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나갔어요.”
이 회사에서라면 흔한 일이다. 회의에는 누가 참석하지 않았는데 참석자로 찍히고, 야근은 누가 했는데 승인자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이번 목소리는 정말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서버실 B의 환기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잠에서 깬 사람처럼 쉰 목소리. 동시에 녹음기처럼 일정한 숨소리.
“우선 안쪽의 실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문서윤이 말했다. “목소리만으로 출입을 승인하지 말고요.”
김하린이 공공 구조 통신망으로 B 하부 점검구 위치를 신고했다. 소방 당국과 시설 책임자가 실물 구조 계획을 검토하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안쪽에 위험한 온도·가스·전기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공구를 들고 열쇠공 흉내를 낼 유혹을 견뎠다. 이미 퇴사까지 했는데 징계위원회 출석할 생각은 없었다.
하부 카메라에 비친 패널이 움직였다. 누군가 화면 밖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듯했다. 배만식 소장은 카메라 각도를 낮췄다. 작은 금속 방 안에는 오래된 책상과 구형 모니터, 의자가 한 개 있었다.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바닥에는 커피잔이 있었다. 잔에는 물이 절반쯤 남아 있었다. 표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안에 바람이 부는 건가요?” 민재가 물었다.
“영상 압축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 나는 말했다. “다른 각도로도 봐야지.”
다른 카메라로 확인하자 잔 안의 물은 실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배 소장은 공조 압력 변화와 연결되는지 측정했다. 압력은 일정했다. 그렇다면 물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안에 있다는 말이었다.
내 무전기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밖에 누가 있어요?”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무전기는 소방 현장 채널을 쓰고 있었고 내부 전산과 연결되지 않았다. 소장이 즉시 사용 주파수와 전파 중계기를 점검했다. 송신 측을 식별할 수 없는 음성이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괴이 현상을 '컴퓨터 장난'이라고 부르려던 내 생각이 조금 흔들렸다.
“안에 계신 분, 다친 곳이 있습니까?” 서윤이 물었다.
“저는 다치지 않았어요. 다칠 몸이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여긴 제가 나가야 하는 방인데, 나가면 제 이름이 없어져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자신을 사람이라고 확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벽을 한 대 칠 뻔했다. 괴물도 차라리 월요일 오후의 상사처럼 명확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시계가 오십칠 분에 멈췄어요. 한 명 나갔다고 표시됐고, 한 명은 아직 여기 있어야 했어요. 둘이 같은 이름이라고 해서... 문을 안 열어 줬어요.”
목소리가 끊겼다. 이번에는 종이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옛 기계 기록기의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와 같았다.
나는 서류실에서 받은 LEAVE-01 명부를 다시 펼쳤다. 대피 원본을 남기기 위해 사람 대신 시험용 표식을 보냈던 과정이 읽혔다. 실제 물리적인 사람이 나갔는지 시험용 기록이 나갔는지는 구분돼야 했다. 하지만 최근 장부는 [LEAVE-01 퇴실 완료] 하나만 남겨 놓았다. 이 중복이 처음부터 누군가를 가둔 것인지, 오늘 공간 중첩 뒤에 새로 발생한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바닥 격자 밖으로 서늘한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경보기가 작게 울렸다. 안쪽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고 있었다. 배 소장이 표정을 굳혔다.
“서버실 냉각 장치를 차단했는데 저기는 계속 내려갑니다. 독립 냉매 구역이 있는 모양입니다. 실제 사람이 있다면 위험할 수 있어요.”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먼저 옆 건물과 겹치는 공간이 있는지 살피고, 외부 배관의 실제 냉매 흐름을 확인했다. 계기판에서 이상 압력을 찾아낸 뒤 서쪽의 낡은 밸브를 잠그자 온도가 더는 내려가지 않았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따뜻해졌어요.”
“다행이에요.” 민재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안에 계세요?”
“모르겠어요. 문이 있던 곳으로 오면 빈자리라고 적혀 있어요.”
소방대원이 안전 확보 후 점검 카메라를 깊숙이 넣었다. 의자 뒤 벽에 손으로 쓴 표시가 있었다. [시험자 자리]. 그 앞에 둥글게 그려진 두 사람의 형상이 겹쳐 있었다. 한쪽은 실선, 다른 쪽은 점선이었다. 실선 아래에는 [현장], 점선 아래에는 [기록]. 그 사이를 붉은 화살표가 이어 주고 있었다.
“대역이라는 게 원래 여기서 시작된 거군요.” 민재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그림으로는 그렇지.” 나는 말했다. “실제 지금의 존재들이 이 도면 때문에 나타난 건 아직 몰라.”
구조대는 물리적으로 열리는 외부 유지보수 문을 찾아냈다. 하지만 문은 벽의 반대편에 있었다. 여기서 보이던 격자에 연결된 곳이 아니라, 아예 원래 도원 설계도에는 없는 방향이었다.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엘리베이터 승강로로 빠질 수 있었다. 안전 로프를 설치하고 사람의 위치를 실물 계측기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때 모니터에 붉은 경고가 떴다. [퇴출 완료를 확인한 기록의 재입실은 금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나가서 안 들어왔다는 게 아니라 기록이 나갔다고 했잖아.”
서윤은 안전 담당자에게 말을 전했다. 구조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전산 출입 장부가 아니라 실제 공간을 확인해야 한다고. 우리 말이 끝나자 붉은 경고 아래 작게 새로운 문장이 생겼다.
[퇴실 기록을 취소하면 현재 인원 318명 재계산]
그것이 진짜 협박이었다. 이 방에 있는 누군가를 구하려면 도원 전체 직원의 생존 기록을 다시 정산하겠다는 뜻이었다. 내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사람을 왜 인원 수와 흥정하지?” 민재가 화를 냈다.
“그래서 흥정하지 않는 거야.” 나는 별도 수동 구조 기록지에 현재 상황을 적었다. “구조 대상이 있으면 구해야 해. 누구를 자동으로 퇴사시키는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 말고.”
구조대는 먼저 점검 통로 주변의 공기를 다시 확인했다. 한쪽에서는 소형 환기팬이 도는데 반대편에서는 팬을 돌린 전원이 보이지 않았다. 배 소장은 현장에 있는 두 종류의 시계를 꺼냈다. 하나는 전자 시계, 하나는 태엽식이었다. 전자 시계는 17:57을 가리키다가 꺼졌고 태엽식은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그 광경을 보며 민재는 영화의 시간 정지 장면 같다고 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시간이 멈춘다면 우리가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도 멈춰야 할 것이다. 그런데 좁은 방에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누군가의 감정이 실제라면 그 사람이 어느 장치에서 생겼느냐만으로 뒤로 미룰 수 없다. 서윤은 밖의 구조대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안전한 질문과 아직 할 수 없는 질문을 분명히 전달했다. '문이 어디에 있는가'는 물을 수 있지만, '당신이 첫 퇴사자인가'는 정답을 미리 강요하는 질문이었다.
그때 작은 책상의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에는 내 사진이 있었다. 입사 당시, 지금보다 앞머리가 훨씬 풍성했던 시절의 나였다. 사진 밑에 적힌 직함은 내가 아는 것과 달랐다.
[차도윤 — 최초 퇴출자 임시 대역 후보]
“아, 이 회사는 제 얼굴을 정말 좋아하네요.”
목소리가 떨리며 물었다. “당신도 제 이름을 가져가러 왔나요?”
나는 수화기를 가까이 대고 말했다.
“아뇨. 제 이름도 남이 쓰지 못하게 막으러 왔습니다.”
그 대답 뒤에 아주 작은 웃음이 들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책상에 놓인 커피잔의 물이 멈췄다.
제6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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