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 문을 먼저 열지 마.”
나는 휴대전화 화면과 어둠 속 계단을 번갈아 봤다. 발신인은 ‘내일의 차도윤’. 내일까지 회사에 다닐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받기에는 지나치게 불길한 이름이었다.
“저 메일, 진짜 미래에서 온 겁니까?” 배만식 소장이 물었다.
“발신 표시만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럼 미래에 퇴사 못 한 거예요?”
“소장님, 오늘 가장 잔인한 말씀입니다.”
계단 아래에는 회색 작업복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켜지도 않았는데 발밑의 문턱만 선명하게 보였다. 금속판 위로 두 개의 문구가 겹쳤다.
[독립 출구 18]
[외부 통행 점검 중]
문서윤이 휴대용 조도계로 통로를 비췄다. 우리가 보던 회색 문은 실제로는 지하 집하장 방화문이었다. 그런데 문 위의 표지는 건물 안쪽에서는 열여덟 번째 출구, 바깥에서 찍은 사진에는 ‘창고 2’로 나왔다.
“표지부터 믿지 말죠.” 서윤이 말했다. “어디로 연결되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문 열지 않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경고도 그 뜻이었습니다.”
“당신이 메일 보냈습니까?”
“저는 메일 계정이 없습니다.”
“요즘은 없는 게 벼슬이군요. 저도 퇴사했는데 계정이 세 개나 살아 있거든요.”
그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신분증을 요청했다. 남자는 허리춤에서 낡은 출입패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회수 외 경로 점검 / 임시 출입]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름 칸은 인쇄되지 않았다. 그가 가진 것은 계단을 살펴볼 허가일 뿐, 문 안쪽 사람을 이동시키거나 도윤을 지휘할 권한은 아니었다.
“이름도 없고 소속도 없네요.”
“제 이름을 말하면 장부가 저를 새 관리자 자리에 앉힙니다.”
“그럼 지금은 뭐라고 부르면 되죠?”
“점검인이라고 부르십시오.”
배 소장이 속삭였다. “요즘은 사원증 대신 별명이 돌아다니네.”
나는 문고리와 벽을 살폈다. 손잡이 아래로 오래된 노란 선이 있었고, 노란 선 밖에는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신발자국보다 넓고 일정한 간격. 구급용 들것이나 손수레가 지나갈 만한 흔적이었다. 18번 문은 게임의 비밀 보상문이라기보다 누군가 사용한 실제 통행로에 가까웠다.
그런데 문 안쪽에서 두드림이 들렸다.
똑. 똑. 세 번.
서윤이 즉시 손바닥을 들었다. “응답하기 전에 외부 당직과 연결합니다.”
우리는 1758 회선으로 현재 위치를 익명 위험 신고했다. ‘공동 운영 대상 외부의 물리 방화문, 안쪽 응답 세 차례, 내부 재실 인원 미확인’. 직책이나 직원 번호는 말하지 않았다. 장부가 그 문장을 사람의 승낙으로 뒤바꿀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몇 초 뒤 집하장 설비실에서 무전이 왔다. “문 안쪽은 현재 비워 둔 보급 대기실입니다. 오늘 인원 배정은 없습니다.”
“직접 확인한 겁니까?”
“오후 다섯 시 이전 점검 기록입니다.”
현재 시각은 자정을 넘었다. 일곱 시간 전의 안전 기록은 안전의 증거가 아니라 그날의 추억이었다.
배 소장은 방화문에 귀를 댔다. 안쪽의 두드림이 다시 들리더니 작은 목소리가 따라왔다.
“불 켜 주세요.”
어린 목소리는 아니었다. 숨이 가쁘고 떨리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창고 계단 중간참’이라 말했고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있다고 했다. 출구에서 누구에게도 고용되거나 파견되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말을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구조부터 합니다. 서류는 나중에.” 나는 말했다.
점검인은 문 위의 붉은 유리를 가리켰다. “저 유리를 깨면 자동 출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의학이나 구조 지휘권은 없다는 거죠?”
“네.”
서윤은 직접 연락한 시설 관리자의 승인 아래 수동 해제장치를 확인했다. 배 소장은 문틀의 전선과 실제 쇠사슬이 별개라는 것을 발견했다. 18이라는 빛나는 숫자가 우리가 열어야 할 문고리와 무관하다는 뜻이었다. 실물 문은 제한적으로 조금 열 수 있었다.
우리는 틈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여자는 작업복 차림으로 계단에 주저앉아 있었다. 옆에는 납작한 금속 상자가 놓여 있었고 상자에는 ‘전산 미등록 물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정라희. 집하장 야간 설비 정비 업체 소속으로, 정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계단 위치가 바뀌었다고 했다.
“갑자기 계단이 다섯 개 늘었어요. 제가 지나온 곳이 회사 전산실이라고 떠서 다시 돌아왔고요.”
“제가 안내할게요. 똑같이 생긴 계단이지만 아래쪽은 배수 펌프실입니다.” 서윤이 말했다.
라희는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알려 주었다. 의료 대응을 요청한 뒤 그녀를 들것에 옮기는 동안, 문 위의 숫자가 끈적한 액체처럼 늘어났다.
[신규 이동자 확인]
[외부 복구 인력 1인 확보]
“확보 아니거든요.” 라희가 먼저 말했다. “저는 제 회사로 돌아가겠다고도 안 했어요.”
숫자가 잠깐 흔들렸다. 라희가 자신의 의사를 직접 말하자, 기계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장면은 묘하게 속이 시원했다.
정라희가 다친 다리를 움직이기 전에 한 가지 더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맡은 금속 상자가 사라지면 업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상자가 얼마나 비싼지는 모르지만 지금 구조를 미루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자의 봉인은 그녀와 시설 관리자가 확인했고, 이동할 수 없는 물품으로 별도 보관 위치를 기록했다. 그녀가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는 화면이 떠올랐으나, 그 서명이 사람의 이동 동의로 확대되지 않게 수기로 작성했다.
“저는 장비 점검만 하러 왔어요. 건물을 바꾸거나 다른 회사에 입사하러 온 게 아니라고요.” 라희가 말했다.
“그걸 분명히 기록하겠습니다.” 서윤이 대답했다.
배 소장은 들것을 내려놓을 바닥에 젖은 부분이 없는지 손바닥으로 눌러 확인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은 카펫처럼 보이던 곳에서 물기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카메라 화면으로는 마른 길이었지만 실제 바닥은 미끄러웠다. 우리는 두 사람의 팔과 손전등으로 안전한 경계를 표시했다. 내가 몇 초 일찍 문을 확 열었다면 라희를 구조하기는커녕 함께 넘어졌을 것이다.
“결국 출구 이름이 사람을 구해 주는 건 아니네요.” 내가 말했다.
“문턱 높이랑 바닥 상태가 더 중요하죠.” 서윤은 대답했다.
그 말은 내가 퇴사 이후 배운 첫 번째 새로운 업무 규칙이 됐다. 서버 로그가 정상이라는 말보다, 실제 바닥에 서 있는 사람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가 먼저였다.
우리가 그녀를 안전한 바깥 계단까지 옮기자 18번 숫자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문을 닫으려는 순간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퇴로 점검 완료]
[외부 통로를 통한 원본 복원 가능]
“원본 복원?” 서윤이 읽었다. “누구의 원본이죠?”
그 순간 내 손전화가 다시 울렸다. 미래의 내 이름을 단 메일이었다. 이번에는 한 줄이 더 보였다.
[18번 문을 먼저 열지 마. 그 문은 출구이기도 하지만, 열일곱 건물의 모든 출근 기록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입구이기도 하다.]
나는 계단을 바라봤다. 문이 사람을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더 무서운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를 겨냥한 회사의 규칙이 회사 밖으로 나오는 길.
서윤이 물었다. “지금 무엇부터 할까요?”
“문을 부수는 것보다 손잡이가 무엇과 연결됐는지부터요.”
라희가 멀어지는 들것 위에서 손을 들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금속 상자를 맡기지 않았다. 대신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상자 표지에는 정비 업체의 낡은 검사 번호가 있었다.
**18-0. 독립 경계 시험용.**
숫자 18 아래의 작은 글씨를 읽는 순간, 점검인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그 번호는,” 그가 낮게 말했다. “이미 폐기된 시험 번호여야 하는데요.”
제3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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