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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1화. 국고 잔액 열일곱 닢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6,091자

오프라인 책장
왕국에 돈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내 질문에 재무대신은 눈을 감았다. 기도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손가락을 세 개 폈다가, 다시 하나를 접었다. 계산이 틀렸나 보다. “금화 열일곱 닢입니다.” “열일곱만 닢이 아니라요?” “열일곱 닢입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대한민국 국세청에서 여덟 해를 일하며 자금이 말라붙은 회사를 숱하게 봤다. 매출채권을 현금인 것처럼 부풀리고, 대표자 개인 금고에 회사 돈을 숨겨놓고, 부도가 나기 전날까지 직원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래도 나라 하나의 예산이 열일곱 닢인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럼 세금 체납자는 얼마나 됩니까?” “귀족 스물셋, 상단 열일곱, 마법사 길드 넷. 그리고…….” “그리고?” “드래곤 한 마리입니다.” 나는 잉크가 말라붙은 깃펜을 들었다. “드래곤 주소부터 알려주시죠.”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꽂혔다. 재무대신 로웬은 말을 잘못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였고, 은발의 젊은 여자는 내 손의 펜을 보았다. 문 옆에 있던 소년은 자기 입을 손으로 막았다. “강태준 징수관.” 로웬이 말했다. “당신이 사흘 동안 열병으로 누워 있었던 건 압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임명장을 주셨다고 해서 목숨까지 국가에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아, 이름은 그대로구나. 나는 이 세계에서 깨어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기억은 서울의 새벽 두 시, 탈세 혐의를 받는 회사의 거래 명세서를 넘기다가 형광등이 눈앞에서 번쩍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나는 낯선 침대에서 국왕의 붉은 인장이 찍힌 임명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임명장에는 분명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필체만 달랐다. “그 드래곤이 죽인 사람은 몇 명입니까?” “기록상 열여덟 명입니다.” “최근에는요?” “마지막 사망 사고는 쉰두 해 전입니다. 동굴에 들어가 재물을 훔치려던 도둑들이었습니다.” “그럼 현재 납세 고지서를 전달할 방법이 없는 것뿐이지, 당장 모두 죽는다는 얘기는 아니네요.” “고지서를 내밀면 모두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합리적인 반론이었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드래곤이 아니라 이 왕국의 장부부터 봐야 했다. 재무대신이 안내한 창고 같은 방에는 책상 두 개와 먼지 쌓인 궤짝 다섯 개가 있었다. 왕국 재무청의 기록 보관실이라고 했다. 창문에는 유리가 없었고, 비가 샌 자리를 나무판으로 막아 두었다. 국가가 파산을 앞두면 가장 먼저 예산이 삭감되는 곳은 대개 기록 관리 부서다. 여기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은발 여자가 문을 열어젖혔다. “에리카 벨란. 재무청 결산 담당관입니다. 징수관님께서 정말 업무를 하실 거라면 먼저 이걸 보셔야 합니다.” 그녀가 건넨 종이는 왕실 부채 내역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내가 종이를 내려놓자 로웬이 마른웃음을 지었다. “세금을 올릴 수는 있습니다. 왕실에 긴급 징세권이 있거든요. 다만 오늘 세율을 두 배로 올리면 내일 시장이 문을 닫겠죠.” “시장은 이미 많이 닫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는 창밖을 가리켰다. 왕궁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시장 거리에서 천막이 접힌 가게가 절반 가까이 보였다. 길가에는 수레보다 빈 물통이 더 많았다. 새로운 세계에 온 지 두 시간밖에 안 됐지만, 가난한 도시의 풍경을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리카가 말했다. “지난달 정부는 빵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밀에 특별 소비세를 붙였습니다. 귀족들은 대규모 저장고에 밀을 쌓아두고 있는데, 작은 제빵사들에게는 밀을 살 때마다 세금이 붙어요. 빵값이 올라서 시장이 죽었습니다.” “누가 그 세금을 제안했습니까?” “군무청입니다. 군량을 사야 한다는 이유였어요.” “군량은 충분합니까?” “서류에는 그렇습니다.” “서류에는.” 내가 그 말을 따라하자 그녀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서류에서만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는 점이 문제였다. 현실의 빵집은 문을 닫았고, 성벽을 고치는 사람은 배를 곯고 있었다. 나는 법전의 세입 항목을 다시 읽었다. 왕실 특별 소비세는 영구 세목이 아니었다. 추가로 걷기 시작한 날부터 아흔 날 동안만 유효했고, 연장하려면 국왕과 귀족회의의 공동 승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발효 날짜는 넉 달 전이었다. “이 세금 연장 서류는 어디에 있습니까?” 에리카가 서랍을 뒤졌다. 루카스도 다른 묶음을 꺼냈다. 어디에도 없었다. 로웬은 기억을 더듬더니 말했다. “회의가 열리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럼 법적 효력이 끝났을 수도 있네요.” “그렇다고 무조건 세금을 없앨 순 없소. 그 수입에 의존하는 기관도 있어요.” “그래서 우선 확인만 하는 겁니다. 납세자가 돈을 냈다는 사실과 국가가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건 다른 문제예요.” 로웬은 물잔을 들고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무모한 징수관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세금을 줄일 얘기를 하니 더 낯선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계산했다. 지금 왕국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율이 아니다. 이미 걷기로 했고 법적으로 받을 자격도 있는 돈을 찾는 일이었다. 새 세금은 다음 달에 효과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주에 나라를 잃는다면 다음 달 자체가 없다. “임시 조사권을 주시면 회수 가능한 수입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얼마나 회수할 수 있다고 봅니까?” “원장을 봐야 알죠. 금액을 정해놓고 조사하면 숫자를 맞추고 싶어지거든요.” 루카스가 끄덕였다.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희 선배는 처음부터 목표를 정해서, 목표액이 안 나오면 영수증의 날짜를 바꿔 적었어요.”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로웬은 소년의 말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곳이 됐군. 우리 재무청이.” 나는 아직 이 왕국을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다만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는 알 것 같았다. 거짓 숫자를 만들도록 강요받는 사람들. 그리고 숫자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 둘을 같은 죄로 묶고 싶지 않았다. 상단에 적힌 숫자를 보고 나는 손끝이 차가워졌다. 채무 총액 48,700금화. 칠 일 뒤 만기 도래액 8,000금화. 연체 시 왕실 조폐권을 청동왕관 상단에 담보로 넘기는 조항. “조폐권이요?” “돈을 찍어낼 권리입니다. 저쪽이 조폐권을 가져가면 우리 화폐를 발행하는 대신 수수료를 징수할 수 있게 됩니다.” “왕실은 그걸 왜 담보로 잡혔죠?” 에리카는 내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종이의 오른쪽 구석을 손톱으로 눌렀다. 아주 작은 글씨가 있었다. ‘전임 재무대신의 보증.’ 그녀가 말했다. “삼 년 전 전쟁 비용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전쟁은 시작되기 전에 끝났지만요.” “어째서?” “왕이 바뀌었거든요. 전쟁 비용은 사라지지 않았고요.” 자료는 더 이상했다. 국고가 텅 비었는데 징수 예정액은 적지 않았다. 이번 분기에만 12,400금화. 그러나 실제 입금된 금액은 221금화였다. 장부상 세율도 과도하게 높지 않았다. 문제는 세금을 내야 할 자에게서 걷지 못하고, 내지 않아도 될 자에게서는 적은 돈까지 쥐어짠 데 있었다. “이건 세법 문제가 아니라 집행 문제네요.” “모두가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바뀐 게 없죠.” 에리카가 차갑게 답했다. 그녀는 나를 믿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열병을 앓다가 깨어난 낙하산 징수관이 드래곤에게 세금을 걷겠다고 했으니. 그때 문 앞의 소년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는 루카스입니다. 기록실 견습이에요. 혹시…… 국고가 없어지면 저희 봉급도 못 받나요?” “몇 달 밀렸는데?” “석 달이요.” 나는 에리카를 돌아보았다. “병사들도?” “두 달입니다. 서쪽 성벽 보수대는 넉 달이고요.” 국가 파산이란 단어가 갑자기 구체적인 얼굴을 얻었다. 열아홉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셔츠 소매 끝이 닳아 있었다. 그가 받지 못한 봉급은 왕의 식탁 위 장식 하나에도 못 미칠 것이다. “법전 가져와요. 그리고 체납자 명부 원본도.” 루카스가 뛸 듯이 움직였다. 거대한 책 두 권이 책상에 떨어지면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첫 장을 넘겼다. 그 순간이었다. 왼손 손등에 검은 잉크 같은 선이 나타났다. 세 갈래 선이 겹치더니 손목 안쪽에 작은 저울 무늬를 만들었다. 놀라 손을 뒤집었을 때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왕국 재정 기록에 접근했습니다.] [권한 확인: 신임 왕실 세금 징수관 강태준] [고유 권능 ‘진실의 장부’가 개방됩니다.] 나는 눈을 비볐다. 글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눈앞에만 보이는 듯했다. 에리카는 여전히 낡은 법전의 책갈피를 찾고 있었다. [장부는 재산의 실소유 관계와 기록된 거래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장부의 판단은 법적 증거가 아닙니다. 실제 징수에는 왕국 법률과 확인 가능한 증빙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정밀 열람 세 번. 대가: 열람 대상에 관한 기억 한 조각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좋은 능력치고는 약관이 무서웠다. 기억이 흐려진다고? 나는 곧장 손목을 가렸다. 지금 필요한 건 초능력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였다. 그런데 눈앞에 작은 선택 문구가 떠올랐다. [열람 가능한 공적 대상: 왕실 국고] [열람하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이다 속으로 대답했다. ‘열람.’ 바로 다음 순간, 방 안의 소리가 먼 곳으로 물러났다. 책상 위에 얇은 선들이 펼쳐졌다. 금화가 들어오고 나간 경로였다. 국고로 들어와야 할 돈 중 일부가 성 밖의 창고로 꺾였고, 또 일부는 재무청 내부를 통과하면서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그리고 가장 굵은 선 하나. [지난 삼십 일간 국고 미입금액: 1,836금화] [확인 가능한 불일치: 북문 통행세 수입 96금화] [정밀 열람 1회 사용. 오늘 남은 횟수: 2회] 작은 단서였다. 그러나 시작하기엔 충분했다. 나는 에리카에게 북문 통행세 원장을 요청했다. “원장은 작년부터 북문 세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왕실에 올라오는 건 월말 집계표뿐입니다.” “그럼 집계표는?” 그녀가 꺼낸 종이에는 지난달 수입이 0이라고 적혀 있었다. “북문을 지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까?” “전쟁 뒤로 통행량이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북문 근처 시장은요?” “아침마다 열립니다.” 나는 집계표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 “시장이 열리는데 통행세가 0이라는 건 두 가지입니다. 법에 따라 전부 면세였거나, 누군가 기록에서 돈을 없앤 거죠.” 에리카의 눈빛이 달라졌다.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처음으로 내 말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얼굴이었다. 로웬이 다가왔다. “북문 세관장은 전임 재무대신이 임명한 사람입니다. 조사하려면 이유가 필요합니다.” “있잖습니까.” 나는 장부를 톡 쳤다. “기록이 비었습니다.” “그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누구나 아는데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일이겠죠.” 로웬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오른손에서 낡은 반지를 뺐다. 그 안쪽에 왕실 재무청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권한은 여기까지입니다. 임시 현장 조사권. 무력을 동원할 수 없고, 재산을 압류하려면 반드시 적법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나는 반지를 받아 들었다. 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세금을 걷으러 간다면서 무력이 필요 없다고요?” “법을 지키라고 국가가 있는 거죠. 법을 어기면서 걷으면 강도와 다를 게 없습니다.” 에리카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곳에서는 너무 낯선 답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기록실을 나서려 했다. 루카스가 서둘러 내 뒤를 따라붙었다. 소년이 손에 든 낡은 공책이 눈에 들어왔다. 첫 장에는 지난 석 달 동안 받지 못한 봉급과 집에서 사야 할 약값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석 달 치 봉급 12은화. 어머니 약값 7은화.’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나라를 살린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다. 누가 내지 않은 세금 때문에 누가 굶고 있는지. 그 연결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현관으로 나서자 저녁빛이 왕궁의 금박 지붕을 비췄다. 국고에 열일곱 닢밖에 없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보였다. 그때 장부가 다시 반짝였다. [북문 통행세 불일치 관련자: 4명] [그중 한 명은 현재 당신 뒤에 있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내 뒤에는 에리카와 루카스, 그리고 임시 조사권을 준 로웬 재무대신이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첫날부터 일이 재미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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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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