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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36화
PAYLUA ORIGINAL · 제136화

136화. 사람을 먼저 구하는 통역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87자

오프라인 책장
중립 응급수용센터는 옛 휴전항에서 마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산허리에 있었다. 길은 좁았고 비가 오면 자주 끊겼다. 피난민이나 사고를 당한 여행자가 먼저 도착하는 곳으로는 조금 이상한 자리였다. 그러나 예전 지도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숲이 무성한 곳이 과거에는 세 나라로 갈라지는 길목이었다. 사람들은 국경을 넘기 전에 여기서 잠깐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여긴 전쟁 중에도 공격하지 못하는 구역이었대요.” 아레인이 설명했다. “규정이 있었겠죠.” 내가 말했다. “규정도 있고, 그 규정을 지키려고 밤새 서 있던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녀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제도는 종이만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누군가 배고픈 몸으로 문을 지키고, 모르는 말을 이해하려 하고, 밤에 깨어 있는 일을 반복해야 비로소 사람을 보호한다. 센터장 레므는 얼굴에 작은 흉터가 있는 중년 수인이었다. 그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곧 걱정을 드러냈다. “옛 문서 보러 오셨다죠.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먼저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산 아래에서 낙석이 있었어요. 대피 차량이 올라오고 있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루시아를 돌아봤다. 그녀는 이미 출입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옮기겠다.” “무기를 휘두르진 마세요.” “길을 막은 바위는 잘라도 되나?” “현장 책임자 확인하고요!” 루시아는 엄지를 치켜들고 뛰어나갔다. 나는 뒤따라가다가 피코에게 말렸다. “도윤 님, 지금 회계 담당자가 할 일은 뭐예요?” “사람을 옮기는 데 필요한 물품과 비용을 확인하는 거지.” “그럼 저는 사탕 나눠줄게요.” “알레르기나 건강 상태 확인하고 줘.” “그럼 물부터 가져올게요.” 좋은 판단이었다. 피코가 물병을 모으는 사이 나는 센터의 대피 명단을 살폈다. 문제는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종족의 이름을 공용어로 적으면서 비슷한 소리가 같은 사람으로 합쳐지고 있었다. “이 사람 둘은 같은 분입니까?” 접수 담당자가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한 분은 왼쪽 뿔이 짧다고 적혀 있고, 한 분은 아이를 안고 있다고 되어 있어요.” “그럼 먼저 두 사람으로 표시해 두고 현장 확인합시다. 단정해서 합치면 나중에 누가 안전한지 모르게 돼요.” 나는 비식별 번호를 두 개 만들었다. 이름 확인이 끝나지 않았다고 음식과 의료 지원을 미룰 필요는 없었다. 위험이 급한 사람부터 의료진에게 안내했다. 첫 번째 차량이 도착했을 때 어린아이 하나가 내 소매를 붙잡았다. 아이는 낯선 말로 무언가를 반복했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부서진 마차와 노새가 있었다. “저기 누가 남았니?” 아이는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잘못 알아듣고 싶지 않았다. 통역 담당자를 부르고, 아이가 가리킨 방향을 현장 구조대에 알렸다. 구조대는 어른 한 명이 짐을 챙기려고 뒤에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살아 있었다. “아이 말이 뭐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통역사는 숨을 고르며 답했다. “'아버지 거기 있어요'라는 뜻이었어요.”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내가 그 말을 '짐이 있어요'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다면 어떡했을까. 짧은 문장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도, 놓치게 할 수도 있었다. 레므는 잠시 뒤 접수실의 옛 시스템을 보여 줬다. 우리가 찾던 시험용 언어 계정이 이 센터로 이관 요청된 이유였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온 사람의 말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어별 안내문을 미리 준비하고, 자동 번역을 시험하려 했어요.” “승인이 왜 보류됐습니까?” “지금 쓰는 안내문과 충돌할 위험 때문이었다고 기록돼 있어요. 긴급구조는 할 수 있어도, 안내문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기 보호 계약에 동의한 것처럼 표시될 수 있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우리가 몇 달 동안 찾던 문제였다. 선의로 만든 기능이 어떤 순간에는 사람에게 불리한 계약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센터의 임시 침상 주변에는 각기 다른 언어로 된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중 한 장에는 이렇게 번역된 공용어 안내가 적혀 있었다. [제공된 치료와 대피 지원은 수령 사실을 확인함. 장기 계약 및 채무 승인을 의미하지 않음.] “이 문구는 최근에 붙였습니까?” “공동 임시 권고안을 참고해서 어제 새로 붙였어요.” 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레므가 웃었다. “당신들이 회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더군요.” 그 말은 내가 이세계에 온 뒤 받은 칭찬 중 가장 기분 좋은 축에 들었다. 제르칸이 내게 '무섭다'고 말하는 건 칭찬인지 협박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오후에는 추가로 차량 두 대가 올라왔다. 산악어와 공용어를 모두 못하는 여행자들이었다. 레므는 그들에게 그림을 보여 주며 선택권을 확인했다. 먹을 것, 치료, 휴식 장소, 보호자에게 연락할지 여부. 어떤 안내는 손짓으로 전달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인 중요한 결정은 통역을 기다렸다. 나는 센터의 임시 예산을 확인했다. 대피용 담요가 모자랐고, 물은 아직 충분했다. 반면 적립금 계정에는 오늘 사용할 수 없는 목적 지정 기부가 많았다. 금액은 넉넉해 보이는데 정작 담요를 살 돈은 부족한 기막힌 상황이었다. “왜 저 돈을 못 씁니까?” 피코가 물었다. “작년에 지붕을 고치라고 받은 기부금이거든. 담요를 사는 데 쓰려면 기부 조건을 확인해야 해.” “지붕은 멀쩡한데요.” “그러니까 모금한 사람이 용도 변경을 허락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지.” 레므는 이미 기부자와 연락 중이었다. 나는 마왕성 재정에서 공식 긴급 물품 지원을 할 수 있는 항목이 있는지 몰트에게 확인했다. 기존 구호 물자 예산의 범위 안에서 담요 스무 장을 지원할 수 있었다. 마왕성 직원들이 운반을 도왔고, 별도 작업시간도 기록했다. 제르칸은 통신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이 담요에 자수로 들어가느냐?” “폐하, 지금은 담요에 이름을 새길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다음에도 없습니다.” “한도윤, 너는 인간의 따뜻함을 모르는구나!” “지금 담요가 따뜻하면 됐습니다.” 통신이 끊기자 레므는 한참 웃었다. 하지만 담요를 받은 사람들은 마왕성 출신인지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곳에 앉을 수 있었다. 그게 중요했다. 해가 기울 무렵 센터장이 임시 대피실을 돌아보자고 했다. 그곳에는 부상자는 없었지만 낯선 장소에 온 사람들의 걱정이 가득했다. 한 드워프 부부는 서로 떨어진 짐을 찾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도착한 아이의 보호자가 확인되지 않아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를 일단 제 가족이라고 적어 두면 안 됩니까?” 피난민 한 명이 말했다. 레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잠시 함께 머무를 수는 있어요. 하지만 법적 보호자 등록은 실제 확인 후에 해야 합니다.” “제가 도와주겠다는 건데 왜 막습니까?” “도움을 막는 게 아니라 두 분 모두 안전하게 확인하려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레므가 얼마나 많은 밤을 이런 질문 속에서 보냈을지 상상했다. 누군가에게는 서류가 늦는 일로 보이겠지만, 보호자 신원을 서둘러 정하면 아이가 원치 않는 곳으로 보내질 수도 있다. 아이를 돌보던 직원은 장난감 토끼를 꺼내 아이 앞에 놓았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토끼 귀를 만졌다. 피코는 조용히 다가가 자신의 사탕주머니를 열었다가 멈칫했다. “건강 상태 확인부터 해야 했죠.” “잘 기억했구나.” 내가 말했다. 녀석은 대신 토끼를 움직여 아이를 웃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우리 둘이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피코는 서류보다 내 얼굴이 더 신기하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적어도 서류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또 다른 소란은 식사 배급표에서 생겼다. 그날 오후 두 명으로 등록된 동일 표기 이름 때문에 식권이 한 장만 발급됐다. 담당자는 한 사람에게 이미 식사를 줬으니 다른 사람이 다시 받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의심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확인되지 않은 의심으로 식사를 안 주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비식별 번호와 실제 대피 장소를 확인했다. 한 사람은 부상자 가족이었고, 다른 사람은 마차 운송인이었다. 접수 직원은 원래 이름의 끝 음절을 잘못 적어 두 사람을 합친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합니까?” “원래 접수 기록은 보존하고, 오늘부터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정정 이력을 남기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두 사람 모두 따뜻한 수프를 받았다. 수프는 평범했지만, 누가 굶고 누가 먹었는지 분명해지는 것만으로도 현장이 훨씬 조용해졌다. 센터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오늘 통역을 도와준 자원봉사자도 근무 기록에 남겨 주세요. 앞으로는 사전에 배정하고 적정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도록요.” 나는 바로 메모했다.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피난민에 관한 기록과, 실제 일을 한 통역사에게 지급해야 할 비용은 분리해서 처리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일을 한 사람의 수당까지 사라져서는 안 됐다. 레므는 나를 보고 말했다. “오늘 기록을 많이 고쳐 주셨네요.” “사람들이 직접 지킨 걸 종이에 맞게 적은 것뿐입니다.” “그게 안 돼서 사람들이 자주 다툽니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은 전 세계 모든 회계실의 슬픈 표어로 삼아도 되겠다 싶었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센터에서는 두 명의 피난민이 서로의 이름을 잘못 인식하는 문제가 해결됐다. 접수 담당자는 수정된 번호를 확인하고, 원래 이름과 새로 확인된 표기를 나란히 남겼다. 한 사람이 두 명이 되는 일도, 두 사람이 한 명이 되는 일도 막았다. 루시아는 잠깐 쉬는 시간에 내게 현장 지도를 보여 줬다. 산 아래 길목의 낙석은 이미 안전하게 치워졌지만, 다음 폭우 때 다시 막힐 가능성이 있었다. “응급수용센터에 안전한 우회로를 하나 더 표시해야겠어.” “비용과 담당 기관을 확인할게요.” “길을 그리는 데도 돈이 드나?” “그림만 그리면 적게 들죠. 실제 표지판을 세우고 유지보수하려면 사람이 필요해요.” 루시아는 현장을 다시 돌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일을 다음 주 공동 안전 점검에 올렸다. 오늘 사람을 구하는 것과 내일도 같은 길을 안전하게 쓰는 일은 이어져 있었다. 나는 레므에게 센터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물품도 필요하지만, 밤에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직원이요.” 나는 그 인력 비용을 다음 보고서에 따로 적었다. 레므가 나를 불렀다. “시험 계정 이관 문서를 하나 더 찾았습니다.” 그는 오래된 표지를 내밀었다. [실험 목적: 원언어 일치 여부보다 우선하여, 당사자에게 이해 가능한 응급 안내 제공. 성과지표: 안전한 인계 완료.] 나는 웃었다. “생각보다 좋은 목표네요.” “그래서 아직도 이 문장을 직원 교육 때 읽습니다.” 그런데 부속 문서에는 작은 수정 흔적이 있었다. 당초에는 '안전한 인계 완료'만 있던 지표 옆에 누군가 다른 항목을 추가하려 했다. [보호 대상 귀환 가능성 사전 분류.] 그 항목에는 승인 보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시행 여부는 별도 조회 대상이었다. 나는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소환자의 언어를 확인하던 업무와 귀환 가능성 평가가 어느 지점에서 만났는지에 대한 실마리였다. 그렇지만 서로 닿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내 소환을 계획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문서 누가 수정하려 했습니까?” “개인 성명은 보호 자료예요. 다만 수정안을 제출한 조직과 심의 일자는 공개 심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루시아가 마지막 구조 차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의 옷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피코는 방금 건넨 사탕의 개수를 세다가 모자란 숫자를 발견한 듯 머리를 갸웃했다. “도윤 님, 오늘 사탕 일곱 개 썼는데 주머니에는 여섯 개만 줄었어요.” “누가 너한테 하나 줬겠지.” “아! 아까 아이가 고맙다고 준 거요.” 녀석은 그 사탕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래 바라봤다. 우리가 오늘 제대로 한 일은 옛 문서의 의미를 찾은 것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몇 사람은 안전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것으로 한 하루의 결산이 충분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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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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