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자 계정을 찾았다고?”
제르칸이 관심을 보였다.
“네. 그런데 계정 주인이 실제로 그날 일했는지는 아직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럼 그자를 불러서 물으면 되지 않느냐!”
“예전에 쓰던 공용 계정입니다.”
“공용 계정?”
“여러 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로그인할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왕은 한참 고민했다.
“그러면 내 왕좌도 공용으로 쓰면 되는 것이냐?”
“그건 왕위를 공유한다는 얘긴데요.”
“절대 안 된다!”
적어도 개념은 이해한 모양이다.
옛 소환 관리소의 작업자 계정 이름은 ‘검수자-3’이었다. 대리번호 `0003`과 생김새가 비슷했지만 연동 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세 기관이 각자 숫자 셋을 쓰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나는 숫자를 보는 순간 범인을 찾은 듯 흥분하지 않기로 했다.
라델이 보내 온 로그에는 ‘검수자-3’이 소환 열하루 전에 임시 분류 7의 인명 표시를 바꾼 기록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의 출근 대장에는 검수자라는 직책의 직원이 없었다. 마치 아무도 일하지 않았는데 승인만 이루어진 셈이었다.
“이런 게 진짜 유령 직원 아닙니까?” 피코가 말했다.
“유령이면 몰트 실장님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아요?”
몰트는 눈빛을 빛냈다.
“유령과 리치는 다릅니다. 그리고 유령도 근무계약이 있으면 직원이지요.”
피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상하게 감동했다. 우리 회사 인사 원칙이 조금은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공동 조사 회의에서 베실은 계정 사용자의 이름부터 공개하자는 제안에 반대했다.
“공용 계정은 누가 썼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특정 개인의 이름을 공개하면 잘못된 책임을 덮어씌울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확인합니까?” 라델이 물었다.
“로그와 출근표, 열쇠 인수 기록을 별도로 대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설명할 기회도 필요하죠.”
나는 동의했다. 마왕성의 직원 일곱 명을 실수로 명단에서 지웠던 일을 떠올리면, 기록 하나를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옛 소환 관리소의 지하 서고로 갔다. 이번에는 로그가 아니라 보안 열쇠 인수 대장과 당시 근무 일지를 보러 간 것이다. 경비 담당자는 원래부터 여기를 싫어했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이런 낡은 장부를 다 봐야 합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야 하니까요.”
“오래전 일입니다.”
“오래전 일 때문에 제 이름이 지금도 이상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서고의 첫 번째 대장은 쉽게 확인됐다. 문제의 날, 검수자-3 열쇠는 야간 담당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 줄에는 열쇠가 창고에 반환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두 기록의 시간이 불과 세 분 차이였다.
“세 분 동안 처리한 건가요?” 피코가 물었다.
“가능해. 다만 실제 입력 시간이 더 길었을 수도 있지.”
“그럼 누가 썼어요?”
“그걸 찾으려고 왔잖니.”
실제 열쇠는 쇠가 아니라 작은 수정 카드였다. 옛 마법 장치에 꽂아야 계정이 열리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훼손 방지를 위해 상자 안에 보관돼 있었다.
루시아가 수정 카드를 손에 들려 하자 경비 담당이 급하게 막았다.
“그건 절대 잡으면 안 됩니다!”
루시아가 깜짝 놀랐다.
“왜? 폭발하나?”
“아뇨. 유물 보존 규정상 장갑 없이 만지면 안 돼요.”
“폭발하지는 않는다고?”
“네.”
루시아는 아쉬운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방금 그녀는 위험한 물건을 공격하지 않고 물러났다.
수정 카드 뒷면에는 작은 흠집이 있었다. 경비 담당은 흠집이 카드 복제나 오용의 증거는 아니라고 했다. 오래된 물건에 흠집은 흔하다. 우리는 카드의 상태를 사진으로 남겼고, 장치 기술자가 읽을 수 있는 기록만 열람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검수자-3은 개인이 로그인한 흔적이 아니라, 야간 일괄 작업 프로그램이 실행되며 임시로 사용한 공용 권한이었다.
“그럼 누가 명령했습니까?”
기술자는 다음 장을 넘겼다.
[작업 요청: 표준화실. 실행: 야간 이관 작업. 결과: 인명 표시 문자열 전환. 검토: 별도 미완료.]
내 이름이 사람의 손으로 직접 타이핑된 것인지, 이미 있던 문자열이 옮겨졌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검수자-3’이라는 직원이 몰래 서명했다는 가설은 약해졌다.
지하 서고에서 나오기 전에 나는 경비 담당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시 공용 계정으로 승인된 문서를 지금도 찾을 수 있습니까?”
“관련 문서를 모두 모으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전부는 필요 없습니다. 같은 날 처리된 공개 가능한 예시 한 건이면 됩니다.”
경비 담당은 라델과 열람 범위를 확인한 뒤 오래된 식량 보급 명세 하나를 가져왔다. 그 명세에도 ‘검수자-3’이 사용된 기록이 있었다. 내용은 병사 오백 명분의 마른 빵 납품이었다.
“실제 빵은 왔습니까?” 내가 물었다.
“당시 수령 기록에는 도착했다고 돼 있습니다.”
“돈은 지급됐습니까?”
“송금 내역을 봐야 합니다.”
“그럼 일단 납품된 기록만 확인된 거군요.”
라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빵 한 상자의 수령을 서명한 공용 계정이 내 이름의 임시 표시도 처리했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했다. 공용 계정이 과거에는 업무를 빨리 처리해 준 도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확인했는지 기록하지 못한다면 아주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때 피코가 빵 명세서를 보며 물었다.
“마른 빵은 몇 개에요?”
“오백 명분이라고 적혀 있네.”
“그럼 오백 개예요?”
“아니. 한 사람에게 하루에 몇 개씩 주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그럼 명세가 틀린 건가요?”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 단위가 ‘개’가 아니라 ‘명분’이니까.”
“아아. 그러면 도윤 님이 마왕성 직원 한 명이면, 월급도 한 명분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두 명으로 복제되지 않은 게 아쉬워요.”
“또 그 소리니?”
나는 한숨을 쉬었다. 피코의 관심사는 마치 절대 감사 스킬이 걸리지 않는 특별 영역이었다.
지하 보관실 옆에서는 새 직원들이 오래된 문서를 상자에 넣고 있었다. 한 직원이 상자 두 개의 라벨이 똑같다며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는 보관 전용, 다른 하나는 열람 복제용이었다. 둘 다 '검수'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둘을 구분하는 표시가 더 필요하겠네요.” 내가 말했다.
담당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전에는 보관소가 달라서 구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합쳐 놓으니 자꾸 헷갈려요.”
“그럼 지금부터 구분해야죠.”
그는 작은 붉은 끈을 보관 원본 상자에 묶고, 복제본 상자에는 파란 끈을 달았다. 아주 단순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직원들의 움직임이 훨씬 편해졌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누가 대단한 마법을 발명하지 않아도 내일의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일.
복제본 상자를 옮기던 젊은 직원이 나를 알아봤다.
“혹시 마왕성의 회계 담당자 맞습니까?”
“네.”
“왜 왕국 서고까지 와서 이런 일을 돕습니까?”
“제 이름이 오래전에 잘못 들어간 기록을 찾고 있어서요.”
“그 일과 상자 정리가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잘못된 상자를 보고 잘못된 결론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예전 내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 회계 업무를 배웠을 때는 전표 하나의 숫자를 맞추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숫자를 적은 사람과 사용한 사람이 서로 다른 상황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서고를 나설 때 작은 정비공이 달려왔다. 그는 방금 공용 계정의 사용 이력을 조사하다가 실수로 자신의 출입 기록을 일곱 차례 복사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오늘 서고에 일곱 번 들어왔다는 표기가 생겼다.
“저는 한 번만 들어왔는데 일곱 번 들어온 걸로 나오면 출입 규정 위반인가요?”
“실제 출입 기록을 먼저 확인합시다.”
우리는 경비 담당이 가진 수동 출입표와 자동 기록을 대조했다. 수동표에는 한 번, 자동 기록에는 일곱 번이었다. 원인은 '작업 취소 후 재시도'라는 버튼을 누를 때마다 출입 완료 신호가 다시 저장된 것이었다.
“이러다 한 사람이 열 명으로 늘어나겠네요.” 피코가 말했다.
“출입기록에는 열 명이어도 실제 사람은 한 명이지.”
나는 정비공의 허락을 받아 실제 입장 시각에 맞춘 정정 신청서를 썼다. 담당 부서가 오류를 인정했고, 자동 기록에는 무효 처리 사유를 남겼다. 이 정비공이 유령 직원이나 보안 침입자로 의심받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일을 마치고 서고 문을 닫으려는데 라델이 조용히 말했다.
“처음엔 당신이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많은 걸 돈으로 계산하긴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누가 잘못 기록됐는지, 그 사람이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부터 보시더군요.”
“숫자를 좋아하는 건 숫자가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라델은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이세계에 처음 왔을 때 그가 나를 봤다면 반역자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나와 같은 서류를 들고 같은 오류를 찾고 있다.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우리는 지하 계단을 올라왔다. 바깥 하늘은 생각보다 밝았다. 회계사는 어두운 방에서 일하는 직업이라고 믿었는데, 요즘 나는 온 세상의 햇빛 아래서 잘못된 글자를 찾고 있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이제는 그 일이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오후에는 다른 사건이 터졌다. 왕국 관공서의 새로운 출입 시스템이 오래된 공용 계정 사용자를 추적하다가, 현재 그 부서에서 일하는 도서 정리원 세 사람을 감사 대상자로 잘못 표시한 것이다.
“저희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죠?”
세 사람은 화가 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오늘이 첫 정규 급여일이었다. 오류가 해결되지 않으면 급여 지급이 잠시 보류될 수 있다는 안내까지 받았다.
나는 라델에게 말했다.
“이 조사 때문에 현재 직원들의 권리를 막으면 안 됩니다.”
“동의합니다. 소속 번호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감사 대상이 된 건 부적절합니다.”
우리는 담당 부서에 공용 계정과 실제 직원 계정을 분리해서 확인하도록 요청했다. 필요하다면 조사 자료를 보존하되, 현재 직원의 급여는 별도 근무 증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도서 정리원 중 한 사람은 내게 말했다.
“전 이름표를 달고 책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름표가 똑같은 숫자라는 이유로 저희가 의심받는다니….”
“숫자는 사람을 구분하려고 쓰는 도구인데, 가끔 사람보다 숫자를 먼저 믿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나면 꼭 다음 서류가 더 복잡해졌다.
다행히 오후 안에 세 사람의 급여 보류 예정 표시가 해제됐다. 실제 지급은 예정된 급여일에 확인하기로 했다. 도서 정리원들은 제 자리로 돌아갔고, 우리는 다시 지하 서고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마침내 종이 작업 요청서 한 장이 발견됐다. 이관 프로그램을 실행하라고 지시한 부서가 아니라, 원래 임시 이름 후보를 보낸 부서가 적혀 있었다.
[발신: 왕국 소환 준비국 물자 조달실.]
“물자 조달실이요?” 내가 물었다.
“네. 소환 의식용 수정과 장비를 사는 곳입니다.” 라델이 말했다.
“사람 이름도 물자 조달실에서 관리합니까?”
“원칙적으로는 아닙니다.”
나는 종이 가장자리를 살폈다. 발신처 옆에는 첨부 문서 번호가 있었다. 일반 인명 확인서가 아니라 ‘조달 사양서’였다.
조달 사양서라면 보통 무엇을 얼마에 사야 하는지 적는다. 내 이름이 왜 물자 명세에 들어 있었을까. 나는 단숨에 기분이 불쾌해졌다.
베실이 나를 보며 말했다.
“한도윤 씨, 문서 내용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이름이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했다는 결론은 조금 기다립시다.”
“압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네요.”
“그건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생각보다 위로가 됐다.
저녁에 마왕성으로 돌아오자 제르칸이 앞장서서 식당으로 데려갔다.
“오늘은 내 특별 저녁을 먹어라. 조사하느라 수고했을 테니.”
“무슨 메뉴인데요?”
“황금 소금으로 간한 스튜다.”
“그 소금 가격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왜 늘 마지막에 그 말을 하느냐!”
나는 웃었다. 오늘 확인한 건 한 가지였다. 내 이름을 바꿔 적은 계정은 사람이 아니라 야간 일괄 작업이었다. 잘못된 처리가 사람의 고의일 수도 있지만, 아직 그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문서 번호가 나왔다.
사람의 이름이 적힌 조달 사양서.
나는 그 문서가 열람 허가를 받을 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이름이 물자 목록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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