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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10화
PAYLUA ORIGINAL · 제10화

10화. 이 성에는 회계감사가 필요합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8,561자

오프라인 책장
마왕 제르칸의 집무실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려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벽마다 커다란 전쟁 그림이 걸렸고, 중앙에는 마왕의 황금 흉상이 놓여 있었다. 흉상은 실물보다 뿔이 길었다. 아, 보정 들어갔네. “인간, 내 초상화가 그리 대단하냐?” “위엄이 느껴집니다. 제작비도 상당했겠군요.” 몰트가 내 옷소매를 당겼다. “그건 나중에 묻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지금은 금화 팔만 닢부터 찾아야죠. *** 회의실에는 여러 마족이 모여 있었다. 마왕 제르칸. 재정실장 몰트. 기사단장 루시아. 제17군단장 베르가몬. 보급관 그라즈. 그리고 임시 조사 담당자인 나. 회의 참가자 직급만 보면 내가 압도적으로 낮았다. 심지어 아직 정식 직원도 아니었다. 이런 회의에 막 입사 지원한 사람이 참석해도 되나? 조금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마왕이 불렀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양피지와 확보한 서류를 탁자 위에 펼쳤다. “먼저 확인된 사실부터 보고드리겠습니다.” “좋다.” 마왕이 팔짱을 꼈다. “제17군단에 건조육 납품 대금이 두 번 지급됐습니다.” 나는 두 건의 지급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성 지하 창고 원장에는 한 번의 입고만 기록돼 있습니다.” 그라즈가 끼어들었다. “문서 복제 실수일 뿐입니다!” “그 가능성도 검토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서만 복제됐다면 두 번째 지급은 취소됐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금은 실제로 두 번 지급됐습니다.” 몰트가 자료를 받아 살펴봤다. “지급 취소 기록이 없군.” “네. 그리고 보급기지에는 약속한 물량보다 적은 건조육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현장 인수대장을 놓았다. “실제 인수 수량은 백이십 상자입니다.” 베르가몬이 탁자를 쳤다. “전쟁 중 손실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손실 자체는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손실 보고서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정식 손실 보고가 없었습니다.” “내 군단을 모욕하는군!” “모욕이 아니라 자료 요청입니다.” 제르칸이 손을 들어 올렸다. “조용히 하라.” 베르가몬이 입을 다물었다. 마왕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라.” 좋아. 적어도 보고할 기회는 준다. “두 번째는 흑철 검 구매입니다.” 나는 금화 팔만 닢의 구매 계약서를 펼쳤다. “제17군단이 흑철 검 만 자루를 구매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마왕의 눈이 커졌다. “만 자루?” “네.” “그렇게 많이?” “그래서 실물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본진 창고의 인수 기록을 펼쳤다. “현장에는 만 자루를 받은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같은 날짜에 만 개의 철제 부품을 반출한 기록이 있습니다.” 루시아가 팔짱을 풀었다. “그게 검이란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만 거래 금액, 수량, 시점이 서로 연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르칸이 얼굴을 찌푸렸다. “또 가능성이란 말인가?” “확정하지 않은 부분을 확정하면 진짜 범인이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준비한 다음 문서를 내밀었다. “확정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라즈가 나를 노려봤다. 나는 마계 상업금고에서 발급한 확인서를 펼쳤다. “보급관이 제출한 거래 확인증의 인장은 십 년 전에 폐기된 구형 인장입니다.” 몰트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사실인가?” “상업금고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라즈가 반박했다. “오래된 양식이 남아 있었을 수도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입니다. 그래서 양식 폐기일과 거래일을 별도 자료로 비교했습니다.” 제출한 확인서는 폐기된 지 십 년이 지난 양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거래일은 지난달이었다. 더 이상한 건 인장 밑에 찍힌 보조 표시였다. [재발급 불가] 구형 양식은 이 표시가 없는 게 정상이라고 했다. 즉, 누군가 오래된 인장 모양을 흉내 내면서 최신 문서의 보조 표시까지 덧붙인 것이었다. 한 문서에 서로 다른 시대의 양식이 섞여 있었다. “이 서류는 정상 발급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나는 말했다. “다만 누가 위조했는지는 아직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르칸이 천천히 그라즈를 돌아봤다. “보급관.” “예, 전하!” “네가 이 서류를 제출했다고?” “그,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받았지?” 그라즈의 입술이 떨렸다. “흑산 상단에서…….” “언제?” “지난달에…….” “누구에게?” 그라즈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양피지를 내려다봤다. 사실 나는 답을 조금 알고 있었다. 그라즈가 폐기실에서 나를 막았을 때, 그가 제출한 문서의 원본 보관 위치를 이미 확인해 두었다. 그리고 그 서류의 하단에는 수취인 이름 대신 물품 담당자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번호를 보여 줬다. “전하, 이 문서의 마지막 인수 담당자 번호는 그라즈 보급관의 개인 결재 번호입니다.” 제르칸이 고개를 돌렸다. “직접 인수했다는 뜻인가?” “적어도 기록상 그렇습니다.” 그라즈가 비명을 질렀다. “거짓말입니다!” 나는 즉시 다음 자료를 꺼냈다. “그래서 개인 결재 번호 발급 내역도 확인했습니다.” 몰트가 나를 바라봤다. “언제 그런 것까지 확인했나?” “아까 회의 전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시스템에 남아 있어서 조회만 했습니다.” 아.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이상한 사람이긴 하다. 금화 팔만 닢짜리 검이 사라졌는데 나는 시스템 로그가 있다는 사실에 가장 기뻐하고 있으니까. “결재 번호는 거래일 다음 날 발급됐습니다.” 정적. 마왕의 눈에서 붉은 빛이 사라지듯 가라앉았다. “다음 날?” “네. 거래가 승인된 날에는 존재하지 않던 번호입니다.” 그라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문제였다. 거래일 당시에 없었던 번호로 그날의 거래를 승인했다는 건, 문서가 나중에 작성되었거나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사람은 가끔 날짜를 착각한다. 하지만 발급되지 않은 번호로 결재하는 건 정상적인 과정에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양피지에 손을 올렸다. 붉은 선이 조용히 떠올랐다. [절대 감사: 승인 시점 불일치 확정.] 글자는 내 눈에만 보이는 듯했다. 나는 신기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마법 자랑이 아니었다. 서류를 실제로 맞추는 일이었다. “전하.” 나는 고개를 숙였다. “현재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구매 절차의 중대한 오류와 허위 문서 제출 정황은 보고드릴 수 있습니다.” 제르칸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럼 내 돈은 어디 갔지?” “그 부분은 추가 추적이 필요합니다.” “또!”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조치가 있습니다.” 나는 미리 적어 둔 목록을 내밀었다. [관련 지급 보류.] [원본 장부와 승인 기록 보전.] [흑산 상단에 계약 이행 및 반환 요구.] [그라즈의 해당 거래 결재 권한 임시 정지.] [제17군단 식량 긴급 보충.] 마왕은 목록을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항목에서 멈췄다. “식량 긴급 보충?” “네.” “그건 왜 넣었지?” “병사들이 배고파하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제17군단의 보급기지에서 본 고블린 닉스를 떠올렸다. 몸에 맞지 않는 낡은 갑옷. 비어 있는 식량 창고. 하루 세 번 먹어야 할 병사가 두 번만 먹는다는 말. “감사가 끝나더라도 병사들이 굶으면 전쟁은 제대로 못 합니다.” 나는 말했다. “장부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건이 실제로 도착해야죠.” 마왕은 내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었다. “하하하하!” 큰 웃음이었다. 집무실 천장이 울렸다. 나는 긴장했다. 아이고. 왜 웃으시는 거지? “몰트!” “예, 전하!” “저 인간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전쟁 예산을 조사하러 와서 병사 밥부터 챙기려 한다!” 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 어? 칭찬인가? 나는 얼떨떨했다. 제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라즈는 즉시 결재권을 정지하고, 원본 기록을 봉인하라. 흑산 상단의 자금은 회수 가능한 범위까지 동결하고 조사할 것이다.” 루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제17군단 식량은 별도 예비비로 보충하라!” 몰트가 서둘러 적었다. 그라즈는 병사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갔다. 그는 끝까지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기록했다. [그라즈 신병 확보. 위조 및 허위 지급 의혹 조사 계속. 유죄 확정 아님.] 피코가 메모를 들여다봤다. “그라즈가 범인 아닌가요?” “서류 위조 정황은 확인됐지만, 돈의 최종 행방은 아직 모르잖아요. 그 둘은 구분해야 합니다.” 나는 나중에 책임 소재를 밝힐 때 사람 하나를 편의상 범인으로 정해 버리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 회의가 끝난 뒤 몰트는 나를 재정실로 데려갔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작은 금고를 꺼냈다. 금고 위에는 마왕성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자네의 임시 조사 업무에 대한 보수일세.” 몰트가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금화가 들어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금화 한 닢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는 금화 한 닢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 다른 작은 봉투도 내밀었다. “나머지는 야간 근무 수당과 위험 업무 특별 수당이라네.” ……. 나는 봉투를 열었다. 금화 세 닢이 더 들어 있었다. 정말로 수당을 준다. 내가 야근할 때마다 수당 지급 여부를 따졌던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었나 싶었다. 지구에서 이런 감동을 느낀 적이 언제였더라.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장님.” “뭔가?” “저 여기 취직하고 싶습니다.” 몰트의 푸른 불꽃이 커졌다. “정말인가?” “네.” “왕국의 용사인데도?” “왕국이 저를 고용한 적은 없습니다.” “흠.” “그리고 마왕성은 적어도 약속한 돈을 지급하네요.” 몰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서랍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마왕성 재정실 정규직 채용 계약서.] 아. 드디어!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받는 제대로 된 채용 계약서였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그런데 바로 이상한 문구가 보였다. [근무 기간: 고용주의 허가가 있을 때까지 무기한.] 어라? 이건 좀 곤란한데. “실장님.” “왜 그러나?” “퇴직할 자유는 있습니까?” 몰트가 눈을 깜빡였다. “있지. 사직 의사를 통보하고 인수인계를 마치면 되네.” “그럼 이 조항은 고쳐야겠는데요.” 몰트는 계약서를 봤다. “아, 이건 오래된 문구군. 내 부하들이 쓰던 양식을 그대로 가져왔네.” “언제부터 사용한 양식입니까?” “한 육백 년쯤?” 아이고. 이 회사 양식 관리부터 손봐야겠네. 나는 계약서에 빨간 잉크로 수정 사항을 적었다. [퇴직: 사전 통지 후 인수인계.] [급여: 월 정기 지급.] [야간 근무: 수당 별도.] [업무상 부상: 치료비 지원.] [감사 자료 열람: 승인 범위 내 보장.] 몰트는 내 요구를 하나씩 검토했다. 어떤 항목은 바로 받아들였고, 어떤 항목은 조금 설명이 필요했다. 좋다. 바로 이거다. 계약은 이렇게 하는 거다. 모든 요구를 무조건 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 서로 할 수 있는 일과 책임질 일을 정하는 것. 나는 마지막 장의 서명란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하겠습니다.” 몰트가 웃었다. “역시 하나가 더 있군.” “제 성검은 업무용 무기가 아닙니다.” “알겠네.” “전투 임무를 자동으로 배정하지 않는다고 적어 주세요.” 몰트의 푸른 불꽃이 흔들렸다. “그럼 루시아가 실망하겠군.” “그건 루시아 기사단장님과 별도 협의하겠습니다.” 몰트는 웃으며 계약서에 문구를 추가했다. 나는 서명을 했다. 한도윤. 서른두 살. 지구 출신. 전직 중견기업 재무팀 대리. 그리고 이제. 마왕성 재정실 신입 직원. 이야. 인생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나는 사본 한 부를 받아 들었다. “사본도 주시는군요.” “당연하지 않나?” 그렇죠. 정말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너무 반가웠다. *** 그날 저녁, 나는 마왕성에서 정식으로 첫 식사를 했다. 피코가 맞은편에 앉았다. “축하드려요, 도윤님!”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 우리 식구네요!” 우리 식구. 생각해 보니 이상한 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왕을 죽이러 소환된 용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족들과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식당에서는 고기 냄새가 났다. 오늘은 임프들에게도 고기 반찬이 나왔다. 피코는 접시를 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와! 진짜 나왔어요!” “뭐가요?” “고기요! 어제는 없었는데!” 나는 웃었다. 아마 긴급 보급이 일부 반영된 모양이다. 물론 아직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검 만 자루도 찾지 못했고, 흑산 상단의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베르의 실종을 누가 지시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가벼웠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문제를 발견했다고 내가 먼저 쫓겨나지는 않았으니까. “도윤님,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요?” “인간들은 마왕성을 정말 무서워하나요?” “네. 엄청요.” “왜요?” 나는 식당을 둘러봤다. 오우거들은 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해골 병사들은 검은 음료를 마셨다. 리치 몰트는 구석에서 장부를 보다가 또 한숨을 쉬었다. 어딜 봐도 정상적인 직장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아마 서로 잘 몰라서 그런 거겠죠.” 피코가 눈을 깜빡였다. “도윤님은 안 무서워요?” “무섭죠.” 나는 성검을 툭 쳤다. “특히 루시아 기사단장님이요.” 피코가 깔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오랜만에 정말 편하게 웃었다. ***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가는데 몰트가 나를 불렀다. “도윤.” “네, 실장님.” “내일부터 처리할 일이 좀 있네.” 그가 두툼한 서류철을 내밀었다. [마왕군 정기 회계 개선 과제.] 나는 첫 장을 읽었다. 급여 지급 지연. 창고 재고 불일치. 전쟁 피해 보상 정산. 계약서 표준 양식 부재. 아이고. 해야 할 일이 끝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적어도 누군가 고칠 의지가 있다면. “실장님, 우선순위부터 정해 보겠습니다.” “좋네.” “그런데 이건 뭡니까?” 나는 서류철 맨 뒤에 꽂혀 있던 회색 종이를 꺼냈다. 제목도 없고 거래처 이름도 가려져 있었다. 다만 분류 번호 하나만 선명했다. [대외 협력 비용. 분류 코드 00-성전.]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성전? 마왕군 회계에서 쓰기에는 조금 이상한 단어다. “실장님, 이 항목은 어떤 비용입니까?” 몰트가 서류를 힐끗 봤다. “아, 그건 오래된 봉인 계정일세.” “봉인 계정이요?” “접근 권한이 제한된 장부지. 나도 자세한 내역은 못 보네.” “재정실장님도요?” “그렇다네.” 나는 종이를 다시 내려다봤다. 재정실장조차 접근할 수 없는 회계 자료라. 어쩐지 신경 쓰인다. 하지만 지금 당장 파고들 일은 아니다. 아직 첫 출근도 안 한 신입이 회사 최고 기밀부터 달라고 할 순 없잖아. 나는 조용히 종이를 서류철에 끼웠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확인하겠습니다.” “좋네. 내일 아침부터 일하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네, 실장님.” 몰트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서류철을 바라봤다. 뭐, 언젠가 확인할 수 있겠지. 당장은 내일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 성검은 침대 옆에 세웠다. 칼날이 은은하게 빛났다. “너도 이제 적응해야 한다.” 나는 검에게 말했다. “우리는 마왕성 직원이야.” 성검에서 작게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못마땅한 음색이었다. “어허. 근로계약서 다 썼다고.” 칼날에 희미한 글자가 나타났다. [소유자의 고용 상태 갱신.] 어? 진짜 반영되네. 그 아래 두 번째 문구가 떠올랐다. [신성 서약 상태: 미체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건 안 했지.” 그런데 세 번째 문구를 본 순간 웃음이 멈췄다. [새로운 계약 충돌 가능성 감지.] ……. 계약 충돌? 무슨 뜻이지? 나는 다시 칼날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글자는 곧 사라졌다. 아무리 흔들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야, 이거 설명은 하고 가야지.” 성검은 조용했다. 참나. 이 물건도 우리 회사 업무 시스템이랑 비슷하다. 경고는 띄워 놓고 자세한 원인은 알려 주지 않는다. 나는 검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생각해 보니 마왕성에 입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엄청난 일이었다. 더 황당한 일이 생겨도 이제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 생각은 조금 성급했다. 다음 날 아침, 내 책상 위에는 이런 메모가 놓여 있었으니까. [신입 한도윤 담당 업무: 마왕성 전체 부서의 회계 규정 정비.] 그리고 그 아래. [관련 부서: 총 43개.] ……. 마흔세 개? 나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 첫 출근부터 전사 회계 시스템 개편이란다. 아이고. 마왕성에서도 야근은 피할 수 없겠구나. 다만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다. 야간 수당은 두 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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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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