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에는 매달 마지막 주마다 이상한 회의가 있다.
'다음 달에 꼭 해야 할 일을 정하는 회의'다.
문제는 꼭 해야 할 일만 적으면 회의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제르칸은 성문에 자신의 얼굴을 그리자는 항목을 꼭 넣고, 루시아는 무기 훈련 시간을 늘리자는 항목을 꼭 넣고, 피코는 사탕 보급을 두 배로 늘리자는 항목을 꼭 넣었다. 몰트는 그 셋을 보며 해골 머리를 끄덕였다. 1,200년을 일했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음 달 감사 우선순위를 결정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제르칸이 손을 들었다.
“마왕성 정문에 거대한 황금 초상화를—”
“안 됩니다.”
“말도 끝까지 듣지 않는구나!”
“황금 초상화라는 부분까지 들었습니다.”
“아직 금액은 말하지 않았는데!”
“그게 더 무섭습니다.”
회의실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 사이 나는 실제로 필요한 세 가지를 적었다. 첫째, 옛 소리검수청과 공동 소환 안전연락반의 기록을 혼동 없이 분리하는 일. 둘째, 그 기록 때문에 잘못 분류된 사람들의 권리 회복. 셋째, 미확인 안내문이 실제 연락이었다고 둔갑하지 않도록 현재 시스템을 고치는 일.
제르칸이 내 목록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우리 회사는 언제부터 세계의 우편함을 고치는 회사가 된 것이냐?”
“폐하께서 저를 채용하신 날부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그때는 단지 장부를 정리해 줄 인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저도 조용히 월급받고 싶었습니다.”
피코가 작은 손을 들었다.
“그래도 월급은 제때 나오잖아요.”
“맞아. 그건 정말 중요하지.”
몰트가 조용히 웃었다. 나는 처음 출근하던 날을 떠올렸다. 마왕성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기가 나를 잡아두는 유일한 감옥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싶은 직장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날 회의가 끝난 뒤 공동 보증 회계소에서 긴급 검토 요청이 왔다. 연락반의 마지막 결산 자료가 한꺼번에 공개되는 일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결산표 중 문서 분류의 오류를 바로잡는 제한 심의였다. 참석자는 베실, 아레인, 라델, 아우렐, 그리고 마왕성의 나였다.
회의 장소에 도착하자 베실이 먼저 말했다.
“오래된 안내문 두 묶음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 보호 대상의 비공개 통지서, 하나는 가상 시험 계정의 교육 표본입니다.”
“동일한 문서는 아니군요.”
“원본 번호가 다릅니다. 하지만 통합 조회에서는 상위 분류가 같아 한 목록에 섞여 보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앞서 확인한 한국어 안내의 경로와 옛 시험 계정은 이제 분리해서 확인할 근거가 생겼다.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혼동 하나는 제거할 수 있었다.
베실이 공개 가능한 도면을 보여 줬다. 옛 업무 단계는 뜻밖에 명확했다.
[언어 식별] — [응급 안내 초안] — [수신 경로 시험] — [실제 당사자 확인] — [권리 관련 동의 별도 확인]
그 가운데 첫 세 단계까지만 시험한 문서가 많았다. 그런데 최신 조회 화면에서는 마지막 두 단계까지 모두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나는 그 도표를 보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미리 작성한 안내문을 나중에 '본인이 확인한 계약'처럼 읽을 위험이 있었군요.”
“정확히는 그럴 위험이 있는 변환 규칙을 확인한 겁니다.” 아우렐이 말했다. “실제로 어떤 계약이 그 규칙으로 승인 처리됐는지는 별도 사례 검증이 필요합니다.”
“예. 구분하겠습니다.”
우리의 조사에서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가 더 정확한 말을 쓰도록 자꾸 붙잡는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피곤했는데, 지금은 조금 안심이 된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화가 나서 지나친 말을 하더라도 누군가 멈춰 줄 테니까.
라델은 왕국 쪽 공문을 꺼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한도윤 씨의 지명수배 철회가 오늘부터 왕국의 정식 조회망에 반영됐습니다. 포고문을 떼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몇 달 동안 이름 하나를 바로잡는 데 쓴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누군가의 다른 이름을 보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레인은 비식별 검토 보고서를 펼쳤다. 편지 원문의 작성자와 수취인, 현재 생존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존이 단순한 방치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옛 보호 규정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경로가 없으면 발송을 보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럼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피코가 물었다.
베실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누가 기다렸는지는 몰라요. 다만 적어도 누군가는 함부로 보내면 안 된다고 기록해 두었죠.”
피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에 잠시 안도했다. 긴 이야기 끝에 우리가 얻은 결론이 누군가를 추측하는 즐거움보다 실제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오후에는 옛 안전연락반의 외부 발신 실험을 기술적으로 재검토했다. 종탑의 메아리 보존기, 시민 문서관의 교육 표본, 응급수용센터의 시험 계정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각 자료가 가리키는 날은 달랐다. 구조 방송을 녹음한 날, 구형 시험 계정을 만든 날, 내 소환 예정 기록이 입력된 날. 세 개를 한 사건처럼 이어서는 안 됐다.
“그래도 한도윤 씨 이름이 소환 열하루 전에 기입됐다는 원본은 남아 있잖습니까.” 라델이 말했다.
“네. 그건 여전히 별도로 설명해야 합니다.”
“오늘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찾으면 좋겠지만, 못 찾는다고 아무 자료나 답이라고 부를 수는 없죠.”
라델이 미소 지었다.
중간 회의에서는 한 가지 더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기록을 분리하면 오래된 권리자의 지위를 실수로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어떤 사람은 실제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호 대상 명단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반대로 시험 계정이 실제 사람처럼 남아 있으면 보호 예산이 잘못 묶였다.
“그러니까 기록을 무조건 지우면 안 됩니다.” 베실이 말했다.
“맞습니다.” 내가 답했다. “시험 계정에는 시험이라고 표시하고, 실제 사람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면 원래의 근거로 다시 확인해야죠. 가상 계정과 실제 사람을 분리한다고 보호 자체를 중단하면 안 됩니다.”
라델은 왕국 지원 규정을 펼쳤다.
“긴급 지원은 신원 확인이 끝나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장기 계약의 권리자 지정은 별도 심사가 필요합니다.”
“그럼 시범 개선안에 두 경로를 분리해 두죠.”
베르케가 시험 화면을 띄웠다. 한쪽에는 오늘 필요한 치료·식량·대피 지원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장기 보증·소환 계약·귀환 선택 관련 서류가 있었다. 시험용 기록이 잘못 들어오자 시스템은 더 이상 자동으로 둘을 합치지 않았다. 대신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담당자에게 알렸다.
“이렇게 하면 처리 시간이 늘지 않나요?” 한 위원이 물었다.
“일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급한 지원은 먼저 제공할 수 있게 분리했습니다. 누구를 대신해 장기 계약에 서명하는 일만 멈추는 거죠.”
“그럼 직원이 더 필요합니다.”
“그 인건비도 같이 계산해야 합니다. 종이에 '사람이 확인할 것'이라고 적는 것만으로 사람이 생기진 않으니까요.”
우리는 마왕성 시범 창구 운영 시간을 근거로 필요한 검수 시간을 추산했다. 피코는 계산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숫자보다 사탕을 많이 적었다.
“이건 왜 사탕이 열두 개인데?” 내가 물었다.
“사람이 지치면 쉬어야 하잖아요.”
“좋은 취지인데 예산 항목 이름을 바꾸자.”
“간식비는 안 돼요?”
“간식비로 승인 가능한 범위를 확인하면 되지. 다만 꼭 사탕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
피코는 시무룩해했지만 곧 직원 휴식 시간도 별도 항목으로 적었다. 몰트는 그 광경을 보고 웃었다.
“자네보다 피코가 먼저 관리자 수업을 마치겠군.”
“그때는 제 야근을 좀 막아 주겠죠.”
제르칸이 통신에 끼어들었다.
“야근을 막는다면 감시탑의 불은 누가 켜느냐?”
“교대 근무하는 경비병들이 켭니다.”
“그렇군. 난 왜 한도윤이 모든 불을 켜는 줄 알았지.”
“폐하가 저한테 일을 너무 많이 맡기셔서요.”
마왕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드물게 진지하게 말했다.
“필요한 인력을 신청하거라. 이 일은 네 혼자 할 일이 아니니.”
나는 통신 화면을 다시 봤다. 제르칸의 얼굴은 여전히 허세 가득했지만, 그 문장만큼은 제대로 된 상사의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는 곧바로 덧붙였다.
“대신 내 황금 초상화도 다음 분기에는—”
“안 됩니다.”
회의 참석자 전원이 웃었다. 나는 지출 계획서에 직원 교육비와 검수 보조 인건비를 추가했다. 우리가 오늘 발견한 오류는 마법 한 번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을 고용하고 시간을 배정하는 일이 중요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베실이 장부의 마지막 칸을 보여 줬다. 보존 예치 은화 열 닢과 별개로, 안전연락반의 장비 해체 잔여금이 있었다. 그 돈은 소유권이 확인되지 않은 보관 자료를 유지하는 데 쓰도록 목적이 지정돼 있었다. 결산표에는 실제 유지관리비가 지출된 해와 남은 잔액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이 돈으로 현재의 공개 조사 비용을 쓰면 안 됩니까?” 제르칸이 통신으로 물었다.
“목적 외 지출이라 안 됩니다.”
“내가 마왕인데도?”
“폐하 계좌에 있는 돈이 아닙니다.”
“그래, 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다른 참석자들이 웃었다. 나는 마왕에게 그래도 직원들의 현장 조사 출장비는 이미 승인된 예산 안에서 처리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못마땅해하면서도 결국 승낙했다.
그날 저녁, 아우렐이 준비한 공동 기술 의견서가 도착했다. 결론은 간결했다.
[가상 언어 시험 계정과 실제 소환 당사자 기록을 자동 병합하는 기능 중지 권고.]
[재생 음성·전달 시도·수령 확인·동의 확인의 상태 분리 권고.]
[원본 비공개 유지와 외부 검증 절차 병행.]
나는 서명하기 전 세부 문구를 다 읽었다. 왕국, 천계, 중립 기관은 각자의 권한 범위 안에서 이 권고를 검토하기로 했다. 모든 기관에 한꺼번에 강제되는 것은 아니었고, 과거의 모든 사건이 즉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방향은 정해졌다.
서명 후 사무실로 돌아가니 피코가 마왕성의 작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도윤 님, 한국에는 편지가 어떻게 와요?”
“우체부가 가져오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오기도 해.”
“사람이 없으면요?”
“다시 연락하거나 보관하기도 하지.”
“그럼 답장을 꼭 해야 해요?”
“아니. 답장할지는 받는 사람이 결정하는 거지.”
피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이 오늘 배운 단어를 작은 종이에 적었다.
[기다림은 허락이 아님.]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서명을 마친 뒤 나는 피코의 사탕주머니와 제르칸의 황금 초상화 예산안을 같은 회의 자료함에서 발견했다. 피코는 사탕 항목에 작게 '직원 휴식'이라고 적어 두었고, 제르칸은 초상화 항목에 '국가 사기 진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둘 다 수정을 요청하자.” 몰트가 말했다.
“사탕은 실제 직원 수요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초상화는 사비 지출로 돌리고요.”
몰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창밖의 불빛을 잠깐 바라봤다. 아무리 큰 비밀을 찾아도 다음 달 직원 급여와 식당 운영을 잊을 수 없는 곳. 이제 내게 마왕성은 그런 회사였다.
밤늦게 아레인의 별도 통신이 왔다. 이번에는 실험실 기록이 아니라 당시 안전연락반의 공식 결산 검토 의견이었다. 아주 짧은 문장이었다.
[정식 외부 발신 성공 확인 없음. 단, 소환 예정 등록의 입력 출처가 연락반의 실제 수신 기록과 다를 가능성 확인.]
“그럼 제 이름은 어디서 왔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다음 이관 목록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공개 가능 여부는 내일 결정됩니다.”
나는 통신을 끊고 책상에 앉았다. 내 이름은 여전히 열하루 먼저 이 세계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기록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꾸며 놓은 화면 하나를 고쳤다.
내일은 이제 원래 내 이름을 적어 넣은 경로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기록이 우편인지, 소환 명단인지, 누군가의 안전 확인인지 처음부터 구분해서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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