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다음 날에 무엇을 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보통 여행이나 휴식이라고 답한다. 나는 실제로 쉬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 질문을 오래 고민했다. 도원솔루션의 0층이 사라지던 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였다. 면이 익는 삼 분 동안 아무 알림도 오지 않았다. 그 조용함이 이상해서 일부러 휴대전화를 뒤집어 놨다. 그리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퇴사하면 라면 맛이 달라지나?" 나는 혼잣말을 했다. 달라진 건 라면이 아니라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의 나는 세 분 안에 장애 연락이 올까 봐 젓가락을 내려놓을 준비를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회사가 안전하냐고 묻는 전화를 받을 수는 있어도,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누군가의 비상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범하게 늦잠을 잤다. 창밖에서 쓰레기차가 지나갔고, 옆집에서 계란 프라이 냄새가 났다. 방 천장은 온전히 우리 집 천장이었다. 병원과 도원의 회의실이 겹치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집 천장이 자기 집에 붙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사람이 나뿐이라면, 조금 불공평한 경험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휴대전화에는 문서윤의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현장 경보 정상. 교대 완료. 오늘은 쉬세요.` 나는 답장을 적었다. `확인했습니다. 저도 쉬겠습니다.` 나란히 놓인 두 문장은 간단했지만, 수많은 건물과 사람을 억지로 연결했던 시스템이 끝내 이해하지 못한 차이를 보여 줬다. 시스템은 일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을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제 사람이 바뀌어도 안전한 길이 남게 만들었다.
정오쯤 나는 도원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봉투를 열었다. 회사의 공식 퇴사 확인서와 미지급 급여 정산 예정 내역이었다. 모든 금액이 다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따로 검토하겠다는 설명도 있었다. 나는 그 부분에 표시만 해 두었다. 돈을 받아야 하는 일과 다시 직원이 되는 일은 별개였다. 이 명백한 사실을 설명하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니 웃음이 나왔다.
그날 오후 나는 강변의 공공 대기소를 찾았다. 특별한 비상사태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산책을 하다가 그쪽으로 걷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길에는 여전히 공사 안내판이 있었고, 일부 오래된 시설은 안전 검사가 끝나지 않아 통제 중이었다. 그러나 길 한편에는 새로 설치한 의자와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지붕이 있었다. 도원 0층에 나타났던 의자와는 달리 이 의자는 진짜 현장 시설팀이 설치한 것이었다.
하진이 지붕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오는 것을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평온하게 책을 읽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섦을 없애기 위해 그를 사라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책을 덮고 물었다. "퇴사는 잘됐어요?"
"네. 이번에는 정말요."
"축하합니다. 저도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진은 강변 아래쪽 서점으로 향했고, 나는 공공 안내판을 살폈다. 누구나 위험을 신고할 수 있다는 안내와 시설 담당자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019-00`은 더 이상 임대 면적이나 출근 구역으로 표시되지 않았다. 원래의 빈 기준점은 안전 검사 기록과 함께 별도 보존됐다. 누군가 상업적 용도로 다시 쓰려면 공공 심의와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는 문구도 추가됐다.
한 남자가 안내판 앞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돌려 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여기서 강변 산책로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두 개의 실제 표지판을 확인하고 안전한 방향을 알려 줬다. 남자는 고맙다고 말하고 걸어갔다. 내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게 좋았다. 내가 어떤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며칠 전 어떤 사건에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은 길을 안내할 수 있었다.
공공 안내소에서는 장혜원과 김하린이 최종 자료 보존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방문자로만 잠깐 들렀다. 장혜원은 원본 019의 설계 자료와 사고 뒤 수정한 절차를 서로 다른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한쪽은 과거의 실패를 증명하는 기록이고, 다른 한쪽은 지금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두 자료가 한 번 더 합쳐지지 않도록 확인 표시가 붙어 있었다.
"모든 비밀이 밝혀진 건 아니죠?"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공간 중첩의 물리적 성질과 대역이 지속되는 조건은 연구해야 해요. 책임 조사도 아직 남았고요." 김하린이 대답했다. "그래도 지금 사람들을 위험한 공간에 보내지 않고, 이름 없이도 경고를 받을 수 있는 체계는 마련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안도했다. 우리가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 지킬 수 있는 사람까지 기다리게 할 필요는 없었다. 하림의 과거 이름이 모두 밝혀지지 않아도 치료는 계속됐다. 하진의 존재 원리가 밝혀지지 않아도 그는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아이가 원치 않는 이름 공개를 하지 않아도 보호자와 함께 쉴 수 있었다.
도원솔루션에서는 실제 담당자가 변경 이력 조사와 법적 절차에 응하고 있었다. 오승필의 상업 등록 시도는 중지됐고, 문태수가 관여한 변환 과정의 책임도 별도로 확인 중이었다. 검은 셔츠 임현규는 정규 조직의 안전관리 업무를 재편했고, 양복의 방문자는 스스로 원하는 범위에서 자신에 관한 진술을 보존했다. 회사는 둘을 하나로 합쳐 결재하는 프로그램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제일 처음의 사직서를 떠올렸다. 퇴사 버튼을 누르고 사무실 바닥이 열렸을 때, 이 이야기는 누군가 나를 회사에서 못 나가게 하는 저주처럼 시작됐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지나고 보니 더 큰 문제는 내가 아니라, 누구도 다른 사람의 퇴로를 대신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회사가 누군가를 잡아 둘 수 있다면, 퇴사한 사람과 대역뿐 아니라 길을 지나가는 시민까지 그 명부에 붙잡힐 수 있었다.
안내소 밖에서 종이 경비원이 새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아직 자신의 생활을 천천히 정리하는 중이었다. 비가 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비를 피할 곳을 스스로 고르는 데 성공했다. 그 옆으로 장한결이 지나갔다. 두 번째 경비와 약속이 있다며 작은 빵 봉투를 들고 있었다. 서로에게 좋은 날이 될지 모르지만, 둘은 그걸 알아볼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내가 대기소 의자에 앉자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모르는 번호에서 온 메시지였다. `시스템 점검이 필요할 때 연락드려도 될까요?` 발신자는 새 도원 시설팀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곧바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메시지 끝에는 낯선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문 요청이며, 수락 여부와 일정은 직접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웃었다. 적어도 그 회사가 무언가를 배운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강변에는 햇빛이 떨어졌다. 그 햇빛 아래에는 내가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 있었다.
"아저씨, 여기 앉아도 돼요?" 누군가 물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산책 나온 아이와 보호자가 서 있었다. 지난 사건의 아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의자는 비어 있었고, 시설 안내에는 누구나 쉴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이지." 나는 옆으로 조금 자리를 옮겼다. "여긴 아무나 앉아도 되는 곳이야."
아이가 의자에 앉았고, 보호자는 옆에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멀리서 공공 신고 장치의 정상 수신 알림이 아주 작게 울렸다. 누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원증을 찾지 않았다. 공공 시설 담당자가 자신의 교대 시간에 맞춰 확인하면 되는 신호였다.
나는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도원의 자문 요청에 답장을 작성했다. `현재는 쉬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정식 요청서를 보내 주세요. 검토 후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껐다. 아무도 내게 출근 확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때 도원솔루션을 가리키던 파란 화살표를 떠올렸다. 그 화살표는 나만 볼 수 있었고, 결국 나를 회사로 되돌려 보냈다.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실제 출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원할 때 그곳으로 걸어갔다. 문은 회사의 것이 아니었다. 바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던전은 더 이상 사람을 출근시키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고쳐 메고 집으로 걸었다.
**이번에는 정말 퇴근이었다.**
제20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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