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윤이 두 번 소환됐다는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라델의 통신을 듣는 순간, 나는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뭐라고요?”
“정확하게는 같은 임시 대상 번호로 소환 절차가 두 번 실행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게 더 위험한 말 같은데요.”
그는 잠시 정정했다.
“실행을 시도한 기록이 두 건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인물이 두 번 소환됐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나는 안도했다. 어디선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또 월급을 받고 있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한도윤 둘이서 야근을 나누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야근하는 상황만 떠올랐다.
제르칸은 그 소식을 듣자 무척 기뻐했다.
“한도윤이 둘이라면 예산 감사를 두 배로 할 수 있겠군!”
“폐하, 감사 대상도 두 배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 황금 초상화 예산이 통과할 가능성은 두 배로—”
“둘 다 반대할 겁니다.”
마왕은 진심으로 실망했다.
전환 작업 기록은 오래된 왕국 소환 장치와 연결돼 있었다. 우리는 실제 사람의 이동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소환 마법진이 설치됐던 궁정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은 내가 처음 도착한 장소였다. 높은 천장에는 별자리 모양의 금속판이 있었고 바닥에는 빛이 바랜 원형 문양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몸이 기억하는 장소라는 게 있다. 그날 들었던 박수와 낯선 언어, 왕의 기대에 찬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나는 초대받은 손님도 포로도 아니고, 기록 확인을 위해 합법적으로 방문한 감사인이었다.
루시아가 옆에서 물었다.
“괜찮나?”
“네. 그냥 좀 이상해서요.”
“원한다면 내가 먼저 내려가겠다.”
“이번엔 같이 가죠.”
루시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마법진 관리 책임자는 작은 요정이었다. 이름은 티르. 그가 기록을 펼치자 동일 번호에 두 건의 장치 작동이 있었다. 첫 번째는 소환 열하루 전 장비에 걸린 ‘시험 회로 통전’이었다. 두 번째는 내가 실제로 도착한 날의 정식 작동이었다.
“시험 회로 통전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을 부르지 않고 회로만 돌린 겁니다. 마력의 흐름을 확인하는 거죠.”
“그럼 첫 번째 기록에는 사람의 이동이 없습니까?”
“확인한 자료에는 없습니다. 다만 감지되지 않았다는 게 절대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죠.”
나는 티르의 말을 수첩에 적었다. 기록의 한계를 인정하는 기술자는 마음에 든다.
티르는 시험 회로의 구성을 보여 줬다. 소환 마법진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작은 문제가 있었다. 회로를 시험할 때마다 임시 대상 번호를 넣어야 했는데, 시스템은 시험이 끝나도 번호를 남겼다. 나중에 정식 소환이 진행되면 같은 번호를 재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만 보면 같은 대상이 두 번 등록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제 이름이 열하루 전에 기록됐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그 이름이 시험 시점에 실제로 있었는지, 나중에 기존 번호에 연결됐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 말이 중요했다. 앞서 찾은 표찰 묶음의 입고 시각과 마법진 시험 시각은 비슷했다. 그러나 동시에 일어났다고 해서 한쪽이 다른 쪽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사 도중 장치 아래의 작은 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멈춰요! 상자에 손 대지 마세요!”
우리가 달려가니 수리공 두 사람이 어두운 마력 축전지를 옮기다가 멈춰 서 있었다. 오래된 충전 상태 표시가 ‘안전’으로 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저장된 마력이 남아 있었다. 수리공 한 명이 장갑을 벗은 손으로 만지려던 순간, 경고 마법이 울린 것이다.
루시아가 두 사람을 뒤로 끌어냈다. 티르는 즉시 주변 회로의 전원을 끊고 안전 점검반을 불렀다. 나는 출입 기록을 확인하면서도 손을 뻗지 않았다. 장부가 잘못됐다고 내가 직접 축전지를 뜯을 필요는 없었다.
“왜 안전이라고 표시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티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시험 회로에서 충전이 끝났다는 표시가 정식 회로의 방전 완료로 복사됐습니다.”
기묘한 우연이었다. 다시 또 ‘시험’과 ‘정식’이 한 줄에 섞인 것이다. 이번에는 사탕이나 서류가 아니라 사람 목숨이 걸렸다.
점검반이 도착하자 수리공들은 의료 확인을 받았다. 실제 감전이나 마력 화상은 없었다. 나는 안도한 뒤 티르와 함께 위험 표시의 출처를 조사했다. 오래된 시스템이 ‘시험 회로의 정상 종료’를 ‘정식 회로의 안전 확인’으로 합쳐 버린 것이었다.
“이 구조가 이름 등록에도 있을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같은 개발 계열의 프로그램입니다.” 티르가 답했다. “하지만 동일한 오류인지 확인하려면 입력 로그가 필요해요.”
“어디에 남아 있습니까?”
“시험 회로의 수동 점검 장부에요. 전산이 아니라 종이입니다.”
피코가 눈을 크게 떴다.
“옛날 종이가 또 나왔어요!”
“오늘도 종이가 사람을 구할 모양이다.”
마법진 점검이 잠시 중단된 사이 티르는 우리에게 수동 차단 절차를 시연해 보여 주었다. 구형 장치에는 비상 정지 손잡이가 둘 있었다. 하나는 시험 회로용, 다른 하나는 정식 회로용이었다. 그런데 오랜 수리 과정에서 손잡이의 색깔이 모두 똑같이 칠해져 있었다.
“왜 둘 다 빨간색입니까?” 내가 물었다.
“예전에는 하나가 파란색이었어요. 부식돼서 다시 칠할 때 담당자가 안전 색이라는 이유로 둘 다 빨갛게 칠했죠.”
“그럼 급할 때 어느 걸 눌러야 하는지 모를 수 있겠네요.”
“그래서 글자가 적혀 있긴 합니다.”
나는 손잡이에 붙은 작은 금속판을 보았다. 하나는 ‘시험’, 하나는 ‘정식’이었다. 하지만 불이 꺼지거나 연기가 나면 글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았다.
“이건 개선 요청을 해야겠는데요.”
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차례 요청했지만 예산이 뒤로 밀렸다고 했다.
루시아는 팔짱을 꼈다.
“둘을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
“좋은 생각입니다.” 티르가 말했다.
루시아는 처음엔 칭찬을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정말인가?”
“네. 시야가 나쁠 때도 손잡이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검 손잡이처럼—”
“검날은 넣지 마세요.” 내가 끼어들었다.
“손잡이 모양이라고 했지 누가 칼날을 만들겠다고 했나!”
티르는 웃으며 설계도를 수정했다. 한 손잡이에는 둥근 돌기, 다른 손잡이에는 납작한 면을 넣는 방법이었다. 비용도 큰 설비 교체보다 적게 들 것으로 보였다. 다만 실제 적용은 시설 안전 책임자의 승인이 필요했다.
수리공들이 안전 확인을 받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소환 마법진 아래서 일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첫 번째 수리공은 열다섯 해, 두 번째는 막 여섯 달이라고 했다. 둘은 같은 작업을 했지만 장비를 읽는 방식이 달랐다.
“저는 시험 회로가 꺼졌다는 글자만 봤어요.” 젊은 수리공이 말했다.
“저는 반대쪽 회로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배웠죠.” 나이 많은 수리공이 답했다.
“그럼 교육 자료에 두 회로를 따로 확인한다는 말이 있나요?”
“옛 자료에는 있어요. 새 자료에는 장비 이름이 달라졌고요.”
나는 티르에게 두 자료를 나란히 보여 달라고 했다. 첫 번째는 오래된 설명서, 두 번째는 최근 인쇄된 요약본이었다. 오래된 자료에는 ‘시험 상태는 정식 상태의 안전을 보증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새 요약본에는 그 문장이 빠져 있었다.
“이것도 축약 과정에서 경고가 사라졌군요.”
티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네요.”
우리는 요약본에 임시 경고지를 붙이고, 전체 교육 문구는 정식 검토 대상으로 올렸다. 나는 수리공 두 사람에게 오류 조사와 별도로 위험 작업 중지권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달라고 시설 안전 담당에게 요청했다. 적어도 다음에는 표시가 애매하면 누군가 멈춰도 되는 분위기가 필요했다.
시설 밖으로 나오니 작은 광장에 은색 동상이 있었다. 손에 검을 쥔 영웅의 동상이었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 왕국을 구한 기사들의 이름이라고 했다.
피코가 동상을 보며 물었다.
“도윤 님 이름도 나중에 여기 적혀요?”
“아니. 나는 저 동상에 올라갈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왜요? 멋있는데.”
“내가 원하는 건 저 사람들이 다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거든.”
피코는 잠깐 생각했다.
“그럼 표창장은요?”
“급여 명세서가 제일 좋아.”
“도윤 님답네요.”
마법진 앞에서 작은 의식을 하나 더 확인했다. 소환 장치가 작동하기 직전에 공간 안정성 검사를 한다고 했다. 그 검사는 소환을 원하는 사람의 동의와 전혀 관련 없는 기술적인 검사였다. 나는 그 문구를 확인한 뒤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섞여 있던 것 하나를 떼어 냈다.
여기에서 일어난 것은 기계의 작동이었다. 내가 그 일을 받아들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앞으로 나의 선택을 지키려면 그 두 사실을 계속 분리해야 한다.
관리자는 시험 회로 출입 구역을 수리 완료 때까지 따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티르는 안전 교육 자료에 이번 사고 사례를 추가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작업 완료를 서둘러 표시하지 말고 예정일과 실제 확인일을 구분해 달라고 부탁했다. 예전의 나처럼 그 자료를 처음 보는 수리공도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왕국의 저녁 종이 울릴 때 우리는 광장 벤치에 잠깐 앉았다. 어둠이 내리는 돌바닥에는 마법진이 남긴 빛이 희미하게 반사됐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루시아가 옆에 있었고, 피코가 내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도윤 님, 무서워요?” 피코가 물었다.
“조금은.”
“그럼 저희가 있으니까 괜찮겠네요.”
“그렇지.”
피코는 말없이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나는 웃었다. 소환 기록을 조사하러 왔지만 내가 실제로 얻은 것은 또 다른 종류의 확인이었다. 오래된 문서는 나를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수동 점검 장부를 열람했다. 첫 번째 작동에는 시험 대상 번호만 있었고, 실제 인명 칸은 빈칸이었다. 두 번째 정식 작동에는 한도윤이라는 표기가 있었다. 중요한 차이였다.
“그럼 열하루 전 제 이름을 입력한 원본은 이 장치 기록이 아니네요.”
“맞아요. 장치에서는 그때 이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상상했던 ‘내가 미리 소환됐다’는 가설 하나가 힘을 잃었다. 신기하게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보다는 누가 내 인생을 미리 정해 놓은 것처럼 꾸며 기록했는지가 궁금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왕국 궁정 경비병이 한 사람에게 길을 막고 있었다. 새로 파견된 마법사였다. 그의 출입증에는 옛 시험 회로 번호가 적혀 있었고, 시스템은 그를 이미 출입한 사람으로 표시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첫날부터 근무 태만으로 기록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입장 기록이 틀린 거예요.”
라델과 경비 담당은 실제 최초 입장 시각을 다시 적었고, 출입증 발급부서에 오류를 알렸다. 새 마법사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안전 교육을 꼭 받으라고 부탁했다.
“오늘 저는 안전 교육 받으러 왔습니다.”
“그럼 아주 훌륭한 첫 출근이네요.”
그가 웃었다. 처음 출근한 날 왕에게 무급으로 일하라는 요구를 들었던 나와는 꽤 다른 출발이었다.
마왕성으로 돌아가는 길, 피코가 말했다.
“그럼 도윤 님이 둘이 아니네요.”
“다행이지.”
“둘이면 사탕도 두 배로 줄 줄 알았는데.”
“왜 사탕을 내가 주니?”
“도윤 님은 월급을 관리하잖아요.”
“월급을 관리하는 것과 사탕을 주는 것은 다른 일이다.”
피코는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그날 저녁 티르가 추가로 보내 온 점검 자료에는 옛 장치의 시험 번호와 별도로 저장된 수동 입력 기록이 있었다. 시험 번호는 열하루 전, 인명 표기는 정식 소환 당일. 그렇다면 또 다른 기관에서 이름을 미리 입력했다는 흔적은 장치와 상관없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나는 라델에게 소환 관리소의 별도 인명 처리 장부를 다시 요청했다. 이번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확인했다고 표시한 기록만 보고 싶었다.
답장은 짧았다.
[일괄 전환 기록 발견. ‘임시 분류 7’의 명칭을 ‘한도윤’으로 변경한 작업자 계정 확인. 기명 사용자는 현재 확인 절차 중.]
마침내 누군가의 계정이 나왔다.
하지만 계정의 이름이 곧 그 사람이 실제로 작업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여러 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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