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의 아침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누가 성벽을 무너뜨리러 오는 아침과, 누가 서류를 들고 와서 내 정신을 무너뜨리는 아침.
오늘은 후자였다.
"도윤 님! 빈 봉투를 찾으러 가신다고요?"
피코가 내 앞에 잉크병 두 개를 내려놓았다. 오른쪽은 평범한 검은 잉크, 왼쪽은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마법 잉크였다.
"둘 중에 뭘 쓸까?"
"어디에?"
"빈 봉투 찾는 신청서에요."
"검은 거. 우린 봉투를 찾는 거지 공연을 하러 가는 게 아니야."
피코는 왼쪽 잉크병을 애석하게 바라봤다. 내가 금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조사 보고서는 무지개색으로 반짝였을 것이다. 신뢰성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누가 썼는지는 분명해지겠지.
중립 우편관으로 가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옛 재심 안내 기록을 확인하기 위한 공동 협조 요청서는 접수됐지만, 우편물 외피를 열람하려면 별도 승인이 필요했다. 나는 외피를 보여 달라는 대신, 재료 반출 장부의 공개 가능한 숫자와 담당 부서만 요청했다. 사람 이름을 알아내려다 절차부터 무너뜨릴 이유는 없었다.
"이번엔 호위 인원이 몇 명이지?" 루시아가 물었다.
"셋이면 될 것 같습니다. 저, 피코, 루시아 님."
"마왕은?"
"마왕 폐하는 멋진 자세로 책상에서 보고를 받으시면 됩니다."
바로 그때 통신 구슬에서 제르칸의 목소리가 터졌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느냐!"
나는 놀라 구슬을 내려다봤다. 전원이 꺼져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폐하, 회의용 구슬 연결을 안 끊으셨습니까?"
"내 위대한 목소리는 언제든 울릴 수 있어야 한다."
"통신비가 듭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끊겠다."
구슬이 꺼졌다. 이 성에서 마왕보다 확실하게 명령할 수 있는 존재는 청구서였다.
우편관이 있는 중립 항구에는 바다가 있었다. 검은 산맥을 뒤로하고 멀어질수록 바람에서 철 냄새 대신 소금 냄새가 났다. 물결 위로 작은 뿔 달린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고, 배 위의 고블린 선원은 그때마다 뱃전에 매달린 그물을 끌어올렸다. 어부가 아니라 우체부였다. 이 세계에서는 조류를 이용해 우편을 옮기는 물고기가 실제로 있었다.
피코는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빛냈다.
"저 물고기들이 편지를 먹어요?"
"주머니에 넣어 나른대."
"그럼 편지가 젖지 않아요?"
"방수 마법을 쓰겠지."
"방수 마법도 비용이 들어요?"
내가 녀석을 돌아봤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루시아가 웃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는데."
중립 우편관은 길쭉한 시계탑을 개조한 건물이었다. 천장에는 봉인된 우편 상자가 매달려 있었고, 벽면은 바람 마법으로 돌아가는 관들로 가득했다. 우편관 직원은 우리 일행을 보더니 먼저 책상 밑으로 손을 뻗었다. 마왕성 문양이 보이면 비상벨부터 찾는 사람이 아직 많았다.
"공동 시범 권고안 조사 협조입니다. 무장 수색 아니에요." 나는 공문을 제시했다.
"그, 그렇군요. 요즘 마왕성이 서류를 많이 보내서요."
"좋은 뜻으로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원은 대답 대신 회람 상자를 옮겼다. 좋은 뜻은 아닌 듯했다.
우편관의 수석 배달부는 작은 날개를 가진 오크 노인이었다. 이름은 브룩. 한쪽 귀가 찢어져 있고, 허리에는 낡은 가죽 우편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 코웃음을 쳤다.
"열두 장? 그런 건 수도 없이 나갔지."
"정확히는 재심 안내에 쓰인 한국어 봉투 규격입니다."
"한국어가 뭔데?"
"제 고향 말입니다."
"그럼 네가 왜 여기 있냐?"
좋은 질문이다. 백여 화 동안 내가 설명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다.
"취업을 잘못해서요."
브룩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껄껄 웃었다.
"마왕성 놈들도 그런 말을 하긴 하네!"
그는 우편관의 오래된 종이 대장을 꺼냈다. 여기에는 봉투 열두 장이 '발송용 소모품'으로 신청됐다가 두 종류의 물품으로 나눠 인계된 기록이 있었다. 열 장은 시험 인쇄를 위한 보존 재료, 두 장은 실제 봉인 검수용.
"그러면 열두 사람에게 보낸 건 아니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소모품 수량으로 수신인 수를 셀 수는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련한 배달부는 회계 담당자보다 불확실성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실제 봉인 검수용 두 장은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는 우편관에 남았고, 하나는 검수 지시에 따라 중립 세관으로 갔네."
"두 번째 봉투에 편지가 있었습니까?"
"몰라. 나는 내용물을 안 봐."
"봉투 무게 기록은요?"
브룩은 껄껄 웃음을 멈췄다.
"그건 있지."
오래된 저울 기록에는 검수용 봉투 두 장의 무게가 다르게 적혀 있었다. 하나는 가벼웠고 하나는 더 무거웠다. 그렇다고 봉투 속에 편지가 있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봉인 납추의 무게가 달랐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메모했다. 피코는 숫자를 한참 보다가 물었다.
"그럼 이 두 봉투가 쌍둥이네요?"
"모양만 같을 수 있지."
"그래도 하나는 집에 있고 하나는 나갔잖아요."
"쌍둥이를 그런 기준으로 나누진 않는데."
루시아는 창밖의 배들을 보며 말했다.
"우편을 찾으려면 바닷길을 따라가야 하는 건가?"
브룩이 고개를 저었다.
"세관으로 간 건 항구 밖으로 나간 게 아니네. 그때 세관은 건물 바로 옆이었어. 문제는 건물이 이십 년 전에 불탔다는 거야."
피코가 입을 벌렸다.
"그럼 끝이에요?"
"건물은 타도 대장은 남지. 아무것도 안 남으면 세금을 어떻게 매기겠어."
나는 오크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금을 걱정한 것은 그날 우리가 가장 잘 통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세관 기록이 보관된 별관으로 향했다. 부두 끝에서 휘몰아친 바람에 내 자료철이 들렸다. 루시아가 손을 뻗어 붙잡지 않았다면 바닷새가 올해의 회계 보고서를 읽게 됐을 것이다.
"운송비를 따로 청구할 수 있겠는데." 그녀가 말했다.
"문서가 바다에 빠졌으면 재발급비부터 청구됐겠죠."
"너는 왜 이렇게 즐거워하지 않지?"
"서류 찾기 모험은 전망 좋은 여관과 맛있는 식사가 함께할 때만 즐겁습니다."
"알겠다. 오늘은 괜찮은 곳에서 저녁을 먹자."
"영수증 되는 곳으로요."
루시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별관의 세관 서기에게 허가 문서를 제출했을 때, 그는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아, 그 봉투 기록이요? 어제도 찾으러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걸 느꼈다.
"누군가요?"
"정식 신원 정보는 열람할 수 없고요. 검토 요청서가 접수됐다가 철회됐습니다."
"어제요?"
"네. 세관 이전 대장 열람 신청이었습니다. 다만 요청인이 본인 신원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처리번호만 남습니다."
루시아가 창가로 한 걸음 다가왔다.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일 가능성은?"
"가능성은 있겠지만 순서를 먼저 확인해야죠. 우리가 중립 우편관에 요청한 사실이 공개된 때는 언제인지도요."
누군가 우리의 조사를 알고 접근했을 수도 있었다. 또는 오래전부터 같은 기록을 찾고 있던 사람이 우연히 하루 먼저 왔을 수도 있었다. 증거 없이 누군가를 추격하는 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방식이었다.
나는 공개 가능한 접수시각과 철회 사유만 요청했다. 서기는 자료를 확인하고 말했다.
"철회 사유는 '열람 권한 구분 안내 후 신청자 자진 철회'입니다."
나는 메모했다. 상대가 악의를 가졌다는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안내가 작동했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세관 이전 대장에서는 오래된 검수용 봉투 한 장이 소실된 건물에서 마지막까지 보관된 물품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리고 화재 때 구조한 자료 중 일부를 브룩이 직접 운송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브룩 씨가요?"
"예. 당시 임시 우편가방 열일곱 번에 옮겼다고 나옵니다."
세관 별관에서 나오기 전에 우리는 오래된 운송비 정산표도 살펴봤다. 우편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왔다.
"이 표에 같은 운송이 두 번 청구돼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서기는 책장을 넘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는 우편관에서 세관까지, 하나는 세관에서 임시보관실까지 옮긴 비용일 텐데요."
"구간이 다르면 두 번 청구될 수 있죠. 그런데 두 번째 청구에는 수레 사용료가 붙어 있고, 실제 수레 운행 기록은 없네요."
"그때는 화재 전이라 인근 건물 사이를 사람이 들고 이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반 수당이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확인해 봅시다."
우리는 급하게 부정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운송인 근무대장과 건물 배치도를 함께 펼쳤다. 기록을 맞춰 보니 세관과 임시보관실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별관이었다. 당시 중간 통로가 막혀 우회 경로로 돌아가야 했다는 수리 기록도 있었다.
"그럼 수레를 썼을 가능성이 있군요."
"네. 하지만 실제 이용 여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피코는 오래된 지도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여기 문을 열면 바로 갈 수 있었을 텐데요."
"그 문은 봉인 창고 통로야. 그냥 열면 안 되지."
"그럼 먼 길로 가야 했겠네요."
"규정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그렇지. 대신 그 일을 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들었을 거고."
서기는 갑자기 얼굴을 들었다.
"아, 오래된 야간 인부 급여 보존표가 있어요. 운송 수당 지급 대상으로 두 사람이 등록돼 있습니다."
실제 지급 표에는 한 명의 수취 확인이 있었고 한 명은 미수령으로 기록됐다. 이 기록이 지금도 청구 가능한 권리인지 별도 검토가 필요했지만, 적어도 누군가 돈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있었다.
"우편의 행방 찾으러 왔다가 인부 월급을 찾았네요."
내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관을 돌아다닌 보람이 있네."
"제 출장비가 헛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피코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 출장비도요!"
"네 건 간식비 비중이 너무 높아."
"바다 근처 빵은 특별한데요!"
루시아가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미수령 수당의 구체적인 수취인 정보를 열람하지 않고, 세관 담당자가 권리 보전 여부를 검토할 수 있도록 사건번호만 남겼다. 오래전 그 길을 걸었던 사람도 분명 우리처럼 피곤했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편지를 옮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는 일도 편지를 찾는 과정의 일부였다.
우리는 다시 브룩을 찾아갔다. 해 질 무렵 그는 지붕에 올라 우편 물고기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자료를 보여 주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열일곱 번... 그런 날이 있었지."
"기억하십니까?"
"세관이 불타서 사람들이 줄줄이 뛰어다녔어. 난 인장 원본보다 먼저 구조 통지를 옮겼지. 집에 돌아갈 사람들에게 보내는 거라더군."
"한국어 봉투도 그때 옮기셨습니까?"
"모르네. 다만 이상한 봉인끈 하나는 기억나."
그가 허리의 우편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보관표가 붙어 있었다.
"보라색 매듭이었어. 세 번 감고 끝을 안으로 넣는 방식. 우편관에서는 잘 쓰지 않아."
내가 숨을 삼켰다. 예전 기록의 점 셋 표식이 떠올랐지만 함부로 연결하지 않았다. 점 셋과 매듭 셋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브룩은 내 눈빛을 알아챘는지 말했다.
"찾는 게 그 봉투라면, 매듭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거야. 그날 내가 마지막으로 배달한 건 편지가 아니라 사람을 부르는 통지였지."
"누구에게요?"
"기억 못 해. 아니, 어쩌면 기억해도 말할 수 없는 일이겠지."
노인은 바다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추가로 묻지 않았다. 대신 그가 실제로 접근 가능한 문서가 무엇인지, 자료 보존에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만 확인했다. 브룩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편관을 나올 때 피코가 작은 보라색 끈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어디서 났어?"
"브룩 할아버지가 주셨어요. 매듭 배우라고요."
피코는 끈을 세 번 감고 묶다가 자기 손가락을 꽁꽁 묶었다. 루시아가 웃으면서 풀어 줬다.
"매듭도 동의서처럼 아무 데나 쓰면 안 되겠구나."
"제 손가락이 대신 승인당했어요!"
나는 결국 웃었다.
그날 얻은 확실한 사실은 작았다. 한국어 안내 봉투와 같은 규격의 검수품이 실제로 두 장 제작됐고, 그중 한 장은 세관 자료로 들어갔다. 건물이 불탄 뒤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브룩이 짧은 쪽지를 전송했다.
[그날 화재 뒤 남긴 소방대 인수 목록에 '배달 불가'가 아니라 '배달 보류'라고 적힌 물건이 하나 있다. 서류 번호는 공개 가능한지 확인해 보겠네.]
나는 창밖의 등대 불빛을 바라봤다. 적어도 뭔가가 실제로 운송되고 있었던 건 분명했다.
문제는 누군가의 선택을 돌려주려던 우편이 어디에서 멈췄느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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