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소환 관리소에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 제르칸이 말했다.
“그대는 참 용감하군. 나를 무급으로 때려잡으라고 했던 그곳에 스스로 돌아가다니.”
“무급으로 때려잡으라고 한 건 왕국이고, 때려잡힐 뻔한 쪽은 폐하잖아요.”
“그렇다. 그래서 매우 불쾌한 곳이지.”
마왕은 근위대 삼백 명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두 명도 필요 없다고 했다. 결국 루시아 한 명과 피코 한 명이 따라왔다. 병사 삼백 명보다 협상이 어려운 조합이다.
왕국 수도로 향하는 마차에서 나는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진 날을 떠올렸다. 황금빛 원이 번쩍였고, 왕은 내게 용사라는 칭호를 주려 했다. 돈과 업무 범위를 물어봤을 뿐인데 궁정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때는 겁이 났다. 그래도 무급 계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 선택 덕분에 지금 마왕성에서 월급을 받는다.
“처음 소환됐을 때 면접은 안 봤어요?” 피코가 물었다.
“안 봤어. 바로 일을 시키려고 했지.”
“경력 확인도 안 하고요?”
“내가 회계 일을 했다는 건 거의 듣지도 않았을걸.”
“그럼 정말 이상한 회사네요.”
“회사라기보다 국가였어.”
“더 이상하네요.”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라델은 수도에 도착한 우리를 별도의 접견실로 안내했다. 지명수배가 철회된 뒤였지만 소환 관리소의 일부 출입 구역은 아직 제한돼 있었다. 나는 관리소 책임자에게 조사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 소환 열하루 전에 만들어진 임시 등록의 근거와, 정식 소환 당일 당사자 확인을 수행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책임자는 처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당시 왕국 법정에서 포고를 철회하지 않았습니까?”
“포고 철회와 제 이름이 어떻게 등록됐는지는 다른 일입니다.”
“새로운 보상 청구입니까?”
“현재는 사실 확인입니다. 실제 비용이나 손해가 있다면 그때 따로 검토하겠습니다.”
상대는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아무래도 왕국 관리들에게 내가 가장 무서운 순간은 크게 화낼 때가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나눠 말할 때인 모양이다.
우리는 소환 당일의 원본 기록을 요청했다. 모든 개인의 명부가 아니라 내 기록과 연결된 담당자 확인 칸만 보기로 했다. 기록실에는 은색 문이 세 개 있었고 각 문마다 서류 보관 수명이 다르게 적혀 있었다. 피코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마치 빵 유통기한 같네요.”
“빵은 오래되면 버려도 되지만 기록은 버리면 안 되는 게 있지.”
“그럼 영원히 안 버리면요?”
“창고가 터질 수 있지.”
“그러니까 빵을 먹어야 하네요.”
논리의 끝이 사탕과 빵으로 모이는 아이는 처음 본다.
원본을 열자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소환 관리소에는 소환자에게 읽어 주는 ‘안전 안내 확인서’가 따로 있었다. 위험 장소, 숙박 제공 여부, 귀환 절차, 보수 조건을 설명했는지 확인하도록 만들어진 문서였다.
“이거 왜 그날 제게 안 보여 줬습니까?”
라델도 놀란 표정이었다.
관리소 직원이 변명하듯 말했다.
“전쟁 초기 서류입니다. 지금은 궁정 의전실이 담당했을 겁니다.”
“제가 소환됐을 때는 누가 담당했습니까?”
“기록을 더 봐야 합니다.”
기록 아래에는 확인 칸이 넷 있었다. '안내 제공', '내용 이해', '개인적 동의', '사후 문의처'. 첫 번째 칸은 관례적인 궁정 안내로 대체됐다는 표시가 있었다. 나머지 세 칸은 비어 있었다.
“동의서가 없네요.”
“그 부분은 당사자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제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거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법정에서 확인했던 사실과 일치한다. 하지만 오늘 새로 중요한 것은 ‘원래 동의를 받도록 계획된 절차가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그날 원본 안에는 낯선 메모도 하나 있었다.
[사전 등록 명칭: 임시 대상 7. 정식 소환 후 신원 재확인 필요.]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문구가 왜 궁정의 접수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까?”
“구형 의전 화면은 임시라는 표시를 숨기도록 설계돼 있었습니다.”
“숨긴다고요?”
“정확히는 요약 화면에 출력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 말이죠.”
직원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이 사람이 그 화면을 설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낡은 화면이 지금까지 어떤 피해를 만들었는지 확인할 책임은 있었다.
점심 무렵 관리소의 출입문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오래된 궁정 제복을 입은 퇴역병이 들어오려다 제지된 것이다. 그는 오늘이 임시 신원 재확인 신청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날짜로 와야 한다고 적혔습니다.”
그가 보여 준 안내문은 10년 전 양식이었다. 날짜란에는 '다음 정기 확인일'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조회 화면은 이미 폐지된 규칙에 따라 오늘 날짜를 계산해 표시했다. 그는 먼 지역에서 이틀이나 걸려 왔다고 했다.
“잘못된 안내로 오셨다면 돌아가시기 전에 접수 기록부터 남겨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책임자는 처음엔 업무 대상이 아니라며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라델이 규정집을 확인하더니 수동 상담 접수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퇴역병의 기존 보상 신청은 별도 부서의 문제였지만, 적어도 오늘 먼 길을 온 이유와 잘못된 안내의 출처는 남길 수 있었다.
그는 서명하면서 물었다.
“제가 바보라서 이런 종이를 믿은 겁니까?”
“아니요. 날짜를 표시한 기관이 확인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결국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퇴역병의 상담 접수가 끝난 뒤 관리소 책임자는 내게 복원된 교육실을 보여 줬다. 한때 소환자를 맞이하던 장소였다. 벽에는 ‘영광스러운 부름에 감사하라’는 오래된 문구가 남아 있었고, 그 아래에 임시 안내문이 새로 붙어 있었다.
[소환자에게는 체류 목적과 위험을 설명하고 선택을 확인할 것.]
“여기서 연습도 합니까?” 내가 물었다.
“네. 오늘은 신규 직원들의 교육이 있어요.”
책임자는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이상한 제안을 했다.
“한도윤 씨가 소환자를 연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실제 경험자는 맞지만, 배우는 아닙니다.”
“현실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필요해서요.”
라델은 재미있겠다는 표정이었다. 루시아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었다. 피코는 벌써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결국 나는 십 분 동안 연습에 참여하기로 했다. 새 직원 세 명이 교대로 안내를 맡았다. 첫 번째 직원은 지나치게 정중했다.
“존귀한 소환자님, 왕국을 구하실 명예를 드리겠습니다!”
“수당은요?”
“명예로운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
“돈으로 얼마인지요?”
직원은 말을 더듬었다. 뒤쪽에서 피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웃지 않았다. 적어도 이 질문은 실제로 중요했다.
“정확한 보수 조건을 모르면 모른다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대신 확인해 줄 부서를 안내하셔야죠.”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직원이 앞으로 나왔다.
“여기 서명하시면 임무에 동의하신 것으로—”
“무슨 임무입니까?”
“마왕 토벌입니다.”
“기간은요?”
“승리할 때까지입니다.”
“근무시간은요?”
“상황에 따라….”
“그러면 쉬는 날은 누가 결정합니까?”
직원이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피코가 박수를 쳤다.
“도윤 님이 이겼어요!”
“이기는 연습이 아니야. 설명하는 연습이지.”
세 번째 직원은 조금 달랐다. 그는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이름과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나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 소환됐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얼마나 다르게 느꼈을까.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여기는 왕국 소환 관리소입니다. 본인이 원치 않았더라도 소환이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안전한 공간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업무 제안은 그다음에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처음으로 안내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육이 끝나자 새 직원들은 서로 웃으며 메모했다. 나는 가장 잘한 사람을 뽑아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연습 과정에서 잘못된 설명을 찾아 고치는 것이 목적이지, 서류를 잘 외운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내게 다가와 낮게 말했다.
“마지막 직원이 괜찮더군.”
“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네가 처음 소환됐을 때 저런 사람을 만났다면 우리도 못 만났겠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웃다가,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쉬운가?”
“아뇨. 그날의 일이 잘못됐다는 것과 지금 만난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은 같이 참일 수 있죠.”
루시아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짧게 말했다.
“그래. 잘못된 일 때문에 우리가 만났다고 해서 그 일이 옳아지는 건 아니지.”
나는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전투광 기사단장이 이런 문장을 말하다니. 누군가 녹음해 두지 않은 게 아쉬웠다.
복도를 나서는 길에는 소환자의 임시 숙박실이 보였다. 방마다 침대와 책상, 목욕을 할 수 있는 작은 물통이 있었다. 왕국이 뒤늦게 마련한 시설이라고 했다. 나는 방문객 허가 범위에서 한 방만 둘러봤다. 탁자 위에는 여러 언어로 된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아직 번역되지 않은 언어 칸도 있었다.
“빈칸이 있네요.”
“그건 아직 번역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책임자가 말했다.
“빈칸이라고 표시해 둔 건 잘하셨습니다. 틀린 번역을 있는 것처럼 넣는 것보다 낫죠.”
피코는 빈칸에 그림을 그려 넣고 싶어 했지만 내가 말렸다. 대신 모든 언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물 그림과 쉼터 그림 같은 비언어 안내를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다. 관리소는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시범 검토 자료를 전달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관리소 식당에서 밥을 먹자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시 저희 관리소 때문에 겪은 일이 많으시겠군요.”
“많았죠.”
“그래도 이렇게 와서 도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제가 도와주는 건 과거를 용서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음 사람이 똑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서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처음 이곳에 떨어진 나는 빨리 도망칠 생각밖에 못 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이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을 만들고 있었다.
오후 조사에서는 정식 소환 당일 담당자의 교대 기록도 확인했다. 원래 지정된 확인관은 병가였고, 대체 근무자는 안내 담당이 아니라 의전 기록 담당이었다. 인력 공백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그 자체로 고의적인 은폐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면 저를 면접할 사람이 없었군요.”
“면접은 애초에 제도상 절차가 아닙니다.” 라델이 말했다.
“그럼 적어도 업무 설명과 동의 확인은 있어야죠.”
“맞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소환자 안전 안내 규정을 다시 확인했다. 왕국은 지난 조사 뒤 일부 화면을 수정했고, 긴급 소환을 진행할 때도 사후 확인을 누락하지 않도록 시범 규칙을 마련한 상태였다. 아직 모든 기관에 시행되는 단계는 아니었다. 내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실패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누가 잘못했는지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녁에 관리소를 나서자 피코가 내게 물었다.
“그럼 그날 도윤 님에게 면접 안 본 건 실수예요?”
“면접은 필요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한테 일하라고 할 거면 어떤 일인지 설명하고 내가 원하는지 물어봐야 해.”
“도윤 님은 안 원했잖아요.”
“응.”
“그래서 지금 마왕성 직원이고요.”
“맞아.”
피코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로 돌아가는 대로 제출할 개선안에는 이렇게 적었다. [임시 대상 등록과 정식 당사자 확인을 별도 표기. 교대 근무 시 확인 책임 자동 이관 금지. 미수행 항목은 미수행으로 남길 것.] 아주 평범한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은 이런 평범한 문장이 빠진 틈으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다음 날 아레인이 소환 관리소 원본의 뒷면에서 발견된 별도 인수 번호를 보내 왔다. 번호 옆에는 표준화실에서 넘어온 날짜와 승인이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이름 표찰을 임시 소환 대상으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과 ‘등록했다’는 처리를 구분해 주는 자료였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상한 사실도 있었다.
승인 서명란이 비어 있었는데, 시스템은 승인된 것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명란 옆에는 아주 작은 문구가 있었다.
[일괄 전환 작업. 예외 승인 대기.]
나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누가 무슨 권한으로 서명 대기 상태를 완료 상태로 바꿨을까.
그 답은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오래된 전환 작업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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