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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16화
PAYLUA ORIGINAL · 제116화

116화. 한 표 차이로 보류된 안전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81자

오프라인 책장
드디어 보류 사유서가 왔다. 나는 그것을 열기 전에 커피부터 마셨다. 물론 이세계에 정확히 커피라는 이름의 음료가 있는 건 아니었다. 몰트가 즐겨 마시는 검은 곡물차인데, 맛은 한국에서 야근하며 마시던 싸구려 커피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는 마시고 나면 가끔 찻잔 안쪽에 작은 해골 무늬가 떠오른다는 점이다. “도윤 님, 마시기 전에 왜 숫자를 세세요?” “오늘 이걸 몇 잔 마셨나 확인하는 거야.” “네 잔이요.” “그걸 왜 알고 있지?” “제가 세 잔 따라 드렸으니까요.”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그 작은 임프는 나보다 내 카페인 섭취량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무서운 후계자가 자라고 있었다. 사유서는 천계와 중립 공관의 공동 비식별 발췌본이었다. 제목과 결론, 당시 심의 쟁점, 조치 권고가 포함돼 있었다. 요청인의 이름과 개별 이송 경로는 가려져 있었다. [당사자 직접 확인 신설안: 원칙에 동의. 다만 즉시 대면을 필수 요건으로 적용할 경우 의식 불명·행방 미확인·피난 중인 권리자의 긴급 보호 신청이 접수되지 못할 우려 있음. 대체 확인 체계 마련 시까지 본안 심의 보류.]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원칙에 동의했다고요?” 피코가 먼저 물었다. “그렇네.” “그런데 보류했어요?” “그러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찾던 악의적인 한 줄은 없었다. 심의 보류 이유는 오히려 누군가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걱정에 가까웠다. 제도를 당장 바꾸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문 앞에서 거절당할 수 있다는 문제였다. 루시아가 종이를 받아 읽었다. “전시 의무실에서 본인이 일어나 직접 서명하기를 기다리라 했다면 많은 사람이 도움을 못 받았겠군.” “맞아요.” 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문제는 보류 뒤에 뭘 했는지예요.” 사유서 끝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긴급 인계 시 임시 접수로 표시할 것. 당사자 상태가 회복되면 확인을 재시도할 것. 불응 또는 거절은 기존 접수의 효력을 별도 검토할 것.] “바로 이거군요.” 아우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류 결정을 내리면서도 임시 처리와 최종 동의를 구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면 후대의 자동 승인 규칙은 적어도 이 권고의 취지와 맞지 않네요.” “그렇습니다. 다만 언제, 누가, 왜 바꿨는지는 아직 조사해야 합니다.” 나는 중요한 발견을 했을 때마다 유혹을 느낀다. 이제 끝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하나의 서류로 알 수 있는 일은 그 서류가 실제로 말하는 범위뿐이다. 그 뒤 몇십 년 동안 일어난 일을 아직 모른다. 라델이 공동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왕국 자료와 비교한 표를 들고 있었다. “과거 표결은 아슬아슬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즉시 의무화에는 찬성 둘, 반대 셋. 별도 확인 절차 마련에는 찬성 넷, 반대 하나였습니다.” “그럼 절차 마련 쪽은 통과한 겁니까?” “권고안으로 채택됐습니다. 시행 규정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또 미묘한 차이가 나왔군요.” “우리도 그 차이 때문에 지금 고생 중입니다.” 나는 표결 기록을 읽었다. 누가 찬성했는지는 공개 범위 밖이었지만, 찬반 사유 일부는 남아 있었다. 한쪽은 '즉시 확인이 없으면 남용 위험'을 말했다. 다른 쪽은 '즉시 확인을 요구하면 구조를 지연시킨다'고 답했다. 양쪽 다 옳은 말이었다. 정말 무서운 결정은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럼 당시의 문제는 악의적인 보류가 아닐 수도 있겠군요.” 피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적어도 공개된 사유만 보면 그래.” “그런데 지금은 왜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동의한 걸로 나와요?” 나는 사유서를 넘겼다. “그게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야 할 문제지.” 회의실에 제르칸이 들어왔다. 그는 큰 금빛 의자를 부하 둘에게 들려 보내고 있었다. “제3감리의 역사적인 결정을 논의한다면 내 왕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는 공동 회의실입니다, 폐하.” “왕국 대표도 의자를 갖고 있지 않나!” “모든 분이 같은 크기의 의자를 씁니다.” 마왕은 한참 자기 왕좌를 보더니 휘장을 벗겨 낸 평범한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그의 키와 어깨에 비해 너무 작아서 우스꽝스러웠다. 피코가 얼굴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의자의 크기가 발언권의 크기는 아닙니다.” 내가 위로했다. “당연하지. 내 발언권은 누구보다 크다.” “하지만 의결권은 회의 규정대로입니다.” “넌 위로할 줄 모르는군!” 사유서가 공개되자 이해관계자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왕국은 당시의 긴급 이송 사례를 들며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고, 천계는 보류 권고의 시스템 반영 범위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중립 공관은 원본 보호와 비식별 열람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나는 각자의 말을 따로 적었다. 여기서부터는 누가 더 그럴듯하게 말하는지보다 누가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휴식 시간에 라델이 복도에서 나를 불렀다. “한도윤 씨, 개인적으로는 안심하십니까? 당시 보류가 전부 악의적인 건 아니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반쯤은요.” “반쯤?” “그때 누군가 긴급 구조를 막지 않으려고 고민했다는 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고민이 현재 사람들의 선택권을 지켜 주지는 못했잖아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의 법무 심사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합리적이던 임시 조치가 지금도 무조건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요.” “그럼 제 지명수배 취소는요?” 라델은 얼굴을 찡그렸다. “아직 집행정지 상태입니다. 정식 취소는 결정되지 않았어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실망스럽겠군요.” “그렇죠. 하지만 정확한 상태를 들었으니 정산하겠습니다. 제 기분은 나중에 처리할게요.” 그가 웃었다. 회의가 잠시 중단됐을 때 나는 당시의 표결 정족수를 다시 확인했다. 찬성 둘과 반대 셋이라는 숫자가 언뜻 간단해 보여도, 참석 대상과 실제 의결권을 가진 자리가 달랐다면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레인은 원본 목록을 가리켰다. “이 다섯 표는 모두 유효한 것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하지만 별도 참관인의 의견은 표에 포함하지 않았어요.” “참관인이 따로 있었습니까?” “초청 기록은 있습니다. 실제 참석 여부는 아직 불명확합니다.” 제3감리의 빈 의자가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 말할 자리를 마련해 놨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자리를 누가 사용했는지 확인하려면 이름부터 봐야 하나요?” 피코가 물었다. “아니. 일단 의자 사용 여부와 참관 권한의 범위를 확인하면 돼.” 나는 표결표에 적힌 직위를 나란히 놓았다. 다섯 표 중 셋은 즉시 의무화에 반대했다. 그중 한 표의 의견서 발췌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서명을 받으려는 동안 치료가 늦어져서는 안 된다.] 다른 의견서에는 반대 방향의 경고가 적혀 있었다. [지금 확인하지 못한 것을 나중에 확인할 책임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 나는 둘 다 오래 바라봤다. 서로 싸우던 두 의견은 사실 같은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쪽은 지금 죽지 않게 하라고 했고, 다른 쪽은 살아난 뒤 자기 삶을 돌려받게 하라고 했다. “두 의견을 함께 제도에 남길 방법은 없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아우렐은 조용히 대답했다.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행 규정을 끝내 확정하지 못했다는 거겠죠.”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회의실 밖에서는 제르칸이 수행원과 무언가를 다투고 있었다. 들어 보니 이번 공동 회의에 마왕성 대표 표기를 넣을 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빠졌다는 이유였다. “제르칸 폐하.” 내가 다가가자 그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돌아봤다. “내 이름 앞의 칭호가 줄었다.” “공동 회의록은 직위만 적습니다. 왕국 대표도 ‘고귀한’이나 ‘위대한’을 붙이지 않았어요.” “나만 손해 보는 건 아니라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좋다. 그럼 공평하군.” 나는 어깨의 힘이 풀렸다. 마왕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서류 한 장을 다시 작성하는 일만큼 허무한 건 없다. 특히 오늘처럼 실제로 사람의 권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더 그렇다. 점심을 마치고 재정실에서 전송된 정산표를 확인했다. 도르벤의 견습생이 수당을 돌려주려 한다는 문제의 처리 결과였다. 실제 근무 확인서와 지급 내역이 일치했고, 돈은 정당한 초과근무 수당이었다. 견습생에게 지급 근거를 설명하자 그는 안도했다고 한다. 나는 확인 완료 표시를 했다. 오늘 제도를 바꾸는 큰 회의 중에도 누군가 자기 돈을 지킬 수 있었다. 피코는 그 보고를 읽고 말했다. “그럼 도윤 님이 전에 하신 말이 맞았네요. 받을 돈은 받아야 하는 거죠.” “그래. 확인이 끝난 뒤에는 기뻐해도 되고.” “그럼 제 월급도 기뻐해도 되죠?” “그건 매달 기뻐해도 돼.” 녀석이 양팔을 번쩍 들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규칙이에요!” 나는 웃었다. 큰 제도의 목적도 결국 그와 비슷할지 몰랐다. 사람들이 자기 몫을 알고, 선택하고,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 회의실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사유서 맨 아래의 작은 표시를 다시 봤다. 부록이 있었지만 공개 발췌본에는 실리지 않았다. “이 부록은 뭔가요?” 아레인이 대답했다. “실무 시행을 위한 비용과 인력 배치안이라고 합니다. 일부는 공개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펜을 들었다. 드디어 회계사가 할 일이 나타났다. 권리 보호 제도의 실패가 결국 예산과 인력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록의 비식별 비용 항목만이라도 요청하죠.” “벌써 요청했습니다.” 아레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오늘 할 일을 하나 줄였군요.” “아닙니다. 자료가 오면 검토해 주셔야죠.” 나는 다시 검은 곡물차를 마셨다. 내 직업에는 쉬는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오후 심의에서는 문제가 하나 더 드러났다. 권고안을 시행 규정으로 바꾸려던 실무 회의가 몇 차례 예정됐지만, 회의가 열렸다는 확인이 없었다. 일부는 당시 봉쇄된 통행로와 통신 불능 때문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일정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방해 공작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회의를 열지 못하게 했을 가능성은 있습니까?” 제르칸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다면 내 군대가 조사해야겠다.” 나는 급히 말했다.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아직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회의가 예정됐던 장소와 통지 기록부터 봐야 합니다.” “또 기다리라고?” “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나는 새 권고안 초안을 펼쳤다. 구형 접수를 임시 상태로 표시하고, 당사자가 나중에 접근할 수 있는 재확인 창구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당장 제3감리 전체를 바꿀 권한은 없지만, 마왕성 내부의 협력 계약과 인사 처리에는 적용할 수 있었다. “폐하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제르칸의 눈이 빛났다. “드디어 왕다운 일을 시키는군!” “승인 전에 영향 평가를 읽으셔야 합니다.” “또 읽어야 한다고?” “네. 사람의 선택권에 영향을 주는 내용이니까요.” 마왕은 투덜거리면서도 서류를 읽었다. 뜻밖에 한 문장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긴급 보호 제공은 장래의 영구 계약 동의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건 좋은 말이다.” “왜 그러시죠?” “내가 누군가를 구했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나를 따를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나는 그를 바라봤다. 허세 가득한 마왕에게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폐하, 오늘은 꽤 멋지십니다.” “그렇지? 그러니 이 말을 새 망토에 수놓아라!” “그 비용은 개인 부담입니다.” “방금의 감동을 돌려다오!” 모두가 웃었다. 회의가 끝나고 아우렐이 작은 추가 문서를 전해 줬다. [실무 시행 규정 초안 제1차 회람 완료. 이후 수정본 소재 불명.]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원칙은 있었고, 권고도 있었다. 그런데 시행 단계로 넘어가며 무엇인가 끊겼다. 이번에는 그 끊긴 지점을 찾을 차례였다. 사유서는 우리를 비밀의 끝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에 제대로 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 줬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화가 났다. 누군가 애써 만든 ‘나중에라도 물어보라’는 문장이, 세월을 지나면서 ‘묻지 않아도 동의한 것으로 처리하라’가 됐으니까. 그 차이를 바로잡는 것은 마왕을 쓰러뜨리는 일보다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마왕성에서 그 지루한 일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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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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