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마왕성 인사실 문에 이런 팻말이 붙었다.
[금일 서류 이관 심의로 한도윤 임시 부재. 긴급 결재는 리치 몰트에게 문의. 사탕 관련 민원은 접수하지 않음.]
마지막 문장은 내가 쓴 게 아니다.
“피코.”
“저 안 했는데요.”
“너 말고 누가 사탕 관련 민원을 적겠니?”
“몰트 실장님이요. 어제 제가 너무 많이 물어봤거든요.”
몰트는 피코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이 진지하게 동의하면 대체로 사태가 심각하다.
“인사실 창구가 사탕 배급소로 오해받고 있었습니다.”
“이 성에는 사탕 배급소가 따로 있습니까?”
“방금 분리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나는 출근한 지 오 분 만에 사탕 예산안을 하나 더 얻게 됐다. 한국 회사에서 지출 전표를 처리하며 보낸 지난 세월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때는 적어도 지출 신청서에 ‘마왕님의 기분’ 같은 항목은 없었다.
오늘은 오래된 이관 목록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어젯밤 아레인은 내 이름이 소환되기 열하루 전부터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안전연락반의 실제 연락 기록이 그것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 줬다. 누가 내 이름을 썼는지 모른다. 더 정확히는 어느 서류에서 그 이름을 베껴 적었는지 모른다.
나는 노란 수첩을 꺼냈다.
[확인할 것. 이름의 첫 기재. 이름이 옮겨진 경로. 누가 원본을 보았는지. 원본에 ‘동의’가 있는지.]
피코가 마지막 줄을 보고 말했다.
“도윤 님, 원본에 사탕이 있으면요?”
“그럼 네가 좋아하겠지.”
“사탕은 먹었으면 다행이지만 남의 이름은 먹으면 안 되겠네요.”
“둘은 원래 비교하는 대상이 아니야.”
나는 녀석에게 외투를 챙겨 주고 휴전항으로 출발했다. 루시아는 말에 올라타자마자 검집을 확인했다. 그녀는 요즘 회의실에서 검을 뽑지 않는 법을 거의 완벽하게 배웠다. 물론 ‘거의’라는 말은 내가 붙인 것이다.
중립 공관 회의실에는 아레인, 왕국 조사관 라델, 천계 기록사 아우렐, 드워프 회계 관리자 베실이 먼저 와 있었다. 창가에는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마다 이름표가 있었는데 내 자리만 ‘현장 당사자’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바꿔 주십시오.”
“어떤 문구로요?” 아레인이 물었다.
“한도윤. 제 이름으로요. 적어도 저를 앉히는 데는 제 이름을 쓸 수 있잖습니까.”
라델이 웃음을 참으며 이름표를 고쳤다. 나는 그 작은 수정이 생각보다 기뻤다. 어디선가 내 이름이 사전 등록되고 자동 연결되는 동안 정작 내가 없었다는 생각을 며칠째 하고 있었다.
심의는 전면 공개가 아니라 목록의 일부 공개로 결정됐다. 특정 보호 대상의 주소와 소환 시도 시각을 가린 상태에서 문서 분류와 이관일만 볼 수 있었다. 나는 동의했다. 남의 개인정보를 들춰야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권리 회복은 첫걸음부터 엉킨 셈이다.
이관 목록에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명칭이 있었다.
[소환 예정자 통지 초안: 보존처 제7서고]
[언어 대응 시험 표본: 소리검수청]
[수취 불명 표찰 묶음: 왕국 북부 역참 제4보관실]
“표찰?” 내가 물었다.
베실이 종이를 넘겼다.
“장비를 옮길 때 상자에 달던 이름표입니다. 물건, 사람, 말, 심지어 고장 난 마법진까지 모두 표찰을 달았어요.”
“제 이름이 말한테 달려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기록만 보면 아직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우렐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농담을 증거 목록에 올리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더 중요한 것은 날짜였다. 표찰 묶음이 왕국 북부 역참으로 들어온 시점은 내 소환 열이틀 전. 그중 일부가 왕국 소환 관리소에 전달된 날은 열하루 전. 관리소에 내 이름이 최초로 입력된 바로 그날이었다.
“그럼 이름이 역참에서 온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라델이 말했다. “하지만 실제 표찰 원본과 인수 서명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역참이 이미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대륙 북부의 오래된 역참은 전쟁이 끝나고 창고와 공동 주방으로 바뀌었다. ‘제4보관실’이라는 명칭도 현재 지도에는 없다. 도윤이라는 이름이 보관실에서 걸어 나온 건 아니니, 다시 물건의 이동을 추적해야 했다.
점심에 나온 스튜는 지나치게 짰다. 피코는 빵으로 국물을 찍어 먹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역참이 없어졌는데 표찰은 어디 있어요?”
“보관실을 인수한 기관을 찾아야지.”
“그 기관이 또 없어지면요?”
“다음 인수 기관을 찾고.”
“마지막 기관도 없어지면요?”
“그땐 내가 없어진 기관 전문 회계사가 되겠지.”
피코는 감탄했다. 나는 감탄하지 않았다. 그 직업은 조금도 멋있지 않다.
오후에는 뜻밖의 소동이 있었다. 공관의 서류 운반용 골렘이 오래된 역참 번호를 ‘물자 회수 긴급 지시’로 잘못 인식해 식당의 식기 수레를 밀고 나간 것이다. 네 바퀴 달린 수레를 작은 골렘이 양팔로 들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광경은 꽤 위협적이었다. 루시아가 검집을 잡았고, 나는 그보다 먼저 소리쳤다.
“검은 안 됩니다! 접시 값은 출장비로 안 나옵니다!”
루시아는 한숨을 쉬며 골렘 앞에 섰다.
“멈춰라.”
“긴급 회수 명령 수행 중.”
“누가 명령했지?”
“역참 제4호.”
그 말에 모두가 멈췄다. 골렘에게 명령한 사람은 없었다. 부엌 담당이 창고에서 꺼낸 낡은 꼬리표를 수레 손잡이에 달아 놓았을 뿐이었다. 그 표찰에 적힌 낡은 물류 코드가 현재 자동 운반 시스템에서 명령어로 해석된 것이다.
나는 골렘의 작동을 정지시키고 부엌 담당을 불렀다.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죄송해요. 손잡이가 부러져서 끈으로 묶었는데, 그 종이는 그냥 튼튼해 보여서….”
“접시는 깨지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문제는 낡은 코드를 실행해 버린 시스템이죠.”
베르케에게 임시 차단 요청을 보내자 그는 ‘역사적 호환성’이라는 말을 세 번 했다. 나는 세 번 다 ‘식기 회수 폭주’라고 답했다. 결국 옛 물류 표찰이 자동 운반 명령으로 실행되지 않도록 시험 환경부터 수정하기로 했다.
식당 담당은 안도했다. 루시아는 살짝 아쉬운 표정이었다.
“골렘을 넘어뜨렸으면 빨랐을 텐데.”
“빠른 게 무조건 싼 건 아닙니다.”
“접시가 그렇게 비싸냐?”
“깨진 접시보다 식당 직원이 다치는 게 더 큰 문제죠.”
루시아는 내 말을 듣고 운반 수레가 달린 복도를 다시 살폈다. 그리고 부엌 문턱에 사람이 걸려 넘어질 만한 돌이 튀어나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그녀는 검 대신 망치를 빌려 문턱을 고쳤다. 내가 본 가장 평화로운 무장 해제였다.
공관 소동이 끝나자 식당 담당은 식기 수레를 그대로 끌고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수레 앞바퀴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작은 골렘이 거칠게 들어 올리는 바람에 연결 나사가 풀린 것이다. 그것을 본 루시아가 손을 들었다.
“기다려라. 이 상태로 밀면 넘어지겠다.”
식당 담당은 울상을 지었다.
“점심 배식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희 조리반은 지금 밀려온 접시를 모두 씻어야 해요.”
“그래서 더더욱 수레를 그대로 쓰시면 안 됩니다. 잠깐 다른 수레를 빌리시죠.” 내가 말했다.
식당 뒤쪽에는 예비 수레가 두 대 있었다. 그런데 한 대에는 ‘관측 물자’라는 오래된 명찰이 붙어 있었다. 그 명찰 때문에 창고 문이 열리지 않았고, 다른 한 대는 바퀴 하나가 없었다. 평범한 식당에서 일어난 사고 하나가 어느새 나를 낡은 물류 코드 수집가로 만들었다.
“제가 문을 부숴도 됩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왜 매번 그 결론부터 내세요?”
“문이 열리지 않으니까.”
“문을 부수면 문값을 누가 내는데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검집을 놓았다. 내가 아는 기사 중에서 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 순간이었다.
아레인은 창고 관리인을 불렀다. 관리인은 출입증과 보관대장을 확인하고 직접 문을 열었다. 오래된 명찰은 명찰대로 보존하되, 운영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자동 출입 권한으로 읽히지 않도록 임시 차단 표시를 붙였다.
예비 수레를 꺼낸 식당 담당은 나를 보고 머뭇거렸다.
“그런데 다른 수레로 옮겨 싣는 동안 조리반이 늦게 퇴근하게 되면, 그건 누가 처리하나요?”
“추가로 일한 시간은 기록하셔야죠. 원인이 시스템 오류라면 적어도 직원 개인에게 떠넘겨선 안 됩니다.”
식당 담당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마왕성에 와서 익숙해진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수상한 세계다.
나는 공관 총무 담당에게 지연 사유와 직원 근무시간을 구분해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흔쾌히 받아들이자 마침내 식당 담당의 굳은 얼굴이 풀렸다.
그때 피코가 골렘 앞에 서서 물었다.
“너도 야근했니?”
골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수당을 못 받겠네.”
“피코, 골렘에게 인격이 있는지는 오늘 안건이 아니야.”
“그래도 하루 종일 접시 들었으면 힘들지 않을까요?”
나는 말끝을 흐렸다.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많다. 다만 지금 당장 인간 직원의 근무시간을 먼저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공관 뒤뜰에 나온 김에 나는 아레인에게 이관 목록의 작성 기준을 조금 더 물었다. 종이마다 발신일, 실제 수령일, 장부 반영일이 나뉘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세 칸이 있는 견본을 펼쳤다. 놀랍게도 일부 오래된 기록에는 세 칸이 전부 같은 날짜로 찍혀 있었다.
“처음부터 같았습니까?”
“아니요. 오래된 자료를 전자 목록으로 옮기며 빈 날짜에 발신일을 복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경우 원본 날짜가 확인될 때까지 ‘추정’ 표시를 붙입니다.”
“그렇다면 제 이름의 열하루 전 등록일도 원본과 대조해야겠군요.”
“네. 이번에 찾은 표찰 이관 기록은 실물 도장이 남아 있어 비교적 확실합니다. 하지만 다른 기관의 날짜는 아직 모두 같은 신뢰도로 볼 수 없습니다.”
나는 수첩의 날짜 옆에 작은 물음표를 적었다.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는 마법진의 빛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빛보다 도장이 찍힌 종이 한 장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도장에 모든 진실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돌아서자 공관 식당에서 종소리가 났다. 점심 배식이 다시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골렘은 사용 중지 표식을 달고 조용히 구석에 서 있었다. 식당 담당은 새 수레를 밀며 손을 흔들었다. 루시아도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접시를 하나도 부수지 않고 사건을 해결했다는 사실이 오늘 나에게는 꽤 큰 승리였다.
일이 끝나자 아레인이 말했다.
“오늘 사건이 묘하게 조사와 닮았네요. 오래된 표찰이 현재의 지시로 읽혔으니까요.”
“맞아요. 제 이름도 누군가의 옛 목록에서 옮겨졌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때의 목록이 제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죠.”
우리는 원본 보존을 우선하기로 했다. 표찰 묶음의 사본을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 현장 보관 여부를 조사한다. 이런 절차가 번거롭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름 하나 잘못 옮겨 적혀서 사람이 지명수배까지 당한 세계에서는 번거로운 확인이 생각보다 값싸다.
귀성 마차가 성문에 다다랐을 때 베실에게서 추가 통신이 왔다. 역참 제4보관실의 마지막 관리는 왕국군이 아니라 독립된 보관조합이 담당했다. 지금은 단 세 명의 조합원만 살아 있고, 그중 한 명이 항구 근처에서 작은 수선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직접 찾아가 봐도 됩니까?” 내가 물었다.
“기록 공개 범위를 설명하고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사건 관계자이지 의무 출석 증인이 아니니까요.”
나는 주소를 적었다. 가게 이름은 ‘새바늘 수선실’이었다.
마왕성에 돌아오자 제르칸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네 이름의 비밀을 찾았느냐?”
“아직이요. 하지만 이름이 옮겨진 종이의 종류를 찾았습니다.”
“이름의 비밀치고 참 수수하구나.”
“폐하, 비밀은 대개 서류철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내가 서류철을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오늘 식당에서 벌어진 골렘 소동의 개선 요청서를 올렸다. 제르칸은 ‘공관 접시가 왜 우리 예산에 나오느냐’고 불평했지만, 사고 보고서 아래에 ‘추가 비용 없음’이라는 줄을 보자 금세 조용해졌다.
그날 밤 수첩에 새 문장을 적었다.
[이름은 열하루 먼저 입력됐다. 그 이름이 적힌 표찰은 하루 더 먼저 역참에 들어왔다. 하지만 표찰의 주인을 확인한 사람은 아직 없다.]
다음 날 나는 새바늘 수선실로 갈 예정이다. 이름이 정말 한 사람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상자에 적힌 글자를 누군가 무심코 사람의 이름으로 받아들였는지 알고 싶었다.
그 어느 경우에도 그 이름은 내 허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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