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회사 서버실 시계는 오후 다섯 시 오십칠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대피 시험표를 다시 확인하는 동안 실제 시계는 십삼 분 흘렀는데, B 안쪽 시계는 고작 일 초 움직였다.
"시간이 멈춰 있는 건가요?" 민재가 물었다.
"아니면 안쪽 시계가 고장 난 거겠지." 나는 손목시계를 들어 보였다. "시계 고장과 시간 여행은 비용 차이가 커. 회계팀에서 좋아하는 설명부터 검증하자."
서윤이 구조대 통신 장비를 통해 안쪽 응답자에게 시간을 물었다.
"다섯 시 오십칠 분이요. 어제였는지 오늘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불빛이 계속 바뀌거든요."
어제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을 과거에 가둔다. 오늘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을 지운다. 우리는 '현재 응답 있음'만 기록하고 날짜는 검증 대기 상태로 남겼다.
실험에는 사람이 아니라 빈 카트를 사용했다. 현장 구조대와 설비 담당자가 위험을 평가하고, 투입할 수 있는 틈새에 고정된 표식 하나를 보냈다. 흰 천 위에 물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표식이었다. 건네기 전과 후를 서로 다른 카메라에 기록하고, 실물 보조 전달구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추적했다.
카트의 바퀴가 틈새를 지난 순간, B 안쪽 화면에서는 카트가 이미 저쪽 벽에 닿아 있었다. 마치 도착 장면을 먼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카트를 잡고 있던 구조대원의 손에는 아직 바퀴 진동이 남아 있었다. 나는 영상 장치의 버퍼 지연을 의심했다. 늦게 보여야 하는 화면이 먼저 보인다는 건 이상하지만, 동기화 오류라면 가능했다.
서윤은 표식이 이동한 실제 경로를 열화상으로 확인했다. 카트는 처음 우리 쪽 바닥에 있었고, 틈새 안에서 잠깐 사라졌다가 원래 예상했던 자리의 반대편에 나타났다. 화면 오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측이었다.
"이건 '내일로 간다'가 아니네요." 서윤이 말했다. "현재 위치를 같은 시각의 다른 경로로 바꿔서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이름 붙이기는 조심하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일 출근부 하나 때문에 지금 우리가 여기 있잖아요."
우리는 시간 표시가 거꾸로 흐르는 장치부터 분리했다. 민재는 노트북 두 대에 동일한 시각을 띄웠고, 정라희는 인터넷 연결 없이 움직이는 기계식 초시계를 가져왔다. 세 장비가 현재 시각을 다르게 보여 줘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장비가 실제 사건 순서와 일치하는지였다.
서윤이 바깥에서 작은 전등을 한 번 켰다 껐다. 육안으로는 한 번뿐이었지만 B 카메라에는 세 번의 점멸이 나타났다. 정라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녹화 장치의 화면 재생 버퍼에는 과거 점멸 영상이 겹쳐져 있었다. 단순 시간 여행이라는 설명보다 마지막 장면이 반복 재생되는 현상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순간 문턱의 바람 방향도 바뀌었으므로 영상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지금'은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요." 민재가 말했다.
"실제 사람한테는 그렇지. 장비 화면은 서로 다른 사건을 지금이라고 부를 수 있어." 내가 대답했다.
B 안쪽에도 작은 신호등이 보였다. 내가 설명하자 상대가 말했다. "노란 불이 켜졌어요. 지금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노란 불은 안내 장치의 상태만 뜻합니다. 실제 이동은 담당 구조대가 안전을 확인한 뒤에요."
우리는 노란 불 옆에 '실제 통행 허가 표시 아님'이라는 물리적 표식을 붙였다. 자동 시스템이 그 문구를 삭제할 가능성도 있어, 사람이 볼 수 있는 종이 안내를 별도 보존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는 세계에서, 적어도 누군가에게 위험한 지시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은 지킬 수 있었다.
식판 화면에서는 또 한 번 불이 세 번 깜빡였다. 이번에는 민재가 먼저 말했다. "이건 아직 사람이 움직인 증거가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서지완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입사할 예정인 그가 보안 대기실에 앉아 있다는 보고였다. 그는 출근하지도 않았는데 출입증이 '근무 종료'로 표시된다고 했다.
"그 기록을 지워 달라는 게 아닙니다." 지완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 아직 여기 있거든요. 실제로는 나간 적 없다고 남겨 주세요."
그 말은 B 안쪽 사람이 한 부탁과 닮아 있었다. 나는 지완에게 출근 예정과 실제 출입을 분리해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선택하지 않은 업무를 배정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지완이 조용히 웃었다.
"오늘이 계속 내일인 느낌이었거든요. 이제 좀 낫네요."
서윤은 B 바깥의 점검 패널에서 두 종류의 경로를 발견했다. 하나는 현장 사람이 직접 확인한 실물 경로, 다른 하나는 시험 때 기록을 바탕으로 되살리는 예비 경로였다. 두 경로가 겹치는 지점에는 후대에 추가된 녹색 스위치가 있었다.
[귀가 확인 실패 시 보조 경로 자동 재생]
원래는 위험 상황에서 구조대를 안내하기 위한 기능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시험자가 귀가하지 못했다고 찍힌 기록을 끝없이 재생하면, 시스템은 매번 사람이 아직 지나가야 하는 길을 만든다. 복제된 발소리와 출입증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그제야 감이 왔다.
"스위치만 끄면 되지 않나요?" 민재가 물었다.
"안쪽 대피 안내까지 같이 끊기면?" 서윤이 곧바로 반문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구형 안전 설비는 끄는 것이 가장 쉬웠다.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쉬운 길이 정답일 리 없었다. 배 소장이 외부 보조 전원과 수동 표식 경로를 제안했다. 사람이 직접 확인한 통로만 남기고 재생 경로를 별도 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격리하는 방식이었다.
작업이 시작되자 바닥의 문이 갑자기 한 뼘 작아졌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길을 없애는 건가요?"
"아닙니다. 가짜 길이 사람을 대신하지 않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불안하시면 중단하겠습니다."
"제가 있는 쪽은 괜찮아요. 다만 발자국이 없어지면 길을 찾을 수 없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손을 들었다. 우리에게는 지나간 경로를 재생하는 것이 위험해도, 안쪽 사람에게는 그 경로가 유일한 방향 감각일 수 있었다. 서윤은 화면 분리를 잠시 멈추고 경고 표식을 새로 만들었다. 현재 확인된 길과 과거 재생된 길을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하되, 안쪽에는 둘 다 보이게 했다.
"어느 쪽으로 가시고 싶은지는 나중에 직접 정하셔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저는 밖이요." 상대가 대답했다. "근데 밖이라는 말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바닥에 앉아 마이크를 가까이 댔다. "여긴 도원솔루션 0층 근처입니다. 오늘 날짜는 2026년 11월 1일,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었어요. 밖에는 날이 밝아요. 당신이 원하면 안전을 확인한 뒤 이쪽으로 나오실 수 있게 돕겠습니다."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면 제가 본 열일곱 시 오십칠 분은…"
"당신이 경험한 시간으로 남겨 둡시다. 그게 당신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순간 모니터에 두 개의 길이 나란히 표시됐다. 하나는 현재 구조대가 확인한 통로, 하나는 과거 시험의 재생 경로. 두 길은 중간에서 갈라졌고, 재생 경로는 옛 식당 쪽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아직 사용되지 않은 도시락 영수증이 한 장 더 떠올랐다.
[원본 시험자에게 전달하지 못한 식사 1]
[전달 예정 시각: 17:56]
우리의 사고 기록보다 1분 앞선 시각이었다.
나는 서윤에게 화면을 가리켰다. "17:57이 첫 사고가 아닐 수도 있어요. 누군가 17:56에 이미 안쪽으로 음식을 보내려고 했어요."
그리고 식당 벽에 새로운 문이 생겼다. 바로 그 문 손잡이에서, 누군가 우리가 모르는 방향으로 노크했다.
제7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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