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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17화
PAYLUA ORIGINAL · 제117화

117화. 빈 의자에도 예산이 필요합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94자

오프라인 책장
새 망토에 문구를 수놓겠다는 제르칸의 계획은 예산 심사에서 탈락했다. “개인 부담으로 하시면 됩니다.” 내가 말하자 마왕은 이틀 동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왕국과 마계의 전쟁보다 마왕의 삐침이 오래가는 세계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달랠 시간이 없었다. 제3감리의 실무 시행 규정 초안이 사라진 경로를 확인하려면 당시 회의 운영비를 따라가야 했다. 회의가 열렸다면 장부에 흔적이 남을 것이다. 장소 대여료, 서기관 수당, 초안 필사 비용 같은 것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죠.” 내가 입을 열자 몰트가 고개를 들었다. “돈이 아니라 돈을 적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명언이십니다.” 그가 책장을 넘겼다. “명언 사용료를 청구해도 되겠나?” “구두 대화라 별도 계약이 없습니다.” “역시 넌 고용주에게 가차 없군.” 오래된 공동 회계 장부에서 우리는 시행 규정 초안 필사 비용이 실제로 집행됐다는 기록을 찾았다. 예산이 편성된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잉크와 종이, 운송용 상자 구매 대금이 수취 확인까지 완료돼 있었다. “그렇다면 초안 수정본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겠네요.” 아우렐이 말했다. “네. 다만 종이를 샀다고 그 위에 초안을 썼다는 증거까지 되지는 않죠. 운송 상자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 상자는 천계 예산으로 구매됐지만 중립 공관 보존고로 배송되도록 되어 있었다. 비용을 댄 기관과 물건을 받은 기관이 달랐다. 더 흥미로운 것은 구매 품목에 ‘참관인 좌석용 보호 덮개’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의자 덮개를 왜 보존 자료와 함께 샀을까요?” 피코가 물었다. “모르지. 당시 빈 의자를 유지하려 했을 수도 있고, 그냥 낡은 의자를 수선하려던 것일 수도 있어.” “그런데 비용 항목이 ‘권리자 확인 보호비’예요.” 나는 피코가 가리킨 줄을 봤다. 맞았다. 일반 가구 구입비가 아니라 권리자 확인 보호 프로그램의 시범 예산이었다. 루시아는 웃지 않았다. “의자 한 개가 누군가를 지킬 수도 있지.” “어떻게요?” “이야기할 자리가 없으면 사람은 자기 말을 꺼내지 못해. 전쟁 뒤 복귀한 병사들이 그랬다.” 나는 오래전 휴전항의 혼란을 떠올렸다. 당사자가 직접 참석할 수 있을 때까지 빈 자리를 남겨 두려 했던 것일까. 그 생각은 매력적이었지만, 증거로 확인되기 전에는 보고서에 쓸 수 없었다. 우리는 비용 지출일과 실제 발송일을 확인했다. 물품은 중립 공관의 제2보존실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오래된 제3감리 비품으로 분류됐다. 원래 목적은 후대 목록에서 사라졌다. “제2보존실이면 아레인 씨 관할이죠?” “현재는 그렇습니다. 옛 목록의 전체 열람은 별도 승인이 필요합니다.” “또 승인.” 피코가 손을 들었다. “도윤 님, 우리도 대리번호를 하나 만들면 안 돼요? 서류 열 때마다 대리로 승인하게요.” “안 돼. 지금까지 그걸 조사한 사람이 누군데.” “농담이었어요!” 임프가 장난을 배웠다는 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오후에는 제2보존실로 갔다. 문서용 상자와 오래된 회의 장비가 줄지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덮개를 씌운 평범한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제르칸이 이곳을 보면 실망할 것이다. 그 의자에는 금박도 없고 보석도 없었다. 한쪽 다리는 수리 흔적까지 있었다. 오래 버틴 물건은 대개 화려하지 않다. 관리인이 의자 옆의 표지를 읽어 줬다. [장기 미참석 권리자용 참관석. 착석 및 발언은 본인 직접 확인 이후. 장비 사용 기록 없음.] “정말 빈 의자였군요.” 내가 말했다. “원래 어떤 회의에 쓰려 했는지는 완전한 자료가 없어요.” 관리인이 답했다. 나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누가 앉아야 할지 아직 모르지만, 지금 적어도 내 자리는 아니었다. 아레인은 상자 번호를 확인했다. 운송비와 수령 확인이 남아 있었고, 내용물은 필사본 네 권으로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상자 안에는 세 권만 있었다. 빈 자리 하나가 또 생겼다. “네 권 구매, 세 권 보존.” 내가 중얼거리자 피코가 바로 말했다. “한 권이 사라졌네요!” “현존 보존실에는 세 권만 확인됐다는 뜻이야. 다른 서고로 옮겼을 수도 있어.” “이제 외웠어요.” 그렇게 말한 피코는 종이 위에 크게 적었다. [없는 것은 확인. 사라진 이유는 미확인.] 나는 피코를 칭찬했다. 녀석은 금방 빨개졌다. 세 권 중 하나는 초안의 구성표였다. 거기에는 새로운 절차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항목이 적혀 있었다. 첫째, 응급 인계 시 임시 상태 부여. 둘째, 본인 회복 또는 소재 확인 후 재확인 요청. 셋째, 재확인에 대한 응답이 없더라도 자동 동의로 전환하지 말 것. “지금 우리가 만들려는 규칙과 거의 같군요.” 베르케가 전송으로 말했다. “역사가 이렇게 오래됐다는 게 신기합니다.” “신기한 게 아니라 슬프죠. 누군가는 이미 생각했는데 우리는 이제야 다시 만들고 있으니까.” 다음 권에는 당시 회의에 제출하려던 비용 추정이 있었다. 직접 확인 전담 인력 두 명, 문서 보존용 야간 수당, 통신망 복구 비용. 예산은 작지 않았다. 전쟁 중의 기관들이 서로 부담을 떠넘겼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이 비용을 실제로 누가 내기로 했는지 확인해 봅시다.” 내가 말했다. 천계는 시범 예산 일부를 승인했지만 계속 운영할 비용에는 확답하지 않았다. 왕국은 전쟁 구호비에서 일부를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집행 기록이 없었다. 마계는 당시 인력 지원을 약속했으나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책임을 분담하는 것과 아무도 확정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여기에도 있었다. 제2보존실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시범 사업의 비용 추정표를 실제 물가와 비교했다. 옛 은화 한 닢이 현재 얼마에 해당하는지는 환산 방식에 따라 달랐다. 나는 우선 원문 숫자를 그대로 기록하고, 같은 시기의 빵값과 서기관 급여를 함께 적었다. “옛 비용을 오늘 비용으로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피코가 물었다. “어렵지. 그때 은화 한 닢으로 살 수 있었던 물건과 지금 살 수 있는 물건이 다르거든.” “그럼 그냥 빵 개수로 바꾸면 되잖아요!” “빵도 크기랑 종류가 달랐을 거야.” 녀석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시장에서 파는 작은 빵과 큰 빵을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 큰 빵인데, 가격표에는 작은 빵이 기준으로 나오거든요.” “바로 그거야.” 나는 일상에서 설명하는 쪽이 훨씬 쉬웠다. 숫자가 복잡하다고 사람들이 멍청한 건 아니다. 숫자를 만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몰트는 예산표를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시 왕국과 천계 모두 전쟁 구호 비용이 컸군.” “제도를 만들자는 데에는 찬성했지만, 인력을 계속 유지할 돈은 부족했을 수도 있죠.” “혹은 비용을 떠넘겼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 기관이 부담하기로 약속한 금액과 실제 지출을 두 칸으로 나눴다. 천계의 시범 운영비 일부는 지급 완료로 확인됐지만, 왕국 몫 가운데 몇 항목은 편성만 돼 있었다. 마계 쪽의 인력 지원은 파견 명령만 있고 출근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 아무도 제대로 안 했다는 겁니까?” 피코가 물었다. “아니. 천계에서 실제로 일부 지급한 돈도 있어. 중립 공관에서 받은 물품도 있고. 나머지는 아직 확인이 필요한 거지.” “듣기 어려운 답이에요.” “실제 세상은 한 줄로 정리되지 않을 때가 많아.” 그 무렵 시설 보존 담당자가 우리를 불렀다. 그는 오래된 의자의 다리가 흔들리니 수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리비 견적을 확인했다. 특별한 마법 자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작은 나무 받침 하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한 건데 왜 지금까지 안 했죠?” “의자의 소유 부서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비용을 내야 하는지 몰라서요.”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빈 의자는 누구나 지켜야 할 권리를 상징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의자가 흔들려도 어느 부서 예산인지 몰라서 수리하지 못했다. 너무나 행정다운 풍경이었다. “공동 보존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무조건 마왕성 예산에 넣을 순 없고요.” 제르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황당해했다. “낡은 의자 하나를 고치려는데 세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 “예산 규정상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새 의자를 사 주겠다.” “기증을 받으면 소유권과 사용 조건을 정해야 합니다.” “대체 의자 하나가 왜 이렇게 복잡하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결국 공동 시설 담당이 안전 조치 차원에서 임시 받침을 먼저 설치했다. 본격 수리 비용은 별도로 확정하기로 했다. 사고를 막기 위한 긴급 조치와 장기 자산 수선을 나눈 것이다. 전쟁 중 사람을 구조할 때와 비슷한 원칙이었다. 피코가 받침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럼 의자가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쓰러지진 않겠네요.”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우리는 빈 의자를 오래 바라봤다. 내가 누구의 이름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동안에도,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둔 자리가 아직 있었다. 보존실 창가에는 오래된 회계용 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관리인은 그것이 종이 뭉치가 날리지 않게 누르는 물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하필 그 추에 새겨진 단어가 '확인'이었다. “무거운 물건에도 확인이라는 말을 썼군요.” 내가 말하자 관리인이 웃었다. “서류를 움직이지 않게 하는 추니까요.” 피코는 추를 들어 보려다 실패했다. 루시아는 한 손으로 가볍게 들었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무엇을 확인한다는 말은 결국 움직이지 않고 지키는 일일지도 모르겠군.”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웃었다. 전투광 기사단장이 점점 철학자가 돼 가고 있었다. 마왕성에 취업하면 누구나 이상해지는 모양이다. 관리인은 오래된 의자 아래에서 종이 한 장을 더 발견했다. 수리 기록이었다. 과거에도 다리가 한 번 부러졌고, 그때는 야간 보존 담당이 임시로 고쳤다고 적혀 있었다. “그 사람에게 수당이 지급됐습니까?” 내가 묻자 관리인이 조용히 웃었다. “수십 년 전 기록이라 확인이 필요하겠죠.” 나는 수리 날짜와 당시 시설비 항목만 받아 적었다. 누가 밤새 의자를 고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이 사용할 자리 하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 시간을 썼다는 흔적은 분명했다. 루시아는 다시 의자를 바라봤다. “검이 아니라 망치를 든 사람도 자리를 지켰군.” “그렇죠.”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거창한 영웅을 찾지만, 실제로 제도를 지켜 주는 사람은 가끔 새벽에 의자 다리를 고치는 노동자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마왕성 지급 자료를 확인했다. 지난번 야간 경비 수당 누락 건에서 네 명의 추가 수취 확인이 도착했다. 나는 그들에게 각각 완료 표시를 했다. 한 명의 수당은 아직 계좌 대조 중이었다. 루시아는 보고서를 받아 조용히 읽었다. “한 명이 남았군.” “네. 오늘 지급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고, 수취 확인이 아직 안 왔다는 뜻입니다.” “그럼 내일 다시 확인하자.” “그럴 겁니다.” 그녀가 문득 미소 지었다. “너와 일하면 이기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왜요?” “항상 아직 남았다고 말하니까.” “그래도 네 명은 실제로 받았잖아요.” “그건 기뻐할 일이지.” 우리는 재정실에서 작은 차 한 잔을 마셨다. 승리의 만찬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야간 근무에 대한 돈이 제대로 도착했다. 그 사실이면 충분했다. 다음 날 아레인은 상자의 마지막 인계장을 찾았다. 비어 있던 네 번째 필사본의 행선지가 적혀 있었다. [현장용 시범 절차서 / 제3감리 중립 교역소 입구 안내대 배치.] “교역소요?” “지금은 휴전항 공공 안내소입니다.” 나는 낡은 의자를 돌아봤다. 의자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하지만 실무 지침 하나는 책장에 갇힌 채 끝나지 않고 실제 현장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 책이 지금도 있다면 좋겠군요.” “없을 수도 있어요.” 아레인이 말했다. “그럼 책이 쓰였다는 기록이라도 찾아보죠.” 피코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안내소라면 식권도 있을까요?” “너의 식권 집착에는 정말 제3감리급 역사가 있는 것 같아.” 녀석은 웃으면서 내 가방을 들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서고가 아니라, 오래전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러 실제로 줄을 섰던 창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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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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