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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1화
PAYLUA ORIGINAL · 제11화

11화. 입사 첫날부터 결재선이 마흔셋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2,539자

오프라인 책장
정식 출근 첫날이었다. 나는 새벽부터 눈을 떴다. 이유는 간단했다. 늦잠을 자면 지각이니까.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창밖에서는 박쥐가 날아다니고, 복도에서는 갑옷이 덜그럭거렸다. 침대 옆 탁자에는 성검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마왕성이다. 와. 입사 첫날부터 회사 이름이 이력서에 쓰기 애매하다. 문을 열자 임프 서기 피코가 서 있었다. “도윤 님! 출근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그런데 너 왜 벌써 와 있어?” “어제 퇴근을 못 해서요.” 축하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걸 왜 이렇게 밝게 말해?” “저희 부서에서는 흔한 일이라서요.”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 회사에서 고쳐야 할 것은 장부만이 아니다. 재정실에 들어가니 리치 몰트가 새 명패를 내밀었다. [한도윤 / 재정실 계약·감사 담당] “자네 이름을 새겼네. 인간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뼈를 세 개나 교체했지.” “왜 뼈를 교체하세요?” “명패 글씨를 조각하다 손가락이 닳아서.” 천이백 년 일한 상사의 관절 문제가 신입 직원 복리후생과 연결될 줄이야. 몰트는 두툼한 서류더미를 가리켰다. “오늘 처리할 결재서류일세.” “이게요?” “마흔세 부서의 지난달 지출 요청서라네.” 마흔셋. 나는 잠깐 귀를 의심했다. 부서가 마흔세 개라니. 이 성이 대기업이었어? 서류 첫 장에는 '지하 제3고문실 촛불 구매 승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 장은 '악몽 연출단 비명 연습용 차가운 물 구매'. 그다음은 '마왕 전용 망토 소독비'. “잠깐만요. 망토를 왜 매주 소독합니까?” “전하께서 벗지 않으시거든.” “벗지 않으시는데 누가 세탁해요?” “그러니까 비용만 지급하는 걸세.” 아하.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허위 지출이다. 나는 한 장씩 결재선을 살폈다. 촛불 하나를 사는 데 서명이 일곱 개, 고문실의 물통 하나를 바꾸는 데 서명이 열둘이었다. 마지막 서명자는 언제나 몰트였다. “실장님. 이 결재 방식은 언제 만들었습니까?” “팔백 년 전일세.” “그때는 왜 필요했죠?” “전하께서 누군가 자기 허락 없이 물건을 사는 것을 싫어하셨지.” “지금도요?” “지금은 누가 무엇을 사는지 기억하지 못하시네.” 그렇다면 팔백 년 동안 누구도 필요성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빈 양피지에 선을 그었다. 금액과 목적에 따라 결재선을 줄이고, 실물 확인이 필요한 건은 별도 표기하는 방식이었다. 피코가 옆에서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이렇게 바꾸면 사인하는 시간이 얼마나 줄까요?” “글쎄. 계산해 보자.” 피코가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지난달 승인된 결재문서였다. 문서 수를 세어 보니 육백이십 장. 평균 서명 열한 개. “대략 육천팔백 번.” “서명을요?” “응. 이 성에서 사람들이 한 달에 그만큼 도장을 찍어.” “도윤 님, 그럼 우리가 중요한 일을 엄청 많이 하는 거네요!” “아니.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손목부터 혹사시키는 거지.” 피코가 자기가 찍어 둔 도장을 바라봤다. 그 작은 손이 벌벌 떨렸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결재선을 줄이면 일자리를 잃는다고 생각하는 부서장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회의실에 불렀다.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피투성이 앞치마를 입은 고문실장이었다. “인간! 내 서명을 없애겠다고?” “없애는 게 아니라 저위험 소모품 구매는 담당자가 직접 승인하도록 바꾸자는 겁니다.” “그럼 내가 뭘 하지?” “고문실 관리요.” “아.” 직무기술서가 이렇게 중요하다. 다음에는 악몽 연출단장이 들어왔다. 뾰족한 모자를 쓴 유령이었다. “내 승인 없이는 비명 하나도 낼 수 없네!” “비명은 구매물품이 아닌데요.” “그렇지만 품질 관리가 필요하잖나!” “그건 검수 기준으로 남기죠.” 회의가 길어졌다. 피코는 몰래 내게 귓속말했다. “도윤 님. 이렇게 반대하는 분들이 많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반대 이유를 적으면 돼. 이유가 있으면 반영하고, 이유 없이 싫으면 기록해 두는 거야.” “기록하면 해결돼요?” “해결되진 않아. 대신 나중에 누가 뭐라고 했는지는 안 잊어버리지.” 우리나라 직장생활에서 배운 가장 값비싼 지혜였다. 저녁 무렵, 몰트가 결재선 간소화안을 읽었다. “좋네. 다만 최종 승인자는 전하께서 되어야 하네.” “물통 하나에도요?” “왕권의 상징이지.”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왕이면 왕권의 상징을 좀 더 생산적인 데 써야 하지 않을까.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루시아였다. “인간! 전하께서 부르신다!” “무슨 일인데요?” “결재선에 대한 보고를 받으셨다.” 벌써? 루시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하께서는 매우 화가 나셨다. 자기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승인했다는 보고 때문이지.” “일곱 번이면 적은 편 아닌가요?” “전하께서는 한 번도 서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신다.” 내 손에 들린 서류 아래에서 붉은 선이 번쩍였다. [마왕 직인 사용 기록: 당사자 진술과 불일치] 절대 감사. 나는 황급히 종이를 뒤집었다. 첫 출근 날부터 사장의 도장이 위조됐을지도 모른다. 이런. 우리 회사는 정말 환영 행사도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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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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