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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24화
PAYLUA ORIGINAL · 제124화

124화. 불탄 우체국의 살아 있는 장부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76자

오프라인 책장
마왕성의 시범 창구가 문을 연 지 이틀째 되던 날, 제르칸이 내게 상을 내렸다. 검은 보석으로 장식된 상자였다. "받아라, 한도윤!" 나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거대한 순금 종이칼이 들어 있었다. "이걸로 서류를 개봉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네 업적에 걸맞은 무기다." "순금이면 무르니까 금방 휘어질 텐데요." "무, 무르다고?" "그리고 서류를 찢지 않으려면 끝이 조금 더 얇아야 합니다." 마왕은 마치 자기 오른팔을 평가당한 것처럼 침울해졌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만 실사용 대신 전시용으로 두고, 금액과 재원은 확인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려고 준 게 아니야!" 결국 우리는 순금 종이칼을 마왕 개인 지출로 기록했다. 몰트는 금 중량을 측정하며 조용히 웃었다. 해골이 웃으면 음산하긴 하지만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고액 지출이 생겼을 때보다 훨씬 듣기 좋았다. 그날 오후 나는 중립 항구의 옛 세관 터를 다시 찾았다. 불탄 건물은 지금 작은 시장이 되어 있었다. 빨간 지붕 아래에서는 향신료와 조개껍데기, 요정용 모자가 팔렸다. 한때 수천 통의 우편과 장부를 보관하던 자리였다는 흔적은 바닥의 그을음뿐이었다. "저기가 옛 보관실 입구랍니다." 아레인이 가리켰다. 중립 공관 기록관인 그는 우리보다 먼저 현장 보존 허가를 받아 놓았다. 그의 손에는 마법 탐지봉 대신 오래된 시설 도면이 있었다. 누군가 중요한 기록을 찾는다고 건물 전체를 부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뭘 찾으려는 거죠?" 피코가 물었다. "옛 세관에서 구조한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기록한 운송 흔적. 원본 자체를 꺼낼 권한은 아직 없어." "그럼 상자를 열지 않을 거예요?" "상자가 있는지도 모르지." 피코는 고개를 숙였다. 아이에게 상자가 있다는 말을 꺼내 놓고 열어 보지 말라는 건 잔인한 짓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탐정 놀이에선 멋대로 상자를 열면 단서가 생기고, 실제 조사에선 소송이 생긴다. 시장 상인 대표는 우리가 옛 세관 터를 확인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손님 장사하는 날에 바닥을 뜯으면 안 됩니다." "바닥을 뜯지 않겠습니다. 공개 가능한 구조 경로만 확인할 거예요."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작년에는 마법사가 역사의 숨결을 찾는다면서 가게 뒤의 배수관을 뽑아 갔지." "그건 수리비를 받으셔야겠네요." "받았어요. 여섯 달 걸렸지만." 나는 속으로 누군지 모를 마법사에게 벌점을 줬다. 역사적 가치를 찾겠다고 남의 하수도를 뽑아 가는 건 원래 세계에서도 용납하기 어렵다. 우리는 상인이 허용한 시간에 맞춰 시장 뒤쪽 통로를 걸었다. 오래된 벽에는 화재 당시 소방대가 남긴 화살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인명 구조 통로'와 '보존 기록 이동 통로'는 서로 반대 방향이었다. 루시아가 벽을 손으로 쓸었다. "사람은 먼저 바깥으로, 장부는 뒤쪽으로." "그날 누군가는 이걸 분명히 구분했네요." "그리고 둘 다 살리려고 했겠지." 루시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그 문장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기록이 중요하다고 사람보다 먼저 살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록이 타 버리면 나중에 자신의 권리를 증명할 길을 잃는 사람도 생긴다. 둘을 순서대로 구하려고 한 흔적은 좋은 현장이 남긴 드문 증거였다. 그때 시장 한쪽에서 소란이 났다. "도둑이다!" 작은 날개 달린 생물이 상인의 장부를 물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검은 깃털의 새였는데 부리만 금속처럼 반짝였다. 상인이 빗자루를 흔들며 쫓아갔다. "저건 뭐죠?" 내가 물었다. "날짜까마귀." 아레인이 답했다. "오래된 잉크와 봉인 냄새를 좋아하지요."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옛 서류를 찾으러 온 우리한테는 최악의 손님인데요." 피코가 눈을 번쩍였다. "제가 잡아 올까요?" "손부터 물리지 마." 새가 지붕 위로 날아오르자 루시아가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칼은 뽑지 않았다. 대신 널빤지를 발판 삼아 지붕 끝으로 올라가 새의 길을 막았다. "거기 서!" 물론 새는 명령을 듣지 않았다. 나는 아래에서 시장 통로를 따라 달렸다. 생각보다 빨랐다. 서류를 쫓는 직업은 운동 부족을 해결해 주지만, 사전 동의 없이 심폐 기능까지 평가한다. 날짜까마귀는 시장 끝의 오래된 우편 관로로 들어갔다. 좁은 철통 안으로 새가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저길 어떻게 따라가요?" 피코가 헉헉거렸다. "안 따라간다." "네?" "저건 오래된 우편 경로지? 수신 쪽 출구를 찾으면 돼." 아레인이 도면을 펼쳤다. 시장 뒤쪽의 관로는 지금 사용하지 않지만 옛 우편관의 분류실과 연결돼 있었다. 우리는 관리인 허가를 받은 뒤 분류실 출입구로 돌아갔다. 새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상인의 장부를 부리로 쪼고 있었다. 빛나는 잉크가 먹이였던 모양이다. "이 망할 새야!" 상인이 달려들었다. "잠깐만요!" 나는 손을 들었다. "장부 원본이 더 찢어질 수 있어요." 루시아가 자기 허리띠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꺼냈다. 안에는 말린 고기 조각이 있었다. "먹을래?" 새가 고개를 돌렸다. "루시아 님, 새가 고기를 먹어요?" "전쟁터 까마귀는 뭐든 먹지." 그녀가 던진 고기 조각을 새가 낚아채자 피코가 천으로 장부를 덮었다. 상인은 자신의 장부를 돌려받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오늘 매출이 전부 여기 있어요." "다친 사람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내가 말했다. "글씨가 조금 지워졌어." "잉크 복원사를 불러야겠네요. 비용은 새 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요." "새 주인?" 아레인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우편관의 야생 마력조류 관리 조항을 찾아봐야겠군요." 그날 오후 우리는 뜻밖의 추가 사건으로 장부 한 권을 제대로 복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했다. 상인이 오늘 물건을 팔았다는 것과 고객이 돈을 실제 지불했다는 것은 별도 항목이었다. 찢어진 종이 때문에 둘이 뒤섞이면 상인과 손님 모두 억울해진다. 분류실의 오래된 선반에는 작은 나무상자 여러 개가 남아 있었다. 상자에는 우편 번호가 아니라 각각 '잘못된 주소', '중복 봉인', '주인 확인 대기' 같은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레인은 상자를 열지 않고 겉면 표지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건 누가 만들었죠?" 내가 물었다. "옛 세관 서기관들입니다. 급히 옮긴 물건을 나중에 구분하려고요."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당시에 이런 걸로 칭찬받는 사람은 드물었겠지요." 나는 잠시 웃었다. 어느 세계에서나 서랍을 정리한 사람은 잊히고 서랍을 뒤진 사람만 영웅이 된다. 물론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뒤지는 사람이 영웅이 되려면 정리한 사람의 노동부터 인정해야 한다. 피코는 작은 상자 하나의 표지를 읽었다. "주인 확인 대기. 이건 사람이 없어서 못 준 거죠?" "그럴 수도 있지만, 주인이 있었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을 수 있어." "그럼 누가 확인해 줘요?" "그걸 지금 우리가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중이지." 상자에는 또 다른 안내가 있었다. '수취인이 나타나도 담당자의 추정만으로 교부하지 말 것.' 당시 누군가는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이 본인이라고 말해도 무턱대고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쟁과 대피가 이어지던 시절, 이름과 얼굴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잃어버린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확인을 너무 엄격하게 하면 아무것도 못 받는 사람도 생기겠네요." 내가 말했다.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대체 증빙과 증인 절차가 있었습니다. 불완전하지만 그 시대엔 필요했지요." 우리는 오래된 대체 확인 절차를 읽었다. 마을 공동체 두 사람의 증언이나 당사자가 기억하는 물건의 특징을 대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증인들이 반드시 선량하다는 보장도, 당사자가 모든 기억을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완벽한 절차는 없었겠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위험을 줄이려는 흔적은 있지요." 분류실 바깥에서는 날짜까마귀를 잡으려고 나온 우편관 직원이 사료통을 흔들고 있었다. 새는 상인의 장부를 물고 도망쳤을 때와 달리 아주 점잖게 사료를 받아먹었다. "쟤는 안 혼나요?" 피코가 물었다. "관리인이 재발 방지를 해야겠지. 새에게 회계 교육을 할 수는 없잖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도 배우는데." 나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귀찮게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 우편관 직원이 우리에게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날짜까마귀가 물고 갔던 장부의 가장자리에 낡은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다가 멈췄다. "원본 훼손을 막으려면 보존 담당자가 분리해야겠네요."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조각은 다른 장부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였지만 그 출처는 불분명했다. 우리는 즉시 그 조각을 한국어 봉투와 연결하지 않기로 했다. 사소한 우연이 조사자를 얼마나 멀리 데려가는지 이미 충분히 겪었다. 오히려 그날 더 유용했던 건 시장 관리인의 간단한 지도였다. 불이 났던 당시 사람들이 어느 출입문으로 도망쳤는지, 어떤 통로가 무너졌는지, 우편 수레가 어디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기억에 따라 표시한 자료였다. 기억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안내문으로 함께 남겼지만, 다른 기록과 비교하기에는 충분했다. "사실은 종이보다 사람이 더 많이 기억하고 있네요." 피코가 말했다. "맞아. 다만 사람의 기억도 변하니까 기록과 같이 봐야 하지." 루시아가 시장 입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윤, 오늘은 장부에만 표시하지 말고 저 상인들에게도 고맙다고 해라." "물론이죠." 우리는 시장 대표에게 협조에 대한 감사장을 전달했다. 제르칸이 준비한 검은색 황금 테두리 감사장은 너무 호화로워 상인이 물건값을 올릴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내용에는 단순한 감사만 적혀 있었다. 이 세계에서 마왕성이 서명한 종이를 받고도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시장의 협조를 받아 분류실의 오래된 구조 기록을 열람했다. 화재 때 우편 관로로 이동된 물품은 두 묶음이었다. 서고 문서는 인계 담당자를 통해 중앙 공관으로 갔고, 봉인 검수품은 '구호 물자 임시관'으로 이동했다. "구호 물자요? 편지인데?" "봉투가 아니라 봉인 재료로 분류됐을 수 있습니다." 아레인이 말했다. "그럼 그걸 찾으려면 또 다른 장부를 열어야겠네요." "맞습니다." 피코가 하늘을 쳐다봤다. "끝이 없는 미로 같아요." 나는 웃었다. "하지만 적어도 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찾았잖아." 저녁에는 시장 상인들이 우리에게 따뜻한 수프를 내줬다. 날짜까마귀를 붙잡아 준 보답이었다. 피코는 수프 안의 버섯을 세더니 그중 가장 큰 것을 내 접시에 옮겼다. "도윤 님도 뛰셨으니까요." "고마워." "근데 출장비에 저녁 식사 넣으실 거죠?" "이건 제공받은 식사라 별도 청구하면 안 돼." "아. 또 배우네요." 아레인은 중립 공관으로 돌아가기 전 내게 조그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임시관의 옛 보존 물품 목록이었다. 거기에 기록된 물품명은 이상했다. [수신인 미지정. 다언어 재심 안내 봉인 재료. 전달 조건: 수신인의 생존 확인 이후 담당자 재검토.] "생존 확인 이후?" 내가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늦춰 놓은 것인지, 당시 안전 절차였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나는 오래전 생존 확인 창구에서 보았던 안내문을 떠올렸다. 우편이 가지 않은 이유가 단순한 분실은 아닐 수도 있었다.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멈춰 세웠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그런 선한 목적이 있다고 해서 영원히 멈춰 있는 절차를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우선 물품을 건드리지 말고 보존 상태를 점검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늘은 새 한 마리를 쫓아다니느라 충분히 고생했다. 누군가의 오래된 편지까지 쫓아다니다가 남의 권리를 짓밟을 수는 없었다. 마왕성으로 돌아오는 마차에서 피코가 졸다가 중얼거렸다. "날짜까마귀가 날짜를 먹으면 생일도 없어져요?" "그러면 너한테는 곤란하겠다." "왜요?" "생일 케이크를 못 먹잖아."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그 새를 다시 잡아야겠어요!" 루시아가 크게 웃었고, 나도 웃었다. 나는 몰랐다. 우리가 쫓던 건 봉투보다 오래된 규정 한 줄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그 규정은 곧 우리 시범 창구의 첫 번째 큰 시험이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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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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