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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38화
PAYLUA ORIGINAL · 제138화

138화. 도망자 이름을 돌려받았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95자

오프라인 책장
지명수배 취소 심의가 열린 날, 나는 처음으로 마왕성 출근길이 아니라 왕국 공문을 보고 옷을 골랐다. 회의 장소는 휴전항의 중립 법정이었다. 검은색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옛 직장에서 감사위원회에 갈 때마다 검은 옷을 입었는데, 그때도 일은 늘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평범한 셔츠와 재킷을 입고 넥타이만 맸다. 제르칸은 나를 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도윤, 그대가 왕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누가 내 예산을 지키겠느냐.” “제 예산이 아니라 폐하 예산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더욱 걱정하는 것이다!” “오늘 취소 심의를 하는 건 왕국 지명수배입니다. 제 고용계약이 아니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 호위대를 다 데려가거라.” “그럼 중립 법정 앞에서 왕국과 마계가 다시 싸울지 모릅니다.” “그건 곤란하군.” 루시아가 앞으로 나섰다. “나 혼자면 충분하다.” “그 말이 더 불안하죠.” 그녀는 진심으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 번 더 설명했다. 루시아는 내 안전 담당이지만 회의장에서 검을 뽑을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그녀는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가능한 범위에서'라는 말을 붙인 건 못 들은 척했다. 법정 앞에서는 내 이름이 적힌 지명수배 포고문이 아직 붙어 있었다. 나는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왕은 무급 용사 업무를 요구했고, 내가 거절하자 도망자로 취급했다. 그 뒤로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마왕성에 취업했고, 직원들이 제때 돈을 받는 법을 배웠고, 천계의 장부까지 들춰 봤다. 그런데 아직도 왕국의 공식 문서 한 장은 나를 범죄자처럼 기록하고 있었다. “취소되면 저 포고문도 떼겠죠?” 피코가 물었다. “그래야지.” “저는 그걸 떼고 싶은데요.” “심의 끝나고 하자.” “그럼 제가 떼는 데 수당이 있어요?” “공공기관 직원이 해야 할 일이야.” 녀석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코는 요즘 일을 배우면서 누구보다 먼저 노동의 값을 생각한다. 그런 교육에는 내 책임이 크다. 심의위원 세 명이 들어왔다. 왕국 법무관 둘과 중립 감리위원 한 명이었다. 라델은 왕국 쪽 조사 책임자로 참석했다. 그는 이전의 집행정지 결정과 나의 출석 보증 기록을 정리해 왔다. 첫 질문은 예상대로였다. “한도윤 씨, 왕국의 공식 용사 소환에 응한 사실이 있습니까?” “소환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무급 토벌 계약에 동의한 적은 없습니다.” “소환 당시 접수 기록에는 임무 설명 수령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설명을 들었다는 것과 일을 수락했다는 건 다른 일입니다.” 위원 한 명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 논리를 얼마나 오래 반복하시겠습니까?” “실제 계약서가 발견될 때까지요.” 법정이 조용해졌다. 나는 사실 저 말을 오래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호한 기록 하나로 내 삶이 결정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위원들은 소환 입국과 근로 계약의 구분을 확인했다. 구형 시스템에서는 '입국 확인', '직무 안내 수령', '직무 수락'이 모두 같은 완료 표기로 묶일 수 있었다. 우리는 원본 접수증과 당시의 실제 서명 상태를 비교했다. “여기서 당사자 서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델이 물었다. 왕국 담당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서명란이 비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별도의 수락 증빙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기분이 울컥했다. 누군가 오랫동안 당연히 알았어야 할 사실을 이제야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의는 곧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내가 마왕성에 취업한 뒤 왕국 경계 구역을 통과한 기록이 여러 번 있었고, 그 일부는 구형 대리번호 `0003`으로 표시돼 있었다. 한 위원은 이것이 내가 타인의 신원을 사용해 이동한 증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건 공동 인계 업무 코드입니다.” 내가 말했다. “어떻게 증명합니까?” 나는 토스에게서 받은 규격 사본과 중립 우편조합의 구형 번호 분류표를 제출했다. 두 문서는 `0003`이 최종 신원 승인 권한이 아니라 접수·보존·인계 표식이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그렇다면 누가 당신의 이동을 승인했습니까?” “각 이동마다 기록이 다릅니다. 허가된 출장도 있고, 왕국 조사관이 입회한 현장 조사도 있습니다. 모든 이동을 한 번에 승인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라델이 개별 이동 기록을 차례로 제시했다. 왕국 조사단 동행 출장, 중립 공관 열람 방문, 천계 제7서고 입경. 그중 일부는 원본 확인이 필요했지만 당장 위장 신원으로 판단할 근거는 없었다. “기록이 많다고 죄가 많은 건 아니군요.” 심의위원이 중얼거렸다. “제 업무가 많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답했다. 그 말을 듣고 피코가 조용히 웃었다. 휴식 시간에 라델이 내게 물을 건넸다. “생각보다 힘들죠?” “공식 문서가 제 이름을 얼마나 오래 붙잡을 수 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자료가 많이 정리됐습니다.” “라델 씨가 도와주셔서요.” 그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 “제가 왕국 조사관이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도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믿는 겁니다.” 라델은 어쩐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웃겼다. 휴정 뒤에는 한 위원이 독특한 질문을 했다. “마왕성에서 월급을 받는 한도윤 씨에게 왕국의 귀환 지원을 계속 제공할 이유가 있습니까?”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취업을 했으니 처음 소환됐을 때의 권리는 사라진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화를 내면 논점이 흐려질 수 있어서 천천히 대답했다. “현재 고용계약과 소환 당시의 신분 기록, 귀환을 선택할 권리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제가 마왕성에 취업했다는 이유로 과거 소환 절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귀환 지원 비용을 왕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지원 범위와 비용 부담은 법적 근거를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그 돈을 당장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제 이름으로 강제 근무 불응이라는 포고가 남아 있는 문제를 다투는 겁니다.” 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델이 자료를 제출했다. “쟁점을 좁혀 주십시오. 오늘의 안건은 지명수배 포고 효력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꽤 단호했다. 나는 속으로 고마워했다. 모든 일을 한 번에 결론 내려고 하면 정작 오늘 해결할 수 있는 일까지 멀어진다. 법정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제르칸에게서 전송이 왔다. “내가 왕국 왕에게 항의서를 보내 줄까?” “괜찮습니다. 오늘은 공식 심의가 진행 중입니다.” “그래도 우리 직원을 부당하게 괴롭히는 것 아니냐!” “그런 점이 있는지 심의에서 확인하는 거죠.” “그럼 내가 증인으로 나가서 네가 얼마나 무서운지 말하겠다.” “그 말만은 하지 마십시오.” “왜? 사실이잖느냐!” 나는 통신을 끊었다. 법정에서 내 고용주의 증언이 '이 인간이 우리 마왕성에서 제일 무섭다'라면 심의가 새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몰랐다. 루시아는 내 옆에 앉아 포고문을 가리켰다. “널 처음 쫓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잘 싸웠겠죠.” “그래. 하지만 이제는 먼저 이유를 확인했을 거다.” 나는 그녀의 손에 쥔 칼집을 보았다. 사람은 바뀔 수 있었다. 그것도 거대한 마법 없이, 매일 누군가의 말을 한 번 더 듣는 방식으로. “루시아, 오늘 와 줘서 고마워요.” “호위 계약이니까.” “그래도요.” 그녀는 조금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끝나고 국밥이나 먹자.” 왕국에는 국밥이 없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다. 비슷한 뜨거운 국물이 있으면 충분했다. 오후 심의에서는 지명수배의 법적 근거가 검토됐다. 최초 포고문은 '왕국 소환 임무 불응 및 도주'를 이유로 작성됐지만, 그 임무의 계약 수락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담당 부서가 적용한 긴급규정은 신변 보호나 출입 관리에 관한 조항이지, 무보수 근무를 강제하는 근거가 아니었다. 한 위원이 물었다. “그럼 한도윤 씨가 왕국을 떠난 건 무단 이탈이 아닙니까?” 나는 차분히 답했다. “아직 유효한 근로 계약이 성립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그 계약으로부터 이탈했다고 할 수 없겠죠.” “왕국은 소환에 많은 비용을 썼습니다.” “그 비용을 누가 승인했고 누구에게 지급했는지는 별도의 회계 문제입니다. 제가 계약도 하지 않은 일을 무급으로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진 않습니다.” 위원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내 말이 지나치게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큰돈을 썼다는 이유로 내 삶을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세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심의 결과는 뜻밖에 빨리 나왔다. 다수 의견으로 기존 지명수배 포고의 효력을 철회한다는 결정이었다. 다만 왕국이 소환 관련 비용과 별도의 행정 정산을 조사할 권리는 남았고, 내 개인 고용 계약과 귀환 선택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면 이제 제가 왕국 땅을 걸어도 붙잡히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라델이 정중히 대답했다. “해당 포고문을 근거로 체포할 수 없습니다. 다른 법적 사유까지 면제된다는 뜻은 아니지만요.”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법정 밖으로 나오자 피코가 기다렸다는 듯 포고문 앞으로 달려갔다. “이제 떼도 되죠?” “법정 관리인이 정식 철거해야 해.” 녀석은 관리인에게 부탁했다. 관리인은 결정문을 확인한 뒤 직접 포고문을 떼어냈다. 벽에는 오래 붙어 있던 종이의 흔적이 남았다. 나는 그 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이제야 이 세계에서 도망자라는 이름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루시아는 내 어깨를 툭 쳤다. “축하한다. 더는 도망칠 이유가 없군.” “안 그래도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못 도망갑니다.” “그럼 오늘 술을 마시자.” “제가 술 사는 겁니까?” “당연하지.” “복직도 아니고 지명수배 취소인데요?” 루시아가 웃었다. 결국 우리는 휴전항 식당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기로 했다. 제르칸은 소식을 듣고 특별 축하 연회를 열자고 했지만, 나는 그 돈을 시범 창구 안내문 제작비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너무 검소하지 않느냐!” “폐하, 이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축하입니다.” 왕은 한참 투덜거리다가 허락했다. 얼마 후 식당에서 나온 국물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평범한 식사를 평범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나는 식당 밖에서 잠깐 혼자 서 있었다. 마왕성에 처음 취업하던 날에는 왕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이제는 저기 지나가는 왕국 상인에게 길을 물어봐도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루시아가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기분이 이상하냐?” “기분이 좋으면서도 허탈해요. 원래 없어야 했던 포고가 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기쁘네요.” “네가 그동안 그 종이 때문에 고생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더 묻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조금 걸었다. 그 짧은 산책이 예상보다 큰 선물이었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철회 결정문의 효력일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 결정이 기쁘다고 해서 어제까지 겪었던 불이익이 저절로 보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문제는 필요하면 별도로 다투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내 오래된 지명수배 사본을 보고서 보관함에 넣었다. 바로 찢어 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오래 잘못된 기록이 살아남았는지 설명하려면 원본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었다. 대신 최신 상태를 큰 글씨로 붙였다. [효력 철회. 이전 기록 보존. 신규 집행 금지.]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도윤 님은 도윤 님이네요.” “전부터 나였지.” “근데 왕국도 이제 알잖아요.”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말이 정확했다. 그런데 퇴근 직전에 아레인에게서 통신이 왔다. 중립 응급수용센터에 보관된 옛 심의 첨부의 공개 범위가 결정됐다는 것이다. 수정안을 제출한 조직 이름이 확인됐다. [공동 소환 안전연락반. 제3감리 한시 업무조직.] 나는 펜을 집었다. 처음 보는 명칭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조직의 설립 목적이 적혀 있었다. [소환될 가능성이 있는 미확인 대상에게, 소환 전에 안전을 알릴 방법을 검토함.] 나는 오래된 법정 결정문을 내려놓았다. 오늘 하나의 억울한 이름을 지웠는데, 또 다른 오래된 이름이 나타났다. 그들이 정말로 누군가에게 소환을 알릴 수 있었을까. 알렸다면 어떤 방법으로, 누구의 허락을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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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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