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제6정산금고의 열람 신청서를 제출한 다음 날, 마왕성이 발칵 뒤집혔다.
이번에는 침공도, 봉인 해제도 아니었다.
월급날이었다.
“도윤 님! 제 월급에 ‘황금 왕좌 정비 분담금’이 있어요!”
피코가 급여명세서를 흔들며 뛰어왔다. 작은 손에 종이를 움켜쥔 채 얼마나 뛰었는지 꼬리가 넥타이처럼 뒤로 날렸다.
“분담금이 얼마인데?”
“두 닢이요! 저는 왕좌에 앉아 본 적도 없는데요!”
“나도 앉아 본 적 없는데.”
“도윤 님도 내셨어요?”
“난 이 항목이 없어. 대신 출장 정산이 아직 미지급이네.”
피코가 입을 떡 벌렸다. 상관의 출장비가 밀린다는 소식이 자기 월급의 이상 공제보다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반응이 대견하면서도 조금 슬펐다.
몰트 실장은 급여실에서 오래된 인쇄 마법진을 만지고 있었다. 마법진은 비명을 지르듯 파란 불꽃을 뿜다가 종이를 한 장씩 토해 냈다.
“올해 처음 보는 공제 항목입니다.”
“왕좌 정비 분담금이요?”
“정확히는 옛 궁정 공동 유지비입니다. 사용하지 않은 계정인데 왕국 제6정산금고에 열람 요청을 보냈더니 계정 연결표가 갱신됐습니다.”
나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연동 근거: 보존 요청자 부담 규칙 / 구형 분류 6.]
“우리가 금고에 열람 신청을 했다고 직원 월급에서 돈을 떼 가겠다는 겁니까?”
“시스템의 제안입니다. 아직 송금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종이에 찍힌 공제와 실제 지급은 다르다. 앞서 수도 없이 겪은 교훈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됐다.
“일단 이번 급여의 해당 공제를 중지하세요. 정상 월급부터 지급하고, 잘못 출력된 명세서는 별도 회수하지 말고 정정 사본을 전달합시다.”
“회수하지 않습니까?”
“누가 왜 돈이 줄었다고 생각했는지 증거가 있어야죠. 원본을 보관할지 선택권도 주고요.”
피코가 손을 들었다.
“그럼 전 두 장 다 간직해도 돼요?”
“왜?”
“첫 번째는 기분 나쁜 날의 기념이고 두 번째는 기분 좋은 날의 기념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 문화라는 것이 이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급여 수정에 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마왕 제르칸이 화려한 망토를 끌고 들어왔다.
“누가 감히 내 왕좌를 돈으로 평가했느냐!”
“폐하가 지난달에 금박 수리를 요청하셨잖아요.”
“그건 미관 개선이지 정비가 아니다!”
“금박을 붙이는 데 직원 월급을 쓰면 안 됩니다.”
“나는 내 예산에서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재를 반려했습니다.”
“기억난다.”
마왕은 짧게 침묵하다가 피코를 바라봤다.
“너의 월급은 그대로 받았느냐?”
“아직요. 정정 중이에요.”
“그럼 내 황금 식기 하나를 담보로 맡기겠다. 오늘 식당에서 못 먹는 직원은 없어야 한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겉멋 가득한 행동이긴 했지만, 방향은 맞았다.
“식기 담보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지급 재원이 따로 있어요.”
“그런가?”
“대신 식당에 가서 직원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왕좌 정비비는 직원 부담이 아니라고.”
제르칸이 헛기침했다.
“그 정도는 마왕이 직접 공표할 수 있지.”
그러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몰트에게 속삭였다.
“지금 가시면 직원들에게 황금 왕좌의 예술적 가치부터 설명하실 겁니다. 십 분 뒤에 그만 말씀하시라고 모셔 오세요.”
“칠 분이면 충분하겠군요.”
몰트 실장은 천이백 년 근속의 노련함을 보여 주었다.
급여 정정이 끝나기 직전, 주방에서 일하는 오크 여성 하르가 회계실 문을 두드렸다.
“한도윤 씨,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 명세서에도 왕좌 분담금이 있는데, 이걸 따지면 다음 달에 근무 시간을 줄이는 건 아니겠죠?”
나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하르가 왜 그런 걱정을 하는지 들어야 했다.
“예전에 다른 성에서 일할 때 월급을 물었더니 다음 날부터 야간 근무만 시키더군요. 그 후로는 종이를 받아도 그냥 도장을 찍었어요.”
“마왕성에서는 급여 내역에 질문한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저나 몰트 실장에게 알려 주세요.”
“말로는 다 그렇게 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러니 말만 믿으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인사실에서 임금 문의 접수번호를 발급받게 했다. 담당자에게 문의자 이름이 필요 없는 통계용 기록과 실제 상담 기록을 분리하도록 요청했다. 하르에게는 사본을 한 장 건넸다.
“이 기록을 가지고 계세요. 답변 기한과 재검토 창구가 적혀 있습니다.”
하르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럼 오늘 점심을 늦게 만들어도 됩니까?”
“왜요?”
“주방 사람들도 각자 명세서를 확인하려고요. 단체로 물어보면 음식이 늦을 텐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당연히 임금 문의를 할 권리는 있지만 식당에 기다리는 직원들도 있다. 사람의 권리가 충돌할 때마다 정답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점심 준비하는 사람은 돌아가며 확인하면 어떨까요? 바쁜 시간 뒤에는 유급 확인 시간을 따로 잡죠. 필요하면 임시 지원 인력도 붙이고요.”
하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명세서를 보는 시간에 돈을 줘요?”
“회사가 잘못 출력한 명세서를 고치는 일이니까요.”
그녀는 한숨을 쉬고 웃었다.
“그럼 오늘은 스튜에 고기를 한 덩이 더 넣고 싶네요.”
“그건 원래 조리 기준에 맞춰 주세요. 예산 때문에 제가 혼납니다.”
“회계사다운 대답이네요.”
그녀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 하르와 비슷한 문의를 하러 온 직원 다섯 명이 줄을 섰다. 해골 경비병은 자기 명세서에 ‘사망 위로금’이라는 항목이 새로 생겼다고 했다. 살아 있는 해골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었지만 금액을 보니 실제 지급이 아닌 구형 급여 분류 코드였다.
“전 사망한 적이 있긴 합니다만, 두 번 죽은 건 아닙니다.” 경비병이 말했다.
“그럼 위로금을 두 번 드릴 필요는 없겠네요.”
“원래 한 번은 받을 수 있습니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규정집을 펼쳤다. 직원이 농담을 할 때 같이 웃는 것과, 실제 지급 대상인지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결국 해골 경비병의 수당은 야간 위험수당으로 정상 분류됐다. 사망 위로금은 대상이 아니었다. 경비병은 아쉬워했지만 분명한 명세서를 받고 만족했다.
“도윤 님.” 몰트 실장이 말했다. “이런 상담을 다 받으면 당신이 금고 출장에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 창구를 만드는 거예요. 제가 없어도 직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요.”
몰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기록의 오류를 쫓는 일과 오늘 직원의 월급을 지키는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면 사람을 더 믿어야 했다. 나는 하르에게 보냈던 접수번호가 제대로 답변 완료로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출장 가방을 챙겼다.
정오 무렵, 우리는 왕국 금고에 관한 회의에 참석했다. 중립 기록관 아레인, 왕국 조사관 라델, 드워프 회계 관리자 베실이 원탁에 앉아 있었다. 문제의 봉인 봉투는 아직 보지 못했다. 대신 보존 목록과 열람 신청 범위를 먼저 검토하기로 했다.
“제6정산금고에는 소환 준비국 서류뿐 아니라 전쟁 당시 피난민의 정산 자료도 있습니다.” 아레인이 설명했다. “봉투 한 장을 찾는다고 다른 사람의 신상을 열람할 수는 없습니다.”
“제 이름 표본이 적힌 부분과 그 원본의 생성·전달 경로만 요청하겠습니다.”
“최초 작성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요구는 이해합니다. 다만 그 사람의 이름이 다른 계약 당사자라면 공개 여부를 따로 심의해야 해요.”
“네. 이름을 알고 싶은 거지 누군가의 비밀을 훔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베실이 쇠로 만든 작은 계산자를 탁자 위에 올렸다.
“먼저 봉인물 수를 확인합시다. 목록에는 ‘봉투’라고 단수로 적혀 있는데 실제 보존 용기는 두 개예요.”
“두 개라고요?”
“원본 자료함과 운송 확인함입니다. 하나에 내용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두 개의 열쇠, 두 개의 서명, 두 가지 목록을 다 대조해야 했다. 누군가 서류를 잘못 옮겨 적은 것인지, 의도적으로 분리한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오늘 열 수 있습니까?”
라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금고 보존관이 독립 입회인을 요구했습니다. 왕국 측 관리자 한 사람만으로 열 수 없는 규정입니다.”
“그 규정은 누가 만들었죠?”
“옛 제3감리 공동 협약에서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세 번째 의자가 또 등장했다. 이미 몇 달째 그 의자를 찾고 있는데, 막상 필요할 때는 사람이 없어서 의자만 홀로 근무하고 있었다.
“입회인을 어디서 구합니까?”
“중립 기록관이 지정할 수 있습니다.” 아레인이 말했다. “조건이 있어요. 열람 내용을 임의로 외부에 퍼뜨리지 않을 것, 기록 보존에 이해충돌이 없을 것, 그리고 신청 당사자에게 결과를 설명할 것.”
피코가 손을 들었다.
“저요!”
“피코, 너는 이해충돌이 있지.”
“어떤 거요?”
“내가 사탕 사 주면 기분 좋아지는 거.”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요!”
아레인이 조용히 웃었다.
“피코 군은 정식 입회인이 아니라 신청 당사자의 보조인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도윤 씨가 원한다면요.”
“원합니다. 대신 사탕은 회의실 밖에서만 먹기로 하죠.”
피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계약서로 써야 해요.”
나는 그 자리에서 회의록 한 귀퉁이에 적었다. 사탕 한 개가 또 하나의 제도 개선을 이끌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아레인이 작은 종이를 건넸다. 봉투 보존 기록의 첫 장이었다.
[왕국 제6정산금고 / 특별 봉인물 6-17.]
[보관 사유: 번역 원문 출처 보존 및 청구권 분쟁 대비.]
[최초 보존 확인자: 서명 불명.]
내 손가락이 마지막 줄에 멈췄다.
“서명을 못 읽는다는 뜻입니까?”
“서명이 훼손됐을 수도 있고, 확인자가 도장만 찍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원본을 보지 못했어요.”
“이름이 없으면 책임도 사라지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레인이 봉투의 바깥쪽 사진을 가리켰다. 봉인 왁스에는 작은 홈이 셋 있었고, 그 옆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수령액: 은화 10닢.]
나는 숨을 멈췄다. 예전에 한국어 편지를 보존하기 위해 예치된 금액과 같았다. 그렇다고 동일한 예치금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은화 열 닢짜리 거래는 오래된 기록에 많았다.
“베실 씨, 은화 열 닢의 입금 계정부터 확인해 주세요.”
“이미 요청했습니다. 다만 요청 기록과 실제 입금 기록을 따로 찾아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왕성에서 급한 전갈이 도착했다.
[급여 정정 완료. 공제 없음. 피코 첫 월급 수령.]
그 아래에는 피코가 덧붙인 글씨가 있었다.
[도윤 님, 사탕은 제 돈으로 샀어요. 진짜로!]
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거창한 봉인 문서의 진실을 찾으러 왔지만, 오늘 확실히 증명한 사실은 마왕성 직원의 월급을 지켰다는 것이었다.
금고를 떠나기 전 라델이 말했다.
“내일이면 독립 입회인 심의 결과가 나옵니다. 열람이 허가되면 봉인 확인부터 시작하죠.”
“내용까지 열람할 수 있습니까?”
“그건 원본 상태를 확인하고 결정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남의 이름이 든 봉투라면 기다릴 이유가 있었다.
마왕성에 돌아오니 피코가 정정 명세서와 사탕 봉지를 보여 줬다. 새 명세서의 금액은 전부 정상이었다.
“도윤 님, 제 첫 월급으로 뭘 사면 좋을까요?”
“사고 싶은 걸 사. 단, 한 번에 다 쓰지는 말고.”
“그럼 황금 왕좌 모형도요?”
“그건 누구한테 배웠어?”
멀리서 제르칸이 기침했다.
내가 엄숙한 표정으로 마왕을 바라보자, 그는 즉시 왕좌 뒤에 숨었다. 몸집이 너무 커서 전혀 숨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이해했다.
그날 밤 나는 수첩에 새로 확인한 내용을 적었다. 봉인물 번호 6-17, 보관 사유, 독립 입회인 필요, 은화 열 닢과의 연관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썼다.
[오늘은 피코의 월급이 제대로 지급됐다. 그게 가장 먼저 해결한 일이다.]
문득 제6정산금고에도 누군가 지키려던 월급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국과 마계가 전쟁을 벌이던 시절, 봉투를 맡긴 사람도 내일 먹을 빵값을 계산했을 것이다.
봉투 안의 글자가 누구의 것이든, 그 사람이 숫자 뒤에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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