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제6정산금고의 봉인물 보존비 청구서를 받아 본 순간, 나는 커피를 뿜을 뻔했다.
[특별 보존 수당: 금화 삼십 닢.]
금화 삼십 닢이면 마왕성 일반 직원 몇 명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나는 수당 항목 옆에 붙은 설명을 읽었다.
[청구 사유: 특별 봉인물 6-17의 원문 대조 관리.]
“그 봉투 지금까지 아무도 원문을 안 읽었다고 했잖아요.”
베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청구 근거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누가 받아 갔죠?”
“아직 실제 지급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여기 찍힌 건 승인 요청 번호예요.”
나는 종이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몇 달 전 같았으면 ‘금화 삼십 닢을 횡령한 범인’을 찾겠다고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은 먼저 송금 영수증부터 찾았다. 성장한 건지, 의심이 많아진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수당이 왜 생겼는지는 알아야겠네요.”
“이전 보관 계약의 단가표를 먼저 보죠.”
우리는 중립 공동 보증 회계소를 찾았다. 베실의 사무실은 여전히 드워프의 망치 소리와 서류 넘기는 소리로 가득했다. 책상에는 누가 봐도 수명이 다한 계산판이 놓여 있었는데, 베실은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다.
“계산판이 고장 나면 갈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장 난 건 알아요. 하지만 옆에 수동 계산자가 있죠.”
“구매 승인해 드릴까요?”
“그러면 저희 직원들이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감사관으로 기억할 겁니다.”
내가 웃자 베실도 웃었다. 농담이었다. 아마도.
단가표는 명확했다. 봉인물 운송, 일반 보존, 특별 원문 감정이 각각 다른 항목이었다. 금화 삼십 닢은 원문 감정 전문가가 실제 검증을 완료했을 때만 지급되는 최고 단가였다.
“완료 확인서가 없는데 승인 요청은 왜 떴을까요?”
베실은 낡은 카드를 꺼냈다.
“구형 시스템에선 보관 기간이 일정 이상 지나면 검증 단계를 자동 완료 대상으로 올렸어요. 금액을 실제로 보내는 단계는 별개였죠.”
“그런데 새 시스템에서는?”
“완료 대상으로 올라왔다는 표지가 지급 확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또 접수를 동의로 읽던 방식하고 비슷하네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죠. 결제 승인과 실제 지급은 다른 기록입니다.”
우리는 지급 은행에 조회를 요청했다. 왕국 금융 창구에서 온 답장은 짧았다.
[금화 30닢: 승인 요청 등록. 송금 실행 없음.]
나는 의자에 기대 앉았다.
“도둑을 잡은 건 아니네요.”
“대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잘못된 지급을 막을 수 있죠.”
베실이 말했다.
봉인물 조사단의 공동 확인서를 만들어 승인 요청을 보류로 바꿨다. 담당 보관관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완수되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청구만 별도로 심사하도록 요청했다. 다만 구형 시스템 때문에 그동안 늦게 받았을 정당한 수당까지 일괄 취소하지 않도록 범위를 좁혔다.
그 과정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왕국 금고의 야간 보존관 한 명이 사무실로 찾아와 말했다.
“감사관님, 저희 야간 수당까지 없어지나요?”
“아닙니다. 특별 원문 감정 수당만 확인하는 겁니다.”
“게시판에 예산 재검토라고 붙었어요.”
“안내문을 누가 썼습니까?”
“관리실에서요.”
나는 곧장 관리실로 가 안내문을 고쳤다. 당사자들이 자기 월급이 날아간 줄 알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특별 봉인물 6-17의 미완료 감정 서비스 청구만 심사합니다. 정규 근무 수당과 야간 수당 지급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야간 보존관은 안내문을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애한테 새 겨울 신발을 사 주겠다고 했거든요.”
“살 수 있을 겁니다. 정상 수당 지급은 별도 확인해 놓겠습니다.”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가 풀었다. 내게는 몇 줄짜리 공지 수정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아이 신발 한 켤레의 문제였다.
봉인물의 보존 수당 문제를 정리하는 동안 왕국 금고의 다른 직원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야간 보존관의 동료인 젊은 인간 여성 르마도 있었다. 그녀는 질문을 하러 왔다가 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내가 물었다.
“제가 이걸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어서요.”
“먼저 들어 보죠.”
그녀는 근무표를 내밀었다. 지난달 큰비가 내렸던 날, 금고는 밤새 비상 대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근무표에는 두 사람이 휴무였던 것으로 찍혀 있었다.
“그날 저는 분명 여기 있었습니다. 골렘이 고장 나서 제가 통로를 순찰했거든요.”
“출입 기록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다만 골렘이 기록한 거라 정확하지 않대요.”
나는 그녀에게 실제로 누가 함께 근무했는지 물었다. 옆방의 야간 보존관, 경비 책임자 헤르단, 수리공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확인서와 경비 교대 일지를 대조했다.
“이 정도면 근무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겠네요.”
“그럼 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인정 여부는 담당 부서가 결정합니다. 다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르마는 오래 참았던 말을 꺼냈다.
“우리는 문서를 지키려고 밤을 새우는데, 문서에 근무 기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된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기록은 일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일한 사람을 지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베실과 함께 관련 규정과 증빙을 정리했다. 긴급 대기 수당은 일반 야간 수당과 다르게 계산됐고, 실제 근무 시간에서 휴게 시간을 제외해야 했다. 무턱대고 최대 금액을 청구하면 나중에 정당한 지급까지 문제 삼을 수 있었다.
“잠깐.” 르마가 말했다. “휴게 시간으로 적힌 두 시간도 일했어요. 그때 물을 퍼냈거든요.”
나는 다시 근무 일지를 확인했다. 청소용 양동이 반출 기록과 수리공의 호출 시각이 남아 있었다. 그 증빙 덕분에 비상 작업 시간은 휴게 시간이 아니라 근무 시간으로 정정 요청할 수 있었다.
“르마 씨, 그날 동료들과 함께 일한 시간을 적어 주세요. 다른 분들도 확인하실 수 있도록요.”
“전 사람한테 증명해 달라고 하는 게 미안했어요.”
“미안한 일 아닙니다. 서로가 일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는 거니까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근무표의 빈칸을 쓰다듬었다.
오후가 되어 왕국 인사실에서 답장이 왔다. 비상 대기 근무 기록의 수정은 승인됐고, 추가 수당은 다음 급여일에 지급하기로 했다. 아직 돈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급 예정일을 확인해 수첩에 기록했다.
“이제 된 겁니까?” 르마가 물었다.
“근무 인정은 됐습니다. 지급됐는지는 급여일에 다시 확인해야죠.”
“언제까지 그렇게 꼼꼼히 보실 거예요?”
“돈이 들어올 때까지요.”
르마는 웃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금고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수당이 돌아가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렵나 싶었다.
잠시 뒤 헤르단은 내게 낡은 접수장을 보여 줬다. 당시 비상 대기 인력 명단 옆에 작게 적힌 글씨가 있었다.
[원본 보호 임무 중. 추가 보존 인력 지원 요청.]
“지금 우리가 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네요.” 내가 말했다.
“아마 오래전 사람들도 똑같이 바빴을 겁니다.”
헤르단은 출입문을 닫고 돌아섰다. 나는 잠시 문 위에 적힌 제6정산금고라는 이름을 보았다. 그 안에는 전쟁과 돈의 기록뿐 아니라 밤새 잠을 참은 사람들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이어서 헤르단에게 확인하자 르마의 정정된 근무 시간이 관리 시스템에 반영됐다는 답장이 왔다. 그러나 나는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추가 수당 지급 예정일을 직원에게 직접 통지했습니까?”
“예. 이번 급여일입니다.”
“급여일에 입금되지 않으면 누구에게 문의해야 하죠?”
“관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담당자 연락처와 처리 기한도 적어 주세요.”
헤르단은 잠시 침묵했다.
“한도윤 씨,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제가 왕국의 지급 담당도 아닌데 계속 확인하는 건 저도 번거롭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 직원이 혼자 확인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겁니다.”
그는 한참 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우리 금고에도 그런 안내문이 필요하겠군요.”
나는 통화를 마치고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오래된 봉투를 조사하러 나왔다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근무 시간을 정정했다. 오랫동안 잠겨 있는 문과 지금 당장 열어야 하는 문이 함께 있었다. 어느 문이 더 중요한지 비교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시아가 옆에 와서 말했다.
“왕국 기술자들이 위험수당을 제대로 받으면, 다음에 위험할 때 더 빨리 올 수 있겠지?”
“그렇겠죠. 사람에게 정당하게 대하는 게 결국 시설도 지키는 일이니까요.”
“그럼 우리가 금고를 지키는 데 도움을 준 셈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오후에는 봉인물의 운송표에 적힌 중립 항구를 방문했다. ‘해상 응급물품 매듭’이라는 모라의 감정 결과를 들고 오래된 구호창고를 찾아간 것이다.
창고장은 배냄새가 배어 있는 큰 체격의 남자였다. 이름은 다르크. 그는 낡은 매듭 사진을 보고는 말없이 자신의 조끼에서 작은 줄을 꺼냈다.
“이 방식은 젖은 손으로도 한 번에 풀 수 있게 묶는 겁니다.”
“서류 봉투를 이런 식으로 묶기도 합니까?”
“긴급 대피 때는 뭐든 이렇게 묶죠. 약상자, 아이들 담요, 부상자 명단.”
다르크는 줄을 한 번 잡아당겼다. 손가락에 걸린 매듭이 스르르 풀렸다. 피코가 눈을 반짝였다.
“마술이네요!”
“마술은 아니고 실용 기술이지.”
“저도 알려 주세요!”
다르크는 잠시 웃었다가 피코에게 연습용 줄을 건넸다. 피코는 다섯 번 실패하고 여섯 번째에 성공했다. 성공하자마자 자기 사탕 봉지를 묶었다.
“이건 왜 묶어?” 내가 물었다.
“누가 가져가려 하면 바로 풀어서 숨기려고요.”
그 반대 아닌가 싶었지만 따지지 않았다.
다르크는 오래된 구호 물품 인수대장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제6정산금고와 비슷한 봉투 번호가 없었다. 대신 당시 항구에서 구호선이 떠난 날짜들이 있었다.
“이 날에 비가 많이 왔습니까?”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적겠죠. 기록으로는 큰 폭풍이 있었어요.”
“금고 봉투 보존 날짜와 닷새 차이입니다.”
“그러면 해상에서 구조된 물건이 육로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죠.”
가능성일 뿐이었다. 나는 대장을 복제 요청만 하고 돌려줬다. 실과 날짜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항구를 최초 출처로 지정할 수는 없었다.
다르크는 우릴 배웅하며 물었다.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쩌면 사람일지도 모르고, 그냥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기록이 뭐 대단하다고 이렇게 돌아다닙니까?”
나는 조금 생각했다.
“누군가 제 이름을 먼저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길도 생길 때가 있죠.”
다르크는 우리에게 부두 옆 작은 식당을 추천했다. 일하던 인부들이 자주 오는 곳이라고 했다. 식당에는 누군가 외상으로 먹은 점심을 정리해 둔 장부가 있었다. 주인은 계산서를 쓰면서 말했다.
“그때그때 돈을 못 내도 배달을 나가는 사람들에겐 밥을 줘야죠.”
“외상은 잘 회수됩니까?” 내가 물었다.
“전부 받지는 못해요. 그래도 기록이 있으면 나중에 계산할 수 있죠.”
나는 그 장부를 훔쳐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신 주인에게 미수금과 무상 제공을 다른 항목으로 적으면 혼란이 덜할 거라고 말했다. 주인은 웃으며 내게 수프를 한 숟갈 더 줬다. 오래된 항구에는 돈을 받지 못하고도 물건을 건넨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남긴 장부가 지금도 누군가의 끼니를 지키고 있었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마왕성에 돌아오자 제르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십 닢의 비밀을 밝혔느냐?”
“청구는 있었지만 지급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완료 수당 청구만 보류했습니다.”
“그럼 내 황금 왕좌 수당도 지급이 안 됐단 말이냐?”
“그건 아예 승인도 안 났습니다.”
마왕은 잠시 침묵했다.
“정말 잔인한 인간이군.”
“월급을 지키는 게 제 직업입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도 내 출장비 결재에는 사인했다. 나는 그 순간이 조금 우스웠다. 다른 세계의 국왕 앞에 서면 목숨을 걱정했는데, 마왕 앞에서는 결재 지연을 걱정한다.
그날 밤 베실에게 마지막 확인이 왔다.
[보존물 6-17 관련 은화 열 닢 예치 기록은 별도 계정에서 확인 중. 금화 삼십 닢 감정 수당 청구와 회계상 직접 연결 증빙 없음.]
나는 수첩에 두 금액을 따로 적었다. 은화 열 닢과 금화 삼십 닢. 숫자가 나란히 있다고 같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다르크가 알려 준 폭풍 날짜를 적자, 오래된 운송표의 닷새 공백이 새롭게 보였다.
봉투는 그 닷새 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그걸 알아낼 수 있다면, 적어도 누가 보관하려 애썼는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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