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항에서 '귀환'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사람을 생각했다.
그런데 라델이 보내온 구형 업무 해설서는 뜻밖에도 물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귀환 보존: 외부에서 접수한 대상을 원래의 권리자에게 돌려주기 전, 임시 보호하는 절차.]
나는 책상에 이마를 댔다.
“좋아. 오늘도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덜 극적이군.”
피코가 옆에서 오렌지를 까다 말고 물었다.
“귀환이면 집에 가는 거 아니에요?”
“사람에게도 쓸 수 있고, 물건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래.”
“그럼 오렌지도 집에 가요?”
“그건 이미 네 배로 갈 예정이지.”
피코가 오렌지를 한 조각 삼키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그쪽도 나쁜 집은 아니에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식사의 철학까지 연구할 시간은 없었다.
오늘은 왕국 라델, 천계 아우렐, 중립 공관 아레인과 함께 구형 용어집을 대조할 예정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옛 문서의 '귀환'이 사람의 이세계 귀환을 가리키는지, 봉인 물품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절차인지 확인하는 것. 문제는 용어집이 세 권이고, 세 권의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는 데 있었다.
왕국판에는 '물품 반환'이 먼저 적혀 있었고, 천계판에는 '접수된 존재의 원래 지위 회복'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중립 공관판에는 '소유 또는 신분 확인 전 임시 귀속 금지'라고 되어 있었다.
“원래 뜻이 세 개였다는 건가요?”
피코가 말했다.
“각 기관이 자기 업무에 맞게 썼다는 뜻일 수 있어.”
“그럼 뭐가 맞아요?”
“그 문서가 작성될 당시 어떤 규칙을 적용했는지 알아야지.”
아우렐이 화면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의 귀환 대기실 규정이 과거 문서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가정하면 위험합니다.”
“제가 그 실수를 할 뻔했네요.”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라델은 기록의 날짜 범위를 좁혔다. 구형 용어집이 사용되던 시기와 송-4189 접수 시기가 겹쳤다. 하지만 당시에도 같은 단어를 둘 이상의 뜻으로 쓸 수 있었다. 우리는 최종 목적 분류를 정하기 전에 초기 담당자의 업무 설명서를 더 찾아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구형 해설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제르칸에게 짧은 교육을 요청받았다. 교육 제목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폐하가 직접 정하신 제목입니까?”
“그렇다. 군대에도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어떤 교육을 원하시는 거죠?”
“퇴직한 병사가 복직하려는데, 옛 근무지를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지 논쟁이 생겼다.”
나는 인사 담당자를 불렀다. 병사의 실제 계약을 보지 않고 조언할 수는 없었다. 서류를 보니 전투 중 다쳐 휴직했던 오크 병사 브란이 있었다. 치료 후 복직을 요청했는데, 시스템에서는 '복귀 승인'이라고 표시된 상태였다.
“복직 자체는 승인됐습니까?”
인사 담당자가 답했다.
“의무관의 건강 확인과 인사 담당자의 복직 승인은 있습니다.”
“원래 부대 배치는요?”
“그건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브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난 예전 부대에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소.”
루시아가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예전 부대가 지금은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다. 네 몸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내 몸은 내가 알지!”
브란이 항의했다. 나라도 화가 날 것 같았다.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정작 어디로 돌아갈지는 결정되지 않았으니.
“브란 님, 복직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부대 배치는 별도 절차예요.”
“그럼 복직 승인이라는 말은 왜 이렇게 큰 글씨로 써 뒀소?”
“그게 문제죠.”
나는 인사 담당자에게 화면을 보여 줬다. 큰 글씨 아래에는 '배치 미확정'이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나는 두 항목을 똑같은 크기로 표시하도록 요청했다.
루시아는 브란에게 선택지를 설명했다. 현재 몸 상태로 수행할 수 있는 임무, 훈련 복귀 과정, 예전 부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제출하는 방법. 그녀는 결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브란은 한참 생각한 끝에 말했다.
“전 그 부대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회복 훈련부터 받겠습니다.”
“좋다.”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은 네가 선택했다는 기록을 남기겠다.”
브란이 나를 돌아봤다.
“인간 회계사. 내가 화를 낸 건 미안하오.”
“저라도 화가 났을 겁니다.”
“그래도 말은 좀 부드럽게 해 주시오. 복직과 부대 배치는 나한텐 거의 같은 말이거든.”
“그래서 구분해서 설명해 드려야 하는 거죠.”
나는 웃었다.
교육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용어를 정확히 나누는 것만으로 갈등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고, 조직이 어떤 책임을 지는지 함께 확인해야 했다.
교육을 마친 뒤 제르칸이 나를 불렀다.
“한도윤, 전쟁이 끝나면 모든 병사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마왕은 드물게 망토와 예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같은 자리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다들 달라졌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래도 돌아갈지, 다른 길을 선택할지 말할 기회는 있어야겠죠.”
마왕은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나는 내 병사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
“폐하가 마왕이니까요.”
“요즘은 네가 월급을 안 준다고 할까 봐 더 두려워하는 것 같더군.”
“제가 안 주는 건 아닙니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씀드릴 뿐이죠.”
“그게 더 무섭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구형 해설서 한 장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브란이 훈련장으로 돌아간 뒤, 루시아는 내게 작은 나무패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두 칸이 그려져 있었다.
[복직 확인]
[배치 선택]
“어떤가?”
“훌륭합니다.”
“기사단원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만들었다.”
“이제 누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기록할 수 있겠군요.”
루시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나는 예전엔 명령을 잘 따르는 병사가 가장 좋은 병사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명령이 무슨 뜻인지 묻는 병사도 좋은 병사라는 걸 알게 됐지.”
“왜 바뀌셨습니까?”
“네가 매번 내 질문을 다시 묻잖나. 짜증 나는데 도움이 되더군.”
나는 웃었다.
“그게 제 전문입니다.”
“그럼 내 부하들도 질문하게 해야겠어.”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훈련 중 적이 달려올 때는 질문보다 대피가 먼저일 수도 있죠.”
루시아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건 내가 가르치겠다!”
그날 훈련장에는 새로운 지침이 붙었다. 질문할 시간과 즉시 움직일 시간을 구분하자는 지침이었다. 또 하나의 '확인'이 구체적인 사람의 안전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피코는 나무패를 본떠 자기 수첩에도 칸 둘을 만들었다. 하나는 '실제 일어난 일', 다른 하나는 '아직 확인할 일'이었다.
“이렇게 적으면 빈칸이 보여요.”
“좋네.”
“하지만 빈칸이 너무 많으면 무섭겠죠?”
“무서워도 감추지 말자. 모르면 알아볼 수 있으니까.”
녀석은 진지하게 그 말도 적었다.
그날 오후, 마왕성 재정실에는 전혀 다른 문제가 터졌다.
식당 아주머니 세 분이 몰트의 사무실 앞을 점령한 것이다. 그들은 통통한 팔을 걷어붙이고 커다란 국자를 들고 있었다. 제르칸도 없는 날에 이렇게 무서운 군대가 등장하다니.
“회계사 양반!”
가장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우리한테 식재료비 지급 완료라고 했는데, 상인한텐 돈이 안 갔다더라!”
나는 재빨리 국자 끝에서 두 걸음 떨어졌다.
“누가 완료라고 했습니까?”
“창고 화면이오!”
“그 화면을 보여 주세요.”
식당으로 내려가자 창고 담당 임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수프용 감자 스무 자루의 입고 기록이 '완료'였고, 지급 기록도 '완료'로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납품업자에게 확인하니 아직 금화 열두 닢 중 다섯 닢밖에 받지 못했다고 했다.
“입고 완료와 지급 완료가 같은 화면에 나오네요.”
나는 줄을 따라 읽었다. 첫 번째 완료는 물품 도착이었다. 두 번째 완료는 지급 명령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실제 지급 완료는 아니었다.
“이거 예전에 고친 줄 알았는데요.”
피코가 말했다.
“마왕성 인사 쪽과 창고 쪽은 별개 시스템이야. 다른 부서까지 아직 전부 고치지 못했지.”
아주머니가 국자를 탁 내려놓았다.
“그럼 상인은 언제 나머지를 받는 거요?”
“지급 담당 부서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받는다고 약속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녀는 나를 노려봤다.
“거짓말보단 낫구먼.”
우리는 일단 이미 지급된 금화 다섯 닢의 영수증을 확인하고, 나머지 일곱 닢은 지급 지시 번호와 예상 처리일을 별도로 적었다. 창고 담당자에게 '완료'라는 말 대신 '입고 완료', '지급 지시', '실제 수취' 세 칸을 표시하도록 했다.
“이제 납품업자가 우리를 사기꾼이라 부르지는 않겠죠?”
담당 임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돈이 도착하기 전엔 알 수 없습니다. 우선 상황을 숨기지 않는 게 좋겠죠.”
식당 아주머니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점심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피코가 배고프다는 얼굴을 하자 마음을 바꿨다.
“얘는 먹여야지.”
“저도 먹여 주시면 안 됩니까?”
내가 물었다.
“자네는 숫자부터 먹고 오시오.”
세상에. 회계사는 종족을 넘어 미움을 받는 존재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때, 피코가 물었다.
“도윤 님, 왜 사람들은 완료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해요?”
“일이 끝났다는 느낌이 좋으니까.”
“안 끝났는데 써도 돼요?”
“안 되지.”
“그럼 왜 그렇게 써요?”
“화면 설계가 나빠서 그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책임을 피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 지금은 둘을 구분해야 해.”
피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료는 제일 마지막에 써야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가끔은 일 일부만 끝났다고도 정확히 적어야 해.”
그 말은 내가 요즘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었다. 세계의 비밀은 한 번에 풀리지 않는다. 일을 잘하는 사람도 매일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무엇이 끝났고 무엇이 남았는지 솔직히 적을 수는 있다.
오후 늦게 루시아가 수련장에서 나를 불렀다. 그녀는 기사단원 세 명을 세워 놓고 신기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은 표지판을 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왜 다 다른 데로 가죠?”
“표지판이 모호해서다.”
루시아가 말했다.
표지판에는 단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복귀.]
한 명은 병영으로, 한 명은 훈련 시작점으로, 한 명은 집으로 갔다.
“어떻게 생각하나?”
루시아가 물었다.
“훌륭한 실험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단어 하나가 다르게 해석되면 사람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군요.”
“그렇다. 그러니 명령에는 목적지를 적어야 한다.”
그녀는 표지판 아래 새로운 문장을 달았다.
[훈련 종료 후 병영 정문으로 복귀.]
이번에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나는 박수를 쳤다.
“기사단장님, 요즘 정말 많이 발전하셨네요.”
루시아가 뿌듯해했다.
“그런데 왜 나를 보고 회계사가 칭찬하니 이렇게 기쁘지?”
“평가 기준이 엄격해서요.”
“그럼 다음에 더 어려운 시험을 가져와라.”
“일단 오늘 건 여기까지 하죠.”
그녀에게 회계 시험까지 맡겼다간 기사단 전원이 장부를 암기하는 재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저녁 회의에서 아우렐은 구형 용어집의 원본 해설 한 조각을 찾아냈다. 문장이 손상돼 전부 읽을 수 없었지만, 다음 부분은 분명했다.
[외부인 또는 외부 물품의 귀환 보존에 있어, 본래 권리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는 대리 처리는 금지한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역시 누군가는 오래전부터 동의와 인계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후대 규정에서 없어졌죠?”
내가 묻자 아우렐이 답했다.
“없어졌는지, 다른 조항으로 이동했는지, 적용 예외가 생긴 것인지 아직 조사 중입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이 원본 해설에는 뜻밖의 서명 표식이 있습니다.”
“제3감리입니까?”
“서명자의 직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름 대신 별도의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물었다.
“뭐라고요?”
아우렐은 번역 전 원문을 화면에 띄웠다. 읽을 수 없는 문자들 사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돌아갈 사람의 몫은 남겨 둘 것.]
이번에는 누군가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국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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