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 보관소에 불이 났다.
그것도 하필 내가 출고원장을 요청한 날.
이런 우연이 자꾸 겹치면 우연한테 미안해진다.
“불은 다 꺼졌대?”
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산 상단은 사고라고 주장하네.”
“방화인지부터 확인해야겠네요.”
“전하께서는 군대를 보내 상단을 압수수색하자고 하시네.”
“잠깐만요. 상단은 마왕성 밖에 있잖아요. 조사권이 있습니까?”
몰트의 눈에서 푸른 불이 깜빡였다.
“군대가 있지.”
그 논리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대포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계 장부는 포격으로 복구되지 않는다.
나는 흑산 상단의 본점까지 직접 가 보기로 했다. 혼자 가기는 위험해서 루시아의 호위를 받았다. 물론 루시아는 호위라는 단어를 듣고 무척 실망했다.
“전투는 없느냐?”
“없으면 좋겠는데요.”
“참 답답한 인간이군.”
우리는 검은 돌산 아래의 상업도시에 도착했다. 흑산 상단 본점은 예상보다 컸다. 정문에는 '정직과 신뢰'라는 문구가 금박으로 박혀 있었다.
건물 벽 한쪽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불이 난 보관소는 후문 옆 작은 창고였다.
“대표님은 어디 계십니까?”
“출장 중입니다.”
“출고원장 담당자는요?”
“휴가입니다.”
“화재 담당자는요?”
“그만뒀습니다.”
이쯤 되면 이 건물에 사람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
우리는 현장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단 측은 처음엔 거부했지만, 미정산 물량에 관한 공동 확인 절차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허락했다.
창고 안에는 검게 탄 선반과 젖은 종이 더미가 남아 있었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루시아 님. 불은 어디서 시작된 것 같습니까?”
“연기 자국은 저쪽에서 번졌군. 그런데 발화 원인은 모르겠다.”
“그렇죠. 저도 몰라요.”
“그럼 왜 물었느냐?”
“괜히 확신하는 사람을 찾으려고요.”
루시아가 피식 웃었다.
나는 감식 전문가가 아니다. 탄 흔적만 보고 범인을 지목할 능력도 없다. 대신 무엇이 없어졌고 무엇이 남았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출고원장은 한 권뿐이었습니까?”
창고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지점에는 복사본이 없고요?”
“없습니다.”
“납품받는 쪽에는?”
“그건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의 마지막 대답에 작은 표시를 했다. 모른다는 말은 때로 가장 정직한 답변이다.
장부가 사라져도 거래는 흔적을 남긴다. 출고원장 한 권만 있어야 증명되는 거래라면 그 회사는 애초에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운송인들에게 지급한 마차 임차료 기록을 요청했다. 운송조합은 상단과 별개로 장부를 보관한다. 상단이 보낸 상자가 몇 개였는지, 어느 길을 지났는지는 그쪽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조합에 도착하자 흰 수염의 드워프가 우리를 맞았다.
“기록을 내놓으라고? 누구 마음대로?”
“강제로 가져가러 온 건 아닙니다. 거래 확인을 요청하러 왔죠.”
“왜 내줘야 하는데?”
“흑산 상단이 배송비를 과다 청구했다면 조합원에게도 손해일 수 있습니다.”
그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건 좀 궁금하군.”
역시 이해관계의 언어는 차원이 달라도 통한다.
운송 기록에서 이상한 점이 나타났다. 마왕성에 도착했다던 마차 다섯 대 중 한 대는 같은 날 북쪽 채석장에 있었다. 해당 마차를 몰았던 운전수는 조합에 정산서를 제출해 둔 상태였다.
“이건 누가 작성했죠?”
“운전수가 직접.”
“본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드워프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수는 늙은 오우거였다.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쏟아내듯 말했다.
“그날 마왕성에 간 적 없소. 채석장에 돌을 실어 날랐지.”
“확인해 줄 사람 있습니까?”
“채석장 관리인하고 짐꾼 셋.”
돌.
내 머릿속에서 식량 상자 속 돌멩이가 떠올랐다.
물론 채석장에서 실어 온 돌이 그 상자에 들어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산에는 돌이 많고, 세상에는 거짓말도 많다.
하지만 운송 경로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나는 운전수의 진술을 그대로 기록했다. 루시아는 답답했는지 검 손잡이를 톡톡 쳤다.
“저자를 잡아 족치면 누가 시켰는지 말하지 않겠느냐?”
“지금은 증인이잖아요.”
“아.”
“증인을 때리면 다음 사람은 우리를 안 만나 주겠죠.”
“그건 그렇군.”
다행히 납득은 빨랐다.
돌아오는 길에 피코가 연락을 보내왔다. 흑산 상단이 화재 손실을 이유로 배송비를 추가 청구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났다.
물건은 모자라고, 장부는 불타고, 이제 비용이 더 든단다.
회사 다니면서 별의별 청구서를 봤지만 이런 삼종 세트는 오랜만이다.
그날 밤, 운송조합 사본을 살피던 중 특이한 표식을 발견했다.
[수취지 변경: 마왕성 제17군단 → 북부 채석장]
변경 시각은 마왕성의 검 만 자루가 사라졌다고 기록된 바로 그날이었다.
잠깐.
식량 사건과 검 사건이 같은 길에서 만난다고?
나는 두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이제야 길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제1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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