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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32화
PAYLUA ORIGINAL · 제132화

132화. 종탑에는 들은 소리만 남는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128자

오프라인 책장
“종탑에 가려면 종을 울려야 합니다.” 휴전항 북부 관리인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출입 허가서를 내밀었다. “보통은 이걸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출입 허가고, 종은 내부에 들어간다는 알림입니다.” “둘은 다르군요.” “달라야죠. 서명하는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감탄했다. 여기서는 문 하나를 열 때도 우리가 반년 동안 떠들어 온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관리인이 종을 너무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정오 직후 도착했는데, 관리인은 입장 확인용 소종을 준비한다며 스무 분이나 사라졌다. 루시아가 복도에서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자물쇠를 자르면 빨라.” “그러면 우리 방문 기록이 범죄 현장 기록으로 바뀝니다.” “기록 제목만 바뀌는 거라면?” “제 직업이 바뀔 수도 있고요. 감옥 수감자로.”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칼에서 손을 뗐다. 피코는 그동안 입구에서 작은 종을 계속 흔들었다. 우리는 여섯 번쯤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한 뒤에야 그 종이 피코가 가져온 휴대용 알람이라는 걸 알았다. “도윤 님, 여기 시계가 없잖아요.” “그래서 네가 시간을 알려 준다고?” “네. 한 번 울리면 아침, 두 번이면 점심, 세 번이면 간식이에요.” “지금 몇 번 울렸지?” “제가 세는 걸 잊었어요.” 관리인이 돌아왔을 때 피코는 이미 사탕을 두 개 먹은 뒤였다. 종탑은 회색 바위로 만든 육각형 건물이었다. 계단은 좁았고, 벽 곳곳에 오래된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중 익숙한 글씨가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한글처럼 보이는 획은 없었다. 어떤 문자는 세로로, 어떤 문자는 거꾸로 쓰여 있었다. 소리검수청이 여러 언어를 다뤘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레인과 아우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계 기록사 아우렐은 오늘도 지나치게 반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가 범위는 장비 작동 원리와 관리 기록입니다. 실제 녹음된 음성 원본은 소유자 확인과 공개 심사를 마치기 전에는 재생할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왜 다들 저를 실망스럽게 보는 겁니까?” 아우렐은 피코를 바라봤다. 녀석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노래하는 종탑이라고 해서 노래를 들으러 왔거든요.” 관리인은 조용히 웃었다. “종탑의 노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류가 아니에요. 소리를 보존하는 일이죠.” 우리는 장비실로 올라갔다. 오래된 메아리 보존기는 나무 상자처럼 생겼지만 안쪽은 반짝이는 수정판으로 채워져 있었다. 큰 접시 모양의 수음판이 천장을 향해 있었고, 벽에는 외부 소음이 들어오지 않도록 다층의 부직포가 붙어 있었다. 누군가 밤새 빗소리를 모은다면 이보다 좋은 장소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외부 소리를 어디서 수집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은 이 지역의 항구 방송과 선박 통신이에요. 일부는 실험적으로 공간 균열에서 흘러오는 신호를 들었고요.” “공간 균열이요?” “같은 말이 반복되는 특이 현상이 있습니다. 멀리서 들어오는 소리를 붙잡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외부세계의 말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어요. 확증된 것만 말하겠습니다.” 아레인이 오래된 현장 일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실험 실패 기록이 더 많았다. 어둠 속에서 바람 소리를 잡았다는 기록, 파도에 섞인 뱃고동을 사람의 음성으로 착각한 기록, 술 취한 선원의 노래를 천사의 계시라고 제출한 기록까지 있었다. “업무 환경이 많이 익숙합니다.” 내가 중얼거렸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을 했습니까?” 아우렐이 물었다. “저희 회사도 보고서 열 장 중 아홉 장이 오해에서 시작됐습니다.” 몰트가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장비실의 관리 기록을 보던 중 나는 이상한 항목을 발견했다. [원본 음성 열람 제한. 자동 의미판정 기능 설치 금지.] “왜 이런 금지가 있었습니까?” 관리인이 설명했다. “과거에는 음성을 기록하는 장비와 그 뜻을 추정하는 장비를 한데 묶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비슷한 소리가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고, 말한 사람이 원하지 않는 명령으로 바뀔 수도 있었죠.” “누가 반대했나요?” “기록에 따르면 소리검수청의 검수자들입니다. 현장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우렐이 덧붙였다. “반대 문서가 존재한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그 의견이 얼마나 채택됐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장비의 기본 시험 기능을 보자고 했다. 피코가 금방 손을 들었다. “제 목소리 넣어도 돼요?” “실험 목적을 이해하고 원하면 할 수 있어. 단, 네 목소리를 얼마나 보관할지 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건 별도 결정이야.” “전 아무 말이나 해도 돼요?” “응.” 녀석은 수음판 앞으로 갔다. “사탕 다섯 개!” 수정판이 반짝였다. 관리인이 시험용 재생 버튼을 누르자 피코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돌아왔다. “사탕 다섯 개!” 피코가 깡충 뛰었다. “제 말을 알아들었어요!” “소리를 재생한 거야. 사탕을 주겠다고 동의한 건 아니고.” “그건 알아요.” 녀석은 약간 섭섭한 얼굴이었다. 나는 시험 녹음을 재생하고 삭제하는 과정을 직접 확인시켰다. 수정판이 원래 색으로 돌아왔고, 삭제 기록에는 시험 실시와 종료 시각만 남았다. 피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거 좋아요. 내 목소리를 잠깐 빌려줬다가 돌려받은 거잖아요.” 루시아가 웃었다. “칼도 빌렸다가 돌려받는 거다.” “누나 칼은 빌리고 싶지 않아요.” “왜?” “돌려드릴 때 안 닦았다고 혼날 것 같아요.” 우리는 계단을 내려와 오래된 임금대장을 확인했다. 소리검수청에 고용된 인력은 생각보다 적었다. 상근 검수자 두 명, 시간제 보조 네 명, 장비 정비공 한 명.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원언어 자문을 제공하는 외부 협력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보호 대상으로 가려져 있었다. “과거 한국어 작업이 있었다면 자문인 중 한 사람일 가능성도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레인이 답했다. “어떤 소리인지 판정한 사람이 꼭 그 말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그녀는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겼다. 거기에 나는 어제 인사 공고 뒷면에서 본 유지보수 예약 번호를 발견했다. 예약은 실제로 수행됐지만, 부품 교체 비용은 어느 기관에도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유지보수를 했는데 돈을 안 줬다고요?” “기부로 표시됐습니다.” “기부자는 누굽니까?” “종탑 유지관리 시민 조합이에요.” 나는 관리인을 돌아봤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제가 여기 오기 전이었어요. 다만 조합의 회계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요청하면 보여드릴 수 있어요.” 우리의 방문 목적이 원래는 장비와 언어 기록 확인이었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정비공이 보수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기부라고 적혀 있는 항목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무급 노동이었다면 바로잡아야 했다. 나는 운영 조합의 지급대장과 작업 확인서를 비교했다. 다행히 정비공 임금은 시민 조합의 별도 계좌에서 지급됐다. 다만 장비실의 신속 대응 비용이 한 차례 '기관 내 무료 지원'으로 잘못 옮겨 적혀 있었다. 관리인은 원본 수령증을 찾아 수정 요청을 걸었다. “장비 수리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정산이 끝난 건 아니었군요.” “그렇죠.” 피코가 말했다. “도윤 님은 소리 들으러 와서도 돈부터 봐요.” “이 직업은 종종 그렇게 돼.” 관리인은 또 하나의 장비를 보여 줬다. 메아리 보존기 옆에 놓인 작은 흰색 수정이었다. 그는 이것을 '응답 요구기'라고 불렀다. 녹음 내용을 재생한 뒤 상대가 대답했는지 확인하려고 만든 보조 장치였다. “왜 사용을 중단했습니까?” “기록된 질문에 새 사람이 대답하면 원래 녹음한 사람의 대답으로 섞이는 일이 있었대요. 그래서 실제 연결된 통신이 아닌 이상 응답으로 저장하지 않게 고쳤죠.” 나는 시험용 녹음을 신청했다. 아우렐은 원본은 공개하지 않고 피코의 새 녹음만 써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피코는 신나서 '사탕 주세요'를 녹음했다. 그런 다음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말했다. “안 됩니다.” 장비가 반짝였다. 화면에는 두 문장이 따로 표시됐다. 첫 번째는 피코가 아까 녹음한 요청이었다. 두 번째는 지금 내 입에서 나온 대답. 각 문장의 시각과 발화자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구분이 되는군요.” 관리인은 미소 지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만 초기 모델에서는 한 줄로 이어 썼대요.” “그럼 피코가 오지 않았는데도 대답했다고 보였겠네요.” “네. 그게 위험했죠.” 피코가 방으로 돌아오자 나는 시험 기록을 보여 줬다. 녀석은 내 '안 됩니다'를 보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도윤 님은 제가 없는 데서도 거절했네요.” “내가 네 사탕을 대신 결정했다는 뜻은 아니야. 내 대답을 별도로 녹음해 둔 거지.” “그럼 제 요청에는 대답이 없는 거네요?” “그렇지. 지금 네가 다시 물으면 새로 대답할 수 있겠지.” 피코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사탕 주세요.” “오늘 정해 둔 간식 시간에.” 녀석은 손가락을 꼽아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험 기록을 삭제하고, 삭제했다는 작업 기록만 남은 것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제대로 지운다는 것도 기술이었다. 오후에 종탑 관리인과 아레인이 구형 자료를 재정리했다. 대형 수정판 하나가 오래전 시험실에서 분리 보관돼 있었다. 봉인 대상은 음성 내용이 아니라, 신호 수집 장비의 방향과 위치를 보여 주는 도면이었다. 그 위치를 그대로 공개하면 지금도 사용하는 중립 통신 경로가 드러날 수 있었기에 제한이 걸려 있었다. “도면 원본을 못 보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기밀 위치를 뺀 후 방향 분류만 확인할 수 있는지 문의해 보죠.” 아레인이 허가 범위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북쪽, 남쪽 같은 넓은 구분과 수신 시각은 검토 가능합니다. 정확한 좌표는 비공개예요.” 수신 시각표는 놀라웠다. 우리가 찾는 한국어 유사 음성 표본은 소환 전 사전 등록과는 별개로 기록된 것이었다. 기록 시각도 달랐다. 한 번의 사건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서로 다른 날, 서로 다른 목적으로 남긴 자료일 수 있었다. “그럼 제 이름이 미리 등록된 이유가 이 장비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네요.”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아우렐이 말했다. 나는 어깨를 풀었다. 아직 수수께끼는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섣불리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종탑의 가장 아래층에서 정비공이 오래된 부품을 가져왔다. “이건 회수 목록에서 누락된 물건입니다. 안에 쓰인 그림을 해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손바닥만 한 동판을 내밀었다. 표면에는 작은 점 세 개와 선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송-4189 기록과 한국어 보존 문서에서 반복해 보았던 표식이었다.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점과 선은 누구나 그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동판 밑에 새겨진 번호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재생기 번호: B-19 / 최초 승인 용도: 구조 방송 언어 식별] 아레인은 작은 탄성을 냈다. “원래는 구조 방송 장비였군요.” 관리인은 동판을 돌려 보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재생된 말을 계약 승인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경고가 붙은 이유도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나는 동판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구조 요청을 기록하는 장치가, 나중에 누군가의 동의를 대신하는 증거로 쓰였다면 아주 큰 문제겠죠.” 그러나 문제라는 말과 실제로 그렇게 사용됐다는 증거는 달랐다. 나는 부품 사진과 소유권 기록만 사본으로 받았다. 원본은 종탑에 남겼다. 밖으로 나올 때 관리인이 다시 종을 울렸다. 이번에는 퇴장 알림이었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피코가 물었다. “도윤 님, 그럼 오늘 한국어는 못 들은 거예요?” “응. 하지만 소리를 왜 기록했는지는 조금 알았어.” “무슨 이유였는데요?” “처음에는 누군가를 구하려고 시작한 모양이야.” 피코가 자기도 종을 울려도 되냐고 물었다. 관리인은 웃으며 허락했다. 작은 손이 줄을 당기자 종소리가 항구 위로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누군가 멀리서 구조를 요청할 때, 듣는 쪽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소리의 주인을 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가 끝난 뒤에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다시 물어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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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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