표어는 지금 ‘위대한 마왕의 위엄’이잖아.” “그거보다 훨씬 좋아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문서의 다른 부분에는 숫자와 낯선 문자가 있었지만 열람 대상이 아니었다. 이스카는 다시 접어 봉인했다. 나는 공개된 문장에 대한 인증 사본만 받았다. 원본을 들고 나갈 수 없다는 점은 불편했지만, 누군가의 글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 금고를 나오자 라델이 말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왕국 소환 준비국과 관계가 있을까요?” “아직 모르죠. 그런데 적어도 이 문장 자체는 소환 계약에 동의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오해를 막으려는 글이네요.” 베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이 그 문장을 읽었다면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르겠군요.” “읽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무시했을 수도 있죠. 아니면 전혀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나는 누구에게도 아직 책임을 단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분명해졌다. 내 이름이 이 세계에 먼저 나타났다고 해서 내가 선택할 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왕성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새 직원 교육 자료를 고쳤다. ‘서명 확인’과 ‘수령 확인’을 나누는 지침이 이미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를 사례로 설명하기로 했다. 루시아가 칠판에 적었다. [명령을 들었다 = 명령에 동의했다?] 피코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사탕을 받았다 = 앞으로 사탕값을 평생 갚겠다고 동의했다?] “절대 아니요!” 피코가 두 손을 흔들었다. 나는 웃었다. 직원 교육에서 피코보다 진지한 학생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왕도 슬쩍 들어와 뒤에 앉았다. 루시아가 질문했다. “폐하, 직원이 급여명세서를 받았다는 것은 임금 삭감에 동의했다는 뜻입니까?” 제르칸이 자신 있게 답했다. “아니다!” “정답입니다.” 마왕은 어깨를 쫙 폈다. “내가 어찌 그 정도를 모르겠느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몇 달 전에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상사의 성장을 칭찬하는 것도 회사 생활의 기술이다. 저녁에 아레인에게서 추가 자료가 도착했다. 제6정산금고의 봉인 봉투에 적힌 글자들이 처음부터 왕국 소환 준비국에서 작성됐다는 근거는 없었다. 대신 당시 다른 장소에서 접수된 원본을 왕국 조달 문서에 복제하면서 일부 경고 표시가 빠졌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새 대조표가 발견됐다. 대조표 끝에는 낯선 번호가 있었다. [원본 관련 재정 처리 참조: 공동 정산 계정 00-성전 / 열람 승인 대기.] 내 눈이 커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따라오던 봉인 계정이었다. 이제 한국어 원문과 연결되는 금전 기록의 단서가 처음으로 같은 표에 나타났다. 하지만 ‘참조’라고 적혔다고 실제 돈이 그 계정으로 넘어간 것은 아니다. 나는 별도 표식으로 표시하고 수첩을 덮었다. “도윤 님, 이제 비밀이 풀렸어요?” 피코가 물었다. “아직.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중요한 문장을 봤어.” “누가 쓴 건가요?” “그걸 찾는 게 다음 일이야.” 피코가 사탕 봉지를 내밀었다. “그럼 다음 일도 힘내세요.” 나는 사탕 하나를 받았다. 어쩌다 이세계에 와서 마왕성 회계사가 되었는데,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는 일. 어쩌면 그게 제일 어려운 감사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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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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