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의 예산회의는 원래 위험한 행사다.
평소에는 제르칸이 성 전체를 번쩍이는 검은 수정으로 덮겠다고 주장하고, 몰트가 그것을 연간 유지비로 환산해 말린다. 루시아는 훈련장을 넓히자고 하고, 나는 장비부터 지급하자고 말한다. 피코는 구내식당 메뉴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원하는 게 다르다. 그리고 대개 돈은 없다.
그날 회의의 주제는 공동 재확인 창구의 예산이었다. 천계, 왕국, 중립 공관, 마왕성이 함께 운영하기로 한 시범 절차를 실제로 시작하려면 사람을 배치해야 했다. 문제는 각 기관이 모두 '상대가 어느 정도 부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마왕성이 먼저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제르칸이 회의 시작부터 소리쳤다.
나는 미리 만들어 둔 수치를 들었다.
"폐하, 지난번에 주당 두 차례, 업무시간 내 담당자 한 명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
"그 범위 안에서는 진행 가능합니다. 다만 야간에 수신인을 강제로 확인하는 인력은 배정하지 않습니다."
"그건 왜냐?"
"우리가 만들려는 게 권리 보호 창구인데, 밤에 찾아가서 대답하라고 강요하면 목적이 바뀌니까요."
마왕은 잠시 생각했다.
"그렇군. 야간 방문은 중지해라. 그럼 낮에 방문하면 되겠지?"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만요."
"넌 언제나 마지막 말을 하는구나."
"직무상 어쩔 수 없습니다."
회의에 초청된 왕국 조사관 라델은 빈자리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비용 분담 제안서 세 장이 놓여 있었다. 각 제안서에는 서로 다른 액수가 적혀 있었다.
"왕국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현장 파견 인원 하나를 줄이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레인이 말했다. "중립 공관 야간 기록관 두 명의 초과근무가 누적됐습니다."
루시아는 팔짱을 꼈다.
"사람을 줄이면 남은 사람들이 밤새야 하잖아."
"그렇지요."
"그런 건 제도 개선이라고 부르지 않아."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가 최근 들어 직장인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가장 강한 기사에게 초과근무를 이해시키다니. 내 교육 성과를 인사고과에 적고 싶었다.
우리의 첫 번째 실무 문제는 의외로 작았다. 안내 창구 앞에 놓을 빈 의자를 누가 구매하느냐는 것이었다.
"의자라면 마왕성에 많지 않느냐!" 제르칸이 외쳤다.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 높이가 다른 종족에 맞지 않아요."
"내 옥좌를 빌려 주면 되겠군."
"거절합니다."
"내가 아직 끝까지 말하지 않았는데!"
"폐하의 옥좌는 오크 장정이 앉아도 불편합니다. 게다가 가져오는 운송비가 비쌉니다."
제르칸은 명예가 실추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코가 내게 속삭였다.
"옥좌를 쓰면 손님이 무서워할 것 같아요."
"바로 그게 문제지."
나는 의자 세 종류와 비용을 설명했다. 트롤과 드워프도 앉을 수 있도록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의자, 날개 있는 종족을 위해 등받이가 없는 의자, 다리를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낮은 벤치. 가격은 가장 비싼 의자 하나보다 세 개를 조합하는 편이 저렴했다.
라델이 감탄했다.
"회계 담당자라더니 접근성 문제까지 보셨군요."
"첫 손님이 지팡이를 짚고 오셨으니까요."
"그런데 비용은요?"
"우리 쪽 시설 예산에서 낼 수 있습니다. 중립 공관은 자료 열람 시간 지원, 왕국은 법률 안내 인력, 천계는 기록 대조 담당자. 각자 부담을 명확히 적죠."
몰트는 내 표를 읽다가 한 줄에 손가락을 얹었다.
"'침묵 비용'이라는 항목은 뭔가?"
"당사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을 때 다시 연락하지 않도록 기록을 유지하는 비용입니다."
"돈을 안 쓰는 데 돈이 든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거절한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으려면, 거절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거든요."
몰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이 이해하는 침묵의 비용은 산 사람보다 깊어 보였다.
예산회의가 길어지던 중 북문 시범 창구에서 긴급 통신이 왔다. 가론에게 전역 안내가 새로 발송됐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통지서가 그의 현재 주소로 간 게 아니라 수십 년 전 군막사로 보내졌다는 점이었다.
"이걸 어떻게 하죠?" 담당 경비가 물었다.
"주소를 임의로 최신 정보로 바꾸지 마세요. 본인이 공개한 연락방법이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하지만 빨리 알려 줘야 하는데요."
"빨리 알리는 것보다 잘못된 곳에 보내지 않는 게 먼저예요."
가론은 북문 창구에 직접 남긴 연락처가 있었다. 나는 그가 허용한 범위로 '통지 발송 오류 확인 중'이라는 짧은 안내만 보냈다. 내용 전체를 지금 공개할 수는 없었고, 그것이 그의 연금 수급 결론도 아니었다.
피코가 내 옆에서 말했다.
"그럼 통지를 또 보내야 하네요."
"응. 잘못 보내면 두 번 일하게 되는 거지."
"처음부터 잘 보내면 일이 줄겠어요."
"이제 핵심을 알았네."
피코는 자기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빨리 하기보다 두 번 안 하기.]
내가 슬쩍 봤더니 녀석이 방긋 웃었다. 회사에 들어와 가장 빨리 성장한 직원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피코라고 답할 것이다. 다만 사탕 한 봉지에 그 모든 성장을 다시 팔아넘길 위험이 있다.
문제는 비용 분담표보다 시범 창구에 근무할 직원들의 안전이었다. 왕국 법무관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칸막이를 높이자고 했고, 중립 공관은 벽을 세우면 화재 대피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루시아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직접 줄자를 들었다.
"나는 전투 대형을 짤 때도 퇴로부터 본다."
"상담실에서 전투가 벌어질 일은 없으면 좋겠네요."
"그렇다면 출입문이 더 중요하지."
그녀는 창문 옆과 문 옆에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고, 상담자가 원할 때 자리를 떠날 수 있도록 출구 방향에 장애물을 두지 말자고 했다. 나는 그 설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을 위해 만든 시설이 사람을 가두면 안 되겠죠."
아레인은 상담 서류가 다른 사람이 보이는 곳에 놓이지 않도록 작은 칸막이를 제안했다. 피코는 자기 키보다 높은 칸막이를 보고 입술을 내밀었다.
"저는 손님 얼굴을 못 봐요."
"손님 얼굴을 꼭 볼 필요는 없어. 접수 내용을 안내할 때는 상대가 동의한 방법을 쓰면 되니까."
"그럼 제가 용지 건네주는 건요?"
"할 수 있지. 하지만 개인 정보를 읽거나 복사하는 건 별도 권한이 필요해."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들을 때마다 잠깐 실망하지만, 그 이유를 알면 금방 다른 일을 찾는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모의 상담을 진행했다. 몰트가 상담자, 라델이 기록 담당, 루시아가 출입구 안전 담당이었다. 마왕 제르칸은 본인이 가장 중요한 손님을 맡겠다고 우겼다.
"그럼 무슨 문제로 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나의 위대한 보라색 망토가 허락 없이 세탁됐다!"
"세탁을 의뢰하신 분은 누구죠?"
"시녀가 했다고 들었다."
"시녀가 망토를 맡았다는 것과 세탁에 동의했다는 건 다르군요."
마왕은 갑자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지! 내 위엄에 관한 중대한 사건이다!"
"다만 이건 제3감리 권리 확인 창구의 대상은 아니니 궁정 관리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끝난다고?"
"접수 창구를 정확히 안내한 것도 해결의 일부입니다."
루시아는 웃음을 참느라 몸을 돌렸다. 라델은 이미 책상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피코는 자기 주머니에서 색연필을 꺼내 '오늘의 손님: 마왕님'이라고 적으려다, 모의 상담의 개인정보 규칙을 기억하고 조용히 색연필을 내려놨다.
모의 상담이 끝나자 인사실에서 한 통의 통지가 왔다. 시범 창구 담당자들에게 일괄 야간 대기 근무가 자동 배정됐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표를 들여다봤다.
"아니, 우리가 야간 방문을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베르케가 화면을 확인했다.
"구형 민원 창구 설정이 복사됐네요. 옛 프로그램은 긴급 민원 신청이 들어오면 전원을 대기자로 올립니다."
"그럼 지금 중지해 주세요. 필요한 긴급 대응은 별도 계획으로 마련해야죠. 아무도 부르지 않은 상태로 밤새 기다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근무 배정이 실제 당사자에게 전달되기 전 중지된 것을 확인했다. 만약 이미 호출이 있었다면 실제 근무시간을 별도로 정산해야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호출 기록이 없었다.
라델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 정도로 작은 사무실을 만드는 데도 함정이 많군요."
"네. 하지만 사무실을 지을 때 발견하는 편이 몇 년 뒤 피해자를 찾는 것보다 낫습니다."
베실의 금고처럼 튼튼한 제도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의 빈 의자는 안전한 자리에 놓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시범 창구의 근무표를 끝까지 확인한 뒤 나는 피코에게 남은 식비를 계산해 달라고 했다. 녀석은 서류를 받아 숫자를 한참 세더니 갑자기 눈을 빛냈다.
"도윤 님, 오늘 간식비가 조금 남았어요!"
"그럼 남겨 두자."
"왜요?"
"내일 긴 상담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럼 내일 먹는 사탕을 오늘 사면 안 돼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봤다.
"피코야, 미리 산 사탕을 오늘 안 먹을 자신 있어?"
피코는 주머니를 움켜쥐고 한참 침묵했다.
"없어요."
"그럼 내일 사자."
작은 임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 지출을 당겨 쓰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어려웠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 중 가장 귀여운 예산 통제이기도 했다.
오후에는 중립 우편관의 임시관 관리자가 자료를 보내 왔다. 수신인 미지정 봉인 재료에 붙은 보존 사유의 한 줄이 공개 가능하다고 했다.
[생존 확인 전 강제 교부 금지. 편지에 명시된 선택권 관련 정보가 제3자에게 노출될 우려가 있음.]
나는 오래된 서류를 화면에 크게 띄웠다.
"이거군요."
라델이 인상을 찌푸렸다.
"발송을 멈춘 게 검열 때문인지 보호 때문인지 구분해야 하겠네요."
"일단 적혀 있는 목적은 보호입니다. 실제로 그 목적을 지켰는지 따져 봐야겠죠."
아우렐이 말했다.
"예전 제3감리에서는 당사자가 의식이 없을 때 통지서를 가족에게 대신 건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게 오히려 위험한 경우도 있었고요."
나는 한국에 남겨 둔 가족을 떠올렸다. 누군가 내 귀환 선택을 가족 대신 결정하려 들었다면 어땠을까.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과 내 의사를 다른 사람이 대신 서명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그럼 우편 발송 조건부터 제도를 점검합시다. 어디로 보내느냐보다 누구에게 보여 줄 권한이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가 끝난 뒤 제르칸이 문 앞에서 나를 붙잡았다.
"한도윤, 내 옥좌는 정말 불편하냐?"
"네. 오래 앉으면 허리가 아플 겁니다."
"위엄과 편안함을 동시에 갖출 수는 없단 말이냐?"
"가구를 바꾸시면 됩니다."
"왕의 옥좌를 바꾸라고?"
"폐하 개인 예산으로요."
마왕은 한참 고민하더니 중얼거렸다.
"그럼 일단 쿠션만 사겠다."
나는 인정했다.
"합리적인 절충안입니다."
그날 밤 우리는 시범 창구의 실제 운영비를 확정할 수 있었다. 처음 약속한 인력 지원 범위, 열람 담당자와 상담 담당자의 구분, 거절 정보 보존에 필요한 최소 기록을 각 기관이 승인할 권한의 범위 안에서만 결정했다. 아직 법률 시행도 전체 예산도 확정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음 주에 어디에 앉아 무슨 업무를 할지는 정해졌다.
몰트가 회의 종료 후 조용히 말했다.
"빈 의자를 유지하는 데 이렇게 많은 계산이 필요할 줄은 몰랐군."
"의자가 비어 있으려면 누군가 그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요."
"그럴듯한 말이네. 자네가 책을 써도 되겠어."
"제 이름으로 출간하면 인세는 누가 정산해 주죠?"
몰트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날 마지막 통신은 옛 임시관에서 왔다. 보존 사유서를 기록한 담당자가 더 이상 근무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대체 보존 책임자에게 인계된 확인표가 발견됐다고 했다. 날짜가 이상했다. 화재 직후가 아니라 무려 여덟 해 뒤에 재확인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봉투 한 장이 불타지 않고 보관됐으며, 누군가는 여덟 해 뒤에도 그것을 다시 확인했다.
나는 서류에 물음표를 그렸다.
'왜 아무도 보내지 않았는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생겼다.
'왜 여덟 해 뒤까지 누군가 이걸 보관했는가.'
제12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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