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토요일 오전, 내가 먼저 연락한 사람은 오선영이 아니었다.
박혜림에게 근황을 물었다. 그녀는 새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나흘째 이력서를 수정하고 있었다. 전산 기록 하나가 잘못됐다는 설명을 들은 회사가 지원서를 다시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채용된 자리를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오면 오고, 안 오면 어쩔 수 없죠.”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운 척했다.
“그런데 어제 상담비 영수증을 모으다가 화가 났어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일을 쉬어야 하나 싶어서요.”
나는 ‘곧 해결될 겁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돈과 계약은 사건의 끝에 자동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요청했던 정정 통지의 수신 확인 목록을 함께 점검했다. 한 곳은 회신이 없었다. 혜림은 그곳에 다시 요청서를 내겠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선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29분 요청서가 만들어진 장소를 관리하던 업체가 근무 인수인계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업무지원 공동 접수 구역에는 정규 직원 두 명과 외주 업무지원 인력 한 명이 있었다. 각자 자리를 비운 시간도 있었다.
“실명을 확인했습니까?”
“확인했어. 하지만 지금은 알려줄 수 없어.”
“그중 한 명이 요청서를 작성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까?”
“작업 표준일지를 보면 한 사람이 신청번호를 받아 적었어. 그렇다고 화면을 직접 조작했다는 증거는 없어.”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새로운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을 중심에 놓고 모든 이야기를 다시 쓰는 버릇을 경계해야 했다.
오후 세 시, 그 업무지원 인력 중 한 명이 자발적으로 경찰과 면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여성의 이름은 권다정. 당시 서른셋, 문서 접수와 요청번호 발급을 돕는 파견 직원이었다. 경찰이 공개 가능한 범위로 전달한 진술에 따르면, 권다정은 그날 한 사람이 가져온 신청서를 대신 등록했을 뿐 검토 내용까지 판단할 권한이 없었다.
그녀는 요청번호를 발급할 때마다 종이 일지에 시각을 적었다. 그날 9시 29분 옆에는 두 글자가 있었다. ‘보류.’
“그럼 경고 하향 요청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또 너무 빨라.” 선영이 말했다. “보류 처리가 필요한 문서를 뜻했을 수도 있고, 보류를 해제하라는 요청이었을 수도 있잖아.”
“그렇죠.”
나는 메모했다. ‘보류’는 방향이 아니다. 상태이거나 처리 대상의 이름일 수 있다.
권다정은 하나 더 진술했다. 그날 접수함 앞에서 누군가 “이거 늦어지면 월말 마감이 통째로 밀린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회색 셔츠에 사원증을 달고 있었지만 같은 차림의 직원이 많았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면 쓸모없는 기억 아닙니까?” 내가 묻자 선영이 답했다.
“그 발언이 실제 있었는지 검증하면 작업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어. 범인을 찾는 이름표는 아니지만.”
해가 기울 무렵 권다정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나는 처음엔 면담을 거절하려 했다. 경찰이 이미 진술을 받았고, 내가 임의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면 앞선 진술의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었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저 상담받고 싶은 게 있어요. 제 이름으로 무슨 일이 돌아다닌다고 해서요.”
그녀의 휴대전화에는 익명 게시물이 있었다. ‘9시 29분의 여직원’이라는 표현 아래 도난 카드 사건, 출력 취소, 경고 하향이 한 사람의 행동인 것처럼 이어졌다. 이름은 적히지 않았지만 오래된 직장 동료들은 그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누가 제 사진을 알고 있을까요?”
나는 게시물에 쓰인 사진의 출처부터 확인했다. 사내 체육대회 단체사진을 잘라놓은 것이었다. 공개적으로 올라왔던 사진이었고, 작성자가 그녀와 직접 아는 사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저는 부탁받은 번호만 적었어요.”
“그렇다고 확정해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찰에 이미 진술하셨다면 그 내용과 다른 기억이 떠오를 때도 정식으로 정정하실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제가 무슨 말만 하면 다 변명이라고 해요.”
“제게도 그랬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 이름이 적힌 최초의 사건기록을 떠올렸다. 참고인으로 찍힌 한 줄이 나를 움직였고, 나를 통해 경찰이 움직였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 실제 사건의 동선이 바뀌었다.
권다정은 나가기 전에 물었다.
“혹시 회사에서 저한테 구상금 같은 걸 청구할 수도 있나요?”
“계약과 사실관계를 봐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 법적 책임이 확정됐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법률 상담을 받으실 수 있게 안내하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일이 얼마나 간편한지 느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게 사건의 무게를 한꺼번에 지우면 이야기는 쉬워진다.
권다정이 돌아간 뒤 나는 그녀의 이름이 붙은 게시물을 다시 확인했다. 몇몇 사람은 댓글에서 그녀를 ‘범인의 조수’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근거는 그녀가 접수번호를 적었다는 것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그날 입고 있던 회색 카디건을 기억한다고 했다. 오래된 공개 사진 속 옷과 당일 복장을 연결할 아무 자료도 없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목격담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한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게시물 중 특정 가능한 정보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당사자에게 알릴 때 조심할게. 조회수를 늘리려고 링크를 다시 공개하지는 않을 거야.”
유리는 오래된 사진의 원래 게시 날짜를 찾아냈다. 체육대회는 2025년 5월이었다. 8월 25일의 근무 복장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었다. 몇 달 전 사진이 그날의 알리바이를 뒤집는 증거처럼 쓰이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 권다정이 다시 전화했다. 동료에게서 ‘네가 그날 접수를 받아준 사람 맞지 않느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맞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동료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다.
“제가 안 한 일은 안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게 신청을 맡긴 사람 이름도 기억이 안 나요.”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셔야 합니다.”
“그럼 계속 의심받겠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추측으로 지목하면 그 사람도 같은 일을 겪게 됩니다.”
권다정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내놓도록 압박받고 있음을 느꼈다.
오선영에게서는 당시 서류를 전달했던 사람이 접수표의 일부분을 가리킨 채 건넸다는 진술이 추가로 들어왔다. ‘당사자 정보가 포함돼 있어 번호만 적어달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개인정보 보호 조치였는지, 신청 내용을 숨기려는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접수 업무에서 내용을 가리고 번호만 처리하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숨겼다’라는 말을 수첩에 쓰려다 멈췄다. 내가 이렇게 쉽게 의도를 붙인다면 익명 게시물을 쓰는 사람과 달라질 게 없었다.
저녁에 권다정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는 짧았다. ‘제 기록은 지우지 말아주세요. 나중에 제가 안 했다는 것도 밝혀질 수 있게요.’ 나는 그 문장을 선영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허락을 구했다. 그녀는 동의했다. 그날부터 권다정은 단순한 새 용의자가 아니라 자기 기록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증인이 됐다.
그날 밤 선영이 요청서의 원본 접수 일지를 비교한 결과를 전했다. 권다정이 적었다는 ‘보류’ 바로 뒤에는 작은 괄호가 있었다. 괄호 안에는 ‘확인 대기’라고 쓰여 있었다. 반면 익명 파일에는 그 괄호가 빠져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실제로 화가 났다. 괄호 하나가 지워지자 어떤 사람은 ‘보류 해제 요청을 꾸민 직원’이 됐다. 한 줄을 줄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한 줄을 되살리는 일부터 해야 했다.
제1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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