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확인 창구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입구에는 아주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생존 여부에 관한 문의는 접수할 수 있으나, 타인의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오래전 문서의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은 컸다. 그러나 누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경우도 있다. 전쟁 뒤의 피난민이나 신원을 바꾸어야 했던 사람에게는 더 그랬을 것이다.
피코는 안내문을 읽고 나서 심각하게 물었다.
“그럼 도윤 님이 살아 있다는 것도 비밀인가요?”
“나는 매일 출근 기록을 찍고 있잖아.”
“그렇지만 시스템이 자꾸 퇴직시키려고 하니까요.”
“퇴직과 사망은 전혀 다른데?”
“구형 시스템은 둘 다 ‘이전 상태 종료’로 분류하던데요.”
나는 가슴을 쳤다. 이 녀석이 문제의 핵심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창구 책임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오래된 업무 지침의 공개 항목만 설명해 줬다. 과거에는 환자가 회복하거나 실종자가 발견됐을 때도 그 사실을 즉시 모든 기관에 알리지 않았다. 보호 대상자가 직접 공개 범위와 연락받을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럼 생존 확인 자체와 결과 통지는 별개군요.”
“그렇습니다.” 책임자가 말했다. “당사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관이 알고 있어도, 그 정보를 누구에게 전달할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긴급 인계 서류의 직접 확인 제안과도 연결될 수 있겠네요.”
“역사적 운영 방식은 설명할 수 있지만 특정 사건과 연결하는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확한 범위에서 답을 주는 사람은 늘 귀했다.
오래된 지침 중에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었다.
[확인 불가 상태는 동의 상태가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다른 문장과 닮아 있었지만, 쓰인 목적은 달랐다. 환자가 말을 하지 못하면 가족이 대신 무기한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담당자가 그렇게 설명했다.
“직접 확인을 기다리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피코가 물었다.
책임자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경우에는 당시의 별도 법적 절차에 따릅니다. 하지만 실종만으로 사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천계 제7서고에서 보았던 귀환 대기 좌석을 떠올렸다. 사람의 권리를 보존한다는 건 가끔 빈자리를 오래 남겨 두는 일이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모를 때조차.
우리는 창구의 비식별 통계와 제3감리 시범 안내 목록을 비교했다. 특정 해에는 확인 요청이 폭증했다가 줄었다. 하지만 그 숫자만으로 사람이 많이 살아 돌아왔다고도, 모두 사라졌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접수 체계와 대상 범위가 몇 차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끝이 없군요.” 라델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상태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해졌죠.”
나는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
“대신 문서를 받아 준 사람, 실제 권리자, 연락받을 사람. 세 명이 같을 때도 있지만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 차이를 시스템이 무시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그걸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그렇습니다.”
라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내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점심 무렵 루시아는 창구 앞의 오래된 금속 명패를 유심히 살폈다. 거기에는 전쟁 중 구조대가 운영했던 임시 확인소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이곳을 지킨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받았을까?”
그녀가 물었다.
나는 임시 확인소의 운영비를 확인했다. 당시 기록에는 야간 경계와 수송 인력 인건비가 따로 편성돼 있었다. 실제 지급은 일부만 확인됐다.
“아마 누군가는 못 받았겠죠. 지금 청구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알아봐야겠지만요.”
“전쟁이 끝났다고 일한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
그녀의 말은 단순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확인소는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서류를 받아 주고 떠났다. 전쟁의 영웅담에는 그런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마왕성의 장부에는 가끔 그들의 간식비만 남는다.
창구 뒤편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종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을마다 쓰던 표현이 달라 통지서를 읽어 주는 일도 쉽지 않다고 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귀환'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로 이해했고, 다른 마을에서는 빌린 장비를 돌려주는 뜻으로 사용했다.
“그럼 설명서를 언어별로 바꾸면 되지 않습니까?”
피코가 물었다.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래 의미가 바뀌지 않았는지도 확인해야 해요.”
나는 천계에서 발견한 한국어 문구들을 생각했다. 한국어를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내가 그 내용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작성자의 뜻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번역은 권한의 증명이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번역 대조 방식은 같이 검토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자 담당자는 작은 용어집을 보여 줬다. 각 용어 옆에는 뜻이 여러 개 적혀 있었다. 그중 '반환'에 해당하는 단어는 물건 반환, 직위 복귀, 고향 귀환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쓰였다.
“그럼 번역할 때 원문 옆에 문맥을 함께 남겨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자원봉사자 한 명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느 노인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신청서를 냈는데, 담당자가 그 말을 단순한 물품 배송 주소 변경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집이라는 단어도 여러 뜻이 있을 수 있겠군요.”
내가 말했다.
“네. 어떤 사람에게는 장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함께 있던 사람들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천계 제7서고에서 확인한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윤아, 밥 먹었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과 집에 돌아가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아직도 같은 뜻이 아니었다.
루시아가 내 옆에서 물었다.
“괜찮아?”
“네. 그냥 생각이 나서요.”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겠지.”
“있죠.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녀는 더 캐묻지 않았다. 그 배려가 고마웠다.
우리는 창구 자료의 공개 범위에 대해 따로 설명을 들었다. 생존 확인을 요청한 사람이 결과를 받지 못하는 경우, 다시 연락하는 방법이 마련돼 있었다. 다만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거부했거나 위험이 확인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편의로 재연락할 수 없었다.
“그럼 제3감리의 재확인도 이런 보호 원칙을 가져와야겠군요.”
아레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추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서에 썼다. 우리가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시작한 일이, 결국 그 사람의 숨어 있을 권리까지 빼앗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길에 피코가 빵집 앞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졸라 대지 않고 작은 동전지갑을 꺼냈다.
“도윤 님, 제 돈으로 살게요.”
“좋아.”
녀석은 계산대 앞에서 자신이 주문한 빵과 받은 빵을 세었다. 네 개를 주문했는데 다섯 개가 담겨 있었다.
“하나 더 들어 있어요.”
점원이 놀라며 바구니를 확인했다. 실수였다.
“서비스로 드릴까요?”
피코가 나를 힐끗 봤다.
“서비스로 주시겠다는 건 점원님 결정이죠? 제가 돈 안 낸 빵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요?”
점원이 크게 웃었다.
“맞아요. 오늘은 하나 더 드릴게요.”
피코는 신이 나서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받는 것과 허락받는 것의 차이를 빵 다섯 개로 배운 셈이다.
그날 오후 업무실에서 우리는 과거의 자료를 요청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다. 열람 신청서에 당사자 신원을 쓰게 하는 대신, 관련 권한이 있는 제3기관이 비식별 식별번호를 발급하는 방식이었다. 실제 적용 가능성은 법무 검토가 필요했지만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의견을 받았다.
“이렇게 하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람도 제도 오류를 신고할 수 있겠네요.”
피코가 말했다.
“그게 목표야. 다만 익명이라는 이유로 아무 기록이나 마음대로 바꿔서는 안 되겠지.”
“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여전히 필요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이 실제로 돌아와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록은 그 사람의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나는 점점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어서 새로운 문서 목록이 도착했다. 사라진 현장용 시범 절차서의 마지막 확인 장소가 생존 확인 창구의 이동식 서가였다는 기록이었다. 물품 이름은 ‘대리인 수령의 유효 범위’였다.
“이 제목이면 지금 필요한 문서일 수도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책임자는 오래된 자료 반출 대장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책자는 수십 년 전 대출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반납 안 된 겁니까?” 피코가 물었다.
“기록상 그렇습니다.”
“연체료는요?”
나는 녀석을 돌아봤다.
“지금 연체료가 중요해?”
“수십 년이면 엄청날 것 같아서요.”
책임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당시 공공 업무 자료는 연체료를 물리지 않았습니다.”
피코가 진심으로 안도했다. 본인이 책을 빌린 것도 아닌데.
대출 기록의 수령인 이름은 보호 처리돼 있었다. 대신 직무 코드와 반환 요청 상태가 보였다. 수령인 직무는 ‘제3감리 대리 접수 협조 인력’. 반환 요청은 발송 준비 상태였다.
“발송됐다는 기록은 없네요.”
“그렇습니다. 그 뒤 보존고가 이전됐습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책자를 빌려 간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애초에 수십 년 전의 일이니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책자가 회의실이 아닌 현장 창구에서 쓰였을 가능성은 커졌다.
제르칸이 통신 구슬로 연락해 왔다.
“한도윤! 빈 의자를 찾았다며?”
“보존실에 오래된 참관석이 있습니다.”
“그 의자에 내 이름을 새겨라!”
“절대 안 됩니다.”
“왜?”
“누군가의 권리 확인을 위해 남겨 둔 자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마왕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렇다면 내 이름을 새기면 안 되겠군.”
나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그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늘은 이해가 빠르시네요.”
“대신 새 의자를 하나 사면 되지 않느냐? 물론 내 개인 돈으로.”
“그건 검토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네 입에서 허가라는 말이 나오는구나!”
“구매 전에 견적 비교는 필요합니다.”
마왕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아마 지금쯤 다시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귀환하려는 순간 책임자가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정확히는 편지가 아니라 옛 대출 자료에 남은 보존 안내문이었다. 이름과 개인 경로는 모두 가려져 있었다.
[자료 보유자가 열람 요청에 응하지 않더라도 강제로 신원을 공개하지 말 것. 제3감리 사무국의 재심 일정 확정 시 봉인 사본 제출 가능.]
나는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재심이 예정돼 있었습니까?”
“그것까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책임자가 답했다. “조건부 제출 안내로 보입니다.”
우리는 문서를 사진으로 찍거나 베껴 가져오지 않았다. 허가된 발췌문만 받았다. 누군가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귀환길에 피코가 물었다.
“그 책을 가진 사람이 살아 있다면, 우리한테 와 줄까요?”
“모르지. 오지 않을 권리도 있겠지.”
“그럼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바꿀 수 있는 제도부터 바꾸는 거야.”
우리는 옛 재심 신청이 가능한지 알아보기로 했다. 당사자 동의 없는 자동 갱신을 중단하는 공통 규칙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었다. 누군가 개인 정보를 공개해야만 제도가 바뀐다면, 그 제도부터 잘못된 것일 테니까.
그날 피코는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자기 일기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빵집 점원이 덤으로 준 빵의 크기와 맛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누군가 나 대신 고르지 않아도 내가 고를 수 있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좋은 말이네.”
피코가 쑥스럽게 웃었다.
“도윤 님이 맨날 하시는 말이잖아요.”
“내가 그렇게 쉽게 말했었나?”
“아뇨. 더 길고 어려웠어요.”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녀석에게는 내가 제대로 가르친 것 같았다.
마왕성에 도착하자 피코가 내 책상에 종이를 붙였다.
[안 오셔도 괜찮습니다. 대신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오실 수 있게.]
나는 잠시 그 문장을 바라봤다.
“이건 누가 쓴 거야?”
“제가요. 어려운 말 대신 간단하게.”
나는 웃었다.
때때로 가장 필요한 문장은, 오래된 회의록이 아니라 이제 막 글을 배운 임프의 손에서 나왔다.
제11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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