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새 9호를 찾는 일은 예상보다 간단했다.
문제는 그 배가 현재 물 위에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 있는데요?”
피코가 항구 관리인에게 물었다.
“육지.”
“배를 뭍에 올려놓은 거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배가 건물이 되었지.”
우리는 관리인을 따라 항구 끝으로 걸었다. 오래된 선체가 땅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었고, 갑판 위에는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현관 앞 표지판에는 '바다새 9호 선원식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식당입니다.”
내가 중얼거리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훌륭하게 재취업했군.”
나도 실직한 배보다 재취업한 배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제 점심값이 발생한다는 게 문제였다.
식당 주인은 털이 희끗한 오크 노인이었다. 그는 우리가 송-4189의 운송 기록을 조사한다고 하자 즉시 앞치마를 벗었다.
“죄 지은 배가 아니오.”
“그런 뜻으로 온 게 아닙니다.”
“우리 배는 전쟁 중에도 부상자와 편지만 날랐소. 무기를 싣지 않았어.”
나는 명함을 내밀었다.
“마왕성 재정실의 한도윤입니다. 운송 기록의 출처를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누구를 처벌하거나 배를 압류할 권한은 없습니다.”
“마왕성?”
노인이 내 얼굴을 살피더니 루시아를 봤다. 루시아는 사납게 웃으려다가 내가 팔꿈치를 찔러 그만뒀다.
“기사단장님은 호위입니다.”
“맞다. 오늘은 창을 쓰지 않는다.”
노인이 더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우리는 결국 생선 수프 네 그릇을 주문한 뒤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영업 중인 식당에서 옛 배 이야기를 듣겠다고 손님 자리만 차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몰트에게 제출할 영수증이 하나 늘었다는 점만 빼면 올바른 선택이었다.
노인의 이름은 우르간. 그는 어린 시절 바다새 9호에서 갑판을 청소했고, 아버지가 선장이었다고 했다. 나는 구형 명부를 펼쳤다. 우르간은 몇몇 항목을 손가락으로 짚었지만,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날짜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땐 내가 어렸소. 이런 건 선장 노트에나 있었지.”
“그 노트가 남았습니까?”
“남겨 뒀소. 다만 개인 노트라 함부로 보여 줄 수는 없어.”
“그렇다면 필요한 부분의 존재 여부만 확인해 주셔도 됩니다.”
노인이 수프를 한 숟갈 떠먹었다.
“말을 재밌게 하는군. 난 마왕성 사람은 다 계약서를 칼로 자르는 줄 알았는데.”
“우리도 예전엔 그랬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가끔 손으로 자르죠.”
“그게 무슨 차이요?”
“수리비가 덜 듭니다.”
우르간은 처음으로 웃었다.
우르간이 선장 노트를 꺼내기 전, 우리는 식당에서 작은 소동을 겪었다. 젊은 선원 둘이 계산대에서 서로 자기가 식사값을 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봐요! 저 친구 몫까지 냈다니까요!”
“아니, 내 동전은 분명 여기 있어요. 내가 냈어요.”
우르간이 피곤한 얼굴로 영수증을 꺼냈다. 한 장에는 생선구이 두 접시, 다른 한 장에는 생선구이 한 접시가 적혀 있었다.
“그럼 세 접시를 먹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뇨. 둘이서 두 접시만 먹었는데요.”
나는 누가 이미 값을 냈는지부터 확인했다. 동전함에는 두 사람 몫의 돈이 들어 있었지만, 두 번째 계산은 실제 수납이 아니라 '임시 예약' 상태였다. 안내판의 글씨가 작아 둘 다 결제됐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돈은 두 접시 몫만 들어왔군요.”
“그렇소.”
우르간이 동전함을 세어 봤다.
“그럼 이 친구는 왜 낸 줄 알았을까?”
“결제 예약표를 영수증이라고 받았으니까요.”
나는 예약표를 보여 줬다. 두 선원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웃었다. 말다툼이 그렇게 끝나자 우르간은 계산대 아래에 임시 안내판을 붙였다.
[예약은 결제가 아닙니다.]
피코가 박수를 쳤다.
“여기에도 붙었어요!”
“여기서는 수령하고 동의한 얘기가 아니잖아.”
“그래도 다른 걸 다르다고 적었잖아요.”
그렇다. 피코는 이제 차이를 찾아내는 눈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나보다 더 좋은 감사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빵값을 제외하면.
노인을 기다리는 동안 루시아는 선체 갑판을 살폈다. 나무 판자 사이에서 소금 냄새가 났다. 전쟁 중 부상자를 실어 나르던 배라고 생각하니 낡은 밧줄이 다르게 보였다.
“기사단장님은 이런 배를 타 본 적 있습니까?”
“전투선은 있다. 하지만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배는 별로 없었다.”
“어땠어요?”
“이상했지. 적군이든 아군이든 피가 같은 색이더군.”
나는 말을 멈췄다.
루시아는 난간을 쓸었다.
“그때는 모두 적을 쓰러뜨리면 전쟁이 끝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쓰러진 사람을 옮기는 데도 배가 이렇게 많이 필요했다면, 우리가 정말 끝낸 건 무엇일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전쟁 비용이 오래된 배의 닳은 판자로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이번엔 사람을 지킨 기록을 찾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 전투에는 나도 참가하겠다.”
그 뒤로 우리는 갑판 안쪽의 작은 전시장을 둘러봤다. 우르간은 손님들이 배의 옛 역할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만든 모양이었다. 벽에는 양쪽 진영의 군복 소매가 한 벌씩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치료받은 사람의 이름은 전시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왜 이름을 안 붙였을까요?”
피코가 물었다.
“여기서 치료받았다는 이유로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다들 살아남았는데도요?”
“살아남는 일이 부끄러운 게 아닌데, 세상에는 엉뚱한 사람들이 있지.”
피코는 전시장의 명패를 한참 바라봤다.
“저도 예전엔 고블린이라는 이유로 누가 제 이름을 적는 게 싫었어요.”
“지금은?”
“월급 받을 땐 꼭 적어야 해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맞아. 월급명세서에는 정확히 적어야지.”
우르간이 뒤에서 말했다.
“이 배에는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은 손님이 많았소.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사람 이름보다 짐의 봉인 번호를 더 정확히 기억했지.”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이름을 감춘 이유를 밝혀 달라고 강요하는 대신, 번호가 보호하려던 절차를 확인하는 길이 있었다.
그때 우르간이 선체 벽에 걸린 낡은 종을 쳤다. 딸랑, 하는 소리가 텅 빈 갑판에 울렸다.
“이 종은 사람을 실을 때 치던 거요. 무기를 실을 땐 치지 않았어.”
“왜요?”
“전쟁은 늘 배에게 물건만 옮기라고 요구했지만, 아버지는 사람이 배에 올라탔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지.”
나는 잠시 종을 바라봤다. 서류에 줄줄이 적힌 접수번호 뒤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우르간이 선장 노트를 가져오겠다고 사라지자 피코가 내 옆에서 말했다.
“도윤 님, 오늘은 배를 찾았는데 사람도 찾은 것 같아요.”
“누구?”
“그 옛날 선장님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은 알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알아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때로는 그가 지킨 규칙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식당 뒤 창고에는 항해 도구가 가지런히 보관돼 있었다. 우르간은 큰 철제 상자에서 얇은 노트를 꺼내더니 첫 장에 손을 얹었다.
“이건 아버지의 기록이오. 누구 이름을 어디까지 공개해도 되는지는 내가 먼저 확인하겠소.”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나는 굳이 그에게 원본 전체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봉인 물품 운송편의 출발항과 도착항만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우르간은 한참 노트를 살피더니 낡은 지도를 꺼냈다.
“바다새 9호는 북쪽 섬에서 출발했군.”
“섬 이름이 뭡니까?”
“지금은 폐쇄된 임시 구조항이오. 당시엔 '갈매기 등대'라고 불렀지.”
“문서를 거기서 받았습니까?”
“노트에는 적재 위치만 있소. 맡긴 사람의 이름은 별도 봉인 명부로 넘겼다고 되어 있군.”
나는 즉시 메모했다. 갈매기 등대는 작성 장소가 아니라 적재 장소일 수 있다. 그 차이를 놓치면 수십 년 전 선원의 사생활을 억지로 뒤질 이유가 생긴다.
피코가 선체 구석에서 작은 구멍들을 발견했다. 정교하게 뚫린 셋짜리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었다.
“여기도 점 세 개!”
그가 소리쳤다.
우르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환기 구멍이오. 세 개씩 뚫어야 판자가 잘 마르거든.”
피코의 귀가 축 늘어졌다.
“점 세 개가 세상에 너무 많아요.”
“회계 숫자도 그래.”
나는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르간의 노트에서 더 중요한 것은 선장의 메모였다.
[봉인 물품은 내용물 확인 없이 항만 검수소로 인계. 분실 시 공동 보존 보증금에서 탐색비 지급 가능. 단, 소유권 인정과는 무관.]
우리가 확인한 은화 열 닢의 예치와 설명이 비슷했다. 그러나 금액이나 증서번호가 없었으므로 같은 예치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우르간에게 보여 준 것은 그 사실뿐이었다.
“혹시 이 배에서 누가 한국어를 쓴 적이 있습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른들이 읽을 수 없는 글씨를 두고 논쟁한 적은 있어. 불길한 마법이라고 했지.”
“그 글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까?”
“난 못 했소. 아버지는 내용이 아니라 봉인 상태만 확인해야 한다고 했어.”
“그걸 지키셨군요.”
“선원은 자기가 맡은 물건을 바다에 빠뜨리지 않는 게 일이오. 손님의 편지를 읽는 게 일이 아니고.”
나는 노인의 말에 묘하게 위로받았다. 편지를 누가 썼는지 모르더라도, 그것을 열지 않고 운반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식당을 나오기 전 우르간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생선 수프 네 그릇과 빵 세 덩이. 한 덩이는 피코가 추가 주문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먹은 빵인데요.”
피코가 조용히 말했다.
“출장 식대 범위 안인지 확인하자.”
“범위 넘으면요?”
“네가 내야지.”
피코는 잠깐 생각하더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먹고 나서 내도 되는 거죠?”
“이미 먹었잖아.”
“아, 그렇네요.”
나는 웃으며 영수증을 받았다. 속여도 좋을 대목에서 스스로 말하는 직원이 있다는 건, 월급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큰 행운이다.
항구를 떠나기 전 우르간이 손수 만든 건빵 한 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손님에게 파는 물건이 아니오. 선원들이 출항할 때 하나씩 주던 행운의 빵이지.”
“그럼 선물로 받겠습니다. 대신 오늘 노트를 보여 주셨다는 사실은 별도 동의 없이 다른 곳에 알리지 않겠습니다.”
우르간은 나를 물끄러미 봤다.
“그 말부터 하는 사람은 처음이군.”
“저도 누가 제 일기를 마음대로 읽으면 싫을 테니까요.”
그는 웃으며 빵을 하나 더 얹었다. 피코가 그걸 보자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일기를 안 쓰는데요.”
“왜?”
“제가 먹은 빵을 다 기록하면 너무 두꺼워져요.”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바다새 9호가 지켜 낸 수많은 편지의 무게와 피코의 빵 일기가 머릿속에서 동시에 떠올랐다. 세상에는 기록해야 할 일도 많지만, 누가 기록을 볼 수 있는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항구를 나서려던 때, 노인이 다시 우리를 불렀다.
“한도윤 씨.”
“네?”
“아버지가 오래전 얘기를 하며 이런 말을 했소. 저 봉인은 열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열 수 있는 사람을 잘못 정하면 안 되는 거라고.”
나는 돌아섰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답니까?”
“누군가 아주 급히 열어야 한다고 찾아왔었대. 종이의 주인이 아니면서도 말이오.”
“누구였습니까?”
“그 이름은 내게 말하지 않았소. 살아 계실 때도.”
나는 강요하지 않았다. 확인할 수 없는 이름을 추측해 써 놓으면 정작 중요한 판단을 흐릴 뿐이었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피코가 물었다.
“그럼 봉인을 급히 열려던 사람이 나쁜 사람이에요?”
“모르지.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확인해야 해.”
“한도윤 님은 왜 범인 찾는 걸 좋아하면서 바로 범인을 안 찾아요?”
“좋아하는 건 범인 찾기가 아니야.”
“그럼요?”
“누가 억울하게 범인이 되는 걸 막는 거.”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전투다.”
나는 웃었다.
“기사단장님, 이번엔 정말 그렇네요.”
우리는 갈매기 등대의 과거 출입대장을 요청했다. 무리해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먼저 당시 구조항의 관할권과 남아 있는 문서부터 확인하면 된다.
그날 밤에는 뜻밖의 답이 먼저 도착했다.
[갈매기 등대 접수소 폐쇄. 보존된 출입대장 일부는 왕국 국립 구호창고 이관. 관련 정보 제공 시 전쟁 피해자 명단과 분리 필요.]
내 앞에는 또 두 개의 선택이 놓였다. 편지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과, 옛 전쟁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것.
나는 둘을 하나로 뭉개지 않기로 했다.
제10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